자료/연구

문화유산이야기

대목장 고택영
발행일 : 2021-01-22 조회수 : 3429
대목장 고택영

1914. 7. 13 ~ 2004. 12. 19 | 보유자 인정: 1997년 3월 24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대목장 고택영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Master Artisan of Wood Architecture

한옥의 전경은 어딘가 모르게 반듯한 선비의 기개를 닮았다. 곧은 수평선이 여러 겹 겹치면서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가벼운 감정에 휩쓸려 촐랑대고 출렁거려서는 안 되며 하늘을 향한 허황된 과욕을 엄하게 경계한다. 한눈 팔지 않고 앞을 똑바로 응시하며 인간의 본성에 치중해서 인격을 갈고 닦으라는 유교의 인본주의 가르침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하루에도 십수 번을 들락거리며 바라보고 그 속에 직접 들어가서 매일을 생활하는 곳이 집이기 때문에 집이 어떻게 생겼느냐는 사람의 인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이는 현대의 환경심리학을 통해서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려니와, 한옥에서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집의 교화기능을 알아채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집 짓는 건축가, 대목장

대목장은 나무를 재목으로 삼아 집을 짓는 목수를 일컬으며, 문짝이나 가구 등 소규모의 목공일을 맡아 하는 소목장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목조건물을 지을 때에는 와장, 드잡이, 석장, 미장이, 단청장 등과 힘을 합하여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설계부터 공사의 감리까지 책임지고 완성시켜야 하므로 현대의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고건축을 이룩한 장인에 대한 기록을 더듬는 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궁궐영견의궤주례고공기」 등이 인용되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장인(匠人)을 공장(工匠), 대장(大匠), 목업(木業), 공기(工技), 도편수(都邊手, 都片手), 편수(片手), 장인(匠人), 상대목(上大木) 등으로 이름하였다. 고려시대의 건축직제는 건축기술진이 총책임자를 목업지유라 하고 부책임자는 석업지유로 하였으며, 그 하부에 화업지유, 소목장지유, 목업행수교위(木業行首校尉), 조각장지유, 야장행수(冶匠行首)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 때 숭례문(서울 남대문) 수리공사에 종사하는 공장 가운데 목공의 총책임자를 대목이라 하였고 정오품 사직이라는 관직도 부여하였다. 성종 때 대목의 관직은 정3품 어모장군(御侮將軍)에 봉하였다. 조선 고종 때 서울 흥인지문(興仁之門 : 서울 동대문) 중건의 건축직제는 목수편수(木手邊手)를 총책임자로 하고 그 하부에 공답, 연목, 수장, 단청, 조각, 목혜, 가칠, 석수, 야장, 정현 등의 편수와 선장소임, 기거소임 등을 편성하였다.

목수장인에 대하여 고려와 조선초기에는 대목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나 조선후기에는 도편수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다. 해방 이후 전통 목조 건축을 짓는 기술이 사라져갈 위기에 처하자, 이러한 도편수의 기술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하여 1980년 국가무형유산 대목장을 지정하였다. 당시 보유자로는 이광규 선생과 조원재 선생이 인정되었으나, 그분들의 사후 조원재-이광규 선생의 맥을 이은 신응수 선생이 1990년 보유자로 인정되었고, 조원재-배희한 선생의 맥을 이은 고택영 선생이 1997년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선생의 손길이 닿은 전국 150여 채의 고건축들

고택영 선생은 1914년 7월 13일 전북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에서 태어났다. 11세까지 한문을 수학하고 29세 되던 해인 1941년 전북 부안군 동진면 동전리에서 당숙 고은천 선생이 목수였던 관계로 목공일에 뛰어 들게 되었다. 당시 목수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이유로 당숙이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수가 될 것을 결심한 고택영 선생은 도목수 심태점 선생에게서 한옥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42년에는 정읍군 운학동에 위치한 나용균 선생(전 국회부의장)의 문중에서 실을 짓는데 참여혀아 목수의 자질을 인정받았고 본격적으로 목수수업을 하기 위해 상경하게 된다.

서울에 올라와서 당시 답십리 인근에서 한옥짓는 일에 종사하다가 종로에 있는 조계사에서 대목공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조계사로 찾아갔다. 이때 조계사에서는 6.25전쟁 때 파괴된 대웅전(우측:동(동)측추녀가 파손됨)을 보수하고 있엇다. 여기서 조원재 선생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조원재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한식목공기법을 정식으로 배우게 된다. 조계사 대웅전 보수시에 고택영 선생에게 꽃살문을 짜게 했는데 그때 만든 문이 지금도 남아 있다. 조원재 선생은 꽃살문을 만든 것을 보고 그 섬세함과 정교함에 목수로서 대성할 것을 기대하고 남대문 수리현장에도 종사하게 하였다. 10여년 동안 전북지방에서 작은 민가를 지으면서 자귀질, 대패질, 끌질 등 치목의 포에서 일을 하였으나 서울에 올라와서는 궁궐이나 사원의 법당건축에서 포집 등 거대하고 복잡한 건물을 대하게 되자 민가에서 하는 것과 같이 간단하게 되지 않았다. 고택영 선생은 고건축에 대한 전통기법을 알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계도본작성법, 먹줄치는 법, 선자연(扇子椽)거는 법 등에 대해서 조원재 선생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에 배희한 대목장을 사사하게 된다. 이때, 충북 증원군 연풍면 정기용 박사 고택을 보수하면서 한옥건물의 해체 및 조립에 대해 배우게 된다. 또한 고건축기능을 보유하면서 풍수지를 연구하게 된다. 도편수로서 건물을 지을때는 좌향(坐向)과 장풍(藏風) 등 기본적인 배치원리를 알아야 하는데 고택영 선생은 어렸을 때 배운 한문을 토대로 하여 근래의 목수로서는 보기 드물게 풍수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김복술 선생에게 좌향론을 배워 집터 잡는 법을 깨우치고 본인이 이를 정리하여 양지배합생기법(陽地配合生氣法)이라는 이론을 세우고 옛 선현들께서 지어 놓은 집과 명당을 찾아다니면서 본인이 세운 이론과 맞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학술적인 장인이라 할 수 있다. 고택영 선생의 손길이 닿은 고건축은 100여건 150여 채에 이른다. 사찰로는 영암 도갑사 해탈문, 합천 해인사 장경판고, 강화 전등사 원통전, 구례 화엄사 대웅전,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전주 정혜사 보광전, 승주 송광사 국사전,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 등이 있고, 일반 고건축으로는 서울 남대문과 경복궁, 파주 자운서원 등이 있다. 선생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김영성(전승교육사), 김인선, 전명복, 장춘종, 이의찬 등 20명의 문하생들은 ‘해강회(海崗會)’를 조직하고 대목기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작품

장흥보림사 대적광전장흥보림사 대적광전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원표(元表)가 세운 암자에다 860년경 신라 헌안왕(憲安王)의 권유로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이 창건하여 선종(禪宗)의 도입과 동시에 맨 먼저 선종이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가지산파(迦智山派)의 근본도량이었으며,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일컬어졌다.

완주 화암사극락전 / 하앙식 구조먹완주 화암사극락전 / 하앙식 구조

포장형식 중에서 특수한 예로, 국내에서는 완주 화암사 극락전에 유일한 예가 남아있다. 하앙식이란 하앙이라 부르는 살미 부재가 서까래와 같은 경사를 가지고 처마도리와 중도리를 지렛대 형식으로 받치고 있는 공포 형식을 말한다.

고택영 선생이 사용하던 작업도구

대목장은 목조건물을 짓는 목수 중 우두머리이다. 대목일은 현대의 건축가와 마찬가지로 초석을 까는 석수, 기둥을 세우는 목수, 벽체를 바르는 미장, 기와를 씌우는 와장 등 수 십명에서 수 백명을 총괄한다. 집을 지을 때에는 규모가 큰 나무를 켜고 자르고 다듬어야 하므로 소목과 같은 종류의 도구라 하더라도 크기가 큰 톱이나 자귀, 대패 등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작도구 1.탕개톱,2.평대패,3.도끼.

1)탕개톱(틀톱) : 톱에 틀이 붙어 두 사람이 서로 밀고 당기어 켜게 되는 톱이다. 톱위에 탕개줄을 엮고 중간에 탕개목을 설치하여 탕개목을 돌려 탕개줄이 단단히 고정되면 사용한다.

2)평대패 : 가슴에서 밖으로 밀어내는 우리 전통 대패로 덧날 없이 어미날만을 가지고 깎는다. 평면을 만드는 대패로 경쾌하게 잘 깎이는 장점이 있지만 다소 거칠고 엇결 및 옹이 등을 깎을 때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처럼 전통대패는 앞으로 밀어 깎는 방식이나 근래에는 앞으로 당기는 일본식 대패를 사용하고 있다. 크고 긴 부재를 대패질 할 때는 미는 대패가 능률적이고 세밀한 작업에는 당기는 대패가 좋다. 보통 마름질에 따라 막대패(초년대패), 중대패, 잔대패(마무리대패)로 구분한다.

3)도끼 : 원목의 겉목을 치거나 가지치기, 옹이를 제거할 때 주로 사용한다.

약력

  • 1914년 7월출생
  • 1954년서울 조계사, 진주 촉석루 보수공사 참여
  • 1965년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판고 보수공사
  • 1970년전남 구례 화엄사 대웅전, 명부전, 천왕문, 금강문 해체 보수공사
  • 1974년경복궁 경회루 보수공사
  • 1986년논산 관음사 대웅전 신축공사
  • 1989년충남연기군 미암사 대웅전 신축공사
  • 1996년전남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 신축공사
  • 1997년 3월국가무형유산 대목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1년전북 부안군 실상사 복원공사
  • 2004년 12월노환으로 별세
  • 글 이치헌 / (국가유산진흥원 전승지원실장 /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 저자)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서울 성곽의-북문인 숙정문 1976년 숙정문 문루 복원공사 당시 선생이 도편수 역할을 하였다.jpg

서울 성곽의-북문인 숙정문 1976년 숙정문 문루 복원공사 당시 선생이 도편수 역할을 하였다

하앙식 구조 도면.jpg

하앙식 구조 도면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_1965 보수공사시 도편수 역할을 맡았다.jpg

해인사 장경판전 내부_1965 보수공사시 도편수 역할을 맡았다

해인사 장경판전 전경_선생은 1965년 해인사 보수공사 당시 도편수 역할을 맡았다.jpg

해인사 장경판전 전경_선생은 1965년 해인사 보수공사 당시 도편수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