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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유기장 김수영
발행일 : 2021-01-22 조회수 : 2952
유기장 김수영

1949. 10. 12 ~ | 보유자 인정: 2008년 8월 5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유기장 김수영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Master Artisan of Brassware-making

분가한 오빠에게 제사를 물리시고

놋그릇 한 벌씩을 건네시는 어머니

꽃대의 무게중심이 꽃잎으로 번진 날

종부의 긴 침묵이 고봉밥에 담겼다

몇백 년을 궤짝에서 저들끼리 얽혀서

굵게 밴 쓴맛짠맛이 닦여서 지워진 길

살풋 건드리면 종소리 울리는 저녁

노란 국화 짧게 꺾어 소복이 담는다

어머니 늦은 팔십 평생 환화게 피고 있다.

- 정희경 시인의 「놋그릇, 꽃피다」 / 시조시학 2012 여름호

안성맞춤 _ 안성을 대표하는 산물 유기(鍮器)

우리나라에서 유기를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동합금의 일종인 청동기 시대의 동검이나 동경 같은 물건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사용이 확대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다. 삼국시대에는 주로 불교와 관련되어 불상, 범종, 반자 등을 청동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에서뿐만 아니라 제기, 수저, 밥그릇, 향로 등 생활의 전반에 걸쳐서 동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상류층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유기가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같은 유기라도 제작방법에 의해 구분 짓고 있다. 주조해서 만드는 곳은 ‘퉁점’이며 여기서 만든 주물 유기는 ‘붓배기’라 하며 안성이 유명하고, 단조해서 만드는 곳은 ‘놋점’이라 하며, 여기서 만드는 단조품은 ‘방짜’라 부르며 납청 일대가 유명하다. 특히 안성은 행세깨나 한다는 집에서는 갖고 싶어한다는 ‘안성맞춤’으로 이름 높았다. 예전의 안성은 대구, 전주 지역과 더불어 큰 장(場)이 서던 상업의 요충지였다. 안성장에서 팔리는 질이 좋은 물건에는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것도 있었고,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한 것도 있었다. 이 중 안성의 유기(놋그릇)는 튼튼하고 질이 좋기로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갓’하면 통영이 떠올랐던 것처럼 ‘유기’하면 안성을 떠올렸다. 안성의 유기에는 장에다 내다 팔기 위해 대량으로 만든 ‘장내기 유기’와 주문에 의해 만든 ‘맞춤 유기’의 두 종류가 있었는데, 보통의 집안에서는 장날에 나는 ‘장내기 유기’를 사서 이용하였지만, 행세깨나 하는 집안에서는 직접 안성 유기점에 주문해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안성맞춤’이란 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일제강점기 안성의 풍습을 비롯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 추수 김태영 선생의 <안성기략(安城記略)>에 의하면 “안성을 고래로 유기가 명산이다. 안성유기는 견고하고 정교하게 제조하여 전국에서 환영을 받아왔으니”라고 하여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안성유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안성맞춤의 고장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유기장 김수영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기능보유자 김수영 선생은 1949년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친인 故 김근수 선생의 옆에서 유기일을 보고 자라며 일손을 돕다가 자연스럽게 이 일로 들어서게 되었다. 경기도 안성시 봉남동에 위치한 안성마춤유기공방은 아버지로부터 지금까지 70년 이상 가업을 이어받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그의 아들까지 가업을 이으려고 하고 있으니 3대째 이어지는 셈이다. 김수영 선생은 그릇 외에 촛대나 종 등 장식품도 만든다. 17명의 기술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공방에서는 박물관 유물 복제, 종묘 제기 복원 등의 정교한 작업도 하고 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공도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보다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작업을 고집한다. 또한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전승하고 널리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2년 안성마춤유기박물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박물관 1층은 유기제작 과정을 모형으로 소개하고, 2~3층은 부친인 故 김근수 선생이 제작한 유기와 평생 수집한 청동기와 생활용기 등 1,0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힘들고 고된 일을 왜 하냐는 질문에 김수영 선생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아들들도 자신의 뜻을 따라줘 든든하다고 이야기한다. 작품에 낙관을 찍어 이름을 남기는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몇 대씩 대물림할 수 있는 유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김수영 선생은 2008년 부친을 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뛰어난 기량과 함께 이론적 지식 또한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청경 김수영 선생의 돌도장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다.

금이 뜨거운 불을 따라 유구한 시간을 흐른다. 

흐르고 흘러 마침내 형태가 되고

그 빛깔은 빛나고 빛나

영화롭게 빛난다

김수영(金壽榮)선생의 이름자의 의미로 한글시가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선생의 작품세계와 닮아 있다. 유기를 다루는 선생의 마음이 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겠다.

작품

1_ 옥바리 칠첩 반상기 / 6×7~16×7cm

반상기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상차림이다. 그릇의 형태는 옥바리(오목반상기), 연엽식기, 합식기로 나뉜다. 옥바리는 위가 좁고 속이 오목한 형태로 주물기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반상기 위에는 밥그릇인 주발, 국그릇인 탕기, 그리고 장류를 담는 종지, 숭늉을 담는 대접을 놓는다. 대접은 항상 밑을 받치는 쟁반과 한 벌을 이룬다. 7첩 반상의 음식은 반찬 가짓수가 5첩 반상보다 늘어난 것이다. 종지는 초고추장을 더해 3개이고, 찜이 추가되며, 전이 더 놓이며, 회를 올려 놓은 것이다. 유기로 만든 반상기 중 안성의 것은 안성맞춤이라 조선시대부터 많은 이들이 갖고 싶어 찾던 그릇이다.

1_ 옥바리 칠첩 반상기 / 6×7~16×7cm_01
1_ 옥바리 칠첩 반상기 / 6×7~16×7cm_02
2_ 유제촛대 / 24×22×88cm

전통 주물기법으로 주재료는 구리와 주석이 사용되었다.

2_ 유제촛대 / 24×22×88cm_01
2_ 유제촛대 / 24×22×88cm_02
2_ 유제촛대 / 24×22×88cm_03
3_ 주전자 / 44×30×35cm

주형(鑄型)을 제작한 후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녹인 쇳물을 부어 제작하는 주물기법으로 만들었다.

3_ 주전자 / 44×30×35cm_01
3_ 주전자 / 44×30×35cm_02
4_ 유등 / 21×53cm

유등은 전기가 없던 시절에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조명기구 중 하나이다. 유등은 세 가지 구조로 되어 있는데 가장 아래쪽에는 판 형태의 원형 접시를 놓고, 그 위로 기름종지를 매달 수 있도록 수직의 기둥을 세우며, 기둥에 기름을 넣는 작은 종지를 넣을 수 있는 구조이다. 건물의 규모에 따라 유등의 크기도 달라져 궁궐의 전각에는 크기가 큰 유등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4_ 유등 / 21×53cm_01
4_ 유등 / 21×53cm_02
4_ 유등 / 21×53cm_03

제작과정

주조방법으로 유기를 제작하는 과정은 1) 번기 만들기와 쇳물 붓기를 하는 부질간 작업, 2) 표면을 깎고 본색을 내는 가질간 작업, 3) 표면에 장식을 더하는 장식간 작업으로 분업화되어 있다. 각 공정마다 필요한 여러 가지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

부질이란 녹인 쇳물을 주형[틀]에 부어 원하는 기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부질간에는 풀무질로 바람을 넣어 쇠를녹이는 화덕이 있다. 쇳물을 준비하는 동안 쇳물이 들어가 기물이 될 번기의 형태를 만든다. 이 과정은 먼저 원본을 ‘향남틀’ 속에 넣고 ‘송탄가루’를 뿌린 다음 갯토를 채워 넣고 ‘달구개’로 다지고 ‘흙칼’로 표면을 고른다. 이렇게 주물사(鑄物沙)를 만들고, 주형 만들기를 한 다음 물칠을 하여 ‘무집’을 붙인다. 암틀과 수틀도 같은 방법으로 만든 다음 암틀의 번기 주변에 ‘숟가락’으로 도랑을 파듯 물줄을 내고 표면의 이물질은 ‘깃털’로 제거하고 다듬으며, 쇳물이 잘 스며들도록 그을음질을 한다. 번기를 만드는 동안 미리 화덕에 불을 지펴 놓고 재료를 용해시켜 그을음질이 끝난 번기가 식지 않는 상태에서 쇳물을 주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다. 그 사이에 구리 72%와 주석 28%를 저울로 달아 ‘도가니’에 넣고 풀무질을 계속하여 900도 이상에서 끓인다. 도가니를 ‘집게’로 들어올려 ‘부지래’로 불순물을 제거한 후 쇳물을 붓는다.

가질은 부질하여 만든 기물의 표면을 깎고 다듬어 유기가 가진 본래의 색을 내는 과정이다. 가질대의 회전축에 ‘머리목’을 끼우고 기물을 ‘망치’로 쳐서 고정시킨 다음 ‘질나무’를 걸쳐 점점 안쪽으로 위치를 조정한다. ‘물멕이’로 ‘물통’의 물을 찍어 기물에 물칠한다.

1_ 쇳물붓기

1_ 쇳물붓기

2_갯토 뿌리기

2_갯토 뿌리기

3_기물 빼내기1

3_기물 빼내기1

4_기물빼내기2

4_기물빼내기2

약력

  • 1949년 10월 12일안성 출생
  • 1986년~1987년전승공예대전 입선(11~12회)
  • 1991년경기도 우수공예기능인 지정
  • 1991년제23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 1992년제22회전국공예품경진대회특선
  • 1993년제23회전국공예품경진대회특선
  • 1998년제28회경기도공예품경진대회특선
  • 1999년제2회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특선
  • 2000년제1회경기도우수관광기념품공모전동상
  • 2008년 8월5일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06년소상공인 대통령상 수상
  • 2013년재단법인 예올 올해의 장인 선정
  • 2014년 6월~7월한국공예문화 진흥원 구 서울역사 박물관 전시(‘2014 공예플랫폼’)
  • 글 이치헌 / 한국문화재재단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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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단 발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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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단 발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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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구첩겸상반상기_15x6~6.5x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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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 상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