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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 향긋한 봄을 무치다 봄나물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4-17 조회수 : 2002
향긋한 봄을 무치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음식 ‘나물’ 
우리 선조들은 철마다 그 계절에 나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시절을 즐기고 건강을 지켰다. 봄이 돼 기온이 올라가면 우리 몸에도 변화가 생긴다. 겨우내 움츠렸던 근육이 이완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영양분의 소모량이 늘어난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다량 함유돼 있는 봄나물은 그래서 제격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근 요리의 주된 흐름은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 그리고 질감을 살린다’는 것이다. 식재료의 장점은 계절에 ‘집착’한다. 나물은 이러한 경향과 놀라울 정도로 부합한다. 한국음식은 어쩌면 수백 년 전부터 21세기에 다가올 흐름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물은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음식이며,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 더 주목받게 될 음식이다. 

개화기 때 내한했던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먹을 수 있는 나물의 가짓수를 한국 사람만큼 많이 알고 있는 민족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음식에 관심이 많은 세계적 스타 셰프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같은 재료라도 볶거나 말리는 등 조리하고 저장하는 방법에 따라 맛과 질감이 달라지는 나물에 대해 깊은 관심과 찬사를 보낸다. 서양요리에도 나물의 요리법을 적극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방대한 나물의 종류와  대표적 봄나물들 
나물은 우선 그 가짓수부터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한다. 우리말 속에 그 단서가 숨어 있다. 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란 풀을 ‘푸새’라 하고, 무·배추·상추·마늘·고추처럼 사람이 심어서 거둔 것을 ‘남새’라 하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 ‘나물’이다. 즉 먹을 수 있는 식물은 무엇이든 나물의 재료가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자생식물 중에 식용할 수 있는 것은 450종이 넘는다. 

나물은 재료의 특성에 따라 먹는 부위가 달랐고, 먹는 부위에 따라 채집 방식 또한 달랐다. 뿌리째 먹는 나물은 캐고, 뿌리를 먹지 않고 잎을 먹는 것은 뜯고, 고사리처럼 줄기를 먹는 것은 꺾었다. 이처럼 언어에까지 그 세심함이 표현되는 것이 우리 음식이 지닌 진정한 가치다. 한반도는 산이 많고 기후변화가 심해 계절마다 다양한 나물이 나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제철에 않는 이른 봄에 불려서 썼다. 따라서 나물은 연중 어느 때나 밥상에 올랐다. 밥이 중심인 우리네 밥상에서 밥과 나물은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다. 

조리법 역시 재료의 특성에 따라 날것 그대로 사용하는 것, 데치는 것, 볶는 것 등으로 나뉘었는데 어느 방식을 선택하건 재료 본연의 향과 식감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맛을 내는 조미료 역시 간장·된장·고추장·소금 등 최소한의 것들만 사용했으며, 이때도 재료와 양념장의 궁합을 꼼꼼하게 살폈다. 나물을 데쳐 먹는 것은 나물이 가진 향과 영양소의 파괴를 최소화할 뿐 아니라 음식이 부드럽게 넘어가고 속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데친 나물은 생채소보다 양이 4분의 1로 줄어들어 많이 먹게 되는데, 그 덕분에 섬유질을 많이 섭취하게 돼 변비를 개선하고 소화기능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를 얻는다. 

봄나물의 대표 ‘선수’들 중 두릅은 산나물로는 드물게 단백질이 많고, 냉이는 성질이 순해 몸이 허약한 사람에게 좋으며, 돌나물은 칼슘이 우유의 2배에 이르고, 취나물은 비타민A가 많아 혈액 순환을 돕고, 봄동은 항암·항노화 효과가 있는 베타카로틴이 배추의 30배가 넘으며, 달래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고 양기를 보강해 준다. 한편 봄에 나는 어린 싹이 가진 약한 쓴맛은 열을 내리고, 나른해진 몸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이런 봄나물을 찾아 굳이 산과 들을 찾을 것까지도 없다. ‘한국의집’에서 차려내는 밥상에도 어김없이 봄이 핀다. 방풍, 유채, 세발나물, 돌나물, 냉이, 당귀순, 달래, 씀바귀, 미나리 등의 봄나물이 변주와 조화를 거듭하며 밥상을 채운다. 봄의 향과 색을 먹고, 정원을 한 바퀴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충분히 이 봄을 만끽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