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월간문화재

[2018.04] 『양봉요지』 유일본 100년 만에 귀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4-17 조회수 : 1887
국내 최초 양봉 교재


카니시우스 퀴겔겐 신부가 쓴 『양봉요지』 의 가치 
『양봉요지』는 독일 마그데부르크 출신의 카니시우스 퀴 겔겐 신부(Canisius K gelgen, 1884~1964)가 저술했다. 그의 한국 이름은 구걸근(具傑根)이다. 왜관수도원의 박 현동 아빠스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는 1907년 베네딕 도회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에 입회해 1909년 사제서품 을 받은 후 1911년 1월 6일에 서울 백동(현 혜화동 가톨 릭대학교 자리)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파견됐다. 1921년 부터 30여 년간 만주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선 교활동을 하다가 1950년 12월 24일에 옌지(延吉)를 떠나 1950년 초에 본국의 수도원으로 귀환했다. 선교를 매개로 한 한국과의 기나긴 인연 탓인지 그는 1953년 12월부터 1955년 말까지 부산의 독일 적십자 병원에서 수석 통역사 로 봉사하기도 했다. 이 책의 발간 경위에 대해 언급된 성 베네딕도회 관련 역사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그는 선교사업에 물질적 도움을 주기 위해 1916년부터 양봉을 시작했 으며, 1917년에 수도원에서 진행하던 서양의 양봉기술에 대한 강습 내용 중 핵심적인 것만 간추려서 교육용 교재로 사용하고자 한글로 작성해 1918년에 『양봉요지』 등사본 150부를 제작했다고 한다. 카니시우스 퀴겔겐 신부가 서 울 혜화동의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양봉하는 모습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남아 있다. 구걸근 신부는 1916 년에 3,000여 개의 한자에 음과 훈을 적고 독일어로 풀이 한 한문 자전인 『요한덕해(要漢德解)』를 편찬하기도 했다. 


『양봉요지』 원본의 발견과 반환 노력 
『양봉요지』는 한국에는 남아 있지 않고 성 베네딕도회 관 련 문헌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되다가 왜관수도원 소속 독 일인 선교사 바르톨로메오 헨네켄 신부(한국명 현익현)의 노력 덕분에 그 소장처를 파악하게 됐다. 그는 2014년 독 일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구걸근 신부가 몸담았던 슈바이 클베르크 수도원에서 이 책을 발견해 자신의 모원인 뮌스 터슈바르자흐 수도원으로 가져왔다. 현익현 신부는 이 책 의 복사본을 한국에 가져와 그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책의 존재가 알려지자 2015년에 백선기 칠 곡군수는 칠곡군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양봉요지』를 쉽 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어 해제본과 복사본을 함께 묶 어 출판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박현동 아빠스 는 2017년 3월에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의 미카엘 리펜 아빠스가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칠곡군수 및 양봉 관련자 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참석자들은 이 책이 한국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의 반환을 기대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같은 달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은 왜관수 도원을 방문해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과 관련된 사업 추진 을 논의하던 중에 이 소식을 접했다. 김홍동 사무총장은 국외문화재인 이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양봉 교재의 유일 본이라는 점에서 환수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판단해 국 외문화재의 반환 추진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이후 박현동 아빠스는 2017년 10월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을 방문 해 수도원의 아빠스와 장로회 측으로부터 영구대여 방식 의 반환 결정을 받아 내는 성과를 거뒀다.


반환의 의미와 향후 과제들 
『양봉요지』의 반환은 왜관수도원-재단-지자체(칠곡군) 간 협업에 의한 환수의 모범사례로 남을 만하다. 이번 반환의 의미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왜관수도원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 간의 오랜 세월 동안 협력이 있 었기에 가능했다. 둘째, 박현동 아빠스는 2013년 재단에서 진행한 『겸재정선화첩』의 단행본 및 영인본 발간, 전시 및 특별강연회 개최 등 돌아온 문화재 사업이 이번 반환을 이 끄는 데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셋째, 백선기 칠곡군수와 양 봉전문가들이 이 책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인 것이 이번 반환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는 상트 오틸리엔 수 도원을 중심으로, 외방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수도원들 의 연합체다. 『겸재정선화첩』을 고국으로 보내준 에레미 아스 슈뢰더 당시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총아빠스가 현재 이 연합회의 총재 아빠스를 맡고 있다. 이 연합회 소속 수 도원 가운데 1909년부터 한국에 선교사들을 파견한 뮌스 터슈바자흐 수도원, 오스트리아 피히트 수도원 등은 한국 문화재를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재단은 2015년 상트 오 틸리엔 수도원 선교박물관 재개관을 위한 활용지원사업, 2016년부터 현재 진행 중인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선교박 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실태조사와 보존복원지원사업 추진 을 통해 왜관수도원이나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과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재단은 양 기관의 협력 하에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 소속 수도원 소장 한 국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