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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 “궁중 복식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 내 책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04 조회수 :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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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정완 선생에 이어 궁중 복식의 맥을 잇다

침선장이 만드는 궁중 복식은 어떤 모습일까. 궁중 복식은 말 그대로 ‘궁궐 안에서 입는 모든 옷’을 의미한다. 궁 안에 사는 왕을 비롯해 왕비·왕세자·왕세손·왕세자빈·세손빈·공주·옹주 등의 왕족과 상궁·내관 등의 수행인들이 입는 복식까지 통칭한다.
궁중 복식을 착용한 모습에서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고 때와 장소, 격식에 맞는 궁중 복식은 그 사람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또한 집무를 보거나 행사가 있을 때 궁 안을 드나드는 문무백관이나 내외명부들도 격식을 갖춘 의복을 입고 입궐을 하는데, 이 또한 궁중 복식이 된다.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문화인 궁중 복식을 바느질로 짓는 이가 침선장이다. 그 선봉장에 구혜자 침선장이 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작업에 몰두하는 그에게서 장인의 향기와 열정이 느껴진다. 침선은 옷을 짓는 일을 중심으로 실과 바늘로 하는, 다양한 작업을 아우른다. 옷뿐 아니라 장신구, 조각보, 골무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한다. 이러한 침선 기술을 가진 사람을 침선장이라 하는데, 그는 “궁중 복식을 비롯해 우리 전통 옷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 내 책무”라고 말한다. 구혜자 침선장은 2007년 제89호 침선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됐다. 스승이자 시어머니였던 1대 침선장 정정완 선생에 이어 침선의 맥을 잇고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바느질을 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공부보다 바느질에 흥미가 있었지요. 결혼 후에 남편이 ‘당신 재주를 살려 봐요. 어머니의 뒤를 이어서 하면 좋잖아요.’라고 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에게 침선을 배우면서 내게 주어진 일을 부지런하게 해 왔지요.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희열이 있었어요.”



침선의 교과서가 된 『한복 만들기-구혜자의 침선 노트』
 
쉼 없이 바느질을 하면서 옷을 짓는 과정은 재미있고 즐거웠지만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침선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잇는, 섬세하고도 어려운 작업이었다.
“완성된 옷이 얼마나 잘 지어졌는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옷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하기 마련입니다. 작업하는 과정은 어렵지만 완성돼 가는 모습을 생각하며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작업합니다. 막상 완성해 놓으면 부족한 게 보이고, 다시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요. 젊었을 때는 매번 고치고 작업하면서 숱하게 밤을 새웠지요.” 
자신의 의도대로 옷이 아름답게 완성돼 가는 과정이 무척 신비롭기에, 그는 한번 바늘을 잡으면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찍이 스승의 가르침을 기록하면서 우리 전통 옷 만드는 기술을 규격화하고 수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학의 공식처럼 옷 짓는 규격과 공식을 만들면 누구나 쉽게 습득할 것이다. 구 침선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침선을 수치화한 내용을 『한복 만들기-구혜자의 침선 노트』라는 저서로 꾸준히 발간했으며, 이 책은 명실 공히 ‘침선의 교과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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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옷보다 바르게 옷을 입어야 한다.”

“한복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변모해 왔습니다. 시대별로 내려오면 구성은 같지만 모양은 끊임없이 변했습니다. 요즘 한복을 입고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지만 명절이나 경사스러운 날에는 한복을 꼭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고궁과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한복의 대중화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한복을 이용하는데, 한복이 우리 생활에 친숙하게 자리 잡도록 접점을 찾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구혜자 침선장은 “좋은 옷을 입기보다는 옷을 바르게 입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와 장소에 맞게 단정하게 입는 것이다. 어쩌면 옷은 그 사람의 인품과도 연결된다. 궁중 복식을 단아하게 갖춰 입은 모습을 보면, 그 사람에게서 기품이 느껴진다. 구 침선장은 궁중 복식은 남자의 경우 속옷 4가지를 모두 갖춰 입어야 하며, 이어 바지와 저고리 그리고 그 위에 두루마기를 입어야 완성된다고 이른다. 이렇게 속옷부터 하나하나 제대로 갖춰 입어야 전통 복식이다.



옷 짓는 작업보다 한복에 대한 성찰이 우선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침선을 가르치고 있는 구 침선장은 “복식 강좌에는 10년 이상 배우는 학생부터 막연히 한복이 좋아서 온 이들까지 매우 다양한 여성들이 온다”며 “복식을 배우기 전에 우리 한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말한다”고 전한다. 우리 옷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배우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복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성찰이 없으면 한복을 짓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앞으로 후세가 더 발전해야 합니다. 내 뒤를 잇는 사람은 나보다 더 진일보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침선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며, 제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일선에서 일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작업을 계속 하겠다”는 구혜자 침선장. “이 일은 내 호흡과도 같다”는 그의 말에서 ‘장인’만의 근접할 수 없는 향기와 기품이 느껴졌다.



 
- 글. 허주희 사진. 김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