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월간문화재

[2019.08] 하남 천왕사지의 베일을 벗기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7-31 조회수 : 1684
하단 내용 참조 >


하남 천왕사지에 대한 기록
 
가장 이른 기록은 975년(고려 광종 26) 제작된 ‘원종국사혜진탑비’ 다. 탑비에는 여주 고달사에 있던 원종국사 찬유가 대왕의 청으로 광 주 천왕사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大王以大師玄道周行 法身圓對 請住廣州天王寺 遂從之住焉。 대왕이 대사의 불도(佛道, 부처의 가르침)의 주행과 법신(法身, 불법을 깨 달은 부처의 몸)의 원대함에 따라 광주 천왕사에 머물기를 청하니 마침내 그 청에 따라 머물렀다.
천왕사와 관련된 고려 왕실 관련 기록은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수록돼 있다. 두 문헌에는 1366년(공민왕 16)에 천왕사의 사리 운반 에 대한 내용이 남아 있다.
旽與宰樞 迎廣州天王寺舍利于王輪寺 王率百官往觀。…… 居數日 旽率 僧徒 還舍利 贊成李仁任從旽步至天壽寺送之。 신돈이 재부(宰府)와 중추원과 광주(廣州 : 지금의 하남시) 천왕사(天王 寺)에서 모셔 온 사리를 왕륜사(王輪寺)에서 맞이할 때 왕이 백관을 거느 리고 가서 관람했다. …… 며칠이 지난 후 신돈이 승려들을 데리고 사리 를 반환함에 찬성(贊成) 이인임(李仁任)은 신돈을 따라 천수사(天壽寺)까 지 걸어가 전송했다.
천왕사에 대한 마지막 문헌기록은 『세종실록』이다. 실록에는 천왕사 에 보관하던 사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納廣州天王寺舍利十枚于內。 광주 천왕사의 사리(舍利) 10개를 궐내(闕內)에 바쳤다.
천왕사에 대한 기록상으로 사찰이 존재하던 시기를 파악해 보면 ‘원 종국사혜진탑비’가 제작된 975년부터 『세종실록』에 기록된 1446년 까지 사찰이 운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단 내용 참조
본격적인 문화재 발굴조사와 성과
 
근래에 철불과 천왕사지 추정사역 일대에 노출된 심초석이 함께 주 목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문화재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2000~ 2001년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실시한 2차례의 시굴조사였다. 이후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심초석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 확대 한 하사창동 65-4, 65-2번지에 대해 지하물리탐사를 벌였다. 탐사 결 과 추정 목탑지와 석등지 및 추정 금당지 등과 주변 건물지의 흔적을 확인함에 따라 이 일원이 천왕사지의 중심사역일 가능성이 높은 것 으로 인식됐다.

2013년에는 난개발에서 사역을 보호하고자 사역 보존구역을 설정하 기에 이르렀다. 또한 문화재청에서는 이 천왕사지 사역 관련 지역에 대해서는 개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사역 보존구역 중 중심 사역이 위치한 1구역에 대해서는 발굴유구의 현지보존을 기본원칙 으로 유구를 안전하게 복토한 다음 불가피한 경우 지하유구에 영향 이 없는 범위에 한해서 상부에 경량골조의 건축물을 짓도록 하였다.

하남 천왕사지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2009년부터다. 소 규모 개발행위에 의해 개별적인 조사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나 게 됐다. 그 결과 중심사역뿐만 아니라 전체 가람배치까지 개략적으 로 추정할 수 있게 됐다. 2015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천왕사지 중심사역에 대해서는 부분적이지만 1탑1금당이 일렬인 가람배치를 이 루고 있음을 알게 됐다. 현재 하남 천왕사지는 위에서 설정한 사역 보 존구역 내 1구역에 집중돼 있는데, 주요 발굴조사는 21건에 이른다. 천왕사지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의 성과로 볼 때 천왕사지의 중심시기는 통일신라~고려시대로 판단된다. 아직까지 절의 창건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년명 자료는 나오지 않았지만 최근의 연구성과로 보았을 때 7 세기경까지 올라간다는 보고가 있다.

천왕사지의 창건연대를 7세기로 보 는 주장은 사역 내 노출된 심초석에 사리함을 결합한 양식이 7세기경에 출현하는 점, 천왕사지 출토 이중연판 막새의 제작시기가 7세기 후반으 로 편년되는 점, 하남 하사창동 342-7번지 유적에서 조사된 하부건물지2 출토 당초문기와가 인근 이성산성 출토품과 같은 형식임을 근거로 하고 있다.

반면 금당지를 포함해 중심사역에서 출토되는 귀목문(일휘문) 막 새가 건물지의 폐기와 관련돼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13세 기)경에 중심사역이 제 기능을 잃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남 천왕사지는 다른 사지 조사와 달리 각각의 지번에 대한 개별적 조사가 진행됐다. 따라서 조사자료가 각 조사기관으로 분산되는 등의 이유로 천왕사지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편이다. 다만 근래에 천왕사지 중심사역에 대한 대부분이 조사되면서 천왕사지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이 축적된다면 고려 초기 왕실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천왕사지의 실체가 조금씩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 글. 사진.이진호.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조사연구2팀 부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