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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 풍류방의 언어 풍경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7-31 조회수 : 2121
하단 내용 참조


박헌봉과 국악인, 국악계 은어 조사
 
광복 이후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을 이끌었던 박헌봉(朴憲鳳)은 그와 함 께 국악원 일을 맡았던 현철(玄哲)과 박영호(朴英豪) 그리고 창악계의 김 연수(金演洙), 유기룡(劉起龍), 국악예술고등학교 교사였던 지영희(池瑛 熙) 등 제씨의 도움으로 국악계에서 사용되는 은어를 조사한 바 있다. ① 박헌봉이 조사한 국악계의 은어는 성씨에 관한 말(41종), 수와 대소에 관한 말(14종), 사람에 관한 말(35종), 인체에 관한 말(18종), 동물에 관한 말(10 종), 음식에 관한 말(21종), 기계류에 관한 말(17종), 건의류에 관한 말(6종), 건물류에 관한 말(9종), 동작에 관한 말(25종),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 말(26 종), 지명에 관한 말(8종), 기타 명사(28종) 등으로 분류돼 발표됐는데, 언어 적으로 국악인들의 생각을 읽어 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생각된 다. 이러한 은어 중 음악과 관련된 것을 보면 그리 많지 않은데, 이는 음악 용어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것으로 굳이 은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 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소리와 모양을 딴 ‘악기’의 은어들
 
은어를 박헌봉에게 제보한 지영희·김광식·성금연·전사종은 각기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꽹과리의 명인이었다. 아마도 이들이 악기의 은어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해금은 ‘꽹꽹이’ ‘꼬맹이’ ‘떡메’로 불렀다고 한다. 요즘 해금을 깽깽이라 부르는 것이 꽹꽹이라 할 수 있고, 꼬맹이 또 한 꽹꽹이와 함께 해금의 소리를 흉내 내서 부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떡 메는 해금의 울림통 모양과 입죽의 모양이 떡메와 유사해 그리 부르는 것 이라 볼 수 있다. 피리는 ‘고추’ ‘끌’ ‘꾸쳉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모두 막 대처럼 생긴 피리의 모양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대금은 ‘진대쇠’ ‘가루잡 이’라고 했다. 가야금은 ‘가야꼬’ ‘금개’라고 불렀다. 가야꼬는 가얏고의 센 소리이고, 금개는 개금의 글자 순서를 바꾼 것인데, 개금은 가야금의 준말 로 보인다. 꽹과리는 ‘낯짝’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그 모양이 얼굴처럼 생 겨서 그리 부른 것으로 보인다. 이 외의 악기로 징을 ‘엉버리’ ‘울음쟁이’ ‘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소리와 관련 있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장구 를 ‘안되미’ ‘타구’라고 부르는 것 중 타구는 장구가 타악기로 치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악계를 포함해 무속계에 널리 퍼 진 안되미는 ‘안대미’ ‘대미’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 언어적 기원을 대기 에 어려움이 있다.



전통음악 ‘예인’에 관한 은어들 - 기산 박헌봉 선생, 성금연, 지영희 선생의 연주 장면.
전통음악 ‘예인’에 관한 은어들
 
사람에 관한 말에도 음악인들과 관련된 은어가 조사돼 있다. 당시 국악 인들은 자신을 ‘산이’라 불렀는데, 이에 대해 일반인들은 ‘비갑’이라고 했다. 본디 산이는 1824년(순조 24)에 쓰인 갑신완문(甲申完文)에 처음 등장하는데, 예인들의 조직으로 도산방(都山房)이 있고, 다른 지역에 좌 우산방(左右山房)이 있어, 도산주(都山主)나 우산주(右山主)의 명칭을 줄여서 보통 ‘산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산이들이 정통으로 전통음악을 하는 예인이라 갑이(甲)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 들, 즉 일반인은 비갑이(非甲)가 되는 것이다.

기생은 ‘생째’ ‘째상’이라고 했는데, 기생의 생자에 사람에게 쓰는 째를 붙여 ‘생째’라 하고, 이를 뒤집어 ‘째상’이라고 부른 것으로 이해된다. 소 리꾼을 ‘맴이꾼’이라고 부른 것은 소리를 내는 매미에 사람을 뜻하는 꾼 을 붙여 맴이꾼이라 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지 지금으로서 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악사를 ‘인고’ ‘비재군’이라고 부른 것은 악 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고인(鼓人)을 뒤집은 말이며, 광대를 뜻하는 재인(才人)으로부터 파생된 잽이, 즉 재비를 뒤집고, 사람을 뜻하는 군을 붙여 비재군이라 부른 것으로 파악된다.

제자를 부를 때 ‘정갱이짬’이라고 한다는데, 아랫다리 앞쪽 부분을 뜻하 는 정강이와 짬이 결합돼 아마도 아랫사람을 뜻하는 의미에서 예술을 전수받는 제자로서 의미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국악계의 은어는 세습무계의 은어와 큰 차이가 없음이 검토된 바 있는 데, 소리꾼들의 소리와 무속인들의 소리를 서로 다르게 부르는 것이 흥 미롭다.② 박헌봉은 소리를 ‘혜덕’ ‘폐기’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무속인들 의 소리는 ‘어정’이라고 한다. 폐기는 패기라고도 하는데, 가야금산조 명 인이었던 김윤덕은 판소리와 단골네 굿하는 소리와 다르다고 했으며, 명고수 김명환은 박초월 명창 앞에서 정정렬 춘향가의 “그 때에 향단이” 하는 소리대목 성음이 어정 성음에 가깝다고 비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③ 판소리는 패기 성음이며, 남도지역 육자배기 무가의 성음이 어정 성음인 것이다. 패기와 어정은 아마도 소리를 부르는 스타일과 관련된 말에서 나온 듯싶다.

박헌봉 이후 국악계에서 사용한 언어를 전문적으로 추적한 학자들은 그 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은어는 집단의 언어이기 때문에, 우리의 예인 집단 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집단의 은어를 계속 찾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 은어들로 우리 음악 속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과 같이 학교 교육을 통해 전통음악인을 양성하는 시대에는 국 악인들이 만들어서 그들 사이에서 전승되던 은어는 점차 전통음악인들 사이에서 사라져 가고, 교육 현장에서도 더 이상 주목하지 않는 사어(死 語)가 되어가고 있다.

① 박헌봉은 “국악계 은어”를 1966년 『駱山語文』 창간호에 처음 발표했다. 본고에서는 朴憲鳳, ““國樂界 隱語,” 『月刊 文化財』(서울: 月刊文化財社, 1971), 11月 創刊號, 40-43쪽 재수록된 것을 인용했음.
② 김창일, “세습무 은어와 예인집단 은어의 비교 연구,” 『민속학 연구』(서울: 국립민속박물관, 2010), 제호.
③ 이보형, “창우집단의 광대소리 연구”, 『한국전통음악 논구』(서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0). 105-7쪽.



- 글.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