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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 자연에 어울리는 풍요로운 살림살이를 위해 심은 나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8-03 조회수 : 1454
하단 내용 참조

신사임당의 손길이 아름답게 머문 ‘오죽헌의 배롱나무’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 태어나고 자란 오죽헌은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목조건물로, 600여 년 전인 1400년대에 지은 집이라고 한다. 이 집의 오랜 역사를 증거하는 것은 집을 짓고 곧바로 심었다는 율곡매와 배롱나무다. 사임당이 이 집에 머무를 당시에는 이미 100년쯤 자란 큰 나무였다. 사임당은 매화를 유난히 좋아해서, 맏딸의 이름에 매화를 넣어 매창(梅窓)이라고 했고, 뒤란의 매실나무도 극진히 보살폈다고 한다. 사임당이 남긴 고매도(古梅圖) 묵매도(墨梅圖) 등은 뒤란에서 자라는 율곡매를 보고 그린 것이지 싶다.
사임당은 열아홉 살 때 덕수이씨 이원수(李元秀, 1501~1561)와 혼례를 치른 뒤에도 오죽헌에 머무른 기간이 길었다. 혼례 뒤 남편의 가문이 오래도록 살았던 경기도 파주 율곡리에서 살기도 했지만, 그 시기에도 강릉을 자주 찾았고, 율곡 이이도 이곳 오죽헌에서 낳았다. 조선 전기의 가족 문화가 외가와 친정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화에 따른 일이다.명종 때의 문인 어숙권(魚叔權, 생몰연대 미상)이 ‘안견 다음에 간다’고 평가했던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은 오죽헌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외가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정에서 살았기에 생활의 부담이 비교적 적었다는 것도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여겨진다. 서울과 파주를 오가며 생활한 사임당의 살림살이는 대부분 오죽헌에서 이어졌다. 결국 강릉 오죽헌은 사임당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곳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불어 사임당이 정성껏 키운 배롱나무는 사임당의 자취를 고스란히 담은 나무라 할 수 있다.
오죽헌이라는 이름의 정갈한 살림채 정면에 서 있는 이 배롱나무는 단연 이 집의 상징이다. 집을 처음 짓고 심은 나무라면 육백 년이 넘은 나무이지만, 그 당시에 자라던 줄기는 오래 전에 죽었다. 하지만 뿌리가 죽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 뒤, 죽은 뿌리 곁에서 세 갈래의 새 줄기가 솟아오르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율곡이 이 집에 머무를 때에도 있었다고 하니 새 생명이 움튼 것만도 4백 년이 넘은 오래전의 일이다.
가운데에 있어야 할 원래의 줄기 곁에서 새로 난 줄기가 셋으로 갈라져 올라왔다.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된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는 높이가 4m쯤 된다. 배롱나무로서는 큰 편에 속한다. 따뜻한 날씨를 좋아해서 대개는 남부지방에서 많이 자라는 배롱나무에 중부 이북인 강릉 지역은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며, 자연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살아온 아름다운 신사임당의 고운 손길을 타고 이처럼 훌륭하게 자랐다.

생명의신비를드러낸 ‘부산화지공원의배롱나무’

배롱나무는 곳곳에서 많이 심어 키우는 나무이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살이와 어우러진 나무를 찾아볼 때 그 아름다움의 느낌은 배가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배롱나무로 손꼽히는 나무 역시, 사람의 손길을 타고 자란 나무다. 바로 부산 양정동 화지공원의 배롱나무다. 천연기념물(제168호)로 지정한 배롱나무로서는 유일한 나무다.부산진구의 화지산 자락에 자리잡은 화지공원은 고려시대 중기에 안일 호장(安逸戶長)을 지낸 동래정씨 문도(文道) 공의 묘소 앞 양쪽에 서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다. 정문도가 지낸 안일호장은 일흔 살이 되어서 퇴직한 호장으로, 퇴직 후에도 안일하게 살 수 있도록 녹봉을 지급한 벼슬을 가리킨다. 그의 후손 가운데에는 〈정과정곡 鄭瓜亭曲〉을 지은 정서(鄭敍)가 있다.
정문도의 묘가 있는 화지공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명당자리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예로부터 풍수지리를 이야기할 때는 5명당이니 8명당이니 하는 말을 할 때에는 이곳 부산 화지산 묘지를 빼놓지 않았다. 지금은 앞쪽으로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어서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묘지 아래 쪽으로 거침없이 펼쳐진 풍광은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왜 이곳이 명당인지를 한눈에 알아 볼 만하다.부산 양정동 배롱나무는 정문도의 후손들이 가문의 부귀와 영화를 기원하며 조상의 묘 앞에 심은 나무다. 처음 이 자리에서 배롱나무를 심은 건 팔백 년 전쯤의 일이다. 그때 후손들은 묘소 앞 동서 양 편에 한 그루씩 배롱나무를 심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르면서, 나무줄기는 썩어 문드러져 사라졌다. 그 뒤에 바로 그 자리, 그러니까 처음에 심은 나무의 채 죽지 않은 뿌리 부분에서 새로운 줄기가 솟아오르면서 다른 여러 그루의 나무인 것처럼 자랐다. 마치 강릉 오죽헌 배롱나무와 같은 형상이다.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에서 새 줄기가 솟아오른 것 역시 오래전의 일이어서,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까맣게 죽어 썩어들었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땅 위로 올라온 줄기가 동쪽에는 네 개, 서쪽에는 세 개로 나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동쪽에 서 있는 나무의 키가 조금 더 커서 8m를 조금 넘는 규모이고, 서쪽의 나무는 6m 정도 된다. 배롱나무가 위로 높이 자라는 성질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매우 큰 나무인 셈이다. 무엇보다 사방으로 고르게 펼친 나뭇가지의 품은 사방으로 10m를 넘어 무척 신비롭다. 키보다 넓게 펼친 가지 펼침이 무척 풍요롭게 느껴진다. 긴 세월 동안 사람의 손길을 타고 융융하게 자란 생명의 신비다.
오죽헌의 배롱나무나 화지공원의 배롱나무는 모두 아름다운 살림살이를 곱게 이어온 옛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나무다. 사실 오래된 나무 없이 옛사람의 자취를 느끼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사람의 마을에 우뚝 서서 옛 사람살이 이야기를 서리서리 풀어내도록 잘 지켜야 할 소중한 나무들이다

 
(이미지 설명)
02_강릉 오죽헌 대문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서 있는 배롱나무
03_배롱나무 종류 가운데에는 흰색 꽃을 피우는 ‘흰배롱나무’도 있다.
04_오래 전에 죽은 줄기와 새로 난 줄기가 신비롭게 어우러진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
05_활짝 피어난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의 아름다운 꽃
 
- 글.사진. 고규홍(나무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