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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 기획특집 2. 연등회 공동체의 특성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3-15 조회수 : 1920

기획특집 2. 연등회 공동체의 특성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_자세한 내용 하단참조

기획특집 2. 연등회 공동체의 특성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_자세한 내용 하단참조



봄날의 오래된 젊은 축제

연등회 공동체의 특성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음력 4월 8일이 다가오면 고즈넉한 산속의 사찰에서부터 번화한 도시의 거리에까지 등이 내걸린다.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례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깨끗한 옷으로 차려입은 이들이 등을 들고 행진한다. 연등회가 벌어지는 대한민국의 봄 풍경이다. 연등회는 등을 밝혀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이다. 다양한 공연과 대동놀이도 함께 벌어져 축제의 양상을 띠기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종교행사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봄날의 축제가 됐다. 


봄날, 빛의 축제


본격적인 연등회는 아기 부처님을 불단에 모셔 목욕시키고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종교적 믿음으로 정갈하게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을 되새긴다. 이어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만든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부처님의 지혜로 온누리를 밝히려는 행렬이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대한민국 전역에서 행렬은 이어진다. 신명 나게 즐기면서도 차별 없는 세상을 기원하며 걸어간다. 행진이 끝나면 참가자들이 어우러지는 장이 펼쳐진다. 인종과 세대, 그리고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되는 절정의 순간이다. 


유연한 연등회 공동체


연등회는 ‘제한 없는 참여’를 지향한다. 그래서 연등회에는 불교 신자는 물론이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 역시 참여한다.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연등회 연행자이고, 연등회 연행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 이들은 대체로 불교 종단, 사찰, 신행 공동체별로 단체를 구성하여 행렬에 참여한다. 워낙 대규모로, 그리고 지역별로 다양하게 연등회가 벌어지기에 어떤 구심이 필요하다. ‘지역봉축위원회’와 ‘연등회보존위원회’가 구심 역할을 감당한다.

지역봉축위원회는 서울을 포함한 각 지역에서 연등회 거행을 위하여 여러 단체가 연합한 조직이다. 웬만한 중소도시에서는 모두 구성된 것이 지역봉축위원회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하고 그 뜻을 널리 새긴다는 목적을 공유하며, 해마다 유연하게 구성된다. 지역의 사찰, 종단, 남녀노소 별로 구성된 다양한 단체들이 여기에 참여한다. 지역봉축위원회는 각 지역에서 연등회를 연행하고 전승하는 거점이다. 이 조직을 중심으로 개개인은 연등회를 준비하고 연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연등회 관련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전승한다.

연등회 연행과 전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조직이 연등회보존위원회이다. 주로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전국적으로 연등회 관련 지식과 기술 공유의 매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정 지역 혹은 특정 공동체에서 창안된 유의미한 지식과 기술을 전국적으로 공유하고 매개하는 지원 조직이다. 연등회보존위원회는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전승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전통등 연구, 전통등 제작과 그 방식 공유, 연등회 경험의 지속적인 축적과 공유 등을 담당한다.


포용과 통합의 젊은 축제


연등회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연등회는 화합의 장이다. 종교적 의례를 통해 참여자들은 정신적 일체감을 느낀다. 동시에 함께 등을 만들고 행진하면서 공동체적 일체감을 확인한다. 그 일체감은 가장 느린 사람의 보폭에 맞추어 행진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다 함께’, 이것이 연등회의 정신이다. 대동놀이에서의 어우러짐은 연등회 정신의 구체적인 구현이다. 연등회가 화려하지만, 절제와 배려가 돋보이는 까닭은 이러한 포용성 때문이다.

연등회에서는 남녀노소가 제각기 주도적 역할을 한다. 연등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여성과 어린이의 적극적 역할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춤추고 노래하며 참여한다. 예로부터 사월 초파일은 어린이 축제이자 여성 축제날이었다. 그러한 흐름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개성이 발휘되는 장이 연등회이기도 하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연등회를 이끌어 온 주체는 젊은이들이다. 그들은 창의적으로 등을 만들고 등 수레를 끌며 연등회를 주도한다. 연등회가 살아 움직이는 유산이자 생동감 있는 축제로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연등회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장이다. 바람 불면 ‘풍전연등(風前燃燈)’으로, 비가 오면 ‘우중연등(雨中燃燈)’으로 기쁨과 행복을 누렸다. 힘든 시기에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연등회가 사회와 교감을 바탕으로 하는 행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외환 위기로 온 국민이 좌절하고 있을 때 ‘다시 일어섭시다’라는 구호로 용기를 북돋웠다. 세월호 사건으로 비탄에 빠졌을 때는 흰색 추모등과 만장등으로 ‘국민의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함께 모으는 연등회’를 만들었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국인과 함께해 온 문화유산이 연등회이다.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특징과 가치


2020년 12월 연등회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의 등재 결정은 연등회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서 살폈듯이 연등회는 의식이자 축제이다. 또한 등 제작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전통공예의 요소도 갖고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다양한 불교문화를 접할 기회가 연등회에서 마련된다. 국적, 인종, 종교, 장애 등의 경계를 넘어서는 사례가 연등회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연등회가 갖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이기도 하다. 

연등회 공동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연등회 공동체는 다양하고도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다. 그러하기에 연등회 연행공동체는 정체되지 않는다. 유연한 조직 구성의 성격, 그리고 지역봉축위원회와 연등회보존위원회로 대표되는 구심체의 존재 등은 연등회 공동체가 갖는 특징이자 가치라 할 수 있다. 연등회는 공동체에 의해서 재창조되고,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말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축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등회는 ‘오래된 젊은 축제’인 것이다. 힘든 시기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 준 것도 공동체 차원에서 연등회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유네스코의 주목 사항과 연등회 전승의 과제


연등회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는 축하할 만한 일이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등회의 우수성과 높아진 우리나라의 위상과 영향력을 말하고 있다. 등재 결정문을 보면 두 가지 사항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모범사례’라는 평가까지 곁들인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이는 연등회의 이후 전승 과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등재 결정문에서 주목한 첫 번째 대목은 ‘등재가 어떻게 무형유산 전체의 가시성 확보와 무형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는 잘 준비된 신청서를 제출한 점’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무형유산의 중요한 속성이라는 점’과 ‘일반적인 연례행사가 무형유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연등회 등재가 보여줄 것이라는 평가이다. 이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와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의 주목 지점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두 번째 대목은 ‘연등회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이후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보호조치를 제안한 점’이다. 물론 대표적인 봄 축제로 국내외적으로 알려져 그 저변이 튼튼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제도 운용이 이루어지고 있어 부작용의 가능성은 적다. 무엇보다도 연등회 연행과 전승의 핵심 주체가 ‘무소유’, ‘베풂’, ‘나눔’ 등을 핵심적 실천 과제로 삼는 불교 공동체라는 점도 부작용의 가능성을 낮게 만든다. 그런데도 의도하지 않거나, 혹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의 대처 방안에 유네스코는 주목한 것이다.


연등회의 등재 이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으로 제시된 것에서 화려하고 돋보이는 부분만이 강조될 가능성은, 연등회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조치를 통해 대응할 수 있다. 연등회의 획일화와 지역 간 경쟁 가능성은, 지역과 공동체별로 특성에 맞는 지원과 제도 운용의 다원화로 대응할 수 있다. 전문적 기·예능 전승의 약화는 관련 전승 체계의 확립과 전승 환경의 안정화라는 조치라는 대응을 제안할 수 있다.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의 포착에서 시작하는 연등회의 미래


결국, 유네스코가 높이 평가하고 주목한 사항은 연등회 공동체와 정부의 이후 과제가 된다. 구체화해 본다면, ‘연등회 공동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유네스코가 주목하는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한 점검’, ‘전승 환경의 안정화’, ‘전수 교육의 체계화’, ‘연등회 가치와 의미의 천착과 확산’, ‘지역과 공동체별 특성에 맞는 지원과 관리의 다원화’, ‘연등회 관련 단체 간의 교류와 협력망 구축’, ‘전국 연등회 현황 모니터링’ 등으로 정리할 수있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등재의 기쁨보다 이후 과제의 부담감이 더 크다. 

하지만 이 과제들에 대한 해결은 연등회 등재 전후에 보여준 국민과 유네스코의 관심과 축하에 화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화답의 첫걸음은 아직도 다 포착하지 못한 전국의 다양한 연등회를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특히 한적한 사찰이나 작은 지역 공동체의 연등회에 주목해 보는 것이다. 이는 평범하고 관례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던 행위들의 무형유산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첫걸음이다. 서울 중심부에서 거대하게 벌어지는 연등회와는 또 다른 독특함을 보여줄 것이기에 그러하다. 부처님은 두루 존재하고, 그 탄생을 기념하는 행위 역시 두루 벌어질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글. 허용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