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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 인간문화재 그 깊이 - 500년 전통의 맥을 이으며 민속관광축제로 전승하는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3-15 조회수 : 1585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_자세한 내용 하단참조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_자세한 내용 하단참조



500년 전통의 맥을 이으며 민속관광축제로 전승하는

충남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온 국민이 한 번 해봤거나 해볼 민속놀이가 윷놀이와 줄다리기다. 윷놀이는 명절 때 가족 모임에서, 줄다리기는 학교 윤동회나 직장 체육대회에서 빠지지 않는 민속놀이다. 줄다리기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손과 마음에 지문처럼 여러 행태의 추억과 실제 삶에 DNA로 박혀 있다. 따라서 줄다리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로 등재된 기지시줄다리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동체 문화로 자리 잡아 매년 ‘줄로 하나 되는 세상’의 가치를 실현하며 500년 전통의 맥을 여전히 잇고 있다. 


동남아 국가 줄다리기와 함께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줄다리기는 경남 창녕 영산면에서 행해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6호 영산줄다리기와 충남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리에서 전승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5호 기지시줄다리기다. 지역에서 전승이 대체로 잘 되는 한국의 줄다리기는 이 두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외에 강원도 지정무형문화재 제2호 삼척 기줄다리기,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 지정 감내게줄다리기, 제20호 의령큰줄땡기기, 제26호 남해선구줄끗기 등 4개가 더 있다. 한국의 이 6개 국가·시도지정 무형문화재 줄다리기는 아시아 농경 문화권의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줄다리기와 함께 2015년 ‘줄다리기 의례와 놀이’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국내 국가와 시도지정 무형문화재와 외국의 무형문화재의 공동 인류무형유산 등재는 줄다리기의 정신을 실현하여 협동하면서 그 안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가치를 공유하며 얻은 결과다. 이 ‘줄다리기 의례와 놀이’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선도한 다국간 공동등재 종목이다. 


공동등재를 1년 앞두고 2014년 10월에 국가·시도지정 무형문화재 줄다리기 보존회는 ‘한국전통민속줄다리기 전승단체 연합회’를 꾸려 인류무형유산 공동등재를 위해 줄다리기 때보다 더 큰 힘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기지시줄다리기는 ‘비녀목’(줄다리기할 때 수줄과 암줄을 잇는 가운데 큰 나무) 역할을 했다. 2014년 조직 결성부터 2018년까지 기지시줄다리기 보존회장과 보존회 관계자들이 연합회장과 사무국장을 맡아 인류무형유산 등재와 이후 전승 활성화를 위해 ‘줄다리기의 힘’을 더했다. 그 중심에는 구자동 기지시줄다리기 예능보유자가 있었다. 구 보유자는 196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60년 갑년을 줄다리기 줄에서 보냈다. 1960년 이후 당진 기지시줄다리기 역사는 초대 보유자 이우영 선생과 구자동 보유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 보유자는 기지시줄다리기 전승과 관련한 기록들을 직접 기록했고, 그 결과물은 전승교육 교재가 됐다.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식


줄다리기는 여러 사람이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마주 잡아당겨 많이 끌어당기는 편이 이기는 민속놀이다. 풍년을 비는 농경 의식으로, 예로부터 주로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하여 행해졌다. 지방에 따라서는 단옷날이나 백중날, 한가위에도 행해졌다. 

기지시줄다리기도 이 놀이 행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전설이 깊고, 제를 중요시한다. 또 암줄과 수줄이 각각 100m가 넘고, 지름도 1m가 넘어 성인도 줄을 타고 앉으면 두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큰 줄은 굵어서 곁줄을 붙이고, 곁줄에 손잡이 줄의 젖줄을 수도 없이 달아매어 졸의 형상도 풍요를 상징하는 대형 ‘설치미술’이다. 대장이 줄 위에 올라타 지휘하는 점도 기지시줄다리기의 특징 중 하나다.


기지시줄다리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록이나 고증은 없고, 약 500여 전 전부터 전해져 오고 있다는 구전만 있다. 송악읍 기지시 마을은 당진시 소재지에서 아산 예산 방면으로 7㎞쯤 가면 국도 32호 선변에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이 국도가 한양으로 통하는 관도여서 과객이 많아 통행하기 어려울 만큼 붐볐다고 한다. 따라서 기지시 시장은 5일장이 아니라 3일장이어서 한 달에 열두 장이 섰다고 전해진다. 약 500년 전 이 고을에 갖은 액상이 발생했다. 백주에 맹호가 나타나는가 하면 하룻밤에 사이에 육지가 매몰되어 5개 면이 바다가 되어 인명을 앗아가고, 재산이 손실되고, 괴질이 창궐하여 민심이 동요되고, 주민들은 공포와 실의에 빠졌다고 한다. 마을의 괴변이 잇따르자 모여드는 과객 중에 이인(異人)이나 기인(奇人)들이 나타나 ‘이 마을은 기지시(機池市)로 지형이 베틀형국으로 옥녀직금(玉女織錦) 하는 지세여서, 윤달(閏朔) 드는 해에 온 마을 주민들이 극진한 정성으로 당제를 지내고 큰 줄을 만들어 다려야 모든 재난을 몰아내고 태평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기지시줄다리기가 시작된 셈이다.


풍년 기원과 더불어 지역 특색을 오롯이 담다


기지시 장터 동쪽에 있는 국수봉에 있는 국수당에서 당제를 먼저 지내고,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열린다. 당제는 유교식에 의해 진행된다. 향토제이나 승려와 무당이 함께 참여해 유불선(儒佛仙)으로 종교가 통합함으로써 마을이 태평을 이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지시(줄다리기)는 옥녀직금이라는 풍수설을 배경으로 하여 이 지역의 지형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제를 통해 농사짓는 사람들은 풍년을 기원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득을 많이 보고, 병든 사람은 소생하고, 벼슬을 원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급제하기를 소원하는 공리성을 추구한다고 한다. 특히 지금도 제례 마지막 순서로 기지시 시장의 번성과 지역주민들의 건강, 상인들의 이익 창출을 위한 내용으로 지역 무속인들의 축원이 이뤄진다. 


당제가 끝나면 기지시 내륙 쪽 수상(水上)마을과 바다 쪽 수하(水下)마을 사람들이 각자 마을에서 짚단으로 줄을 만들어 나와 추첨으로 줄의 소유를 결정하고, 각 마을 사람들이 젖줄을 만들어 곁줄을 매단다. 수상마을의 줄을 수줄로, 수하마을 줄을 암줄로 해서 줄을 완성한다. 줄이 이렇게 완성되면 놀이마당인 흥척동(興尺洞)의 보릿밭(지금은 줄 제작 장소인 공쟁이)들에서 기지시줄다기리 박물관 놀이마당으로 줄을 옮기는 길놀이를 시작한다. 이 광경은 용이 지상에서 임무를 마치고 하늘로 승천하기 위한 형상을 상상하는 모습으로 장엄하고 엄숙하다. 실제로 기지시줄다리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마을마다 농기(農旗)를 앞세우고 농악단이 풍물을 치며 수천 명의 마을 주민들이 길놀이와 줄다리기에 참여한다.


수상마을(수줄)이 이기면 마을에 변괴가 없어지고, 수하마을(암줄)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이어지나, 암줄로 하는 수하마을이 자주 이겨 기지시는 늘 풍년이 든다고 한다. 줄다리기로 승부가 정해지면 줄은 승자 쪽에서 가져가고, 젖줄과 곁줄을 끊어가거나 도려내어 가져가기 위해 또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곤 한다. 이 줄을 달여 먹으면 요통이나 불임에 약효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즐기는 민속관광축제로 승화되다


각 고을에서 전승되고 있는 줄다리기는 대개 정월 보름에 진행되지만, 기지시줄다리기는 농번기 들어가기 직전 매 윤년 음력 3월 초에 대제행사로 진행됐고, 평년에는 양력 4월 초순에 소제행사로 진행되다가 2010년 이후에는 전국 관광민속축제로 매년 행하고 있다. 길놀이에서부터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마을 농악대와 길군악 장단에 맞춰 거대한 줄을 줄다리기 장소인 놀이마당으로 옮긴다. 줄 제작장에서 놀이마당까지 1km를 옮기는 데 3~4시간이 걸린다. 수줄이 먼저 도착해 뒤따르는 암줄을 맞이하고, 암줄의 머리가 번쩍 들리면서 수줄의 머리는 옆으로 살짝 돌리면서 암줄의 머릿속으로 성스럽고 우아하게 진입한다. 수줄이 암줄에 진입하면 비녀목을 끼워서 수줄과 암줄을 하나로 엮는다. 음양의 조화와 천지만물의 생성 근원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풍년을 기원하며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관광축제 행사로 진행된 이후로는 남녀노소, 국적 불문하고 참여해 대동놀이로 즐기고, 승자 쪽의 농기들을 모아놓고 추첨해 황소 1마리와 우승 농기를 부상으로 수여한다.


기지시줄다리기는 박물관을 따로 운영하며, 생생문화재 전수관활성화사업 등 교육프로그램과 함께 공동등재 국가인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 등과의 교류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구자동 보유자는 “공동등재된 이들 국가 외에 일본, 중국, 북한 등과도 교류사업을 펼치며, 원하면 이들 국가의 줄다리기도 공동등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석용 사무국장은 “선대 보유자분들과 전승자분들이 보존과 전승을 올곧게 이어와 줘서 감사하다”면서도 “현재의 관광축제 방식의 전승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다”고 전했다.


글. 김민영(한국문화재재단 홍보팀 전문위원)

사진. 김도형(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