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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여름호-동물의왕국] 모두읽기-문화의 비밀을 푸는 또 하나의 열쇠, 동물상징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1-09-30 조회수 : 5892



(모두읽기_사진1)각종 동물 토우 _ 경주문화재연구소


각종 동물 토우 _ 경주문화재연구소 


(모두읽기_사진2)돼지 가족 _ 국립민속박물관


돼지 가족 _ 국립민속박물관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생활문화나 종교, 관념 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의미를 띠고 있는 동물상징(動物象徵)을 많이 사용했다. 바위 그림이나 동굴 벽화를 비롯하여 토우와 토기, 고분 벽화 등 에서 수많은 동물이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동물상징은 그 당시 사람들의 의식 세계(의미와 관념)를 반영하고 있으며, 생활상의 일부분을 표현하는 데서 나아가 시대와 역사, 문화를 이해하고 비밀을 푸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글_ 천진기(문학박사, 前 국립민속박물관장)



문화의 비밀을 푸는 또 하나의 열쇠, 동물상징



(모두읽기_사진3)숙종명릉산릉도감의궤 (상), 청룡 _ 국립중앙박물관


숙종명릉산릉도감의궤(상), 청룡 _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문화 속 동물상징이 지니는 의미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생존을 위한 원초적 본능에서 동굴이 나 바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신앙 미술을 창조했다. 그 신앙 미술은 동물에게 여러 의미를 부여한 동물상징으로 발전해 왔다. 한국 건국 시조신화의 중요한 모티프가 동물이다. 단군의 어머 니로 나타나는 곰, 개구리의 형상을 한 금와왕(金蛙王), 백마(白 馬)의 혁거세, 금돼지의 아들 최치원, 지렁이의 아들 견훤(甄萱), 호랑이의 도움으로 살아난 고려 태조 왕건의 6대조 호경장군, 해동 육룡 조선의 『용비어천가』 등 건국신화의 동물들은 한국의 동물상징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우리 조상들은 동물의 외형이나 행태(行態) 등에서 상징성, 암시 성을 부여하였다. 한국문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들은 여 러 문화적 관계 속에서 속성(屬性), 기호(記號)의 상징체계로서 전시대(全時代)와 전영역(全領域)에 걸친 문화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동물상징은 문화의 비밀을 푸는 또 하나의 열쇠이다.


구찌(GUCCI)의 고사상에 오른 돼지


우리는 굿이나 고사 등을 지낼 때 상 위에 돼지머리를 놓은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무당의 큰 굿에서나 동제(洞祭)에는 돼 지를 희생으로 쓰고 있다. 각종 고사 때는 어김없이 돼지머리가 등장한다. 시월 상달 고사철에 푸주간에 ‘고사용 돼지머리 있음’ 이라고 써 붙일 정도이다. 고사나, 개업 같은 행사에서 돼지머리 를 가장 중요한 ‘제물’로 친다. 이처럼 제전(祭典)에 돼지를 쓰는 풍속은 멀리 고구려부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도 전승되고 있는 역사가 깊은 민속이다. 돼지는 신화(神話)에서 신통력을 지닌 동물, 제의(祭儀)의 희생 (犧牲), 길상(吉祥)으로, 재산(財産)이나, 복(福)의 근원, 집안의 재신(財神)을 상징한다.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돼지는 신에게 바 치는 제물임과 동시에 나라의 수도를 정해주고, 왕이 자식이 없 을 때 왕자를 낳을 왕비를 알려주어 대를 잇게 하는 신통력을 지닌 동물로 전해진다. 『삼국사기』 고구려 유리왕편, 『고려사』 고 려세계에 돼지가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과 고려의 수도 송악을 점지해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산상왕 편에서 산상왕은 아들이 없었으나 돼지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 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은 보통 돼지가 아니라 하늘의 제사에 쓰이는 제물의 교시(郊豕)이다. 제물로 쓰인 돼지는 신통력이 있 고, 신의 뜻을 전하는 사자(使者)의 상징으로도 나타난다. 희생 에 쓰이는 돼지가 신기하고 기이한 예언적 행위를 한 것으로 나 타난다. 최근 1억 원 이상 복권 당첨자의 23%가 돼지꿈을 꿨다 거나 황금돼지해에 태어난 아이는 만복을 타고난다는 속신 때 문에 결혼과 출산이 줄을 잇고 있다. 얼마 전 서울 이태원에 이 탈리아 브랜드 ‘구찌가옥’ 매장이 개장했다. 1층 매장에 들어서 면 계단 옆 오른쪽 화면 가득 디지털 고사상이 눈에 띈다.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 요소인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조상신이 머 무는 신성한 사당을 그림으로 그려 조상신을 받드는 후손의 효 성 어린 마음을 표현한 그림), 돼지머리, 색동디자인을 결합한 돼 지머리 고사상이다. 주로 개업식에 사업 번창을 위해 고사상을 차리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돼지는 역사 문화적으로도 긴 전통을 가졌고, 한국과 세계, 아날 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면서 이어온 재운(財運)과 행운(幸運)의 동물상징이다. 돼지상징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관념으로 남아 전승되고 있다.



(모두읽기_사진4)천마도 _ 국립경주박물관

천마도 _ 국립경주박물관 

(모두읽기_사진5)구찌가옥의 디지털 돼지고사상 _ 구찌 코리아

구찌가옥의 디지털 돼지고사상 _ 구찌 코리아 



흰색을 숭상하는 한민족의 풍속이 담긴 흰 동물


흰색은 민족의 색이자 태양의 색이요, 하늘의 색이다. 흰색은 상서로운 서조(瑞兆, 상서로운 조짐)로 여겼다. 해모수는 오룡거를, 휘하들은 흰 고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유화부인을 따 라다니며 고주몽을 잉태시킨 햇빛, 혁거세의 탄생을 알린 말 등 은 모두 흰색이거나 흰색의 상징이다. 신화에서 하늘과 태양과 관 계있는 흰 기운, 흰 동물이 등장하는 것은 하늘의 뜻을 받드는 왕이라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 신화가 숨어 있다. 흰색은 신화적 으로 새로움과 상서로움의 예조(豫兆)이다. 흰 동물을 신성시하 고, 서수 또는 서조로 여기는 풍속은 많다. 흰색 동물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인식하고, 예로부터 백호, 백사, 백 마, 백록, 흰 까치, 흰 참새 등 흰색 동물의 출현은 좋은 일의 징조 로 여겼다. 백호(白虎)는 서쪽을 지키는 신령으로 민속에서는 상상의 동물 이다. “백호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영물이다. 하지만 지도자가 악 행을 저지르거나 인륜을 거스르는 일이 많아지면 광포해진다”, “백호가 나타나면 권력자는 몸을 낮추고 부자는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고 한다. “산전수전 겪은 호랑이가 세상 이치를 깨달으면 털이 희게 변한다”고 한다. 전통적인 백호는 사신도에서 상상의 동물 백호로 가장 많이 등장한다. 고구려 벽화고분을 포함하여 서쪽의 방위신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상상의 동물이었 던 백호는 생물학적으로 희귀한 존재이다. 줄무늬 없는 백호는 전 세계에 약 20마리만 존재할 정도이고, 서울의 놀이공원에도 백호가 살고 있다. 다른 호랑이에 비해 엄청난 인기가 있는 것도 이런 문화적 배경과 생물학적 희귀성 때문일 것이다.옛날이나 지금이나 희귀한 백사(白蛇)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백화증에 걸린 백사는 간혹 나타난다. 백화증은 피부의 색소세포 속에 멜라닌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온몸이 하얗게 되는 증상이다. 이 신진대사 이상증은 열성형질로 유전되기때문에 출현 빈도가 대단히 낮다. 흰색 동물을 만나면 좋은 일이생긴다는 믿음에서 백사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생각한다.하늘을 나는 천마(天馬), 흰 백마! 백마의 흰색은 광명 즉, 태양의 상징이자, 남성의 원리이다. 백마는 신성, 서조, 위대함의 특이한 관념을 지니고 있다. 신랑이 백마를 타고 장가를 들고,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시대와 사회를 구원하는 것이다. 혁거세 신화와 천마총 천마도의 백마는 최고 지위인 조상신이 타는말이고, 고대 소설 ·시조 ·민요 등에서는 신랑 ·소년·애인 ·선구자·장수 등이 타고 왔다.최근까지도 흰 동물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다. 그러나 “흰 짐승은 행운’이라는 견강부회(牽强附會,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을 억지로끌어다 붙임)”, “흰 까치, 흰 참새 등 희귀동물의 잇단 출현은 길운(吉運)?”등 흰 동물의 출현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과 함께 신성시하는 것은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논조로 변하고 있다. “흰 동물의 알비노 개체란 돌연변이에 의해 유전적으로 색소 형성이 결여된 동물 개체를 뜻한다. 알비노 개체 동물은 보통 색소 형성이 안 돼 흰색을 띤다. 동물 전반에 걸쳐 모든 종에서 발견되고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백호나 백사 등이 알비노 개체인데 그 희소성 때문에 주목받지만 자연계에서 알비노 개체는 포식자에게 금방 눈에 띄는 등 생존에는 오히려 불리하다.” 이런 과학적인 설명과 함께 그래도 마지막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흰 사슴이나 소, 흰 뱀 등이 발견되어 신성시되기도 했었다”라는 대목을 꼭 붙인다.



(모두읽기_사진6)무신도 _ 국립민속박물관

무신도 _ 국립민속박물관 

(모두읽기_사진7)사슴과 원숭이 _ 국립중앙박물관

사슴과 원숭이 _ 국립중앙박물관 



시대와 나라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역사성을 담은 동물상징


동물에게 부여한 여러 상징은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고 상반된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은 똑같은 상황과 사건을 전혀 다르게 평가하는 인간 사고의 다양성과 동물이 가진 여러생태적 특성 때문이다.쥐는 남의 곳간을 털어서 먹고사는 습성 때문에 ‘도둑’, ‘수탈자’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모두가 잠든 밤에 이리저리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먹을 것을 거둬들이고 그것을 하나로 모으는 모습은 근면함이나 저축, 부자의 이미지로 비치기도했다. 조그마한 몸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쥐의 모습에서 약삭 빠른 얌체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하는 반면, 빠른 몸놀림으로 집안을 돌아다녀서 세상 모르는 게 없는 정보통이자, 지혜의 상징으로 여겼다. 뱀은 다산(多産)의 상징이자 불사(不死)의 존재이기도 했지만, 사악하고 차가운 간사한 동물로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뱀은 지혜의 신이자 아테네의 상징물이었고 논리학의 상징이다. 과거에 용의 승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용오름현상일 가능성이 높고, 용은 상상의 동물일 뿐이라는 현대의 과학적 사고는 지금의 용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고 있다. 재수 없는 동물로 여겼던 사슴과 노루가 한 편의 현대시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고고(孤高)한 동물’로 바뀌었고, 어린 자식을 잃어버린어미 원숭이가 느꼈던 단장(斷腸)의 슬픔은 한국전쟁의 슬픔이 담긴 ‘님이 넘던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역사성이 가미되었다. 동물상징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역사성을 담는다. 그 시대와 사회의 관념, 종교, 사회, 정치적 상황 등이 동물상징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동물의 상징이 이렇게 다양하게 변하는 것은 문화가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식, 신념,행위의 총체인 문화 속에 동물상징이 존재한다. 문화는 항상 현재 진행형으로, 현재의 생활이 바로 문화이며 이것은 미래의 전통문화로 전이된다. 동물상징도 그러하다. 동물상징은 문화를 푸는 또 하나의 열쇠이자 암호가 되는 것이다. 동물 상징을 통해 인류의 총체인 문화의 실타래를 푸는 것은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답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동물세계에서 가장 나쁜 험구, 인간 같은 놈!


형편없이 잘못 쓴 글씨를 ‘개발새발’이라고 한다. 눈 위에 찍혀 있는 개나 새의 발자국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나로서는 수긍하기 어렵다. 미련한 사람을 ‘곰 같다’ 하고 머리가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하며 교활한 사람을 ‘여우 같다’고 하고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고 한다. 더구나 개를 빗대어서 하는 욕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개의 충직성을 잘 아는 인간들이 할 말이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혹 동물세계에서 가장 못된 동물을 ‘인간 같은놈!’이라고 하진 않을까. 동물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모두읽기_사진8)십이지상 곱돌제쥐상 _ 국립경주박물관

십이지상 곱돌제쥐상 _ 국립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