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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여름호-동물의왕국] 두렵다-괴물이 된 동물, 때론 호랑이보다 무서운 닭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1-10-01 조회수 : 2923


괴물이 된 동물, 때론 호랑이보다 무서운 닭


옛 문헌을 살피면 ‘괴물이 된 동물’이 계속해서 언급된다. 신화나 옛이야기 따위를 인용하는 것은물론이고, 괴물과의 만남을 구체적으로 묘사 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고민한다. 이처럼 괴물이 된 동물 이야기를 보면 당시의 구체적인 생활상과 사회상, 문제의식까지 엿볼 수 있다.


글_ 곽재식(『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저자)


호랑이를 신성시한 옛 풍습


예부터 한국인들이 두려워한 동물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동물은 역시 호랑이가 아닐까. 중국의 역사책 『삼국 지』에는 중국 주위의 외국에 관해서 서술해 놓은 부분이 있는 데, 이 대목에는 ‘예(濊)’라고 하는 나라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예는 흔히 요즘 교과서에서 동예라고 부르는 나라인데, 『삼국지』 의 기록을 보면 동예 사람들은 호랑이를 신으로 모시면서 제사 지낸다는 풍속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한국사에서는 보통 동 예를 두고 지금의 강원도 영동 지방을중심으로 동해안 지역에 있었던 나라로 보니, 이런 이야기는 고대 한국인들의 사상을 나 타내는 풍속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삼국지』에서는 예 라는 나라의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고조선의 역사가 잠깐 설명 돼 있다. 이런 구성을 보면, 호랑이를 신성시하는 풍습은 고조선 시대로부터 이어져 먼 옛날부터 한국인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산에서 호랑이를 마주치면 매우 위험하다. 가끔 겨울철, 먹을 것 이 없어진 호랑이가 산에서 민가로 내려오면 옛사람들로서는 호 랑이에 대적하기가 어려울 테니 목숨을 잃을 위기라고 생각하기 도 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퍼져 나가면 호랑이는 사람 목 숨을 쉽게 앗아갈 수 있는 공포의 상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호랑이가 죽음의 신령처럼 느껴진다거나 강한 힘을 가진 지배자처럼 느껴지는 때도 있을 듯하다.



(두렵다-1_사진01)두 마리 호랑이가 수놓아진 흉배 _ 국립중앙박물관

두 마리 호랑이가 수놓아진 흉배 _ 국립중앙박물관

(두렵다-1_사진02)호랑이와 까치 _ 리움미술관

호랑이와 까치 _ 리움미술관



숭배를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 된 호랑이


그렇다면 자연히 호랑이에 대한 숭배 풍습이나 호랑이의 모 습을 신령스러운 상징으로 여기는 풍습도 탄생할 수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뱀을 닮은 상상 속의 괴물인 용을 신성하게 여겨서, 용이 임금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든가 용이 비바람과 홍수를 조 절한다는 식의 신화와 전설을 많이 만들었다. 어쩌면 고대 한국 인들은 그 비슷하게 호랑이의 형상을 한 성스러운 짐승이나 신령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삼국지』에 나오는 호랑이 숭배 풍습 은 그런 상상이 의식으로 굳어진 모습을 기록한 것일 수 있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고 외국 문화가 도입되면서, 호랑이 신령과 비슷한 다양한 토속 신령에 대한 숭배 풍조는 조금씩 쇠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호랑이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 무서 운 이야기는 꾸준히 이어졌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호랑이를 신으로 숭배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흔한 것은 아니지 만, 그래도 호랑이를 실제보다 훨씬 더 무서운 괴물처럼 과장한 이야기쯤은 제법 보인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의 강감찬이 서울 지역의 호랑이들을 몰아 낸 이야기에는 신령 비슷한 호랑이가 사람의 모습으로도 변신 할 수 있는 마술 같은힘을 갖고 있다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시 대의 책 『고운당필기』에는 천모호(淺毛虎), 즉 털이 듬성듬성 빠 진 징그러운 모습의 호랑이 한 마리가 무척 악명 높았다는 이야기 가 소개되어 있기도하다. 조선 후기에는 사냥에서 조총, 즉 화승 총 구조의 간단한 총을 사용하는 기술이 꽤 퍼져 있었는데, 그런데도 천모호는 어찌나 재빠르고 힘이 셌는지, 수십 명의 사냥꾼이 함께 덤벼들어 여러 번 총을 쏘아서 겨우 잡았다고 되어 있다. 이 때 천모호 사냥에 나선 사람 이름이 김파총(金把銃)이라고 되어 있는데, ‘파총’이라는 한문의 뜻이 총을 잡는다는 뜻이니, 아마 ‘김 총잡이’ 내지는‘금총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당시 조선 최고 의 포수가 나서서 겨우 해치웠다는 사연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무서운 짐승이 된 반동 이야기


사연의 세부를 더 살펴볼 만한 이야기로는 조선 중기의 이야기책 『어우야담』에 실린 ‘반동(班童)’이라는 이름의 호랑이에 관 한 소문을 골라볼 수도 있다. 반동은 본래 아주 어릴 때 사람에 게 발견되어, 산속에서 사람이 키우던 짐승이었다. 앞뒤 정황으 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아마도 지금의 전라북도 어귀의 어느 산 에서 처음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 짐승의 이름이 반동이라는 것은 몸에 얼룩무늬가 있기에 ‘얼룩무늬 아이’ ‘얼룩 동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그러니 산속에서 누군가 우연히 기르고 싶게 생긴 귀여운 아기 짐승 하나를 발견했는데 몸에 얼룩무늬 내지는 줄무늬가 있어서 이름까지 붙여 길렀다는 이야기다. 


반동은 자라나면서 점차 완연한 호랑이의모습을 나타내게 된 다. 그러자 더는 그런 무섭고 거대한 짐승을 집에서 기를 수 없 게 되었다. 결국 반동은 집을 떠나 다시 산으로 돌아가서 야생의 삶을 산다. 그러나 반동은 대단히 영리한 호랑이였고, 어릴 적부 터 사람 곁에서 살아서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잘 아는 호랑이였 다. 그래서 반동은 사람들의 삶을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반동 은 위험하고 무서운 괴물 같은 짐승이 된다. 


반동은 종종 사람을 공격해 잡아먹기 시작한다. 보통의 호랑이 였다면, 산속 깊은 곳에서 살면서 오히려 사람이 사는 마을에 는 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품에서 자라나 사람에 게 너무나 익숙한 반동은 그렇지 않다. 반동은 사람을 좋아하면 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여차하면 사람을 공격하는 데 거 리낌이 없다. 아마도 추운 겨울 온 산이 눈으로 뒤덮이고 대부분 의 생물이 전멸하여 먹을 것이 없어지면, 반동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창고에 쌓아 놓고 사는 마을의 풍요로운 풍경을 떠올렸을 것이다. 힘들게 이 산 저 산 차가운 눈길을 뛰어다니며 사냥감을 쫓아다닐 필요 없이, 사람 사는 마을에 가면 먹잇감들이 그 자리 에 잔뜩 옹기종기 모여 살고있다. 사람 사는 곳에 가면 가축도 살고 있고, 사람을 공격해도 된다. 


그 때문에 반동은 밤에 슬쩍 마을에 나타나 사람을 공격하는 무서운 짐승이 되었다. 『어우야담』에는 심지어 반동이 사람 목소 리를 흉내 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실려 있다. 사람 잡아먹 는 호랑이가 출현한다는 소문이 돌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문단 속을 철저히 하고 집 밖에 잘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럴 때 사람을 속여서 이끌어 내기 위해 호랑이가 사람의 말로 불러낸다는 뜻인 것 같다. 어디까지나 떠도는 소문이었겠지만 03 반동이 특히 ‘권농(勸農)’이라고 사람을 불렀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권농’은 농사를 권장한다는 뜻인데, 조선시대에는 시골 마을의 유력한 사람에게 ‘권농’이라는 호칭을 내려 주고 그 마을의 지도 자 비슷하게 쳐 주는 제도가 있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시골 마 을의 이장 내지는 농촌 청년회의 회장 같은 위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마을에서 이장을 맡고 있는 사람을 ‘이장님’이라고 부르듯이, 당시에도 권농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은 높여서 “권 농”이라고 부르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을 무서운 호랑이가 흉내 내서 사람을 홀리듯 이끌어냈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호랑이도 고양잇과 동물이 니 어떻게 잘 하면 사람 소리와 그럭저럭 닮게 들리는 야옹거리 는 소리를흉내 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그러다 ‘야 옹’이라는 소리가 ‘워옹’ 내지는 ‘권농’ 비슷한 발음으로 들렸고, 그것을 착각해서 소문이 퍼진 게 아닐까? 어쩌면 반동은 진짜 호랑이가 아니라 사실은 고양이와 좀 더 비슷한 다른 야생동물 인 살쾡이나 스라소니였을 지도 모른다. 살쾡이는 호랑이보다는 훨씬 작아서 거의 고양이에 가까운 짐승이지만 그래도 언뜻 살 쾡이를 호랑이로 착각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심지어 1960년대 『대한뉴스』 영상 중에도 우연히 발견한 살쾡이 비슷한 동물을 ‘범의 새끼’라고 착각해서 촬영해 놓은 영상이 있을 정도다. 게 다가 살쾡이나 스라소니가 어릴 때는 어지간한 집고양이 못지않 게 귀엽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릴 때 가까이 두고길렀을 가능성 도 더 높을 것이고, 또한 나중에 자라나서는 조금 더 사람 목소 리에 가까운 ‘야옹’ 소리를 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으스스한 생 각을 해 보자면, 호랑이가 마을에 나타난 것을 먼저 본 누군가가 원한을 품은 사람이 일부러 호랑이에게 당하라고 불러냈다는 범죄를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괴물 같은 장산범 이야기 


반동 이야기에 더욱 눈이 가는 점은 2010년대 이후로 유행 한 장산범 이야기와 닮아 보이는 점도몇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인터넷을 위주로 도는 자료를 보면 장산범이 예로부터 전설 이 내려오는 한국 전통 괴물처럼 이야기하는 글도 있고, 장산범 의 특성이나 마력에 대해서 이런저런 해설을 해 놓은 자료도 가 끔 보인다. 그렇지만 사실 장산범은 2010년 전후로 인터넷에서 생겨난 이야기로, 부산의 해운대 장산 인근에서 호랑이와 비슷 하지만 흰색의 긴 털을 가진 이상한 괴물 같은 것을 보았다는 소 문 한두 가지가 겹치며 만들어진 것이다.


이 소문에 장산범이라는 근사한이름이 붙고, 이후 장산범이 TV 에 보도되고, 장산범을 소재로 한 만화, 소설 등이 만들어지면 서,장산범의 습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덧붙여졌다. 그 결과로 장산범은 더 무섭고 괴이한 이야기로 자리잡게 된 것이 다. 나는 최근에도 장산범에 대해 조사한 방송국의 취재팀에 협 조해준 적이 있었는데, 취재 기록을 들어 보면 정작 해운대 장 산 지역에서 예로부터 오래 살아 온 주민들은 장산범이라는 이 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겨난 장산범 이야기의 세부 사항을 살펴보면, 장산범이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 한다는 내용이 제법 퍼져 있다. 장산범은 공격 대상을 홀리기 위해, 사람이 아니면서 사람의 말 을 따라 하는 괴물이다. 호랑이와 닮은 짐승인데 사람이 사는 곳 근처에 살면서 사람의 말을 흉내 내 사람을 홀린다는 점은 공교 롭게도 반동 이야기와 장산범 이야기가 비슷해 보이는 대목이다. 사람을 공격하는 무섭고 요사스러운 짐승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사람들 사이의 소문에서 탄생한 이야기인 만큼, 400년 전 조선 의 반동 이야기와 21세기에 시작된 장산범 이야기가 이렇게 닮 았다는 점은 한국인들 사이에 그때나 지금이나 수백 년이 흘러 서도 무엇인가 공통된 정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호랑이를 한국인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히 굳건하지 만, 남한 지역에서 호랑이가 멸종된 지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어떤 허전한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가 다시 돌아온 것일까? 생각해볼수록 재미있는 문제다. 



(두렵다-1_사진03)쌍계도(雙鷄圖) _ 국립민속박물관

쌍계도(雙鷄圖) _ 국립민속박물관

(두렵다-1_사진04)벽사도(辟邪圖)_ 국립민속박물관

벽사도(.邪圖) _ 국립민속박물관



조선시대에 퍼진 요계 이야기


그런가 하면, 반대로 지금으로서는 매우 공감하기 어려운 괴 물 같은 동물 이야기도 조선시대에는 여럿 찾아볼 수 있다. 그중 에서도 다시 한번 꼽아 보고 싶은 것은 요계(妖鷄), 즉 요사스러 운닭 이야기다.


요계의 형상은 여러 사례로 나타난다. 암탉이 변해서 수탉이 되 었다든가, 병아리가태어났는데 발이 세 개였다든가 하는 따위 다. 『조선왕조실록』에 선명히 실려 있는 사례로는 1684년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에서 머리에 뿔이 난 암탉이 발견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 기록에서는암탉의 머리에 난 뿔의 크기가 엄지손가락 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길이라고 되어 있는데, 단단하고 날카로 운 것을 비유해서 ‘수탉의 발톱’ 같았다고 되어 있다.


지금에 와서 따지고 보면 암탉의머리에 뿔이 나는 것 정도는 그 냥 피부에 특이한 증상 하나가 생긴 것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 는 일이다. 의학이 발전한 현대에 수집된 사례를 보면 사람 중에 서도 피부가 변질되어 원래 손톱이 자랄 필요가 없는 부위가 손 톱 같은 재질로 변한다거나 하는 원인으로 작은 뿔 같은 모양이 생긴 사례가 조사되어 있다. 전국 각지에서 수없이 많은 숫자를 기르는 닭 중에서 한 마리에 뿔 모양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을 무슨 무서운 괴물처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임금의 활동과 나랏일을 다루는 『조선왕조실록』에서까지 무슨 중요한 이야기처럼 지면을 할애해 기록해 둘 정도였다는 점이 그 증거다. 게다가 요사스러운 닭, ‘요계’라는 표현은 원래 조선 전기의 이야기 책인 『용천담적기』 등에도 보이는 것이니,이런 생각은 수백 년에 걸쳐 조선시대에 꽤 깊게, 널리 퍼져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세상의 기운을 동물에게 투여하다


도대체 왜 이상하게 생긴 닭 따위를 두려워했을까? 그 이유는 『용천담적기』에서 요계에 대해 설명해 놓은 부분을 보면 잘 나타 난다. 『용천담적기』에는 이런 이상하게 생긴 짐승이 출현하는 까닭에 대해 세상에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기운 이 일그러지고 있고, 그 때문에 그것이 짐승들의 세계에도 영향을 끼쳐서 요사스러운 일이 생긴다고 해설했다. 지금은 ‘요괴(妖怪)’ 라는 말을 보면 영웅들이 물리치는 괴물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리 곤 하지만 조선 시대 기록을 보면 요사스럽고 괴상한 징조를 일컬 어 요괴라고 부르는 글이 자주 보인다. 예를 들면 갑자기 비가 너 무 많이 온다거나 너무 짙은 안개가 끼는 등의 현상조차 조선 시 대에는 요괴라고 부르곤 했다. 그리고 그런 요괴, 요괴 현상, 요괴 스러운 사건을 흔히 어떤 나쁜 일에 대한 징조라고 여겼다.


『용천담적기』를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요계, 즉 닭이 이상한 모습을 띠는 것, 특히 암탉이 이상한 모습을 띠는 것은 궁중에서 여성이 이상한 일을 하기 때문에 세상의 기운이 흐트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조선 중종 시대에는 문정왕후 의 힘이 강했고, 숙종 시대에는 장희빈과 그 세력이 정치권에서 논란이 될 때가 많았다. 그러면 옛사람들은 그런 여성의 활동 때 문에 세상의 음양조화가 무너져서 이상한 일이 생기고, 이를테 면 머리에 뿔난 암탉이 출현하기도 한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그 것은 하늘이 보여 주는 징조이며, 나아가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 면 빨리 그 여성들로부터 힘을 빼앗으라는 경고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실록에까지 이런 이야기를 써 놓았던 것이다.



(두렵다-1_사진05)숙종실록 15권, 숙종 10년 8월 4일 정유 1번째 기사 _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숙종실록 15권, 숙종 10년 8월 4일 정유 1번째 기사 _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지금 보면 황당한 이야기다. 만약 사람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동물이 괴물로 변하는 징조가 정말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면, 아무 쓸데없고 근거도 없는 고정관념 때문에 몇백 년, 몇천 년 동안이나 남녀를 성으로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옛 시대의 발상이야말로 이치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리어 성 평등이 헌법에 명시되는 현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조선 시대 내내 괴물과 요괴가 득실거려야 마땅하지않겠는가? 


동물 이야기로 살펴보는 시대 흐름


이처럼 동물에 대한 옛사람들의 공포와 동물을 괴물로 해석 하는 옛 기록 속의 소문 속에는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문화와 사상이 생생하게 섞여 보존되어 있다. 멋지고 아름다운 말로 가공해 놓은 고매한 사상에 대한 책이나 엄정하 게 남겨 놓은 공식 역사 기록을 연구하는 것 못지않게 이런 이야 기들을 살펴보는 일은 옛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을 돌아보 는 일은 재미도 있거니와 재미 이상의가치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나간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시 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도 결국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