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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여름호-동물의왕국] 두렵다-인간을 벌하는 동물, 뇌공신과 불가사리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1-10-01 조회수 : 3007


(두렵다-2_사진01)벼락장군 _ 가회민화박물관


벼락장군 _ 가회민화박물관



샤머니즘 세계에서 ‘두려운 것(두립다)’은 귀신의 어원이라 한다. 두려운 대상은 공포, 불안, 무서움, 근심을 준다. 그 대상이 만약 동물이라면 어떨까? 한국문화에서 동물은 대개 수호, 벽사, 오복(五福)의 상징물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여겨졌다. 1) 그런데 동물을 모티브로 인간을 징벌하 고 두렵게 하는 존재들은 희소함에도 후대에 계속 전해져 내려왔다. 이들은 언제부터 있었고,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었을까? 왜 지금은 우 리에게 낯선 존재일까? 뇌공신(雷公神)과 불가사리(不可殺伊)를 중심으로 그 기록과 그림을 살펴본다.


글_ 엄소연(前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문한국(HK)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HK연구교수)



인간을 벌하는 동물, 뇌공신과 불가사리



(두렵다-2_사진02)뇌신 _ 산해경


뇌신 _ 산해경 



번개와 천둥을 일으키는 뇌공신(雷公神)


뇌공신은 뇌신(雷神), 뇌공(雷公), 뇌사(雷師), 뇌공장군(雷公將軍)으로도 불린다.2) 그 기원은 고대 신화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18권) 「해내동경(海內東經)」에 등장하는 뇌신이다.3) 


뇌택(雷澤) 가운데에 뇌신이 있는데,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자신의 배를 두드린다. ···


또한, 중국 전한(前漢)시대 역사서인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용의 머리에 사람의 뺨이며 자신의 배를 두드리면 천둥이 친다”라고 설명돼 있다. 

이렇듯 뇌신은 뇌수(雷獸, 천둥 같은 소리를 내는 짐승)로 <그림2>처럼 사람과 용이 결합한 반인반수의 형상이다. 알다시피 반인반수는 고대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조연이자 주로 이형(異形)과 기형(奇形)의 괴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뇌신의 몸은 왜 하필 용이었을까? 용은 예로부터 농경문화권의 대표적인 수신(水神)이었다. 농경에 있어 ‘물’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비’는 절대적인 천신(天神)이 주관하는 것으로 믿었다. 


특히 갑작스러운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우레나 벼락 등은 고대인들의 시청각에 강한 충격을 주는 자연현상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신의 분노, 징벌, 심판으로 여겨 두려워했고, 그 원인은 인간의잘못에 있기에 세상의 조화와 안녕을 위한 신격(神格)과 다른 반인반수의 이질적 생김새로 뇌신을설정했다고 볼 수 있다.


무속에서는 벼락장군(벼락신장(神將))이 뇌공신과 유사하다. 즉, “화재나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도 하는 낙뢰(落雷)의 위력을 빌 려, 자연재앙이나 이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셔지는 벼락장군은 불, 비, 벼락을 다스리며 벼락을 쳐서 비를 오게 하므로 기우제를 지낼 때 특별히 모셔지기도 한다”라고 전해진다. 이 후 뇌신은 도교, 불교와 습합하면서 다른 형상을 띠게 된다. 



(두렵다-2_사진03)뇌공신 _ 목아박물관

뇌공신 _ 목아박물관

(두렵다-2_사진06)북을 울리면서 돌고 있는 뇌공신 _ 가회민화박물관

북을 울리면서 돌고 있는 뇌공신 _ 가회민화박물관



<그림 3>의 뇌신은 박쥐 같은 날개, 큰 귀, 뾰족한 주둥이, 검은 피부색을 가진 모습이다.4) 원래 박쥐는 도교의 천신을 수호하 는 뇌신과 그 천병(天兵, 천자의 군사를 제후의 나라에서 이르던 말)을 상징한다. 뇌신 주변의 구름은 하느님 또는 신선의 대표적 인 탈 것이자, 만물을 잘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는 의미다. 뇌신은 주위를 둘러싼 구름 속에서 그의 주 무기인 뇌정(雷霆, 천둥)과 왕홀(王笏, 유럽 군주의 권력과 위엄을 나타내는 손에 드는 상징물. 상아나 금속으로 만들며, 꼭대기에는 화려한 장식 이 붙어 있다)을 손에 쥐고 9개의 북을 연신 두들기며 천고(天 鼓,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대기 중의 방전 현상)를 만들어 내 고 있다.5) 뇌신은 불화로 많이 제작되는데, 북을 두드리는 행동은 우레를 만드는 의미와 함께 인간들에게 번뇌와 망상을 일깨 우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죽지 않는 괴력의 불가사리(불가살이, 不可殺伊)


불가사리는 ‘토종형’ 괴수(怪獸)라고 할 수 있다.6) 조선 중기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는 속담 ‘송도말년(松都末年)의 불가사리’에 대해 “불가사리는 상상의 짐승으로 곰같이 생겼으며 악몽과 요사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했으나, 여기서는 마구잡이로 아무 일이나 저질러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 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조선 후기 『송남잡지(松男雜識)』는 민간 의 ‘불가사리(불가살, 不可殺)’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고려 말에 쇠를 모조리 먹어 치우는 괴물이 있었는데, 죽이려 해 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가사리( 不可殺)’라고 불렀다. 이놈을 불 에 던지니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인가(人家)로 날아가 집도 모두 태워 버렸다고 한다. 지금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可殺不 可殺)’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 ‘불가사리’라는 말은 그 괴물의 이름이다. 



(두렵다-2_사진04)삼재도회-맥_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삼재도회-맥_규장각한국학연구원

(두렵다-2_사진05)송도말년 불가살이전(저자 허주자)_국립중앙도서관

송도말년 불가살이전(저자 허주자)_국립중앙도서관



따라서 불가사리는 고려 말에 생겨났고, 조선시대 민간설화7)로 지속됐으며 그 생김새는 곰과 비슷하나 쇠를 먹는 식성(食鐵)과 불덩이가 돼도 죽지 않는 ‘불가살’의 괴력(怪力)을 가진 괴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희승이 발행한 『국어대사전』(1961)의 불가사리는 ‘곰 같이 생긴’ 괴수가 아닌, ‘곰의 몸에 코끼리의 코, 무소의 눈, 바 늘 털, 범의 꼬리를 지녔다’라고 돼 있다. 이는 중국 명나라 때 편 찬된 『삼재도회(三才圖會)』 「조수(鳥獸)」편의 ‘맥(貊)’, <그림 4> 와 흡사하다. 맥 역시 구리와 철만 먹지만, 괴수가 아닌 서수(瑞 獸, 상서로운 동물)로 일본의 ‘바쿠’와 유사하다. 


한국 괴수 소설의 효시로 불리는 현병주의 고전소설 『송도말년 불 가살이전(松都末年不可殺爾傳)』(1921)에서 주인공 불가사리는 ‘불 가살이 화가살이(不可殺伊火可殺伊)’ 8)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괴수지만,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체제 구축에 기여하는 조력 자 내지 ‘문화영웅’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불가사리의 괴력은 더욱 과장되고 구체적이다. 전 세계의 쇠를 다 먹은 후의 크기가 ‘7백 년묵은 인도코끼리의 3배’라든지, 왜적에게 퇴진을 권고하는 언 어 능력을 갖추는 식이다. 또한, 그 형상은 여덟 동물, 즉 코끼리의 몸, 소의 발, 곰의 목, 사자의 턱, 범의 얼굴, 무소의 입, 말의 머리, 기린의 꼬리의 혼종이다. 그런데 <그림 5>를 보면, 기괴하거나 위 협적이라기보다 마치 뚱뚱한 소처럼 친근하고 우직하다. 


어쨌든 불가사리는 고려 말의 혼란한 시기에 발생한 거대한 혼 종의 괴수였다. 미물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불가사리는 ‘식철’ 의 특이 식성에 의한 거대함과 ‘불가살’의 괴력으로, 공동체를 위협하고 퇴치가 어려운 이질적 파괴자이면서 두려운 존재였음 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우리들은 지금까지 살펴본 뇌공신과 불가사리를 당시의 사람들만큼 두려워하지않을 것이다. 시대에 따른 생각과 믿음 의 변화로 동물에 대한 상징 의미는 약화되거나 소실된다.오히 려 작금의 우리는 기후의 이상 변화와 박쥐로 야기됐다고 추정 되는 ‘코로나19’를 더 두려워하며 우리의 일상을 전복시킨 ‘괴물’ 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인간을 벌하는 자연과 동물에 대 한 경외심을 상실한 현대인이 초래한 결과일지 모른다. 




각주 

1) 그림과 공예품에 나타난 동물상징에 대해서는 졸저, 『기의분류로 본 한국의 동물상 징』, 민속원, 2013 참조. 

2) 뇌공신에 대해서는 윤열수, 『신화 속 상상동물 열전』, 한국문화재재단, 2010, 106~113 쪽 참조. 3) 정재서 역주, 『산해경』, 민음사, 2013, 280~284쪽. 

4) 박쥐와 뇌신의 관계에 대해서는 졸고, 「조선후기 박쥐상징 회화와 공예품의 분석」, 『고 문화』 제69집, 2007, 47~48쪽 참조. 

5) 당(唐)나라 때 고금(古今)의 일화(逸話)를 모아 엮은 책 『운선잡기(雲仙雜記)』(10권)에 “우레를 천고(天鼓)라고 하며, 그 신을 뇌공(雷公)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스·로 마신화의 제우스나 유피테르 역시 이와 유사하다. 

6) 불가사리에 대해서는 졸고, 「괴수 ‘불가사리’의 이미지 변주와 미디어 횡단성」, 『기호학 연구』 Vol.60, 2019 참조. 

7) 설화의 불가사리는 나라의 혼란기에 억압받던 자가 우연히 미물 형상을 만들거나, 돌 발적으로 등장해 변이된 미물이, ‘식철’이란 특이 식성으로 체제 유지의 근간인 철기를 소멸시키며 ‘산만큼’ 거대해지는, 무소불위와 통제 불능의 강렬한 파괴자 이미지를 보 여준다. 

8) ‘죽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뜻(不可殺伊)과 ‘불로써 죽일 수 있다’는 뜻(火可殺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