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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여름호-동물의왕국] 즐기다-동물로 말하는 풍요의 소망 , ‘반구대 암각화’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1-10-01 조회수 : 2218



(즐기다-1_사진01)반구대 암각화 원경


반구대 암각화 원경


(즐기다-1_사진02)반구대 암각화 중심 암면 _ 울산대학교 반구대연구소


반구대 암각화 중심 암면 _ 울산대학교 반구대연구소



동물로 말하는 풍요의 소망, ‘반구대 암각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을 표현한 그림인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동물 안에는 사슴이 나 호랑이, 멧돼지와 같은 육지 동물이 있다. 그리 고 고래와 함께 거북이나 상어, 듀공과 같은 바다 동물이 있고, 거기에 가마우지와 같은 새를 더한다 면 뭍과 물, 하늘을 고루 망라하는 대자연의 세계 가 그곳에 펼쳐진다. 즉, 인류의 문화적 근거를 그 림으로 요약해 여러 문명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셈이다.


글·사진_ 이하우(前 울산대학교 교수, 한국암각화학회장)



(즐기다-1_사진03)가마우지에 이끌리는 고래


가마우지에 이끌리는 고래



선사인들의 세계관이 투영되다


인류문화의 여명기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스스로의 소망을 다양한 동물 형태를 빌려서 표현했다. 우리 문화에서 그런 동물 과 관련해서 볼만한 것으로 반구대 암각화만 한 곳도 없다. 반구 대 암각화는 모두 353점의 표현물로 구성돼 있다. 그중에는 16 점의 인물을 비롯해 고래잡이배에서부터 작살, 부구와 같은 생 업의 도구도 있는데, 동물은 모두 202점에 이른다. 반 이상이 동 물이라는 점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진정한 주인은 오로지 동물 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신석기시대의 신앙 형태가 자연 정 령신앙의 형태였기 때문에, 그들의 삶 또는 정신사적인 모든 표 현의 대상은 항상 동물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동물 표현은 선사 인들의 이상적 세계관을 투영하는 창(窓)과도 같아서, 그런 틀을 통해 우리는 선사인들이 바라본 자연의 세계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연대기적으로 변해가는 조형 세계의 반영


반구대 암각화 발견을 통해 유적을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시 각은 반구대 암각화가 어떤 특정한 시점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먼저고, 또 어떤 것 이 나중에 나타난 것이었나 하는 오랜 의문에 비로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우리가 반구대 암각화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문 끝에 연구 성과가 쌓이면서 마침내 알게 된 것이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 단계다.


어떤 것이든 독자적으로 분포하는 표현물은 별로 없다. 동물도 상당수는 서로 복잡하게 여러 마리가 겹쳐 있는 상태다. 그래서 ‘표현물 겹침 상태’의 분석과 함께, 질서 있게 나타나는 몇 개의서로 다른 형상에 따른 ‘표현상 속성’을 유형별로 분류할 수 있 다면, 암각화 제작 순서에 따른 전반적인 구성 단계를 한 겹 한 겹 찾아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잘못 해석된 표현물은없었는지도 미리 살펴봐야 한다. 분석이란 언제나 정확한 자료 가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방식의 분석, 분류 방법은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전반적인 성격의 흐름도 알 수 있게 한다. 이에 따르면, 반구대 암 각화는 적어도 다섯 단계의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에 이르 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각 단계를 하나하나 따라가 다가 보면 우리는 점진적으로 달라져 가는 동물 표현, 그리고 그 상징성의 변화상까지도 살필 수 있다. 그것을 간단하게 다음과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분류 분석에 의하면, 반구대 암각화에서 최초의 표현물은 선 새 김으로 묘사된 몇 마리의 고래와 고래잡이배가 나온다. 그래서 첫 단계의 성격이라면 그것은 고래사냥과 관련한 어로 활동으로서, 이러한 점은 반구대 암각화의 시작이 고래사냥에서 비롯되 었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그다음 두 번째 단계는 작달막한 체 형 묘사를 표현상 속성으로 하는 동물군이다. 선 새김의 동물들이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된 생태 표현으로 볼 때, 이 단계는 수렵미술의 한 방편에서 나온 것이었다. 



(즐기다-1_사진04)새끼 밴 멧돼지와 호랑이


새끼 밴 멧돼지와 호랑이 



알 수 없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등장하는 세 번째 단계는 면 새김의 동물 층으로, 많은 수의 사슴이 중심이 되고 있다. 수 렵사회에서 조형적 전통의 전형과도 같은 사슴은 일찍부터 신성 시되어 온 동물로서, 몇 마리의 멧돼지나 개 종류의 동물, 그리고 담비와 함께 여러 알 수 없는 동물과 조화롭게 구성되고 있다. 네 번째 단계는 하늘을 향해 있는 20여 점의 면 새김 고래와거 북이, 가마우지와 같은 서로 다른 공간을 넘나드는 동물이 있고, 신앙적 존재로서 샤먼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최상위의 다섯 번째 단계가 나온다. 이 단계는 명료하게나타난 선 새김의 호랑이와 표범이 있다. 그리고 거꾸로 내려오 는 고래 한 마리와 함께 그 안에는 복잡한 선각이 있는 호랑이, 멧돼지 3마리가 있고 표범과 사슴이 있다. 이들 6점의 선각 동 물은 모두 새끼 밴 어미를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대를 거친 유적의 전반적 성격의 흐름이 라면 그것은 첫 번째, 해양 어로 문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유사율 에 바탕 한 동종 주술로 발전하고 있다. 세 번째 단계가 사슴을 중심으로 한 안정적 증식 기원이 주제라고 한다면, 그다음은 사 냥 대상에 대한 영혼 위무, 회생 의례가 중점 주제이다. 마지막으 로 다섯 번째 단계는 자연계 풍요라는 차원에서 수태 동물에 대 한 사냥의 금기를 표현하고 있다. 



(즐기다-1_사진05)고래무리

고래무리

(즐기다-1_사진06)반구대 암각화 중심부

반구대 암각화 중심부



환동해 고래 의례의 정점으로서 반구대 암각화


이러한 전반적인 성격의 흐름을 봤을 때 반구대 암각화만의 독자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라면 그것은 역시 네 번 째 단계, 고래의 층과 같다. 이른바 반구대 암각화에서 고래만큼 동물 또는 유적의 성격을 함축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신화처럼 숨 쉬는 57점의 고래는 잘 짜인 화면 구성 아래, 어떤 고래는 새끼를 업었다. 또 어떤 고래는 작살이 박혀 있기도 하고, 비틀린 몸체의 고래나 측면에서 관찰된 고래도 있다. 그 종류도 다양하여 혹등고래에서부터 귀신고래, 북방긴수염고래, 향고래, 범고래 등의 모습을 가려낼 수 있을 정도의 표현 수준이다. 그러 나 하늘을 향한 방향성에서부터 서로 다른 종이 무리를 이루기 도 하고, 뭍에서 물, 하늘이라는 불통의 경계를 넘나드는 거북이 나 가마우지에게 인도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성으로 봤을 때 모 든 고래는 비록 생생하게 묘사되고는 있지만, 사실은 이미 죽임 을 당한 고래의 영혼을 새겨 넣은 것이었다. 그 고래 아래에는 사지를 벌리고 있는 샤먼이 있다. 그는 마치 무중력상태처럼 허공 에 떠 있다. 고래의 혼령을 영계로 보내고자 자신을 잊고 구천으 로 날아오른 모습인 것이다. 


반구대암각화에서 의례는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고래가 만드는 장면은 하나의 잘 짜인 이야기의전개와도 같다. 저 높은 곳을 지향하는 삼각 구도는 제의의 목적과도 잘 맞다. 그래서 의 례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오로지 포경에서 생명을 잃은 고래의 영혼을 달래서 보내고, 이윽고 새 생명을 얻어 회생하여 오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반구대 암각화는 환동 해 상 해양어로 문화 유적으로서 고래사냥과 관련한 의례의 정 점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유적 전방을 흐르는 대곡천은 이미 신화적으로는 이승과 저승 의 경계이면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교차점이었다. 그래서 고래 사냥꾼들은 그들 생업의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강의 상류를 찾 았다. 그곳은 조상의신성한 영역이면서 현실적으로는 소리가 넓 게 울려 퍼지는 신묘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반구대 암각화의 고유한 가치를 문화사적으로는 어떻 게 말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그것 이 우리 선사 미술에서 가장 적극적인 인간 의지의 결과라는 것 이다. 그것은 조형 의식의 총체이면서 단순한 선사인의 삶의 기 록이라는 차원을 넘어, 정신사적 문제까지도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반영한다. 


다섯 번의 거듭된 제작 단계를 갖는 반구대 암각화는 이른 신석기 시대의 어느 날 처음 이곳에서 시작된 이래 긴 시간의 흐름에 따 라 변천하는 삶의 형태를 보여주는 연대기적 유적으로서, 실질적 으로는 영속적 수렵문화를 이어가고자 하는 함의의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