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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여름호-동물의왕국] 즐기다-우리 공예품 속 동물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1-10-01 조회수 : 2003



우리 공예품 속 동물


동물은 인간과 가장 친숙한 사이이다. 우리 민족은 자연과 더불어 살며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동물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늘에서 날거나 물에서 헤엄치는 새, 뭍에서 기고 걷고 뛰는작고 귀여운 짐승이 그들이다. 이러한 동물들은 각 시대마다 우리의 공예품을 풍요롭게 만 들고, 그 자체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글은 우리 공예품 속에서는 어떤 동물을 만날 수 있는지, 그들은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글_ 장경희(한서대학교 교수)



(즐기다-3_사진01)오리 모양 토기, 진한 3세기, 울산 중산리 출토 _ 영남대학교박물관


오리 모양 토기, 진한 3세기, 울산 중산리 출토 _ 영남대학교박물관


 

하늘에서 내려온 새들의 향연


하늘을 나는 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고대에 새는 곡식을 물고와 식량을 주어 풍요를 주거나, 하늘의 신과땅의 주술자를 연결시키는 매개자로도 여겼다. 그중 낙동강 일대의 3세기 경 가야나 신라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토기 중에는 새를 형상화한 것들이 다수 있다. <오리 모양 토기> 또한 주전자 형태이지만 굽다리가 달린 것으로 보아 일상에 사용된 실용기가 아니라 제기의 성격을 지닌 의례 용품이다. 당시 새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로 옮겨 준다고 믿었다.


이렇게 고대에는 새가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옮겨준다고 생각했다면, 고려시대가 되면 일상 삶에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관음보살의 지물이며 불교의식 때 맑은 물을 따르던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무늬 정병(淨甁)>이 대표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형태에 청동색으로 푸르게 변색된 표면 위에 물가 풍경을 은입사 기법으로 처리하여 고려의 귀족적인 품격이 느껴지는 공예품이다.하늘에는 기러기, 버드나무 아래 물가 식물에는 오리떼가 날거나 헤엄치는 모습이 생동감 넘친다.자연을 관조하고 유유자적하게 즐기는 자연을 시각화한 고려 미술의 특징이 뚜렷하다.조선은 더욱 다양한 새를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원앙새나 따오기 및 공작까지 향로나 연적으로 사용하여 소박한 조선 공예의 특성을 반영한다. 



(즐기다-3_사진02)청동 은입사 물가풍경무늬 정병, 고려 12세기 _ 국립중앙박물관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무늬 정병, 고려 12세기 _ 국립중앙박물관

(즐기다-3_사진03)원앙새형 놋향로, 조선, 북한 원산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원앙새형 놋향로, 조선, 북한 원산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원앙새형 놋향로>는 유기제 향로 중 보기 드물고 독특하다. 원 판 받침대 위 3개의 염주알 기둥과 분동형 받침대 위에 원앙새 한 마리의 형태가 정교하다. 향로 뚜껑은 위로 솟구친 날개로, 향로의 연기는 원앙의 뾰족한 입으로 나오게 고안되어 향로의 실용성과 균형 잡힌 원앙새의 장식미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 다. 공예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지 않는 따오기를 조형적으로 표 현한 <석간주백자 따오기 연적>도 주목된다. 작은 머리에 좌우 로 툭 불거진 두 눈과 아래로 굽은 긴 부리가 따오기의 특성을 잘 살리고, 긴 목을 밖으로 돌려 부리로 잔을 물고 둥근 몸체에 날개를 접으며 꼬리를 살짝 든 형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한다. 긴 목과 등, 날개 속과 꼬리에 석간주를 약간씩 발라 백자이면서 검붉은 질감을 표현하여 형상과 제작 기법이 잘 어 우러져 있다. 



(즐기다-3_사진04)석간주백자 따오기 연적, 조선, 북한 해주력사박물관_ 사진 장경희

석간주백자 따오기 연적, 조선, 북한 해주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즐기다-3_사진05)청자 투각 칠보무늬 토끼 받침 향로, 고려 12세기 _ 국립중앙박물관

청자 투각 칠보무늬 토끼 받침 향로, 고려 12세기 _ 국립중앙박물관



생활 속 동물들로 완성한 도자 공예품


<청자투각 칠보무늬 토끼 받침 향로>는 고려청자의 세련된 조형감각과 소소한 부분까지 정성을 기울여 공예적 완성도를 보 여주는 작품이다. 향로의 맨 위쪽은 둥근 공 모양을 칠보무늬로 투각하고 몸체는 국화 잎사귀로 만들고, 아래쪽 받침을 귀여운 토끼 세 마리가 등을 대어 떠받드는 형상이다. 맑은 순청자의 기술적 수준이 발휘되고 뛰어난 조형미와 완벽한 솜씨를 보여주는 고려청자의 귀족적 세련미를 엿볼 수 있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전통적으로 사자는 불교의 진리[불법, 佛法]를 수호하는 동물로 여기지만, <석간주백자 사자 모양 호로병>은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와 있다. 입을 딱 벌리고 눈을 크게 뜬채 하늘을 바라보며 웅크리고 앉아있는 사자의 등 위에 갈색 석간주 댕기로 호로병을 매달아놓아 즐겁고 재미있게 만들었다.유색은 약간푸른빛이 감돌고, 호로병 안쪽에는 8괘 무늬를 그려 넣었다. 소재로 선택한 사자가 이를 드러내지만 웃고 있는 모양이 귀엽고, 기발한 착상과 생동감 넘치는 조형감이 탁월하다. 이와 같은 상형 백자는 조선 후기에 많이 등장하여 유행한 백자형식으로서 친근하고 서민적인 조선의 미감을 느낄 수 있다. 



(즐기다-3_사진06)석간주백자 사자 모양 호로병, 조선, 북한 신의주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석간주백자 사자 모양 호로병, 조선, 북한 신의주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즐기다-3_사진07)진홍 백자 염소 모양 향로, 조선, 북한 신의주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진홍 백자 염소 모양 향로, 조선, 북한 신의주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염소는 공예품의 소재로는 매우 드문 것이어서, 이것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진홍 백자 염소 모양 향로>는 백자로 향을 피울 때 사용하는 향로에 염소 모양의 뚜껑을 만들어 재치 있게 만든 작품이다. 향로는 전이 달린 몸체와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향로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뚜껑 위 손잡이 부분에 염소가 앉아 있는 모습이며, 염소의 형상이나 산화동을 사용한 것이 조선시대 공예품 중 매우 희귀한 예이다. 


다양한 동물이 표현된 연적과 목공예품


연적(硯滴)은 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수적(水滴)이나 수주(水注)라고도 한다. 시서화를 즐기던 조선의 선비들이 애호하던 문방사우의 하나인데,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어보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러한 연적은 백자에 청화나 석간주, 산화동, 철사 등의 기법으로 채색을 하며, 앙증맞은 크기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동물의 조각적 형상을 만들어 감상하는 재미를 주는 동시에 사랑방을 장식하는 역할로 애호되었다. 연적의 소재는 암탉이나 개구리, 거북이, 두꺼비 등과 같이 몸통이 작고 귀여운 동물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러한 동물 모양의 연적들은 비록 크기가 작지만 대부분 사랑스러운 표정과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작품의 소재를 우리들 주위에 있는 사물에서 구하는 순박한 심성이 엿보인다. 



(즐기다-3_사진08)진흥 백자 염소 모양 4각 연적, 조선, 북한 신의주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진흥 백자 염소 모양 4각 연적, 조선, 북한 신의주력사박물관 _ 사진 장경희

(즐기다-3_사진09-1)각종 동물형 백자 연적, 조선 19세기 _ 국립중앙박물관_1

각종 동물형 백자 연적, 조선 19세기 _ 국립중앙박물관



<진흥 백자 염소 모양 4각 연적> 또한 기발하고 특이한 형상으로 주목된다. 이 연적은 네모난 돌 위에 고개를 뒤로 돌리고 앉아있는 염소를 형상화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연적의 몸체는 사각의 형태에 낮은 굽이 달려 있고, 연적의 수구는 염소의 입으로 처리하였으며 표면에는 새김무늬로 테두리를 빙 둘렀다. 유색은 푸른빛이 감돌며 몸체의 네 면에는 청화 안료로 활짝 핀 국화꽃무늬를 그렸다. 사각연적의 위쪽에 배치한 염소의 등이나 깔고 앉은 국화꽃, 그리고 연적의 옆면에 그려 넣은 꽃술 등은 동채로 붉게 칠하여 색채의 대비 효과를 의도하였다. 사랑스러운 염소와 국화꽃을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대비시켜 조화를 보이고 있다. 


연적이 조선시대 남성용 소품이라면, 빗접이나 화각함은 여성용수납가구이다. 특히 빗접은 빗·빗솔·빗치개·가리마·꼬챙이·뒤꽂이 등을 넣어두는데, 풍혈이조각된 받침다리 위에 3단으로 구획하여 크고 작은 4개의 서랍을 조형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분할 된 앞면에는 원앙이나 거북 등 십장생의 문양을 나전으로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한편 화각함은 쇠뿔을 얇게 펴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화려한 색채와 길상적 의미가 있는 민화풍의다채로운 동물 문양으로 조선조 여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이처럼 여성용 소품 가구의 동물 문양 또한 개인의 행복과 함께 왕실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바라는 상징적 미의식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즐기다-3_사진10)나전칠 십장생문 빗접 조선, 유강열 기증 _ 국립중앙박물관

나전칠 십장생문 빗접 조선, 유강열 기증 _ 국립중앙박물관

(즐기다-3_사진11)화각함 조선 _ 국립고궁박물관

화각함 조선 _ 국립고궁박물관



덕과 장수를 소망하는 왕실의 동물


왕과 왕비의 옷이나 장신구에서도 여러 동물을 만날 수 있다. 왕이 머리에 착용하는 익선관의 경우 뒤쪽 날개가 위를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7년을 굼벵이로 살다가 탈각하여 우화선인(羽化仙人)으로 불리는 매미를 상징하여 어진 국왕이 되길 소망하는 것이다. 왕비가 착용하는 최고의 예복인 적의(翟衣)에는 꿩이 수놓아져 있다. 적의라 불리는 이유가 청색, 백색, 홍색, 흑색, 황색의 다섯 가지 색[五色]을 두루 갖춘 꿩[적, 翟]이 수 놓여 있기때문이다. <적의 폐슬의 꿩>의 오색은 동서남북 및 중앙의 다섯방위[오방색]를 상징하거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행(五行)을 지녔다고도 여긴다. 곧 적의를 입은 왕비가 다섯 가지 덕[五德]을 두루 갖춘 후덕한 여성이 되길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


더욱이 왕실에서 적의는 신분에 따라 각각 다른 색상으로 입는데, 왕비는 붉은색을, 대비는 자주색을, 왕세자빈은 검은색을 입는 것이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하는 적의는 1922년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입은 것이어서 이왕가의 문장인 이화문(梨花文)이 추가되는 등 조선 왕실의 격조가일제강점기에도 여전히 이어진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



(즐기다-3_사진12)대군주보 1882년 _ 국립고궁박물관

대군주보 1882년 _ 국립고궁박물관

(즐기다-3_사진13)영친왕비 적의(翟衣) 폐슬의 꿩무늬, 1922년 _ 국립고궁박물관

영친왕비 적의(翟衣) 폐슬의 꿩무늬, 1922년 _ 국립고궁박물관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는 조선 왕실에서는어보의 소재로 주로 사용되었다. 2021년에 보물로 새로 지정된 <대군주보(大君主寶)>는 거북이모양의 손잡이[귀뉴, 龜鈕]에 네모진 몸체로 되어있는 국새이다. 대군주보는 1882년 고종이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국기와 함께 제작한 국새인데, 거북이 모양 손잡이[뉴식, 鈕式] 로 되어 ‘대군주보’라는 새긴 보면(寶面) 위에 올려져 있다.


좋은 일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마음

이와 같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의 공예품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여러 동물들은 당대인의 생각이나 믿음, 삶의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동물들은 계층에 따라 비록 조형성이나 표현 방식은 다르나 길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왕실부터 민간까지 널리 애호한 것을 알게 된다. 소중한 우리의 동물 소재 공예품을 찾아서 아끼고 널리 즐기게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