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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여름호-동물의왕국] 즐기다-동물의 움직임을 담은 인간의 춤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1-10-01 조회수 : 2782



(즐기다-5_사진01)창덕궁 대조전 백학도 _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대조전 백학도 _ 국립고궁박물관


(즐기다-5_사진02)동래학춤,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동래학춤 보유자 이성훈과 한국의집예술단, 몌별 해어화(2019년)


동래학춤,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동래학춤 보유자 이성훈과 한국의집예술단, 몌별 해어화(2019년)



동물의 움직임을 담은 인간의 춤



사람에게 동물은 어떤 의미일까? 집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 외에도 예전에는 돼지, 소, 토끼, 닭,오리, 염소와 함께 한 식구나 다름없는 북적거리는 일상을 같이 해왔다. 나름의 동물은 저마다 일상의 희로 애락을 같이하며 때로 인간의 삶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어 위로와 교 훈을 주기도 한다. 인간에게 동물은 치유이자 놀이를 같이하는 타자 로서 유희의 생명체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동물의 습성을 모방하 여 놀이에 등장시키는 일은 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글_ 김지원(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춤으로 표현되는 동물에의 애정


민간신앙에서 오리는 하나가 죽으면 하나가 따라 죽는다고 해서 부부금슬을 뜻한다. 오리는 닭보다는 큰 알을 낳으므로 풍 요와 다산을 상징하고 솟대 위에 앉혀져 지상과 해양을 넘나드 는 길조다. 오리를 흉내 내는 춤은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일원 에서 많이 보이며, 입 모양을 오리처럼 꾸미고 오리의 뒤뚱거리 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하물며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승전무에서도 ‘쌍오리사위’라는 춤사위는 들썩들썩 어깨를 맞추 어 상대의 어깨에 오른손을 얹고 왼손은 허리를 잡고서 오리 시 늉을 하는 해학이 특이하다. 


이외에도 봉산탈춤과 송파산대놀이에서 까치의 걸음을 흉내 내 는 ‘까치걸음’은 ‘쌍오리사위’라는 명칭처럼 동물이 용어에 포함 되는 대표적인 춤사위다. 양팔의 한삼을 뒤치기로 돌리거나 땅 을 쳐다보는 식의 종종걸음이다. 이처럼 오리나 까치의 특징을 묘사하며 웃음 짓게 만드는 특유의 춤사위는 유유자적한 우리 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정겨운 동물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동경과 이상의 표현, 신격의 춤사위


날아가는 새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자유로움과 해방 감, 그리고 무한한 세계와 꿈을 소망한다. 새는 지금의 땅과 신선 이 노니는 세계를 연결해 이상과 현실을 매개하고 동경하게 함 으로써 이 땅의 삶의 표본을 전달해주는 메신저다. 인간이 날지 못하는 영역에서 동물의 의미 영역은 바다와 땅, 산과 하늘의 인 간이 보아왔던 세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왕래를 하는 신격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동물의 모의는 그러한 영물 을 닮아가고자 마음을 정화하고 승화하는 과정에 예술적 고유 의 가치를 의미화한다. 그렇다면 가장 대표적인 조류로써 유일하 게 가면을 쓰는 새의 춤이 바로 학이다. 


서울만 해도 방학동, 남학동, 무학동, 황학동 등 그 외 지방의 지 명만 봐도 학동이란 지명은 공통으로 존재한다. 한국인에게 학 은 신성시된 영물이자 닮고 싶은 실천 철학의 아이콘인 셈이다. 학의 소리는 곧 법문이며, 도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람의 힘 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의입장에서 보면 학은 신선이 타 는 동물 또는 신선 자신을 지칭한다. 또한 유교는 학의 인품을 높이 숭상하여 선비 관복의 가슴과 등 문양에 학의 수로 서열을 구분하는 징표로 삼았다. 한편, 유생이 즐겨 입은 검은 깃으로 두른 흰색 의복 또한 평소 학과 같이 깨끗한 품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바른 심성의 표출이다. 


까치나 오리, 원숭이 등이 우리에게 친근감 있는 놀이에 등장한 다면, 신성한 영물로서 탈을 쓰고 생태적 모의를 그대로 따라 하 는 춤사위는 학이 대표적일 것이다. 학은 청아한 이미지와 기품 있 는 고고함 때문에 종교적으로 숭고한 대상이다. 특히 불교에서 학은 죽은 자를 사후 세계로 인도하므로 상여를 보면 좌우측에 학 을 탄 나무 인형과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관세음경을 외우 니 학이 나타나 어려움을 도와주었다는 내용에서는 불보살의 화 현으로도 등장한다. 현재 통도사나 양산 사찰에서 행해지는 학춤 의 전승은 종교적으로도 뜻깊은 성찰과 수행의 의식이다. 



(즐기다-5_사진03)학연화대합설무, 2016년 국가무형문화재 궁궐 공개 행사


학연화대합설무, 2016년 국가무형문화재 궁궐 공개 행사



이처럼 학을 대상으로 혹은 소재로 하여 추는 춤은 학의 움직임 을 모방하거나 상징성을 표현한 모방 탈춤이다. 학의 가면을 쓰 고 추는 것을 ‘학무’라고 부르고, 주로 궁중에 전해져 궁중무용 이라 부른다. 이에 반해 갓, 도포 차림으로 학의 동태를 춤으로 나타내는 것은 ‘학춤’이라고 부르며 민간에서 춘다. 곧 학춤은 춤을 추는 장소, 신분, 목적에 따라 구분되는 것으로 현재 궁중 학무, 민속학춤, 사찰학춤 등으로 불린다. 학의 몸짓은 ‘활개뜀’, ‘어름’, ‘좌우활개’, ‘모뛰기’, ‘모이 줍기’와 같이 사실적 표현이 주 를 이루지만, 양팔을 옆으로 벌리고 걸어 다니는 동래학춤의 ‘일 자사위’의 경우는 자유롭게 노니는 학의 여유와 미덕을 동경하 는 듯이 가뿐하다. 학춤은 학의 흰빛과 숭고함, 성실과 충실함의 실천적 자세, 하늘을 오가는 신성함을춤으로 승화해낸다. 그래 서 학춤은 겸양지덕(謙讓之德,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 나 사양하는 다름다운 마음씨나 행동)의 고결함으로 악(樂)을 통한 실천 철학을 반영한다. 


소통의 매개, 가면놀이


동물의 가면은 인간에게 현실 속 인물을 통하여 신을 매개하 고 성과 속을 조화롭게 하여 공동체적 갈등의 요소를 소통해나 가는 데 필요했다. 그들만의 용서와 화해의 인물은 모두 신격화 된 배역을 통해 판을 정화해 나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사자, 영노, 비비, 용과 같은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며, 놀이판을 통해 현실에서의 교훈과 이상 세계로의 진리를 깨우쳐준다. 곧 가면은은폐와 은닉의 현실 세계로부터 이탈을 경험하며 춤을 통한 정화로 예술 세계를 지향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학이 이상 세계를 넘어 실천철학을 본받아야 될 영물이었다면, 사자는 서역의 동물로 불교의 유입과 함께 한국 토착 불교의 수 호신으로 자리매김한다. 기악무의 형태에서 사자는 지혜로운 동 물로 신과의 교접을 담당하는 의식적 행사에서 춘다. 따라서 사 자춤은 불법을수호하고 잡귀가 도량에 침범하지 못하게 할 뿐 만 아니라, 사자의 위엄으로 응징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목적으로 불교의 자비 또는 성정을 보이면서 점차 오락적 형식으로 귀환한 다. 즉 응징과비판에 관한 권선징악의 윤리를 화해와 용서를 통 해 아우르는 역할을 한다. 사자는 가면을 통해축귀와 복을 초래 하는 영물로 여기지만, 결국 놀음판은 사자를 통해 도량을 정화 하여 함께 아우러지는 축제로서의 춤의 기능이 강화된다. 이러한 사자춤은 북청사자놀음, 봉산탈춤, 하회별신굿 탈놀이, 수영들놀 음, 통영오광대, 강령탈춤과 은율탈춤에서 등장한다.  



(즐기다-5_사진04)봉산탈춤, 민속극장 풍류

봉산탈춤, 민속극장 풍류

(즐기다-5_사진05)북청사자놀음, 민속극장 풍류

북청사자놀음, 민속극장 풍류

(즐기다-5_사진06)강령탈춤, 민속극장 풍류

강령탈춤, 민속극장 풍류



다산의 기원, 성모의의 동물춤


인간 태초의 기복신앙은 다산의 복락과 일상의 무탈함을 기 원해 왔다. 천신과 지신, 산신 등 신령한 기운을 통해 때로는 동 물의 생태를 모방해가며 자손 번창을 소망하였다. 따라서 동물 모방의 춤은 특유의 번식력을 상징하는 동물을 모의하거나, 강 강술래의 ‘남생아 놀아라’처럼 여성 특유의 춤사위를 통해 성적 은유의 대상인 동물을 모의하기도 한다. 


성적 은유는 민속의 탈춤에서 특유의 상징적인 동물을 통해 해학 적인 춤사위로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두꺼비와 자라, 남생이 다. 자라의 머리는 남성 성기의 상징으로 ‘자라춤’의 성 모의 동작 은 생산과 풍요로운 다산을 표현한다. 한편,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은 흥분 상태에 있는 여성 성기의 비유인 은유적 동작 이다. 한편, 경상도 지방의 ‘두꺼비춤’은 암수 두꺼비의 모습을 흉 내 내어 두꺼비가 기어가거나 앉아서 뛰어다니며 뒹굴뒹굴 굴러 가는 등 성적 자극을 야기하는 춤사위가 주가 된다. 이처럼 동물 의 생태를 묘사하고 은유하면서 원초적인 본능을 웃음과 해학으 로 묘사해내는 것이특유한 한국적 정서의 미감으로 드러난다. 


은유와 절제의 미감


춘앵전(春鶯囀)은 조선의 효명세자가 어머니 순원왕후의 생신 을 축하하기 위해 창작된 춤으로 기록된다. 춤에서의 노란 앵삼은 암수 정답게 노니는 꾀꼬리를 보고 연상한 것으로 춤을 추는 자신이 새가 되어 동경과 피안의 세계를 은유한다. 의복의 연상만으로 도 마치 꾀꼬리 한 마리가 춤을 추는 듯 의인화된 예술작품이다.  곧 꾀꼬리를 닮은 노란색 앵삼(鶯衫)은 꾀꼬리의 은유다. 꾀꼬리 의 가면(탈과 같은)을 쓰지 않고도 춤 자체는 꾀꼬리의 몸짓이 된다. 예컨대 ‘화전태’라는 춤사위는 ‘꽃 앞에서 자태를 짓는다’는 말로, 두 손을 뿌려 뒤에 내려 여미고 두 무릎을 굽히며 오른발 왼발을 들었다 놓는 동작으로 절제된 미적 심상이 응축된 동작 이다. 직접적인 묘사를 떠나 꾀꼬리라는 원상을 미적으로 재현하 고궁중무의 특성상 절제의 미로 내적 심상을 표현한다. 



(즐기다-5_사진07)춘앵무, 한국의집


춘앵무, 한국의집



꾀꼬리는 흔하게 볼 수 있고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친근한 동 물이다. 봄과 여름의 젊음과 건강을 상징하며 다정함을 표상한다. 정다움을 담아 다정함을 표상하는 춤사위를 오롯이 심상의 미감 으로 녹여낸다. 꾀꼬리를 닮은 앵삼과 절제된 움직임은 현실의 소망과 이상을 매개하며 자연스럽게 정다움과 태평함을 자아내는 과정에서 춤은 존재한다. 이러한 과정은 피안의 동경과 현실과의 조우를 통한 조화로움을 미적으로 승화해 내는 춤의 예술 세계 를 반영한다. 


동물과의 치유 놀이


결국 한국 춤의 판 놀이문화에서 동물은 삶과 친근한 일상 의 유희적 친구였다.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등장시 켜 판을 통해 우스운 소리나 춤사위로 해학적인 면모를 보였고, 신격의 인물이 되어 지혜를 전달하고 윤리적 실천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놀이에서 동물은 인간의 삶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애환이 공통된 관심사로부터 태어난 또 다른 인물이다. 동물의 탈과 놀이는 판 안에서 현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을 은유하며, 보다 과장된 형태의모의로 재미의 요소가 되어왔다. 동물은 자아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신격화로 피안의 세 계로의 동경을 통해 일상을 떠나 놀이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동물과의 유희는 억제된 감정을 치유하고여유와 미덕으로 놀이 를 마감한다. 이것이 춤으로 이어지는 미적 관조의 세계를 의미 하며 난장을 이룬 뒤에야 맛보는 놀이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