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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여름호-동물의왕국] 즐기다-대중문화 속 동물상징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1-10-01 조회수 : 3021


(즐기다-6_사진01)하트 오브 더 씨 스틸컷 _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하트 오브 더 씨> 스틸컷 _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즐기다-6_사진02)드래곤 길들이기 스틸컷 _ UPI코리아 

<드래곤 길들이기> 스틸컷 _ UPI코리아 



포악한 괴물을 물리치사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온 누리에 비추소서.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이 1851년에 지은 장편소설 『모비딕』의 모티브가 된 실화를 중심으로 제작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2015년 개봉)의 전반부에는 고래잡이를 하러 가기 위해 출항 전 바치는 기도문이 등장한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이 거대하고 신비스러운 괴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미지의 존재 그것도 영원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나약한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저희 처자식을 돌봐주시고 포악한 괴물을 물리치사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온 누리에 비추소서. 

그들이 항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굽어 살피소서. 

그리하여 낸터킷의 고래기름이 저희 집과 거리를 환히 밝히고 사악한 어둠을 몰아내고 

산업기계를 작동시켜 이 위대한 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대중문화 속 동물상징



(즐기다-6_사진03)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1800년대 초반까지 사람들은 불을 밝히는 데 향유고래에서 채취한 기름을 사용했다. 이 거대한 생명체는 신 이 창조한 거대하고 신비스러운 괴물로 여겨, 이를 사냥하는 것은 신의 허락 하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 여겼다. 나아가 거대한 생명체로 대변되는자연은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 것을 극복하였을 때 스스로를 영웅으로 인식했다. 과거, 서양의 전설에 등장하는 용의 상징성과도 유사하다. 용감한 왕자 혹은 기사는 용을 물리치고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한다. 아름다운 공주를 구하기 위해 용을 물리 치는 것은 영웅적인 행위였다. 그러나이 영화에서는 자연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 결국은 인간성의 상실이라 는 결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래가 아닌 만물의 영장으로 자칭하는 인간이 결국 신을 노하게 했다.


글·사진_ 이치헌(한국문화재재단 홍보팀장)


권위의 상실, 대중문화 콘텐츠로의 전향


지난날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동·서양으로 크게 나누어 이야기하곤 했다. 동양 에서는 자연을 경외의 대상이자 조화롭게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대상으로 본 반면, 서 양에서는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다고 말이다. 그러나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가 빈번해지고 그 흐름은 이제 지역적 구조를 벗어난 듯 보인다. 아시아권에서조차 경외 의 대상인 자연과 그 의미가 투사된 동물을 극복의 대상으로 혹은 영웅의 이미지로 의 미를 변화시키고, 축소해 갔다. 왕권을 상징하고 불교에서는 호국신앙을 그리고 민간에 서는 물의 신으로 대변되는 용, 그리고 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신이라는 의미로 산군이 라 불리던 호랑이도 시대가 변하면서 인간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때로는그 자체가 영웅의 이미지로, 혹은 과거의 힘을 잃은 미약한 존재로 표현되는 등 그 위엄과 권위가 낮아졌다. 


우리나라만큼 중국에서도 용은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었다. 경이와 신앙의 대상이었고 황제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일반 백성들은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권위적 인 상징물이기에 그 권위적인 상징성이 오랜 시간 지속되어옴에 따라 대중문화에서 그 이용 빈도가 높아지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찌 보면 영역이 확장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 의미의 층위는 낮아졌다. 달리 말해, 그 상징적인 권위가 낮아졌기 때문에 대중문화 콘텐츠로서의 지위를 찾아가고 있다고도 이해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그 위상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의 대중문화 중 무협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을 만큼 중국 문화의 대표적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그에 따라 무협 영화의 주연배우들은 그러한 무협 영화에 걸맞은 영웅적인 이미지 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실례로 이소룡, 성룡, 적룡 등과 같은 유명 액션 영화 배우의 이름들은 사실 본명이 아니다. 이미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들의 본명은 앞서 나 열한 순서대로 이진번(李振藩), 진항생(陳港生), 담부영(譚富榮)이다. 그들은 중국 대중 문화의 대표적인 중국 무협 영화에서 영웅의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용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여겨진다. 그 외에 중국 무협 영화의 제목들에서 용이라는 단어 가 특히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용형호제, 용쟁호투, 삼국지 용의 부활, 와호장룡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 나아가 그 권위가 점점 떨어져 이제는 간혹 별 볼일 없 는 작은 강의 수호신으로, 마녀에게 지배당하는 무력한 존재(스튜디오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하쿠)가 되기도 하고 한때는 인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전 설 속으로 사라졌으나 다시 부활하여 세상을 구하는 작고 위엄 없어 보이는 용(월트 디 즈니 컴퍼니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중 시수)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학교, 단체 등을 대표하는 캐릭터(MBC 청룡, 중앙대학교의 청룡, 국민대학교의 용두리, 인하대학교의 비룡,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극장 용 등)로 그 상징적인 권위가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즐기다-6_사진04)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20세기 폭스 코리아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_ 20세기 폭스 코리아

(즐기다-6_사진05)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_ 키다리이엔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스틸컷 _ 키다리이엔티

(즐기다-6_사진06)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컷_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스틸컷 _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호랑이는 어떤가. 산군(山君),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산중왕(山中王)으로 불리던 호랑이는 88올림픽의 마스코트로 쓰이기도 했고, 10년 뒤 해치에게 그 자리를 내주 고 말았지만 1998년 ‘왕범’이라는 서울시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기 웹툰 ‘호랑이 형님’을 통해 산군의 위엄이 다시 살아나긴 했지만 이령에게 최후의 일격을 당 한 후 (연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현재는 얼음 속에 갇혀 생사의 확인이 어려운 상황 이다. 원래 순우리말로 ‘범’이라 불리던 이 동물은 너무두려워 그 이름을 부르는 것조 차 금기어로 되었기에 호랑이(범호 虎 + 이리랑 狼)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있 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위력을 잃게 되었다. 이는 어쩌면 용과 비교했을 때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용은 그 를 능가하는 자가 없었다. 반면 호랑이는 고조선 때부터 곰보다 인내심이 없는 존재였 고 간혹 꾀 많은 토끼에게도 당하기도 하며, 심지어 곶감이라는 녀석에게도 굴욕을 당 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한때는 전쟁, 마마(전염병) 등과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기 도 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는 무분별한 불법 비디오보다 덜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말 았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그 위의 포식자가 존재했기 때문은 아닐는지. 



07. 단청장 홍점석의 단청 문양 부분, 2005년 보유자 작품전 

08. 담배피는 호랑이 민화 _ 수원 팔달사 벽화 



중국의 가장 오래된 지리서 중 하나로 꼽히는 『산해경』과 조선시대 박지원이 쓴 고전 소설 『호질(虎叱)』에서 보듯, 이 ‘범’을 잡아먹는 포식자가 있었으니 박, 비위,죽우(竹牛), 오색사자(五色獅子), 자백(玆白), 표견( .犬), 황요(黃要), 활(猾), 추이(酋 耳) 등이 그것이다. 이중 황요(黃要), 추이(酋耳) 등은 앞서 언급한 웹툰 ‘호랑이형님’에 도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용과 마찬가지로 호랑이도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수호랑’, 고려대학교 ‘안암골 호랑이’, 기아 타이거즈 ‘호 걸이’, 대한민국 육군 ‘호국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백호’,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 제707특수임무단 ‘백호부대’, 제3공수특전여단 ‘비호부대’, 제36보병사단 ‘백호부대’ 등 학교, 스포츠 팀, 군부대 등의 마스코트로 아직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듯 용이나 호랑이 등이 단체의 로고나 이모티콘 등에 많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모티콘, 로고 등에 사용되는 이미지는 그 안에 내포한 스토리와 의미가 약하다. 전형적으로 소비되는 이미지인 셈이다. 따라서 그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는 즉흥적인 인지효 과에 머물러 통사적인 이야기 흐름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이 글에서 주로 영화나 애 니메이션을 언급하는 이유다. 한편 호랑이는 영화에서는 2015년 개봉한 <대호>에 등 장한다. 여기서 호랑이는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인 동시에 지리산을 지키는 존재로 등 장한다. 그러나 위엄을 가진 신성한 존재가 왕자 혹은 기사가 영웅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로 용을 희생물로 삼듯이 호랑이도 어느덧 (특히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의) 전리품 내지는 희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편, ‘와탕카’(654화)라는 웹툰에서는 호랑이의 개 체수가 줄어든 이유를 담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범털? 이제는 ‘용털’이 대세


용호상박(龍虎相搏). 대중문화 속에서 용과 호랑이는 다른 영역에서 서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펼치고 있다. 아직 최종 승자를 가리긴 어렵지만 왠지 호 랑이가 용에게 밀리는 듯 보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보면 호 랑이보다는 용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범 내려온다. 결국 그 권위도 내려와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리차드 파 커’도 위협적이지만 결국 주인공 파이에게 길들여지는 처지가 된다. 지금 우리가 아는 범은 동물원에 갇힌 여러 동물 중 하나이고 용은 여전히 우리의 상상속에서 발전되어 그 형태도 점차 변화해 가고 있다. 그 형태 변화의 추이를 볼 때 동·서양의 지역적 차이 도 없어지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양의 용은 낙타의 머리에 사슴의 뿔, 토끼 눈, 암소의 귀, 뱀의 목, 개구리 배, 잉어 비늘, 매의 발톱, 호랑이의 발바닥을 가진 즉 여 러 동물의 기능과 특징적 형태를 융합시켜 놓은 합수동물의 형태를 띤다.


그런데 2002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하쿠’라는 캐릭터는 본래 어느 강의 신으로, ‘하쿠’라는 단어 자체가 ‘백(白)’을 의 미하는 것이기에 백룡의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이 흰 용이 우리가 알던 전통적인 용의 형상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흡사 늑대의 얼굴, 비늘 대신 몸에는 짐승의 것과 같은 갈기가 돋아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캐릭터를 용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용은 원래 그 자체가 신화적 창조물이긴 하나 그 자체의 모습들이 실제 존재하는 각각의 동물들의 기능과 특징적 형태를 융합시켜 놓은 합수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쿠’의 모습은 이러한 합수동물적인 특징을 그대로 간 직한 채 캐릭터화 되면서 창조적 변용을 이루었다 보인다. 또한, 강의 신을 상징하는 이 캐릭터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용의 위엄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용신의 위상은 극 중 등장하는 쌍둥이 마녀의 언니인 제니바가 치히로에게 던진 대사에서 그 위상이 추 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용들은 다 착하고 어리석어.” 절대적인 권위와 위엄을 상징 하던 용이 이제는 마녀에게 이용당하기도 하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이름 없는 작은 강을 다스리는 신이기는 하나, 마녀의 제자로서 그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존재다. 그러 나 악한 존재는 아니다.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주인공인 치히로를위해 헌신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양의 드래곤도 영화에서 점차 인간의 조력자 역할로 나 서고 있다. 


1996년 개봉한 영화 <드래곤 하트>에서 용은 주인공이 이겨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신 성한 힘을 가진 존재임과 동시에 주인공의 협력자로 등장하게 된다. 거기서 더 나아가 2010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에서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용이 사 실 그들 자체의 생존을 위해 같이 공존해 가야 할 자연의 일부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미국의 문화콘텐츠를 주도하고 있는 디즈니는 동양의 이야기에 매력 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언할 수 없지만, 성의 없이 그린 캐릭터라는 논란이 많은 ‘랴야와 마지막 드래곤’에 등장하는 용, 시수의 형태적 모습은 ‘센과 치히로의 행 방불명’에 등장하는 ‘하쿠’의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 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 등장하는 시수 역시 머리위의 뿔의 형태는 다르나 짐승의 갈기가 돋아 있다. 일반적인 서양의 드래곤(흡사 날개달린 공룡과도 비슷한 도마뱀의 몸에 박쥐의 날개를 단 형태)과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개털’의 상대어가 이제는 ‘범털’ 이 아닌 ‘용털’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즐기다-6_사진09)2018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_ 평창올림픽 홈페이지

2018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_ 평창올림픽 홈페이지

(즐기다-6_사진10)야구단 MBC청룡 로고

야구단 MBC청룡 로고

(즐기다-6_사진11-1)해태 타이거즈(현 KIA타이거즈) 엠블럼 _ KIA타이거즈 홈페이지_1

해태 타이거즈(현 KIA타이거즈) 엠블럼 _ KIA타이거즈 홈페이지

(즐기다-6_사진11-2)해태 타이거즈(현 KIA타이거즈) 엠블럼 _ KIA타이거즈 홈페이지_2

해태 타이거즈(현 KIA타이거즈) 엠블럼 _ KIA타이거즈 홈페이지



시대에 따라 변화해가는 동물의 상징적 의미


대체로 과거에는 동물의 문양과 그 상징적인 의미가 중국에서 유입된 것들이 많아 한자 발음의 유사성이나 동물의 생태적인 특성에서 비롯된 것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 러나 이제는 형태 면에서도 기존 캐릭터에서 창조적 변용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아 지고 의미면에서도 시대와 그 시대의 크고 작은 상황 변화에 따라 우리가 인지하는 동 물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가 변화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복(福)을 상징하는 ‘박쥐’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인류의 원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즐기다-6_사진12)복을 상징하는 박쥐 문양 _ 한국의집 지붕 기와


복을 상징하는 박쥐 문양 _ 한국의집 지붕 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