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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장 김동학
발행일 2014-01-06 조회 6396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 전통장 김동학 중요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 Master Artisan of quiver making Holder

전통장 김동학
1931.1.24. ~ | 보유자 인정: 1989년 6월 15일

“잘 만들어라. 만들면 내가 다 팔아준다구.” 그래서 그 쭉 그게 언제까지 잘 됐냐믄 70년도 하반기까지 중순까지는 그게 괜찮았어요. 전통이 잘 나갔어요, 그때는. 그때는 밤일이라 저거 만드느라고 내 밤일하고 이래가 그때 당시 저 큰 거를 얼마를 받았느냐면은 그때 돈으로 25만원, 30만원 받았어요. 그기 72년도 73년도 했는데 많이 받은 거예요. 그게. 몇 개 값이지! 그래가주구 받고 그랬는데, 그게 힘은 들지만 그지요. 그래 그게 차츰 차츰 이게 안되는기라 인제. ‘야 이러다 굶어 죽겠는데’...
- ‘국가무형문화재 기록영화 제작’ 전통장 김동학 선생 인터뷰 중에서

주요작품

(위) 팔각문자상감전통, (아래) 팔각대모전통

(위) 팔각문자상감전통, (아래) 팔각대모전통, 김동학, 각 85cm

장생문죽전통

장생문죽전통, 김동학, 90cm

(위) 죽호산문전통, 92x9cm, (아래) 사어피전통

(위) 죽호산문전통, 92x9cm, (아래) 사어피전통, 92x6cm, 김동학

(위) 대모피전통, 87x6cm, (아래) 죽산호문전통

(위) 대모피전통, 87x6cm, (아래) 죽산호문전통, 87x10cm

전통을 지키는 전통(箭筒)

  • 전통(箭筒)이란 화살을 담아서 편리하게 들고 다니는 통으로 전쟁이나 수렵을 할 때 사용되었다. 전통은 습사용(習射用)과 연습용(練習用)이 있는데, 통상 전통이라 함은 습사에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화살촉이 구석기시대 말엽에 차츰 형태를 갖추고 나타나기 시작했고, 중석기 시대에 와서 일반적으로 무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전통의 기원은 인류 문화와 함께 유구한 역사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활을 쏘는 데는 활과 화살, 그리고 화살을 담을 수 있는 통, 이 세 가지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화살통은 활과 화살처럼 쏘고 날아가는 주체는 아니지만 많은 화살을 운반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 고려시대에는 내궁전고(內弓箭庫)라는 활과 화살을 제조하는 방(房)을 설치하고 궁시를 제작하였는데, 궁대장(弓袋匠)이라는 장인이 배속되어 있었다. 궁대란 활을 넣고 다니는 활집을 지칭하지만, 활은 화살과 같이 휴대하고 다니는 것이 원칙이므로 당시의 궁대장은 화살집도 같이 제조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활과 화살 그리고 화살통 제작은 군기시·상의원 등의 경공장과 지방의 각 외공장에서 만들었다. 공조(工曹)에서도 활과 활집인 궁대(弓袋)와 화살집인 시복(矢箙) 등을 제작하는데, 특별히 화살통을 제작하는 통개장(筒介匠)이라는 장인이 배치되었다. 이들은 저피(猪皮)·생피(生皮) 등의 피혁 제품으로 전쟁과 수렵에 사용되던 화살통을 만들었다. 이러한 통개장은 [경국대전]에는 공조에 한 사람이, [대전통편]과 [대전회통]에는 두 사람의 장인이 배속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활과 화살통을 제작하던 장인은 지방에도 다수 있었다. 전통은 대·나무·가죽·종이 등을 재료로 하여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와서 활쏘기를 남자가 갖추어야 할 육예(六藝)로 여겨 왕을 비롯하여 문무(文武)를 가리지 않고 활쏘기를 즐겼던 당시 풍속 때문에, 전통은 한량들이 갖추어야 할 사구(射具)의 일종이면서 동시에 장신구나 부유한 사람들의 사치품으로 변하였다. 즉 활이 전쟁의 중요한 무기로 사용되던 때나 심신을 단련하는 방편으로 이용되던 때나 전통은 활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생활필수품이었다.

유물로 전해지는 전통

유물로 전해지는 전통은 전투·습사용 화살통과 연습용 화살통이 각 박물관이나 개인·활터 등의 소장품으로 전하고 있는데 수효가 방대하다. 전해지는 연습용 전통은 피가죽·나무·대·종이·어피·지승·나전·모피 등 다양한 재질로 제작되어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현존하는 전통의 일부를 살펴보면 대나무를 자재로 사용한 경우에 십장생(十長生)·궁도훈(弓道訓)·용(龍) 등의 문양을 새기거나, 대나무의 마디를 제외하고는 모두 V자형으로 파내어 골전통을 제작했다. 특히 골전통의 경우에는 명문을 같이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재질이 나무인 전통의 제작방법은 나무 자체에 조각을 하여 장식하는 경우와 그 표면에 어피나 가죽·벗나무피 등의 다른 재질을 사용하여 견고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방법 등이 있다.

전통의 각 부분 명칭

각 부분 명칭-1)고리목, 2)몸통, 3)경첩, 거북장식조각, 4)밑마개, 5)맬끈, 6)문양장식, 7)맬끈고리, 8)뚜껑

4대를 이어온 전통장, 금학(金鶴) 김동학 선생

  • 김동학 선생은 경주 김씨로, 선생의 전통제작 기능의 근원은 증조부 김종연(1821~1864) 선생 대로 올라간다. 증조부인 김종연 선생은 조선 순조와 헌종 때 살았던 분으로 통정대부(당상관 정3품)를 지냈으며 스스로 전통을 제작하여 더러는 남에게 선사하기도 하고 동료들에게 화살과 화살통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김종연 선생의 아들 김고성(1855~1908) 선생은 부친의 재질을 이어받아 경북 영덕군 영해에 살면서 부친을 따라 무술을 익혔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아들 용묵·봉묵과 함께 산남의진(山南義陳)에 참여하였다. 김고성 선생의 아들인 김용묵 선생은 바로 김동학 선생의 부친이다. 김용묵 선생은 부친을 따라 의병의 진중을 다니며 의병의 역할을 하면서 화살과 전통을 만들어 제공하였다. 일제 강점기가 되자 영일군 신광면에서 충북 단양으로 피난하여 살았는데 김동학 선생은 여기서 출생해 살다가 해방 후 포항으로 이사하였다.
  • 김동학 선생은 부친 밑에서 일하는 것을 눈으로 익혔다. 그러나 부친은 김동학 선생으로 하여금 절대로 화살통이나 화살을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지나고 그 무렵 김동학 선생은 뚜렷한 직업도 없고 학교도 다니지 못하여 아버지의 일을 틈틈이 배워서 화살통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리 특출하여 아버지가 만드는 일을 거들어 주었는데 그때 대나무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화살통의 고리를 조각하는 기법 등을 틈틈이 익혔다. 선생이 본격적으로 화살통을 제작하기 시작한 때는 부산에서 고학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다 돌아온 직후부터였다. 전국에서 활쏘는 운동이 일어나 화살통이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으나 아버지가 고령으로 일을 못하자 아버지의 소개로 경북 예천읍에서 활과 화살을 공급하고 있는 권영록 선생을 찾아가게 되고 그분의 권유로 전승공예대전도 출품하고 화살통을 제작하고 공급하는 일을 하게 된다. 선생의 솜씨가 널리 알려져 청와대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고, 레이건 대통령이나 후꾸다 수상 등 외국 정상들의 선물용으로도 주문이 들어왔다. 1970년부터 선생은 전국을 돌면서 화살통을 주문받아 작업을 하였으나 화살통이 워낙 섬세한 세공이고 세밀한 조각과 장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별로 수지가 맞지 않았다. 또한, 화살통은 소비성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사면 평생을 사용할 수 있어 화살통 만드는 일은 점점 쇠퇴하여 갔다. 그러나 선생은 그 직업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여 198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순수한 전통적인 방법으로 한국 고유의 전통(화살통)제작 기능을 이어오고 있다.

작업도구

화살통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대, 나무, 쇠, 종이, 어피, 화피, 대모, 나전, 옻 등 성질이 다른 재료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공구가 다양하다. 먼저 대나무를 자를 때, 그리고 각종 장식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톱, 창칼과 가죽골무, 삼각도, 평도, 원형칼, 장칼, 채칼, 줄, 솔, 글개, 반월칼, 자귀, 대패 및 끌, 정, 가위, 망치와 집게, 인두, 지필묵 등이 필요하다.

죽 전통 제작과정

  • 죽제 전통 제작은 대나무로 화살통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화살통 중 전쟁용 화살통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지금은 운동용 화살통을 만들 뿐이다. 그런 이유로 장식과 조각이 화사하고 다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전통은 대부분 대나무를 재료로 쓴다. 우선 대나무를 고르는 작업이 중요한데 왕죽을 2년 이상 된 것으로 크기를 감안하여 고르는데 대의 표면이 녹색으로 맑게 보이는 것이 좋다. 채집된 대나무는 결을 삭히기 위해서 그늘진 곳에 구덩이를 파서 넣고 통풍과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해서 2년 이상 저장한다. 이후 대나무의 기름을 빼기 위해서 특별히 제작된 드럼통에 넣고 3일 정도 삶는다. 대나무의 열이 식기 전에 겉에 묻은 끈끈한 기름을 헝겊으로 닦고 윤이 날 정도로 문지른 다음 열이 식는 동안 그늘진 곳에 세워 두었다가 곧 각도(刻刀)를 시작한다.
  • 밑그림을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칼로 문양을 조각한다. 몸통에 조각이 끝나면 몸통 속에 막혀 있는 마디를 창칼과 채칼로 제거한다. 문양이 완전히 끝나면 칠을 먹이거나 도색을 하는데 풀뿌리 솔로 문지른 다음 도색을 한다. 다음은 전통의 덮개, 밑마개, 고리목 등 장식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된다. 덮개는 김동학 선생이 특별히 개발한 디자인으로 전통적인 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것을 용머리라고 하는데 두께는 전통의 크기에 따라 다르다. 고리목은 아교나 민어 풀로 접착한 후 끈으로 단단히 묶어 두었다가 하루쯤 지난 후에 풀어보면 단단히 붙어 있다. 다음은 도칠을 한다. 칠은 흑칠이나 주칠을 하는데 10회 이상 한다. 건조는 물을 촉촉이 축인 가마니를 깐 온돌 방 안에서 건조시킨다.
  • 밑그림 그리기

    1) 밑그림 그리기

  • 각도하기

    2) 각도하기

  • 용머리모양의 덮개제작

    3) 용머리모양의 덮개제작

  • 고리목 제작

    4) 고리목 제작

  • 거북모양장식 만들기

    5) 거북모양장식 만들기

약력

  • 1931년출생
  • 1950년부친 김용묵 선생에게서 전통제작 기능 전수
  • 1982년제7회 전승공예전 장려상
  • 1983년제8회 전승공예대전 문공부장관상
  • 1985년한국미협 경북월성지부 공예분과위원장
  • 1987년제12회 전승공예대전 문공부장관상
  • 1989년국가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2년제17회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 1995년경북 산업디자인 전람회 심사위원
  • 1999년청주비엔날레 공모전 심사위원
  • 2003년사)한국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이사장
  • 2003년제4회 익산 한국공예대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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