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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장 박용기
발행일 2014-01-06 조회 7945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 장도장 박용기 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Master Artisan of Ornamental Knife Making

장도장 박용기
1931. 6. 19 ~ | 보유자 인정: 1978년 2월 23일
 
당신은 여린 나의 몸에 강철날을 박더니 수없이 달구고 식혔습니다.
당신은 나의 몸을 줄로 다듬고 숫돌에 갈아 날을 벼렸습니다.
당신은 나의 얼굴을 문질러 윤을 내더니 옆구리엔 태양을 새겼습니다.
당신은 나를 옷섶에 차고 다니며 어루만집니다.
나는 당신이 손에 쥘 때에는 부드럽지만 다른 사람이 닿으려 하면 날카로운 날로 위협합니다.
만일 누가 당신을 해치려 하면 나는 당신을 지킬 거여요.
만약 당신이 자신을 지키지 못하게 되거든 나로 하여금 당신을 찌르게 하셔요.
당신을 찌르는 아픔에서 당신을 빼앗기지 않고 당신과 하나가 되는 기쁨을 나에게 주셔요.
나는 당신의 은장도여요.
- 황건, [은장도], 계간 <시와시학사>, 2005, 봄호

주요작품

  • 금은장매죽문첨자도

    금은장매죽문첨자도, 박용기, 20X3.5cm

  • 금은장매조문갖은을자도,

    금은장매조문갖은을자도,
    박용기, 15X2cm

  • 금은장용문갖은맞배기도

    금은장용문갖은맞배기도,
    박용기, 21.5X3cm

성인 남녀의 필수품이었던 장도

  • 전통사회에서 장도는 성인 남녀 모두가 몸에 지니던 필수품이었다. 은장도가 여성의 정절을 상징하는 것으로만 알려졌으나 사실은 바깥출입을 하거나 소소한 집안일을 하는데 있어서 장도는 가장 요긴한 연장이었다. 야외에서 나뭇가지를 다듬어 젓가락을 만들기도 하고, 과일을 깎는 데도 쓰였다. 신분에 따라 재료와 만듦새가 다르고 격조를 달리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나, 크게는 일상용이 있고 노리개에 붙이는 것처럼 장식기능을 우선하는 것이 있다. 장도 가운데는 쇠젓가락을 장도날과 함께 꽂아 두어 쓸모를 배려한 물건이 적지 않은 것은 일상에서 장도가 얼마나 요긴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 장도(粧刀)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하는데, 허리춤에 차고 옷고름에 찬다 하여 패도(佩刀)라 하였으며,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다 하여 낭도(囊刀)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언제부터 패용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최남선은 남녀가 옷고름에 장도를 패용하는 관습이 고려시대 원(元)에서 전파된 몽고의 풍속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후 장도의 유래를 몽고의 영향으로 설명하는 글들이 있으나, 신라의 요패 장식물의 하나인 장식칼과 금령총에서 출토된 순금의 작은 고리칼(小型環頭大刀)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작은 칼을 제조했다는 기록을 보아, 장도와 같은 칼의 형태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고려인들의 오랜 풍습 중에 칼과 붓이 함께 달린 칼을 차고 다닌다는 기록과 백성들에게 비수(匕首)차는 것을 금했다는 기록은 장도의 형태와 유사한 칼을 항상 소지하고 있던 풍습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다만 문헌상에서 그 명칭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조선전기이다. [경국대전]에는 도자장(刀子匠) 6명과 환도장(環刀匠) 12명이 상의원(尙衣院)에 소속되어 있음을 기록하고 있어, 칼을 만드는 장인이 중앙에 소속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도자장은 작은 손칼을 만드는 장인을, 환도장은 군도(軍刀)를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장도는 장신구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장도는 조선시대 부녀자들에게 가장 사랑 받던 장신구로써 거울이나 빗과 함께 여인들의 3대 소지품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더욱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장도는 여인의 정절을 지키는 상징적인 성격이 더욱 강화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화 이후 장도의 패용이 점차 줄어들고 서양에서 건너온 손칼의 보급 등으로 장도의 이용이 줄면서, 장도를 만드는 장도장의 수도 감소하게 되었다. 1978년 2월 23일 국가지정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로 지정되었다.

장도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꿈을 마침내 이루다

  • 박용기 선생은 1931년 6월 19일 광양읍 우산리에서 아버지 박순경 선생과 어머니 김수연 여사 사이에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광양은 선생의 5대조 이래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유년시절은 집안이 부유한 편이어서 학업을 계속 할 수 있었으나 선생은 공부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했다. 아버지는 투전을 직접 만들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는데 투전의 문양을 고르게 인쇄하는 기술은 감탄할 정도였고, 대나무를 이용하여 갈퀴와 빗 등도 직접 제작하는 등 공예기능이 탁월했다. 부친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선생 또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작시간에 가장 큰 흥미와 재능을 보였다. 선생이 장도를 처음 접한 것은 광양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방되던 해에 고종누님의 시댁어른인 장익선 선생을 만나면서였다. 당시 70세였던 장익선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장도장의 맥을 이어왔던 분으로, 누님의 부탁으로 장도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박용기 선생은 스승인 장익선 선생이 73세(1948년)에 돌아가신 뒤에도 스승의 공방에서 계속 일을 하다가 우산리의 큰집 갓방을 얻어 독립했다.
  • 한국전쟁이 끝나던 22세 되던 해에 결혼을 하고 제대 후 형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전주에서 잠시 자동차 운수사업을 했으나 3년만에 실패하고 광양으로 돌아와 다시 장도일을 시작했다. 60년대 초반 무렵, 9명의 종업원을 두기도 하며 광양읍내에서 ‘패도공업사’ 간판을 걸고 시작했다. 장도제작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60년대 말부터는 아접고, 뽕낫 등 농기구를 제작하여 가계를 꾸리기도 했다. 이 일도 실패한 뒤에는 오로지 장도제작에만 전념하게 된다. 선생에게 1970년대는 장도 기능이 무르익어 경지에 올랐을 때다. 또한, 장도제작의 열정뿐 아니라 장도의 홍보와 판매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1975년(44세)에는 광양읍에서 패도공업사를 처분하고 현재의 광양 장도박물관 위치로 공방을 이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로 1978년 2월 23일 장도장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 1975년에 현 위치로 공방을 확장하면서 훗날 광양에 장도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꿈을 가졌고, 선생의 모든 재산을 광양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2005년, 마침내 박물관 건립이 현실화 되었다. 2010년 12월 28일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보유자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 선생의 장남인 박종군 선생이 전수교육조교(1989년)로 인정되어 대를 이어 장도 제작활동을 하고 있다.

    어느 장도든지 일편단심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요. 평생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마음이란 뜻이겠지요. 그래서 선비에게는 불사이군, 즉 두 임금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 되어서 충절도가 되는 것이지요. 시집가는 여자에게는 두 남자를 섬기지 말라는 뜻이니 정절도가 되는 것이고, 작은 것은 노리개로 앞가슴에 품기도 합니다만 선인들은 정절과 충절을 간직하는 정신으로 늘 장도를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 한국경제신문 1989.11.19

    “나는 지금까지 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정신’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장도를 제작해 왔다. 장도에는 ‘바로 사는 도덕’이 들어있다. 우리가 지금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게 부끄러운 모습뿐이지 않는가. ‘문화’속에는 그 나라의 민족성이 들어 있다. 내가 만들고 있는 장도에도 우리 선조의 지혜와 정신이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 광주일보 2004.4.7

작업도구

  • 장도에 사용하는 금속재료로는 금, 은, 백동, 구리, 주석, 철 등이 있다. 금, 은, 백동, 구리 등은 주로 칼집과 칼자루를 만드는데 사용하고, 주석은 도신(刀身)의 도심(刀心) 부위의 받침 역할을 하는데 많이 이용하며, 철은 연마하여 도신(刀身)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 나무재료로는 흑단, 먹감나무, 대추나무, 향나무, 대나무, 심향목 등이 사용되고 기타 옥, 호박(琥珀), 비취, 마노(瑪瑙), 공작석(孔雀石) 등의 보석류와 대모(玳瑁), 우골(牛骨), 어피(魚皮) 등의 동물에서 추출한 재료들을 사용한다. 제작도구로는 금속을 열풀림하거나 녹이는 기능을 하는 화덕과 화덕에 공기를 주입시켜 불의 온도를 강약으로 조절하는 풀무, 장도의 장식과 부속품의 형을 잡는데 사용하는 보래를 비롯, 거도, 토간, 모루, 물줄이, 쇠망치, 줄, 활비비, 받침대, 다듬목, 숫돌, 정, 가위, 집게, 칼대와 칼대받침목, 연장칼, 대패, 국화정과 납통, 불살개, 찌구, 나무망치, 도심꼬지, 깍쇠, 길이, 납인두, 갈기, 거름쇠, 실톱 등 다양한 도구들이 사용된다.
화덕에서 칼날을 달구는 모습 칼날 형태잡기

화덕에서 칼날을 달구는 모습 칼날 형태잡기

칼날에 명문 새기기 칼자루에 칼심을 박기 전 칼을 칼집에 넣는 모습

칼날에 명문 새기기 칼자루에 칼심을 박기 전 칼을 칼집에 넣는 모습

약력

  • 1931광양 출생
  • 1971관광민예품 경진대회 입상
  • 1973인간문화재공예전 장려상
  • 1978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84-1985광주 장도 상설전
  • 1988

    문공부 주최 해외전람회

  • 1990일본 한국공예전람회
  • 1991미국 캘리포니아 피사데나센터 전시
  • 1993대만 주최 국제 전통공예 대전, 대전 엑스포 전통공예관 장도제작 실연
  • 1995광주비엔날레 찬조출품
  • 2000-2005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 찬조출품
  • 2005광양장도박물관 설립, 전수교육관 설립
  • 2010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명예보유자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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