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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 문화상품 썸네일 이미지
[2019.02] 문화상품
K-HERITAGE 문화상품 창덕궁의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 ‘애련지와 애련정’ 창덕궁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궁궐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조선시대의 뛰어난 조경을 보여주는 창덕궁의 후원에 애련지와 애련정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가 있습니다.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의 애련지는 창덕궁 불로문을 지나 오른쪽에 자리하고,애련지 북쪽에 애련정이 있습니다. 애련정은 애련지의 물가에 지은 것으로,일반 건물에 비해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는 잉어 모양의 토수가 있고 건물을 받치는 네 기둥 가운데 두 기둥은 연못 속에 잠겨 있 초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소개하는 창덕궁 애련정 나전소함을 통해 창덕궁의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를 느껴 보세요. 창덕궁애련정 나전소함 크기 8 x 8 x 6cm 상품설명 창덕궁 후원에 있는 정자 애련정이 애련지에 비친 모습과 애련지의 아름다운 연꽃을 우01•한 나전장식으로 표현한 보석함 소재 MDR 황동(은도금), 천연자개, 스테인레스 가격 5만3,000원
2019년 02월 호
[2019.02] 알림마당 썸네일 이미지
[2019.02] 알림마당
이땅의 굿 - 굿도 보고 점도 치고 일시 2. 3.(일)~6.(수) 14:00시8:00 장소 한국의집 내용 굿도 보고 점도 치고, 4일간 벌어지는 축제의 굿판! 관람료 33,000원 새해맞이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세화(歲盡) 나누기’ 일시 2. 5.(화) 장소 경복궁광하문일원 내용 새해를 맞01하여 수문장 관련 세화(歲晝)나줘주기 경복궁 수문장 임명의식‘국왕께서 친히 수문장을 낙점(落點)하다’ 일시 3. 31.(일)14:00 장소 경복궁광화문일원 내용 수문장 임명의식, 명예수문장 임명,조선시대 갑사 취재체험 운영 문화가 있는 날 특별 행사‘왕가의 산책’
2019년 02월 호
[2019.02] <2019년 제5회 궁중문화축전>을 준비하며 썸네일 이미지
[2019.02] <2019년 제5회 궁중문화축전>을 준비하며
올해부터는 경희궁에서도 개최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안고 궁중문화축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미 한국문화재재단에서는 궁궐의 현재적 활용에 대한 매력적인상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고,지난 4년간 궁중문화축전을통해 많은 콘텐츠들을 축적해 두었기 때문에 나의 임무는 그간의평가와 분석에 따라 옥석을 가리과 자체 기획을 강화해 궁궐별로특징을 세분하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있겠다. 축제의 장소성은 축제의 정체성을 보여주며,프로그램 구성의 시작점이 된다. 더구나 500년 조선왕조의 심장이었던 궁궐이 축제의 장소라면 궁궐과 건물마다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건물의 쓰임새 그리고 주요 행사와 공연양식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경희궁이 처음으로 축제의 공간으로 포함돼 5개 궁궐로 확대됐고 종묘를 포함해 6개의 장소에서 9일간 열린다.
2019년 02월 호
[2019.02] 한국 전통공예 건축학교 개교 썸네일 이미지
[2019.02] 한국 전통공예 건축학교 개교
본격적인 전통공예교육의 첫걸음 1988년 12월 21일 낮 2시 경복궁 내 전통공예관에서는 당시 내로라하는 문화재 전문가들이 모였다. 1988년 9월 개관한 전통공예관의 운영에 관한 자문회의였다. 이날 모인 자문위원들은 한국일보 예용해 논설위원,한국민속촌 맹인재 사장,중앙박물관 정양모학예실장,한국복식문화연구원 유희경 원장,호암갤러리 이종석관장,숙명여대 김성수 교수,한국문화재보호협회 김명섭 상임이사,전통공예관 임영주 관장 등이었다.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전승공예대전 및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 작품전 등에 관한 논의와 더불어 동계 청소년 공예강좌와 교사를 위한 실기강습이 논의됐다. 동계 청소년 공예강좌는 1989년 1월 초등학생과 중학생 100여 명을 대상으로 전통공예관에서 토우(흙공예) 실기강좌를 하는 내용이었다. 이 밖에 교사와 같이 관심도가 높은 이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실시해야 효과가 크다는 내용의의견이 있었다.
2019년 02월 호
[2019.02] 개성 고려박물관에 있는 고려 문화재의 아름다움 썸네일 이미지
[2019.02] 개성 고려박물관에 있는 고려 문화재의 아름다움
고려박물관,고려시대 성균관 개성은 고려의 왕도다. 고려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는개성박물관으로 불리던 곳이다. 이곳의 한국인 최초 박물관장은 우현 고유섭 선생이다. 한국미술사학계의 태두인 선생은 광복 이전에 안타깝게 돌아가셨지만 그분의 제자인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황수영 동국대 총장,진홍섭 이화여대 교수 등이 활동하면서 우리나라박물관과 미술사를 발전시키는 데 기 여했다. 광복 이후 1952년 국립개성박물관으로 발족했다가1960년 개성력사박물관으로 개칭됐고,1992년 고려박물관으로 불리게 됐다. 고려박물관은 전체 3만여nf에 대성전,동무와 서무 그리고 계성사의 4개 전각을 전시실로 사용하고 야외 전시장으로 이뤄져 있다. 유물은9,000여 점이다. 유물들은 개성 교외에 위치한 고려 태조 현롱과 공민왕•노국대장공주의 현정릉 등 고려 왕릉이나 귀족들의 무덤에서 출토된 청자를 비롯한 다종다양한 공예품,사찰에 소장돼 있던 불상과 불교 공예품 등이다. 박물관 서편 야외에는 불일사 5층탑,현화사 7층탑,흥국사탑,개국사 석등,원통사부도 등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석조물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2019년 02월 호
[2019.02] 무형문화재의 표상 썸네일 이미지
[2019.02] 무형문화재의 표상
사랑방가구에 느티나무와 물푸레나무의 용목(龍木)을 살리고 현대미 더해 이번 박명배 소목장이 제작한 작품들은 주로 사랑방가구들로,책장•이층장•의걸이장을 모티브로 해서 골재 사용을 줄이는 대신 넓은 판재를 사용해 새로운 면의구성을 시도한 것이 특징이다. 보다 단순한 형태로 인해 좋은 무늬의 판재가 강조돼 목재가 갖고 있는 부드럽고 자연적 인 아름다움이 충분히 부각됐다.더욱이 마치 구름에 용이 엉켜 있는 듯한 느티나무와 물푸레나무의 용목(운룡문)과 물이 흐르는 듯한 파도문을 판재로 활용해 아름다운 자연 목리를 살렸다. 또 단순한 면 분할로 간결함이 돋보이고 현대 생활공간에 적용될 수 있도록 했는데,한국 목공예의 특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시대적 흐름에 잘 적응해 나가는 현대 목가구로 발전시켰다.
2019년 02월 호
[2019.02] 삶의 기품 명품의 자태 썸네일 이미지
[2019.02] 삶의 기품 명품의 자태
한국전통목가구의 정하(精華)를 보여주다 전통이란 라벨로,마음을 호리기는 쉽지 않은 시대다. 공연의 무대도,전시장의 작품도 전통의 이름표가 달리면,설렘의 원기보다 ‘권근(借勤 : 하는 일에 싫증을 느낌)의 동력’이 형성된다. 연예인의 옷자락이 공항(이른바 공항패션)에스친 만큼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게 전통이다. 이런 즈음에 지난해 11월 초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제4회「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보유자)박명배 전통목가구전」은 ‘전통의 이름’으로도 우뚝했다.하루 관람객이 500 600명이 넘나들었고,목가구 연구자,컬렉터,도반 사이에서 한국전통목가구의 ‘정화備■’라고,정평(正評)했다. 그러나 박명배 선생은 공허했다. “이게내 목가구 인생의 꼭지점인가?” 공허감이 며칠째 공방의공간과 시간을 삼켰다. 그러나 다시,이내 ‘한국전통목가구의 내일’을 위한 ‘과녁’을 그렸다. 그 과녁은 전통목가구 중사방탁자처럼 (가구 안에서) 공간이 형성되는 ‘공간가구’를 최상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다. 소목장 박명배 보유자의 삶은 늘 이렇게 과녁의 높이를 높여온 여정이다. 그러나그 과녁은 ‘높이’만 있는 게 아니다. 높이 안에서,질을 채우는 과녁이다. 양궁의 표적지로 설명하자면 10점 표적지 안어느 부위가 아니라 표적지 정중앙 핀홀이 었
2019년 02월 호
[2019.02] 권번 (券番) 의 은어,기생 (妓生)의 은어 썸네일 이미지
[2019.02] 권번 (券番) 의 은어,기생 (妓生)의 은어
권번에서 사용한 출생지와 관련한 은어들 1930년대 서울에는 4대 권번이 성업했습니다. 조선권번은 ‘조권’,한성권번은 ‘한권’,한남권번은 ‘한남,종로권번은 ‘종권’ 또는 ‘종로’로 불렸습니다. 고 묵계월 명창은 권번 이미지가 좋지 않아 권번 대신 ‘노래서재’라는 말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권번에서는 출생지와 관련된 은어가 많이 사용됐습니다. 먼저 ‘경소(京所)용’과 ‘서소®所)용’이 있습니다. 기생을 모집하는 늙은기생들이 쓰는 말로 경소용은 서울에서 성공할 기생,서소용은 시창을 잘하는 서도 평양기생을 지칭합니다. 평안도 출신들은 ‘서선(西鮮)’,남도 출신은 ‘남선(南鮮)’이라고 했는데,이는 ‘조선의 서쪽’과 ‘조선의 남쪽’을 줄인 표현입니다. 대개 권번별로 서선기,남선기,경성기로 구분해 관리했습니다.
2019년 02월 호
[2019.02] 20세기 서울의 변화를 대표하는 공간 종로 썸네일 이미지
[2019.02] 20세기 서울의 변화를 대표하는 공간 종로
한양의 중심가로,종로 조선시대에 종로는 광화문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의 세종로,종각에서 남대문까지의 남대문로와 더불어 한양에서 가장 중요한 도로였다. 더욱이 모든 궁궐이 불에 탄 임진왜란 이후 종로와 연결된 창덕궁•창경궁만 중건하고새로 건립한 경희궁의 정문이 종로 쪽을 향하게 되자 한양의 중심가로로서 종로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조선왕조는 종로와 남대문로에 수천 칸에 달하는 행랑을 세웠는데,도로 좌우에 세워진 이들 행랑은 자연스레 노폭을규정할 뿐 아니라 도로의 주요 경관을 형성했다. 조선시대 종로 거 리에는 정부와 도성민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시전이 행랑에 자리하과 행랑 뒤편에는 피맛길도 조성됐으며,의금부•전옥서 •포도청 등의 관청도 위치했다. 많은사람들로 북적이는 중심 가로인 만큼 치안 관련 관청이 집중적으로자리한점이 눈에 띈다.
2019년 02월 호
[2019.02] 현장에서 얻은지혜, 1인극 예술로 승화 썸네일 이미지
[2019.02] 현장에서 얻은지혜, 1인극 예술로 승화
현장체험과 전통의 실제 탐구 필자는 젊은 교수 시절 을지로에 있던 남천의 사무실에서 화가 주무지와 셋이 어울려 자주 담론을 즐겼과 20()1 년에는『심우성과의 대담록』(우리시대의 연극인,연극과 인간)을 간행하기도 했다.‘남천’ 하면 가장 먼저 기억되는 것이 공연예술에 대한 열정적인현장체험과 전통 탐구 활동이다. 어디든지 주변에서 벌어지는 전통예술의 현장에 가면 으레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전통예술에 관한그의 풍부한이해와 실력은온전히 현장에서 얻은 것이라해도지나친 말이 아니다. 서울에서 휘문중학교를 다니던 그는 16세에6-25전쟁을 만났다. 고향인 공주 의당면 청룡리로 피란한그는 집에서 숨어 지냈는데,그때 집에는 늙은 머슴 정광진(75세 정도)이가사를 도와주고 있었다. 정광진은 지난날 남사당패의 일원이었다. 그를 통해서 남천은 후일 일제 말기에 홑어진 남사당의 원로들을 다시 규합할 수 있었다. 정광진이 야말로 그에게 전통예술에눈을 뜨게 해 준 은인이다. 남천은 그후 정광진이 들려 준 이야기에 따라 틈틈이 오래전에 뿔뿔이 홑어진 남사당패를 찾는 일을 진행했다. 제일 먼저 양도일응을 대덕군 회덕면에서 만났다. 그 동네에서 송순갑 옹도 만날수 있었다.
2019년 02월 호
[2019.02]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한국민속학의 아버지 썸네일 이미지
[2019.02]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한국민속학의 아버지
한국민속학 개척에 평생을 바치다 임동권 교수는 1968년 한국민요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과 1954년 국학대에서 한국에서 처음으로 민속학 강의를 열었다. 1958년부터 1974년까지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교수•학장을 역임하며 문화예술 분야에 기여했으며,민속학을 학술적으로 정립하고,종합대학의민속학과 설립 기초를 마련했다. 1962년 우리나라 문화재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전문위원을 거쳐1964년 최연소 문화재위원으로 임명됐다. 32년 동안 17차례나 문화재위원(1962 1999)을 지내며 무형문화재 지정과 인간문화재 발굴에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사라져 가는 고유한민속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치열한 삶을 살았다. ‘우리의 설날을 있게 한 사람이라는 평가처럼 음력설을 제자리 찾도록하여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된
2019년 02월 호
[2019.02] 한국 '인간문화재' 제도의 산파 썸네일 이미지
[2019.02] 한국 '인간문화재' 제도의 산파
문화부 기자의 전설,예용해 신문 지면에서 1면은 정치부가 차지한다. 독자의 관심에 따라 지면을 배치하기 때문이다. 이어 경제면과 사회면이 들어간다. 문화면은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배치한다. 문화면 기사는 특종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언제나 중요성과 긴급성이 떨어지는 기사가문화면 기사였다. 그런데 한국일보 문화면이 이런 생각을 바궜다.예용해 (1929 1995) 기자때문이다. 1975년 여름 내가 한국일보 기자로 일을 시작할 때 ‘전설’ 이야기를 들었다. 고참 기자에게도 예용해 논설위원은 전설이 었다. 새롭고 발상이 다른 기사를 써서 편집국의 ‘경이’였다고 했다. 문화면에 전면 편집한 ‘인간문화재’ 기사가 전설의 시작이었다.예용해는 I960년 7월부터 1962년 11월까지 50회에 걸쳐 ‘인간문화재’를 연재했다. 전국 각지에서 전통문화의 장인을 찾아 소개한글이었다. 참고자료도 함께 실었다. 기사가 나온 시기를 주목해야한다. 6.25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세계 최빈국 상태에서 생존에 급급하던 때였다.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짚어낸 이 연재기사는
2019년 02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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