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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 알림마당 썸네일 이미지
[2019.04] 알림마당
제5회 궁중문화축전 일시 27.(토) ~ 5. 5.(일) 장소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경희궁, 종묘 내용 5대궁 및 종묘에서 펼쳐지는 최대 궁궐 축제! 창덕궁 달빛기행 일시
2019년 04월 호
[2019.04] 문화상품 썸네일 이미지
[2019.04] 문화상품
모란(牡丹)은 위엄과 품위를 갖춘 꽃 중의 왕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국민과 나라의 평안함을 상징하는 모란도병풍(牡丹圖屛風)을 그려 가례와 종묘대제 등에서 사용했다. 모란꽃을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적용해 궁중회화가 가지는 고급스러움을 실크 스카프에 담았다.
2019년 04월 호
[2019.04] 왕실에 바친 술 썸네일 이미지
[2019.04] 왕실에 바친 술
왕실에서는 진상용 어주(御酒)와 별도로, 제례용 술을 담아 특별 관리했다. 술은 오늘날의 위스키나 코냑처럼 보관 및 유통을 장담할 수 있는 안정적인 물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소 쓰는 보통 술들은 궁중의 제반 음식을 만들어 내던 사옹원(司饔院)에서 담당했는데, 국가 행사용 제주(祭酒)와 임금이 평소 마시는 어주는 특별히 내의원(內醫院) 양온서(良醞署)에서 어의(御醫)들의 감독 아래 엄격하게 제조됐다. 조선 초기 양온서에서 제조한 대표적인 제주로 ‘법주(法酒)’가 꼽힌다. 법주는 술 빚는 날과 방법을 고도의 비법으로 특정해 두고 ‘법대로 빚은 술’이라 해서 얻은 이름이다. 그러다가 숙종 때 사옹원에서 일하던 참봉(參奉·종9품) 최국준이 경주로 내려가 법주를 빚어 인기를 누렸는데, 훗날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멸절된 것을 후대에 되살린 것이 오늘날 ‘경주법주(慶州法酒)’로 유명한 ‘경주 교동법주(校洞法酒)’다(국가무형문화재 제86-다호). 알코올 도수는 16~18도로, 투명한 담황색 빛깔이 은은한 청주다. 1450년 문종 때에는 대놓고 ‘진상주(進上酒)’ 라 이름 붙인 술이 탄생한다. ‘진상주’는 당시 어의 전순의(全循義)가 집필한 요리전문서 『산가요록(山家要錄)』에 비방이 수록돼 전해지다가 지난 2013년 농업진흥청의 주도 아래 복원에 성공했다. 도수는 16~17도다.
2019년 04월 호
[2019.04]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 있는 우리 회화의 아름다움 썸네일 이미지
[2019.04]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 있는 우리 회화의 아름다움
회화 전문 박물관인 조선미술박물관은 4층 건물이고 총 26개의 전시실에는 고대부터 근현대 서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 진본이지만 간혹 모사본을 전시하는데, 어쩌다 이곳을 방문했던 이들은 이것만 보고 북한의 박물관은 모사품이나 복제품만 있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실제 1970~1980년대에 우리 미술은 추상미술이나 개념미술이 유행했던 데 비해 그들은 리얼리즘이 여전히 강세여서 모사본임에도 진위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2019년 04월 호
[2019.04] “궁중 복식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 내 책무” 썸네일 이미지
[2019.04] “궁중 복식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 내 책무”
침선장이 만드는 궁중 복식은 어떤 모습일까. 궁중 복식은 말 그대로 ‘궁궐 안에서 입는 모든 옷’을 의미한다. 궁 안에 사는 왕을 비롯해 왕비·왕세자·왕세손·왕세자빈·세손빈·공주·옹주 등의 왕족과 상궁·내관 등의 수행인들이 입는 복식까지 통칭한다. 궁중 복식을 착용한 모습에서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고 때와 장소, 격식에 맞는 궁중 복식은 그 사람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또한 집무를 보거나 행사가 있을 때 궁 안을 드나드는 문무백관이나 내외명부들도 격식을 갖춘 의복을 입고 입궐을 하는데, 이 또한 궁중 복식이 된다.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문화인 궁중 복식을 바느질로 짓는 이가 침선장이다. 그 선봉장에 구혜자 침선장이 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작업에 몰두하는 그에게서 장인의 향기와 열정이 느
2019년 04월 호
[2019.04] 권번  예기(藝妓)의 은어 썸네일 이미지
[2019.04] 권번 예기(藝妓)의 은어
16세에 머리를 얹고 이듬해에 어룬기생, 즉 결혼을 하게 된 기생 손채옥(孫彩玉)은 “나는 채맞은 기생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채맞다’는 말은 스승에게 회초리 채로 맞아 가며 소리를 배운다는 뜻으로, 대개 사설 강습소에서 소리를 깎이는 중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사범 옆에서 사실상 2인자 역할을 하는 제자를 ‘곁사니’라고 불렀는데, 곁사니는 대부분 권번의 기생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권번 수양 아주머니들의 특별한 부탁으로 과외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곁사니들은 스승과 무릎을 댈 정도로 지척에서 소리를 배운다고 하여 ‘무릎제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무릎제자는 첫 제자를 의미합니다. 당시 기생들에게 인기 있는 악곡은 시조와 민요, 잡가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잡가’라는 말 대신 ‘좌창’이라는 말을 주로 썼습니다. 좌창곡들 가운데 ‘범벅타령’처럼 점잖지 못한 소리는 ‘별소리’ 라고 했습니다. 이들 소리는 인기는 많지만 정작 점잖은 판에서는 부를 수 없었습니다.
2019년 04월 호
[2019.04] 서울의 최고거주지, 관광지가 되다 북촌 썸네일 이미지
[2019.04] 서울의 최고거주지, 관광지가 되다 북촌
조선시대 북촌에 자리한 양반들의 집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규모가 컸다. 1394년 10월 한양으로 천도하고 그해 12월부터 관청터와 더불어 집터를 분급하기 시작했다. 1품 35부(負)를 시작으로 5부씩 줄여서 2·3·4·5·6품은 각각 30·25·20·15·10부를 분급하고, 7·8·9품과 일반 서인(庶人)은 2부씩 줄여 각각 8·6·4·2부를 분급하게 했다. 1부를 대략 40평으로 본다면 1품은 1,400평을, 6품은 400평을, 일반 서인은 80평을 집터
2019년 04월 호
[2019.04] 궁의 품격과 오늘날 궁의 활용을 고민하다 썸네일 이미지
[2019.04] 궁의 품격과 오늘날 궁의 활용을 고민하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에서부터 ‘광화문 사거리’ 에 이르는 세종로를 조선시대에는 ‘육조거리’라 불렀다. 조선 최고의 행정기관인 의정부(議政府)를 비롯해 오늘날의 기획재정부, 외교부, 국방부 등에 해당하는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육조(六曹)가 좌우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육조에는 유교경전인 『주례(周禮)』에 의거해서 하늘과 땅, 봄·여름·가을· 겨울의 이념과 원리를 담았다고 한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태평성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조선은 예(禮)와 악(樂)을 균형적으로 추구하는 예악사상을 국가통치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예(
2019년 04월 호
[2019.04] 영화 속 궁궐 이야기 썸네일 이미지
[2019.04] 영화 속 궁궐 이야기
2012년 빅 히트작인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 : 왕이 된 남자>는 인상적인 장면이 꽤나 많은 작품이다. 그중 하나가 극 후반부에 도승지 허 균(류승룡)이 광해군을 대역(代役) 중인 광대 하선(이병헌)과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하선, 아니 광해군은 이제 막 동인과 서인, 북인과 남인, 대북과 소북 등으로 갈가리 나뉘어 정쟁을 일삼던(보다 정확하게는 대북 vs 서인이 될 터이다. 광해군은 서인이 옹립한 능양군, 즉 인조의 쿠데타로 집권 15년 만에 실각한다.) 대신들을 향해 명나라에 2만 군사를 파병하는 일 따위로 백성들을 희생하지 않겠
2019년 04월 호
[2019.04] 국가행사로 떠나는 조선의 궁궐 여행 썸네일 이미지
[2019.04] 국가행사로 떠나는 조선의 궁궐 여행
조선의 국가경영은 다섯 가지 의례인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길례는 국가 제사에 관한 내용으로 조상신과 땅신을 모신 종묘제례와 사직제례, 공자와 우리나라 안향 등 성현을 모신 성균관 문묘제례, 역대 왕들이 잠든 능행 관련 배릉의(拜陵儀) 등 56가지에 달한다. 가례는 국가적으로 즐겁고 축하할 일을 다룬 행사로 왕실혼인을 비롯해 조참의(朝參儀, 대조회), 양로연의(養老宴儀), 왕세자책봉의식(冊王世子儀), 진연(進宴), 조하(朝賀), 문무과전시의(文武科殿試儀) 등 50가지다. 손님을 맞이하는 행사인 빈례는 이웃나라 국서를 받는 의식(受隣國書弊儀) 등 6가지이며, 군례는 대열의(大閱儀, 군사점검), 사우사단의(射于射壇儀, 활쏘기), 나례 등 7가지다. 국장에 관한 의례를 다룬 흉례는 성복의(成服儀)와 발인의(發引儀) 등 55가지다.
2019년 04월 호
[2019.04] 宮 조성 원리와 실제 썸네일 이미지
[2019.04] 宮 조성 원리와 실제
조선의 새로운 수도 한양은 고려시대에 상업의 중심지로서 남경이 설치된 곳으로, 이미 많은 사람이 살고 있던 좋은 터였다. 한양은 북쪽에 주산인 북악산을 두고 동쪽은 낙산, 서쪽은 인왕산이 감싸고, 남쪽은 목멱산(남산)이 있는 분지의 형태로서 고려시대 도성이었던 개경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러한 점이 태조 이성계의 결심을 굳혔다고 생각된다. 일단 태조 이성계가 천도를 명하자 신도궁궐조성도감이 구성되고 곧바로 터를 잡고 궁궐을 짓게 되는데, 만 10개월도 걸리지 않아 완성(1395년)했다. 이때의 궁궐은 내전일곽에 들어설 최소한의 거처, 조하와 같은 의례를 치를 정전, 상의원 같은 궐내 관청, 국왕을 보조하는 중추원 등의 고위 관청, 남문 역할을 하는 오문과 양쪽 끝에 망루 역할을 하던 각루 정도였다. 궁궐이 완성되자 정도전은 새로 지은 궁궐과 전각의 이름을 지어 왕에게 올렸다. 궁의 이름은 ‘경복궁’이라고 하고 왕과 왕비의 침소를 강녕전, 왕이 나랏일을 보는 곳을 사정전, 정치적 공간인 정전은 근정전이라고 했다. 정도전은 군주는 올바른 것을 근본으로 삼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면, 즉 남쪽을 바라보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경복궁의 정문과 근정전의 좌향(건물이 앉아 있는 방향)이 남쪽을 향해 일직선이 되도록 했다. 정도전이 가지고 있던 유교적인 통치이념이 건물에 반영된 것이다.
2019년 0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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