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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 문화상품 썸네일 이미지
[2019.06] 문화상품
댓잎에빗소리솔솔취한 여름의향취 전통문양 부채 전통 문양을 활용한 접이식 부채는 구름문, 사계절 꽃과 벌, 파도문, 연꽃·월계 넝쿨문 4종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 구름문은 십장생의 한 요소로서 끊임없이 변함으로써 영원히 존재한다는 불로장생의 선계를 상징한다. 두 번째 사계절 꽃과 벌 문양은 17세기 전반 장기 정씨(1565~1614)묘 출토 이불 문양(안동대학교 박물관 소장)이다. 세 번 째 파도문은 십장생 중 물의 요소로서 수복장수와 함께 공명출세의 의미로, 잉어와 함께 옛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네 번째 연꽃월계넝쿨문은 풍요를 뜻하는 연꽃과 아름다운 청춘을 오래 누리라는 의미의 월계화가 어우러 진 당초무늬를 응용했다 호랑이 우산(투명)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를 보면 3미터 크기의 우산을 볼 수 있는데, 이 차일산은 접 이식으로 댓살을 펴고 그 위에 기름종이를 바른 큰 양산과 우산 겸용인데 주로 백일장이나 시연(詩筵), 향연(饗 宴) 등 야외행사에 쓰였다. 호랑이는 조선시대 민화와 심사정(1707~1769)의 『맹호도(猛虎圖)』, 김홍도(1745~미 상)의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등에서 친근하게 표현돼 왔고, 수호신이나 산신으로 인식되는 영물(靈物)로 숭 배됐다. 전통문양 부채
2019년 06월 호
[2019.06] 알림마당 썸네일 이미지
[2019.06] 알림마당
궁궐행사 창덕궁 달빛기행 일시6. 9.(일)까지 / 매주 목,금,토,일 20:00~22:00 장소창덕궁 일원 내용창덕궁 야간 탐방 및 국악공연 관람 생과방 일시6. 30.(일)까지 / 화요일 제외 10:00~17:00 장소경복궁 생물방 내용궁중병과체험 수랏간 시식공감 일시5.19(일)~6.1(토) / 6. 16.(일) ~ 6. 29.(토) 화요일 제외 19:00~20:00, 20:00~21:00(2부제) 장소경복궁 외소주방 내용궁중전통병과체험 특별행사: 네이버 예약 통해 참가 신청 병과 만들기6. 6.(목), 6. 20.(목) 13:00~14:00 인문학 강의6. 14.(금), 6. 28.(금) 13:00~14:00 도슭콘서트6. 8.(토)~6. 22.(토)/ 매주 토요일 13:00~14:00 경복궁 별빛야행 일시6. 5.(수)~6.15.(토) 화요일 제외 19:40~21:40 장소경복궁 일원 내용궁중전통음식체험 및 경복궁 야간 안내 해설 탐방 고궁음악회 경복궁 주간공연 일시6. 1.(토)~6. 2.(일) 16:00~16:40
2019년 06월 호
[2019.06] 제다(製茶)의 세계 썸네일 이미지
[2019.06] 제다(製茶)의 세계
차의 성지 ‘일지암’과 차의 성인 ‘초의 선사’ 지금 차를 공부하고 차생활을 즐기는 차인들은 땅끝마을 대흥사 산내 암자인 일지암을 차의 성지로 생각하고 참배한다. 일지암이 우리나라 차문화의 명맥을 잇고 중흥시킨 도량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초의 선사(1786~1866)가 있다. 그는 당대의 불교 사상가이고 선사이자 차인이다. 『초의시고』와 『일지암문집』 등의 문학작품들은 차와 선의 향기가 깊고 그윽하다. 『선문사변만어』라는 논문을 저술해 당시 선운사의 백파 선사와 치열한 논쟁을 일으켜 사상사에 활력을 심었다. 또한 초의 선사는 당시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 평생의 지기 완당 김정희, 그리고 24년 연하인 남도 남종화의 시조인 소치 허유 등 당대의 인문지성들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문화를 꽃피우기도 했다. 조선 후기 실사구시의 풍토에서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초의 선사이지만, 무엇보다도 선사의 업적은 차문화의 중흥에 있다.
2019년 06월 호
[2019.06] 원산력사박물관의 아름다운 불교 문화재 썸네일 이미지
[2019.06] 원산력사박물관의 아름다운 불교 문화재
조선 건국을 기념하는 향로, 원산력사박물관 국보유물 1호 이 향로는 세 개의 다리가 여의두운처럼 생긴 도깨비 형상으로서 이것이 몸체를 떠받치고 그 위에 사실적인 사자상을 배치한 형태가 특이하다. 몸체의 경우 배 부분이 둥글게 부풀어 오른 것도 이색적이다. 문양의 경우 전체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데, 바탕에는 ‘회(回)’ 무늬가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 위에 상하 2단에 크고 작은 도철문을
2019년 06월 호
[2019.06] 돌에 새긴 장인의 숨결 썸네일 이미지
[2019.06] 돌에 새긴 장인의 숨결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석조공예관의 넓은 마당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석조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무려 50년의 세월을 켜켜이 쌓아 올린 이재순 석장의 혼과 숨결, 발자취가 석조공예관 곳곳에 깃들어 있다. ‘석장(石匠)’이란 ‘석조물을 제작하는 장인’을 말한다. 한마디로 돌을 조각하는 장인이다. 흔히 사찰이나 궁궐 등에서 볼 수 있는 석탑, 석교, 부도탑, 탑비, 장승 등이 대표적인 석장의 작품이다. 왕릉에는 돌래석 문인상, 무인상, 동물상, 망주석 등 정교한 석조 작품이 있으며, 민가에서는 맷돌이나 절구 등 살림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기도 한다. 이재순 석장은 전통공구기법을 전수받아 끊임없이 기량과 기술을 연마하면서 창작활동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의 작품은 전통에 기반을 두고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가미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호평 받고 있다.
2019년 06월 호
[2019.06] 풍류방의 언어 썸네일 이미지
[2019.06] 풍류방의 언어
문헌 속 ‘풍류’의 의미와 그 구성에 관한 용어들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에는 “이 나라는 현묘한 도[玄妙之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 하였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하지만 ‘현묘지도’로서 풍류는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날에는 사전적으로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이라는 뜻과 “대풍류, 줄풍류 따위의 관악 합주나 소편성의 관현악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변하게 됐다. 조선 후기에 우리말을 기록한 여러 문헌들을 보면
2019년 06월 호
[2019.06] 일제 강점 등 아픔의 공간 남산골 썸네일 이미지
[2019.06] 일제 강점 등 아픔의 공간 남산골
명승지이자 출판 단지, 가난한 선비들의 주거지 조선시대 남촌의 남쪽 경계인 목멱산은 한양의 내사산 중의 하나로서 안산(案山)에 해당하며,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흔히 남산이라 불렸다. 남산 북쪽 기슭에 해당하는 남산골에는 산수가 수려해 삼청동·백운동 등과 더불어 한양의 명승지로 손꼽혔던 청학동이 있었다. 유명 인사들이 이곳에 귀록정(歸鹿亭)·녹천정(鹿川亭)·노인정(老人亭) 등의 누정을 짓고 시회(詩會)를 베풀며 남산을 비롯한 한양의 풍경을 노래하기도 했다. 교서관동(校書館洞)과 주자동(鑄字洞)이라는 동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적의 인쇄와 출판을 담당하는 교서관과 주자소가 이곳에 있었는데, 이러한 장소성은 현재의 을지로 인쇄골목과 충무로 인쇄골목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남산골 샌님’이나 ‘딸깍발이’라는 표현처럼 실세(失勢)한 사람들이나 가난한 선비, 몰락한 양반들이 주로 거주했다.
2019년 06월 호
[2019.06] 소매를 잡고 아조 섭섭히 헤어지는 썸네일 이미지
[2019.06] 소매를 잡고 아조 섭섭히 헤어지는
봄날의장금도 머리 위 벚꽃가지에서 꽃잎들이 내려앉은 듯 정수리가 흰 여인이, 한 팔은 뻗고 한 손은 들어 올린 채 멈춰 있다. 평상복 차림의 입성에 흔한 손수건 한 장 들지 않은 빈손이니, 그대로 돌아서면 영락없는 촌로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사진을 본 사람은 누구나 ‘노구의 여인이 춤을 추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은 250분의 1초로 동작을 멈추어 놓았지만, 춤을 멈추지는 못했다. 들싸한 어깨와 살짝 구부러진 팔의 기울기, 허공을 들추려는 듯 가지런히 모아 편 손끝에서 춤은 여전히 추어지는 중이다. 그녀의 몸에서 풀려나온 흥의 파장이 꽃가지를 흔들었는지, 멀고 가까운 꽃들이 어룽거린다.
2019년 06월 호
[2019.06] 한국주관앙코르유적 복원의의미 썸네일 이미지
[2019.06] 한국주관앙코르유적 복원의의미
한국과 앙코르 유적 2015년까지 수년간 캄보디아 시엠립의 앙코르 유적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에는 한국인이 가장 많았다. 관광객이 많을 때는 한 해에 36만 명이 이곳을 찾아와 앙코르 유적을 둘러보았다. 이에 캄보디아인들은 한국인들에게 감사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2019년 06월 호
[2019.06] 미얀마바간유적 지진피해복구 썸네일 이미지
[2019.06] 미얀마바간유적 지진피해복구
바간 왕조의 찬란한 불교 문화 지진으로 손상되다 금(金) 황금으로 수놓은 바간 유적 바간 왕조는 미얀마 최초의 통일국가일 뿐 아니라 고대 상좌부(上座部) 불교문화의 전성기를 이룩하여 미얀마 역사에 매우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시대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바간 왕조의 우거진 수풀 사이로 우뚝우뚝 솟아 있는 탑 대부분이 화려한 금박으로 치장되어 ‘황금의 나라’로 불렸다. 미얀마의 풍부한 금 매장량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그 당시 바간 왕조 국민들의 불교에 대한 정성과 애착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2019년 06월 호
[2019.06] 라오스홍낭시다 보존복원 썸네일 이미지
[2019.06] 라오스홍낭시다 보존복원
시다공주의 방, 홍낭시다 홍낭시다 유적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참파삭 문화경관 내 왓푸사원과 고대주거지(Vat Phou and Associated Ancient Settlements within the Champasak Cultural Landscape)’에 속하는 사원으로 12세기에 건립되었다. 라오스어로 ‘시다공주의 방’이라는 뜻의 홍낭시다(Hong Nang Sida)는 왓푸사원에서 시작하여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으로 연결되는 고대 길(Ancient Road)의 출발점에 위치한다. 성지순례와 관련된 활동을 했던 사원으로 추정된다.
2019년 06월 호
[2019.06] 캄보디아프레아피투 복원정비 썸네일 이미지
[2019.06] 캄보디아프레아피투 복원정비
우리나라와 닮은 나라,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역사가 닮았다. 한때는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지만, 우리나라처럼 외세에 의한 식민지 침탈이 있었다. 이후에는 민족의 아픔인 내전을 겪으며 많은 부모와 형제들을 잃었다. 지금의 캄보디아는 우리나라의 1960~70년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닮았다. 현재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군부가 정권을 독점하고 있으나 이를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아직은 내전으로 인한 고통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지 현재의 상태만이라도 유지하려는 기성세대가 나라를 이끌고 있다.
2019년 0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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