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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 책거리, 한 걸음 그리고 다른 한 걸음의 시작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2-03 조회 4593
책거리, 한걸음 그리고 다른 한 걸음의 시작

조선시대 서당에서는 학동이 책 한 권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판단되면 ‘책거리’라는 행사를 행하였다. 책거리는 하나의 책을 다 뗀 학동에 대한 축하를 하는 한편, 그를 가르친 훈장의 노고에 감사를 올리는 소박한 행사의 하나였다. 책거리는 ‘챗씻이[冊施時]’ㆍ‘세책례(洗冊禮)’ㆍ‘책세식(冊貰式)ㆍ’ ‘책례(冊禮)ㆍ’ ‘괘책례(掛冊禮)’라고도 불렀다. ‘책씻이’라고 하는 것은 종이가 모자라던
옛날에 학생이 책을 다 떼고 나면 물에 씻어 새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책거리’라고 하는 것은 책을 말리기 위해 물이 빠지게끔 걸어두었던 것에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해 ‘세(洗)’는 책을 씻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갈고 닦으라는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마도 책씻이나 책거리에는 책을 물에 씻고 말리기 위해 걸어두는 실제 행위와 함께 깨끗이 씻은 책에 새로운 지식을 채우듯이 다시 마음을 새로이 닦아 한 걸음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는 선생이나 부모의 마음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책거리책거리는 마을의 학동들만의 문화는 아니었다. 한 나라의 임금도 책거리를 행하였기 때문이다. 정조의 글을 모아 놓은 『홍재전서』를 보자.

지난 어린 시절 책 한 질을 읽고 나면 자궁(慈宮)께서 간략한 음식을 차려 주셨는데, 그게 바로 일반 풍속에서 말한 ‘책씻이[冊施時]’라는 것이었다. 금년 겨울에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었는데, 그것을 다 읽고 나서 자궁께 고했더니 자궁께서 매우 기뻐하시면서 술과 떡을 준비하여 그 일을 기념하려 하시기에, 내가 감인
(監印)과 토 달고 구두 떼고 한 여러 사람들을 불러 자궁의 은덕을 만끽하게 하였다.


정조가 어린 시절에 책 한 질을 떼고 났을 때 어머니인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 1735~1816)가 간단한 음식을 차려 정조를 위해 책거리를 해줬음을 알 수 있다. 정조의 책거리 행사에 대해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그의 시 「세서례-방언으로는 이를 ‘책씻이’라고 한다-때 기쁨을 기록한 임금의 글을 받들어 화답하다(奉和聖製洗書禮-方言謂之‘冊施時’-識喜)」의 설명에서 ‘시골 사람들이 자식을 가르치면서, 읽던 책을 끝내면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그를 일러 세서례(洗書禮)라고 한다. 이 때 주상(정조)께서 『좌전(左傳)』을 마치자 혜경궁께서 세서례를 준비하였다’ 라고 하기도 하였다. 한나라의 임금조차 책거리를 행할 정도로 널리 행해지던 풍속이었음을 말해준다.

혜경궁 홍씨는 정조를 위해 술과 떡 등의 음식을 장만하였는데, 이는 정약용의 설명처럼 시골 사람들이 널리 행하던 풍속이었다. 책을 한 권 뗀 아이의 집에서 훈장에게 약주와 음식을 대접하고, 동문수학한 학동들에게는 떡을 해서 먹였던 것이다. 책거리 음식으로는 국수, 경단, 송편 등을 장만했다. 이 중 국수는 긴 국수처럼 오랜시간 공부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경단은 온 세상을 비추는 햇빛처럼 학문을 밝히라는 뜻으로, 송편은 비어있는 속에 팥이나 콩, 깨 등을 넣어 속을 꽉 채우듯이 학동들도 송편처럼 속을 꽉
채우라는 의미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책거리때 먹던 떡책을 떼는 날 훈장은 학생이 글을 모두 암기하면 한 글자로 된 성적표를 주었다. 물론 지금의 ‘수ㆍ우ㆍ미ㆍ양ㆍ가’의 평가와는 그 방식이 달랐다. 게으른 학생에게는 부지런할 근(勤)자를, 성
미 급한 학생에겐 참을 인(忍)자를 써서 주었던 것이다. 이를 단자수신(單字修身)이라고 한다.
‘단자수신’은 ‘한 글자를 주어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을 깨닫고 이를 바탕으로 몸을 닦아라’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단자수신’은 단순히 책 내용에 대한 이해를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학동의
삶에 대한 선생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단자수신’과 유사한 일화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과 관련해서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전한다. 이긍익은 이기옥(李璣玉)의 일기를 인용해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이 조식에게 소를 받은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약포(藥圃) 상공(相公: 정탁)이 말하기를, “젊었을 때에 남명 선생을 뵈었는데 작별에 임하여 남명이 홀연히 말씀하기를, ‘내 집에 소 한 마리가 있는데 군이 끌고 가게.’ 라고 하니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자, 남명이 웃으며 말하기를, ‘군의 말과 얼굴빛이 너무 민첩하고 날카로우니, 날랜 말[馬]은 넘어지기 쉬운지라 더디고 둔한 것을 참작해야 비로소 멀리 갈 수 있으므로 내가 소를 준다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 후 수십 년을 다행히 큰 잘못 없이 지낸 것은 선생이 주신 것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조식은 정탁에게 소 한 마리를 끌고 가도록 한 것이다. 물론 조식이 말한 소는 진짜 소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식은 기가 세고 조급한 정탁이 자칫 넘어져 다칠 것을 걱정하고 소처럼 둔중하게 처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표현을 했던 것이다. 조식은 게으른 학생에게는 닭을, 야심이 많은 학생에게는 염소를, 약삭빠른 학생에게는 돼지를, 주의력이 산만한 학생에게는 거위를, 행동이 느린 학생에게는 말을 주었다고 한다.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나는 제자를 향해 제자의 면면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마지막까지 가르침을 주려는 스승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참 스승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내용이다.
단순히 지식만을 주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자 한 조상들의 지혜였던 것이다. 이렇게 조선시대에 책을 하나 떼고 책거리를 했다는 것은 이제 그 학생이 인생과 학문이라는 세상에서 한 걸음을 내딛었음을 공표하는 것이고 다시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 발을 내딛는 것을 작게나마 격려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서당도

조선시대에 책거리를 한다는 것은 그 학생이 인생과 학문이라는 세상에서 한 걸음을 내딛었음을 공표하는 것이고, 다시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발을 내딛는 것을 작게나마 격려하는 자리였다.

요즘에도 책거리는 행해지고 있다. 대개 학교에서 한 학년이 끝나가고 방학이 다가올 즈음에 선생님이 책거리를 하자고 하거나 학생들이 선생님을 졸라 책거리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책거리를 하자는 것은 그리 깊은 뜻에서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과자와 음료수를 먹고 즐기자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뿐으로, 학기가 끝나갈 즈음에 으레 하는 뒤풀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교과서를 찢어발기거나 태우는 경우도 있다는 소리가 종종 들리곤 한다. 학교라는 공간마저 무한 경쟁으로 치달은 결과로 나타난 일탈행동일 것이다. 그렇게나마 스트레스를 풀고자 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이 가진 스트레스가 모두 풀릴 일도 없고 미래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지도 않는다. 합리화 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본질은 사라지고 그저 형식만 남은 풍속의 한 사례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학교 교육이 학생 개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대학입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에 가치의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옛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떼는 것에 의미를 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고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습득하라기보다는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깨닫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식만을 주기보다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자 한 조상들의 지혜를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 글 허인욱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 전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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