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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 대구 도심문화재 관광자원화 신숭겸 장군 유적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2-03 조회 4323
글로컬 문화유산 대구 도심문화재 관광자원화 신숭겸 장군 유적지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대구 동구 지묘동 팔공산 자락의 야산인 왕산(王山)에 4만 5천169㎡ 규모의 사당이다. 후 삼국시대 이곳에서 수세에 밀린 고려 태조인 왕건을 대신해 후백제 군사의 칼날에 장렬하게 전사한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927)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지난 1982년,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고려사 등 기록에 따르면 이곳은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신라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접전을 벌인 공산 전투 현장이다. 예전에는 오동나무 숲으로 덮여있어 최대 격전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왕건이 고려의 왕으로 추대된 지 10년 되던 해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공격해 경애왕을 죽이고 약탈하자 왕건이 군사 5천여 명을 이끌고 진격에 나섰다. 지금의 동화사인 공산 동수(公山桐數)에서 견훤에 맞서 싸웠으나, 거의 전멸되다시피 싸움은 대패했다. 왕건이 위험에 처하자, 신숭겸 장군은 왕건을 구하려고 왕건의 옷을 대신 입고 왕건을 장졸로 변장시켜 피신시켰다. 신 장군은 적군과 싸우다 왕건으로 착각한 후백제 군사의 집중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현재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는 장절공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과 비석 등이 있다. 홍살문 뒤로 있는 신숭겸 장군 순절단(殉節壇)은 장군이 전사한 자리에 제사를 지낸 곳이다. 당시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여겨, 그가 전사한 자리에 있던 피 묻은 흙과 의복을 수습해 혈단으로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를 표충단이라고도 한다.

열재-부남교-물넘재-백안삼거리-평광종점-매여종점-초례봉-동곡지그 뒤 1819년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의 28대손 신의직이 대구 영장으로 부임했을 때, 묵은 제단을 손질하고 바로 옆에 고려장절 신공순 절지지(高麗壯節 申公殉 節之地)라 새겨진 순절비를 세웠다.

제 일 위채에 있는 표충사(表忠祠)에는 위패와 함께 장절공 영정이 모셔져 있다. 갑옷을 입은 장군의 영장은 큰 칼을 짚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표충사 옆 충렬비각에는 용머리에 거북 받침으로 세운 장절공행적비인 충렬비(忠烈碑)가 세워져 있다. 신 장군의 용맹과 충의, 기개를 추모하기 위한 표충재(表忠齋), 상절당(尙節堂) 등도 유적지 곳곳에 있다.

반면, 신 장군의 무덤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다. 왕건은 공의 죽음을 슬퍼하여 시신을 거두어 이곳에 예장하였다. 또 도굴을 우려해 봉분이 세 개인 1기3분(일기삼분) 양식의 특이한 묘역을 조성했다.

또 왕건은 해마다 열었던 불교 행사의 팔관회에서도 장군들을 잊지 못해 이들을 형상화한 가상을 만들어 자리에 앉혔다. 조복을 입힌 가상에 술과 음식을 내렸다고 고려사 등에 기록돼있다. 이는 왕이 얼마나 신 장군을 총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신숭겸 장군은 전라남도 곡성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돼있다. 궁예가 세운 태봉(후고구려)의 기병장수였으나,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했다. 고려 개국의 일등 공신이다.

이런 신숭겸 장군의 유적지는 왕이 위기에 몰렸을 때 대신 죽은 충신의 충절이 새겨진 곳으로, 문화유산으로써 높게 평가되고 있다. 평산 신씨 종친회에서는 이런 유적지를 시 지정문화재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화재청에 신청해놓은 상태다.

유적지를 관리하고 있는 허동정 (사)대구문화유산대표는 “신숭겸 장군은 충신을 대표할만한 인물로서, 그를 추모하기 위한 유적들이 이곳에 그대로 숨쉬고 있다. 대구 지역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 중 하나로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곳 주변에는 공산 전투를 치렀던 왕건과 관계된 지명과 전설이 얽힌 곳이 많이 있다. 왕건이 신라를 구하기 위해 서라벌로 향하다 매복해있던 견훤의 군사들에게 크게 패했다는 파군(破軍)재로 1차로 패한 곳이 아랫 파군재, 2차로 패한 곳은 윗 파군재로 불린다. 신숭겸 장군에게 옷을 벗어준 왕건이 지묘동 뒷산에 몸을 숨겨 목숨을 건졌다는 뜻에서 왕산(王山), 왕건이 왕산을 거쳐 팔공산 깊은 계곡에 있는 동화사 염불암까지 적을 피한 뒤 잠깐 앉아 한숨을 돌린 바위가 있는데, 전투가 끝난 뒤에도 파군재를 다시 넘어와 앉아갔다는 이 바위에 붙여진 이름은 독좌암(獨坐巖)으로 붙여졌다.

또 도주하다 한 마을에 이르자 이미 어른들은 피난 가고 어린아이들만 남아있었다는 불로동(不老洞), 지혜와 묘책을 짜내서 왕건을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명명된 지묘동(智妙洞), 견훤의 군 진영을 무사히 빠져나와 이곳에서 한숨을 돌리고 왕건의 얼굴에 수심이 가고 활짝 폈다는 해안동(解顔洞), 도주 중에 날은 저물어 한밤중(반야·半夜)이고 하늘에는 달(월·月)이 떠 있어 탈출로를 비췄다고 해서 반야월(半夜月), 이곳에 와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는 안심(安心) 등이 1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명으로 남아 내려오고 있다.

팔공산의 이런 역사를 담은 관광상품 ‘팔공산 왕건 길’이 등장했다. 왕건의 이야기가 스며든 산책로다. 대구 동구는 지묘동 신숭겸 장군 사당에서 동내동 동곡지까지 총 35㎞ 거리를 8코스의 테마길로 구성했다. 국토해양부의 누리길 조성 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국비 5억 4천만 원을 들여, 지난 2012년 완공했다. 사람들의 발길도 점차 이어지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한 해 8천여 명으로, 한 달에는 900여 명이 이른다.

(사)대구문화유산은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유적과 문화재를 통해 역사의식을 일깨우고자, 평산 신씨 종친회와 계약을 맺었다. 문화재를 보수하고 정비해, 일반인들이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던 표충재도 지난해 6월 숙박이나 체험 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300여 명이 이곳을 이용했다.

특히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청소년에겐 문화 유적 순례지로 알려졌다. 이에 대구 동구와 (사)대구문화유산은 오는 4월부터 유적지를 역사와 이야깃거리를 담은 문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다. 올해 선정된 문화재청의 생생문화재 사업 중 하나로 진행할 계획이다.

신숭겸 장군 유적지 전경 및 표충재 사진

신숭겸 장군 동산 및 왕건길
 


- 글 김지홍 (대구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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