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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 대사 가시밭길 헤쳐온 한국 신문의 역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4-18 조회 2381


독립신문, 신문 역사에 선구적 발자취
지난 13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한국의 신문은 한시도 태평한 날이 없었다. 구한말 신문 역사가 출발할 때부터 그랬다. 제국주의 세력이 밀려들어오면서 나라의 운명은 바람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을 기념비적 신문으로 삼는 건 고통스런 민족사의 겨울에 백성들 편에 서서 세상 소식을 전하고 현실을 비판하며 신문의 본분에 가장 충실했기 때문이다. 전면 한글전용과 언문일치의 문장을 과감하게 택한 것 하나만으로도 《독립신문》 제작진들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뒤이어 창간된 《매일신문》 《뎨국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등 개화기 신문들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는 우국지사들의 명논설을 실으며 민족을 위해 앞장섰다.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빼앗겼을 때 장지연이 쓴 《황성신문》의 사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날 목놓아 통곡하노라’은 민족의 분노를 대변한 명사설로 역사에 남았다.
그러나 1910년 8월 강제 한일합병 후 이 땅에서 언론 자유의 촛불은 사그라들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이 내던 신문을 모두 폐간 또는 휴간시켰다. 신문이라고는 《매일신보》 《경성일보》 《서울프레스》 등 총독부 기관지만 남았다. 일제강점기의 암담한 현실이 우리 언론 자유를 가로막기 시작한 것이다.

일제 치하 언론 암흑 깨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창간
언론의 암흑기는 10년 만에 끝났다. 1920년 3월 5일 《조선일보》, 4월 1일 《동아일보》가 창간돼 민족 신문의 시대가 다시 시작됐다. 1919년의 3.1운동을 통해 피로써 쟁취한 민족지였다. 총칼에 나라가 짓밟힌 식민지 치하에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1920년대 신문의 항일 보도와 논설들은 식민지 시대의 신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했다.
1926년 민족반역자 이완용이 죽자 《조선일보》는 1926년 2월 26일자 1면에 “일본은 동양평화란 구실로 한국을 병합하였다. 이완용은 그의 한 꼭두각시가 됐다. 그는 만세에 씻지 못할 매국의 죄를 저지른 것이다. 나라 팔아먹은 원흉이다”라는 논평을 실어 일제의 조선 합병 자체를 강력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1922년 4월 1일자에서 현직 총독을 ‘사이토 군’이라 부르며 “자네들은 걸핏하면 동화주의 내지 연장주의, 무슨 주의를 말하나 이는 일제 치하에서 한글 보급운동을 펼치며 발행한 교재 3종과,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지면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두 신문의 일제 치하 활동에 정부가 역사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940년 8월 11일자를 끝으로 동시에 강제 폐간당했다. 이로써 한국 신문의 역사는 광복 때까지 5년간의 공백기를 또 가지게 됐다.



권력 비판한 《대구매일신문》에 대낮 괴한들 테러
1945년 광복과 함께 우리 신문의 발간이 다시 시작됐다.
《조선일보》가 1945년 11월 23일, 《동아일보》가 같은 해 12월 1일 복간됐다. 《대한매일신보》에 뿌리를 둔 《서울신문》은 1945년 11월 23일부터 발간을 시작했고, 《경향신문》은 1946년 10월 6일창간됐다.

일제는 이 땅에서 물러갔지만 신문 앞에 놓인 길은 광복 직후부터 가시밭길이었다. 좌·우익이 대립한 혼란기엔 신문이 중심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신문은 또 다시 고통의 민족사 한가운데 놓였다. 신문사들은 대구, 부산 등지로 피란을 가서도 전시판戰時版을 발행해 신문의 소임을 다하려 애썼다. 전쟁을 마치고 나니 이번엔 이승만 독재정권의 혹독한 언론 탄압을 겪어야 했다. 1955년 9월 14일엔 집권당 간부의 지휘를 받은 괴한들이 권력 비판 사설을 쓴 《대구매일신문》사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사원들을 폭행한 전대미문의 테러까지 벌어졌다. 야당지로 꼽혔던 《경향신문》을 1959년 4월 30일 폐간시킨 일은 자유당 정권 최대의 언론 탄압 사건이었다.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에서 신문은 한때 거의 무제한의 언론 자유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터지고 군사정부가 들어섰다. 언론의 자유는 다시 얼어붙었다.

유신 시절 신문사엔 정보기관원들 상주 
군사정부는 언론기관 수를 대폭 줄이고 제도적 통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1964년 8월 제3공화국 정부는 신문 발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했다가 사회 각계에서 강력 반발하는 사태가 전개됐다. 언론계는 “일제 때도 보지못했던 악랄한 수법”이라고 강력하게 맞섰고, 재야·종교계·법조계까지 나서는 범국민 반대투쟁이 확산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9월 9일 이 법의 시행을 전면 보류한다며 손을 들었다. 한국언론이 정부의 탄압에 맞서 싸워 승리한 드문 사례였다.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체제 출범 후 한국의 언론 상황은 완전히 얼어붙는다. 정권 비판 보도를 못 하게 하려고 신문사에 정보기관원이 상주할 정도였다. 반체제 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투옥했던 긴급조치 시대에 신문기자들도 무기력한 보도를 이어갔다. 1974년 12월에는 권력의 압력을 받은 광고주들이 신문 광고를 무더기로 취소한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태’가 벌어져 이 신문의 광고면이 한동안 백지로 나갔다. 1975년에는 권력의 언론 탄압과 경영진과 기자 간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비판적 기자들이 회사에 의해 대량해직되는 사태도 일어났다.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언론 탄압의 시대가 끝나는가 싶은 기대감이 퍼졌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길지 않았다. 1980년 전두환 장군의 신군부는 대대적인 언론기관 통폐합을 밀어붙여 전국 64개 언론사 가운데 44개사의 간판을 내리게 했다. 많은 언론인들도 해직당했다.



새 일간지 잇따라 창간… ‘신문 전쟁’ 뜨거워
1987년 6월항쟁 이후 제6공화국에서 언론 자유는 다시 확대됐다. 1987년부터 언론사 노조 결성도 전 신문사로 번졌다.
그렇다고 해서 신문의 태평성대가 열린 것은 아니었다. 새롭게 펼쳐지는 경쟁 상황 속에서 신문사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을 쳐야 했기 때문이다.

199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의 신문들은 두 가지 큰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첫째는 신문사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심화된 신문사 간 경쟁이었다. 1988년 5월에는 체제 비판적인 해직기자들이 다수 참여한 《한겨레》가, 같은 해 12월에는 순복음교회 재단에서 발행한 《국민일보》가, 1989년 2월에는 통일교 계열의 《세계일보》가 창간돼 신문 시장의 판도에 폭풍이 몰아쳤다. 1991년 11월에는 현대그룹이 《문화일보》를 창간함으로써 1995년 9월 삼성이 창간한 《중앙일보》에 이어 재벌이 내는 또 하나의 일간지가 됐다. 신문의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면서 일간지들은 대중문화에 대한 과감한 지면 할애 등으로 지면을 혁신하며 독자 확보 경쟁을 뜨겁게 펼쳤다. 1993년 4월 1일에는 《동아일보》가 1995년 4월 15일에는 《중앙일보》가 조간 발행으로 전환했다. 광고 유치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주요 석간신문들이 조간으로 변경함에 따라 치열한 조간신문 경쟁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가히 ‘신문 전쟁’이라 할 만했다.

신문 ‘콘텐츠’의 경쟁력, 타 매체의 추종 불허
신문들이 감당해야 했던 또 하나의 싸움은 디지털 온라인 시대의 전개에 대응하는 일이었다. 신문들은 오랜 세월 써온 납활자를 과감하게 버리고 전면 컴퓨터 제작 시스템을 도입했다. 방송만을 경쟁자로 거느렸던 종이신문은 인터넷, 모바일 등이 약진하며 다변화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신문사마다 인터넷 사이트를 열고, 모바일 서비스도 개시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은 종합편성채널에 진출해 TV방송을 함께 경영하며 영상시대에 대응하고 있다.

신문의 미래에 관해 어두운 전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신문은 곧 망한다’는 전망은 십 수년 전부터 있었지만 신문은 여전히 건재하다. 본질적으로 신문의 위기란 IT 발달에 따른 유통망의 위기일 뿐, 콘텐츠의 위기는 아니다. 신문은 콘텐츠 면에서 다른 어떤 매체도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 있다. 오랜 세월 쌓아올린 신문의 신뢰도와 논평 능력은 뉴스를 새로 만지기 시작한 온라인 매체들이 따라오기 힘든 신문만의 파워다. 오늘도 여전히 1000만 부 가까운 신문이 전국에서 매일 발행돼 팔리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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