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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한지장 홍춘수
발행일 : 2021-01-28 조회수 : 243
한지장 홍춘수

1942. 11. 18 ~ | 보유자 인정: 2010년 2월 11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한지장 홍춘수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Master Artisan of Making a Hanji(Traditional Korean paper handmade from mulberry trees) - making skill Holder

저 허공의 질감이 어떻더냐

햇살 지나고 박살나는 피투성이 천둥 지나고 할퀴듯 사나운 폭풍 하며

연한 몸빛의 달빛 지나고 연한 쑥물 봄바람 지나고

그 다음에 늘씬하게 두들겨 태어나는 한지

종이의 질긴 정신은 죽음을 넘어왔다

세상이 뱉어내는 것들 다 안아 들인

그래서 낮은 보폭으로

깊은 침묵 안에

얼어붙는 겨울 대지에 쏘옥 고개 드는 싹

소리 없이

도도한 사람의 정신 여기 태어난다.

- 신달자 시인의 「한지(韓紙)」/ 격월간 『유심』 2010년 5~6월호

韓紙 - 종이의 질긴 정신, 도도한 사람의 정신

‘닥종이’로 불리는 전통한지는 물과 불 등 자연환경의 조화로 만들어낸 훌륭한 완성품으로 보존성과 기능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지의 주재료인 수분을 머금은 닥나무는 벨 때부터 수세하고 초지하는 공정 동안 물과 항상 공존하게 되며, 원료를 유연하게 하고 건조하는 과정에서는 불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탈수 및 건조공정을 거치면서 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비로소 한지가 탄생하게 된다. 물과 불의 상호작용 외에도 한지는 닥나무와 황촉규를 주재료로 하여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장인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다시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말리는 아흔 아홉 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백 번째로 만진다 하여 옛사람들은 한지를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렇듯 사람과 물과 불이 서로 어우러져 탄생한 한지는 그 제작방법의 특성상 홑지나 합지 형태의 두껍고 질긴 특성이 있다. 천 년을 견디어 내는 전통한지의 내구성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이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통해 입증된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석가탑을 창건할 당시인 서기 751년 통일신라시대에 넣은 것으로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로서 1200여년을 넘는 오랜 역사를 견뎌냈다.

한지장 홍춘수 선생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기능보유자 홍춘수 선생은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나 부친이 운영하던 종이 공장에서 일을 배우면서 12살 때 처음 종이 뜨는 일을 접했다고 한다. 생업으로 종이를 만들어 내다 팔던 부친의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종이 뜨는 법을 접하여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종이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밥벌이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19살 되던 해 선친과 함께 임실군 청웅면의 현 부지로 공장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한지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6.25전쟁 직후 정부가 유실된 호적대장을 복원하기 위해 대규모로 종이를 사들이면서 이들 부자의 가업도 활기를 띠게 되었는데 일상생활에서도 문에 바르는 창호지나 족보를 옮겨 적기 위한 복사지, 부채나 사군자에 쓰는 화선지, 청첩장용 태지(苔紙) 등으로 한지가 널리 쓰일 때여서 색깔과 두께, 질감을 각기 달리한 맞춤형 한지를 만들어 팔았다. ‘홍씨네 한지는 질기면서도 보드랍다’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공장도 80년대 한때 기술자를 20명까지 둘 정도로 번창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어 기계로 만든 한지가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중국산 화선지가 가짜 한지로 둔갑해 유통되면서 전통한지는 급속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전통방식으로 종이를 뜨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기계지 만드는 곳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쳔연 재료를 사용해 현대적 감각에 맞춘 다양한 한지를 개발하기로 했다. 황토를 반죽에 섞어 만든 벽지용 ‘황토지’, 두 장의 한지 사이에 단풍잎을 끼워넣은 장식용 ‘단풍지’, 김을 뜯어 넣어 자연스런 무늬를 입힌 ‘김종이’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한지의 전통과 우수성을 널리 알려 나갔다. 이후 1999년 노동부 지정 한지 기능전승자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06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5호 ‘지장(紙匠)’으로 인정되었다. 이후 2010년 국가지정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맏사위인 노정훈씨가 기능을 전수받아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한편, 아버지 때로부터 시작하여 백 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한지장 故 장용훈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은 <천년한지, 백년인연>이라는 제목으로 2010년 열렸던 두 한지 장인의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작품

1_ 전통한지 / 64×90cm

닥나무와 황촉규를 주재료로 하여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다시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말리는 아흔 아홉 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사람이 백 번째로 만진다 하여 옛사람들은 한지를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하였다.

1_ 전통한지 / 64×90cm(1)
1_ 전통한지 / 64×90cm(2)
1_ 전통한지 / 64×90cm(3)

제작과정

한지는 닥나무를 하루 동안 삶아 벗겨낸 껍질을 주재료로 하는데 매년 11월에서 1월경 닥나무를 베어내 하루 동안 증기로 찌고 닥껍질을 벗겨내면 흑피가 된다. ‘피닥’이라고 부르는 껍질은 빳빳하게 될 때까지 볕에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리면 속껍질만 벗겨낼 수 있다. ‘백닥’이라고 불리는 속껍질은 옅은 아이보리색을 띈다. 말린 메밀대와 콩대 줄기를 태워 우려낸 잿물에 백닥을 삶아 새하얗게 되도록 잡티를 긁어낸다. 새하얗게 삶아진 백닥을 짓이겨 흐물흐물한 반죽으로 만든 후 백닥 반죽을 맑은 물에 풀고 닥풀뿌리로 쑨 풀을 첨가해 걸쭉하게 만들면 ‘종이물’이 된다. 한지는 전통방식인 외발(흘림)로 뜨는데 물을 세로, 가로, 세로 방향으로 번갈아 흘려보내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종이결을 얽히게 만든다. 특히 두 장의 습지를 하나로 합쳐 합지를 만들기 때문에 종이가 더욱 질기고 강해진다. 이렇게 떠낸 종이를 400~500장 쌓아두고 위에 무거운 돌을 올려 물을 뺀 뒤 젖은 종이를 펴고 비로 쓸어가면서 천천히 고르게 말린다. 마지막으로 말린 종이의 밀도를 높이고 표면을 윤기 있게 만들기 위해 디딜방아나 홍두깨로 두드린다. 한 공정을 마치는데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리는 데다 수백 번의 손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지를 일컬어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하였다.

1. 흑피를 벗긴 백닥 말리기

1. 흑피를 벗긴 백닥 말리기

2. 닥 방망이질 하기

2. 닥 방망이질 하기

3. 지통에 닥풀넣고 젓기

3. 지통에 닥풀넣고 젓기

4. 물질하기

4. 물질하기

5. 바탕 자리에 내리기

5. 바탕 자리에 내리기

약력

  • 1942년 출생
  • 1999년 노동부 지정 한지 기능전승자 선정
  • 2002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 2006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5호 전통한지 기능 보유자 인정
  • 2008년 전주시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창업 자문위원
  • 2010년 국가지정 국가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장 기능보유자 인정
  • 글 이치헌 / 한국문화재재단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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