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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문화재

[2019.02] 한국 전통공예 건축학교 개교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1 조회수 : 2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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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전통공예교육의 첫걸음
1988년 12월 21일 낮 2시 경복궁 내 전통공예관에서는 당시 내로라하는 문화재 전문가들이 모였다. 1988년 9월 개관한 전통공예관의 운영에 관한 자문회의였다. 이날 모인 자문위원들은 한국일보 예용해 논설위원,한국민속촌 맹인재 사장,중앙박물관 정양모학예실장,한국복식문화연구원 유희경 원장,호암갤러리 이종석관장,숙명여대 김성수 교수,한국문화재보호협회 김명섭 상임이사,전통공예관 임영주 관장 등이었다.
이날 자문회의에서는 전승공예대전 및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 작품전 등에 관한 논의와 더불어 동계 청소년 공예강좌와 교사를 위한 실기강습이 논의됐다. 동계 청소년 공예강좌는 1989년 1월 초등학생과 중학생 100여 명을 대상으로 전통공예관에서 토우(흙공예) 실기강좌를 하는 내용이었다. 이 밖에 교사와 같이 관심도가 높은 이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실시해야 효과가 크다는 내용의의견이 있었다.
이날 자문회의 내용을 토대로 1989년 1월 전통공예관 운영계획이수립됐고,전통공예관에 별도의 교육담당을 두고 전통공예 교육강좌를 실시하는 계획이 확정됐다. 매년 1월과 8월에 청소년 전통공예 실기강좌를 운영하며,하반기에는 일반인 대상 전통공예 실기강좌를 운영한다는 계획도 이때 수립됐다. 강사는 인간문화재와 인간문화재 후보 등 전수자가 맡으며,수강대상은 일반인과 지도교사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같은 해 9월에는 430만원을 들여 교육기자재를 구입하게 된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탄생
1989년 10월 2일 경복궁 내 전통공예관(구 석조전 건물,현재 철거)에서 침선•은입사•칠보 과목을 시작으로 3개월 과정의 전통공예 실기교육이 시작됐다. 초창기 강사로는 침선 분야의 경우 고(故) 정정완 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은입사는 최교준 전승공예대전 국무총리상 수상작가(현 서울시 입사장 보유자),칠보는 노용숙 숙명여대 겸임교수가 맡았다.
3개월 과정의 1기 전통공예강좌는 1989년 10월 2일부터 12월 22일까지 진행됐으며,수강생은 25명이었다. 이후 3개월 과정의 전통공예강좌가 지속되다 1995년부터 교육기간을 1년으로 하고 강좌의 명칭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로 해서 본격적인 전통공예교육의 체제를 마련하게 됐다. 화각,민화,전각,대목,은입사,단청,자수,표구,칠보,매듭,피혁,불화,침선,오색한지,소목 등 15개 분야에 수강생은 227명으로 늘어났다.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소목반의 박명배 선생과 자수보자기반의 김현희 선생은 이때부터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공방에서 작업하기에도 빠듯하던 두 분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예실기강좌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교육을 담당했던 신진라(현 문화유산활용실장) 씨가 기나긴 설득에나섰고,겨우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대표적 인기 과목인 소목반과 자수보자기반이 존재하지 않을 뻔했던 것이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는 2018년 말 기준으로 직물공예,목공예,금속공예,칠공예,건축 등 15개 분야 58개 반이 운영되고 있다.1년 과정의 정규 강좌와 연중 4회로 운영되는 3개월 과정의 단기 강좌 수강인원이 연간 800명을 넘어서고 있다. 1989년부터2018년 말까지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를 수강한 인원이 1만 명을 넘어섰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문화유산교육은 그 대상에 따라서 학교교육,사회교육,전문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는 사회교육에 속한다. 한국전통공예 건축학교 출신 동문들이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매년 대통령상 등 주요 수상작가로 선정되는 점등을 볼 때,일부에서는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기본 개설 취지는‘일상 속 문화유산교육 기회의 확대’라는 사회교육이다.
사회교육을 통해 본인의 소질을 새롭게 찾고 새로운 진로를 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취미활동이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기회가 되는 경우다. 20대에서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 업군의 사람들이 취미활동과 자기계발을 위한 과정으로 전통공예에 발을 디뎠다가 제2의 인생을 꿈꾸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얼마 전 다섯 살배기 딸아이가 “아빠는 꿈이 뭐야"라고 물은 적이있다.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훌륭한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정도로 얼버무렸다. 꿈은 어렸을 때만 꾸는 것은 아니다. ‘꿈꾸지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라는 내용의 동요가사가 있다. 또한 ‘배운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것을 늘 배우고 배운 것을 다시 우리의 자녀와 후배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 미래를 향한 희망의 노래인 것이다. 우리는 대개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그것을 잊고 산다.
동요를 통해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를 다시 보게 된다. 단순히 제2의 진로를 찾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을 통해 전통문화를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교양을 체득하는 것 또한 삶을 풍요롭게하는 또 다른 꿈일 수 있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강사들은전통공예 교육을 통해 전통공예 전승을 위한 미래를 희망하고,이를 배우는 이들은 또 다른 나를 꿈꾸는 곳.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가 갖는지금의 의미는바로이 것이 아닐는지….

 
- 글. 이치헌. 한국문화재재단 홍보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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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장김혜순 &각자장 김각한
한국전통공예 건축학교의 개교 30년은 매듭장 김혜순 선생과 각자장 김각한 선생에게도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두 선생은 30주년 소식을 듣자 “벌써 그렇게 됐느냐?”면서 놀라워했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는 청년층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계층이 우리 전통공예를 배우기 위해 찾는곳이다. 교육과정은 크게 정규 강좌와 단기 강좌로 이뤄져 있으며,분야별로 직물공예(침선,매듭,전통자수,자수보자기,색실누비) 목공예(소목,각자,소반,전통창호) 칠공예(옻칠,나전칠기) 금속공예(장석) 등 다양한 강좌가 마련돼 있다.
2000년부터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강의를 해 온 김혜순 선생은 40여 년 매듭 인생을 이어온 장인이다. 그는 2018년 매듭장으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됐다.
“매듭 강좌를 시작하는 첫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수업은 탁월한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무엇보다 전통공예가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이니,첫 시간부터 제대로 배워야한다고요. 우리는 목표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목표가 있으면 열심히 하게 됩니다.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전문가적인 소양을 쌓아가는 것이지요.”
19기년부터 김희진 선생을 사사한 김혜순 선생은 젊은 시절 미술과 수예를 좋아했고 자수를 전공하면서 남다른 감각과 실력을 키웠다. 결혼하면서 김희진 선생을 만났고 운명처럼 매듭의 길로 들어섰다. “매듭을 자수와 접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는 김혜순 선생은 “손끝에서 새로운 창작품이 나오는 것이 늘기대됐고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완성도 높은 작품을 추구하면서 손에서 매듭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관리, 교육자로서 전수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어 감사
김각한 선생은 2003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 처음 출강한 이후 현재까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젊은 시절 소목과 목공예를배우며 소질을 키웠던 그는 우연히 고(故) 오옥진 선생의 개인전을 본 후 각자演Ij字)의 매력에 빠졌다. 그 후 고(故) 오옥진 선생에게 각자를 배우고 싶다고 요청했고,무조건 선생을 따라다니면서배우기 시작했다. 각자란 목판 또는 현판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나돌 등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공예활동을 말한다. 그렇게 각자의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글씨를 새기는 일에 오릇이 전념했다.“늦게 배운 만큼 날 새는 줄 모르고 작업에만 열중했어요. 집중해서 글씨를 새기다 보니 다른 잡생각도 안 나고 성격도 차분해졌지요. 오로지 한 분야만 파고들면서 실력도 나날이 늘어났습니다.”철재 고(故) 오옥진 선생이 이 분야의 최초 보유자였으며,2013년김각한 선생이 2대로 지정받아 전통공예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그는 30년 넘게 각자 작업을 해 오면서 점점 명성이 생기고 제자를 양성하는 선생을 하니 더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전한다.
김혜순 선생은 “매듭을 가르칠 때 전통 방식을 재현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면서 “정체되지 않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도록 가르치는데,스승으로서 사명감과 의무감이 생긴다”고 말한다.“약 20년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좀 더배우고 더욱 열심히 하려는 수강생들의 의지와 열의가 해가 갈수록 커지는 듯합니다. 그런 가운데 재단에서 학생들을 모집하고 관리하며 강좌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강사는 전수교육에만전념할 수 있어서 감사할따름입니다. 오랜 전통과 체계적인 수업방식,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직접 교육을 하는 것이 큰 강점입니다.이곳에서 매듭을 배우는 수강생들도 빼어난 실력을 갖춘 인재로성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한 가지 선택해 오롯이 그것에만 전념해야
김각한 선생은 “글자를 새기고 싶어 강좌를 찾는 사람 중에는 정년을 앞두거나 은퇴 후 취미로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이러한 전통 기술이 하나의 직업이 되기 어렵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없는 게 아쉽다”고 말한다. 이는 비단 각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전통공예 분야가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숙제 일 듯싶다.
김혜순 선생과 김각한 선생은 “수강생들이 처음부터 잘 하겠다는욕심보다 자신에게 맞는 것 한 가지를 골라 오릇이 그것에만 전념해 실력을 키워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강생들이 자기가 만든 작품을 흐뭇하게 마라보며 행복해하는모습을 보면 스승으로서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는 두 선생의모습에서 범접할 수 없는 장인의 위상과 향기가 느껴졌다.


윤혜림(매듭) & 신선이(입사)& 이혜숙(소목, 장석, 소반) 수강생
지난 1월 중순 인터뷰를 위해 서울 대치동한국문화의집 강의실에 모인 세 명의 수강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정성스럽게 포장해서 가져왔다. 매듭장김혜순 선생에게 6년째 매듭 강좌를 듣고 있는 윤혜림 씨가 가져온 매듭은 하나의 빼어난 작품이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만든 색색의 매듭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를 통해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신선이 씨의 입사 작품도 수준급이 었다. 신 씨는 현재 수강생을 넘어 보조강사로 활동하고 있다.역시 10년째 소목•장석 •소반을 배워 온 이혜숙 씨는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돼 온 전통 목공예를 여성의 섬세한 감성으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이 씨도 오랜 수강생을 거쳐 지금은 보조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 세 수강생의 수준은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어느덧 전문가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이는 30년 역사를 지닌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가 그만큼 공신력 있는 학교라는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최고의 장인에게 배우는 전통공예 수업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매듭을 수강하는 윤혜림 씨는 “6년째매듭을 하고 있는데 아직 배울 게 많다”면서 겸손해한다. 윤 씨는처음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매듭을 접하고 흥미를 느끼다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를 찾았다. 그리고매듭 분야의 장인 매듭장 김혜순 선생의 수강생으로 들어왔다. 매돕은 기본 1년 과정으로 기초부터 단계를 밟아가며 체계적으로 배웠다. 특히 무형문화재 매듭 보유자에게 배우니 최고의 스승을 사사하는 셈이다.
신선이 씨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는 옛것,엄마 내음,할머니냄새가 나는 우리 옛 공예품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면서 “둘째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뗘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2009년입사를배우기 시작했다”고말했다.
“입사는 철판에 금•은•동으로 문양을 내는 것을 말해요. 옛 물건인 화로,촛대,담배,보석함 등에 많이 새겨져 있죠. 옛 물건에 많이 들어 있는 전통 기법이다 보니 장인에게 배우고 싶었과 이 학교를 선택했어요. 금속에 문양을 하나하나 새기면서 내가 의도한대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무척 즐겁고 보람 있어요.”
신 씨는 입사 분야에서 실력을 쌓으며 이수자가 됐과 작년 7월부터 단기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아직 입사를 잘 모르는사람이 많은데,우리의 전통공예 기법인 입사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전한다.


오랜 경력 쌓고, 실력 인정받아 강사로 활동하기도
소목•장석 •소반 등 전통목공예 수강생인 이혜숙 씨는 2011년 단기 강좌로 소반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전통목공예를 익혀 나갔다. 이후 정기 강좌로 소목을 배웠고,장석까지 꾸준히 배움의 끈을 이어나갔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공예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입니다.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해 공신력이 있고 무형문화재 분들이 강사로 가르치니 제대로 전통공예를 배울 수 있지요. 오랫동안 수강하면서 경력을 쌓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보조강사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저역시 수강생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보조강사로 활동해 남다른 보람을 느껍니다.”
윤혜림 씨는 “요즘 전통문화를 배우는 곳이 많지 않은데,이렇게훌륭한 강사를 두고 체계화된 정규 과정을 이수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했과 신선이 씨도 “강남 한복판에 전통공예를 배우는 학교가 있어서 다니기 편하고,또한 좋은 강사와 시설은 물론 교육법이 잘 마련돼 있어 대한민국 최고의 전통공예 교육기관이 아닐까 하는 자부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혜숙 씨는 “뭔가 배우고 싶어도 교육 환경과 여건이 돼 있지 않으면 흐지부지 끝나게 된다”고 전했다.
“다른 곳은 짧게 가는데,여기는 평생 간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연히 책에서 소반의 아름다움에 반해 가벼운 마음으로 배우러 왔다가 평생 동안 해도 괜찮을 것 같은 가치를 느꼈습니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고 배웠기에 평생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단순히 강사와 수강생의 관계를 넘어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윤혜림 씨는 “앞으로 최소 10년간 매듭을 더 배워야 한다”면서"매듭 하나만 해도 여전히 배울 게 끝이 없으며 만들 것이 무궁무진하다”고말했다. 신선이 씨와 이혜숙 씨도 “작가의 영역에 들어가도록 더욱 열심히 매진할 것이며,평생 이 작업을 손에 놓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얘기했다.
한국전통공예 건축학교에서 수강생으로 시작해 어느덧 작가로나아가는 세 사람.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을 다하는 이들의 앞날을 응원한다.
 
- 글.허주희작가 사진.장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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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속 전통공예의 미래
우리는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로봇청소기,자율주행차량,IoT(사물인터넷) 등 어린 시절 4월 과학의 달그림그리기 대회의 단골 주제였던 소재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전통공예기술은 이러한 4차 산업혁명과는 가장대척점에 있는 기술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총집합체인 전통공예기술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영감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1서차 산업혁명 동안 우리는 늘 기계를 이해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어떻게 하면 생산량을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늘릴 수 있는지 에 초점을 맞췄다. 능업 생산량을 늘리 기위해서 도구를 개발하고 이를 개량했으며,면화 생산량을늘리기 위해 기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전자기기의 구조를 파악해 이를 더 작고 빠르게 만들어서 시간과 공간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왔다. 이렇듯 모든 발전의 축은 기계•도구에 대한 이해가선행된 후 진행됐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발전 과정은 이와는 조금 다른 형태다. 이전까지 인간이 기계를 늘 이해했다면 이제는 기계가 인간을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우리는 이를 4차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됐던 구글 알파고와 최근 한 완성차회사의 자율주행차량 광고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전통공예기술은 가장 원초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한 아름다움이라는 예술적인 성격을 뛰어넘어 오늘날 많은 전통공예품의 제작 과정은 오랜 기간 몸으로 체득한 물질의 성질 그리고 이를 인간에게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방법의 총집합체라고 할 수있다. 만약 3D 프린터로 모든 전통공예품을 대체하고자한다면 인간이 그동안축적한 지식을 기계가 이해하고 이를 구현해 내야 할 것이다. 이는 인간이 그동안 몸으로 체득한 재료의 성질과 공정의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한국전통 공예 건축학 교에서 이루어지는 전통공예 교육은단순히 그 기술을 전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수강생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가장원초적인 이해를 통해 발전적인 방향을 이끌어 내고 있다.전통기술을 연마해 자신만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부터 전통공예 기법과 현대 예술을 융합한 새로운 해석까지 다양한 수다(手多)를 1년 동안 끊임 없이 만들어 내고 있다.30년 동안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는 어쩌면 그사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발맞추고자 인간•자연에 대한 이해를조금은 뒤에 두었을지도 모른다. 전통을 하면서도 속도를 위해 명주실을 한 올씩 비비기보다 합성 기계끈을 찾게 됐고,나뭇결을 살리기 위한 천연 옻칠보다 쉽고 빠르게 건조하고 가공할 수 있는 인공 도료를 찾게 됐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중심이 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4차산업혁명의 다양한 영감을 제공할 수 있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지속적인 교육을 기 대한다.
 
- 글. 소은이. 한국문화재재단 문화교육부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