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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 소매를 잡고 아조 섭섭히 헤어지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04 조회수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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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장금도

머리 위 벚꽃가지에서 꽃잎들이 내려앉은 듯 정수리가 흰 여인이, 한 팔은 뻗고 한 손은 들어 올린 채 멈춰 있다. 평상복 차림의 입성에 흔한 손수건 한 장 들지 않은 빈손이니, 그대로 돌아서면 영락없는 촌로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사진을 본 사람은 누구나 ‘노구의 여인이 춤을 추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은 250분의 1초로 동작을 멈추어 놓았지만, 춤을 멈추지는 못했다. 들싸한 어깨와 살짝 구부러진 팔의 기울기, 허공을 들추려는 듯 가지런히 모아 편 손끝에서 춤은 여전히 추어지는 중이다. 그녀의 몸에서 풀려나온 흥의 파장이 꽃가지를 흔들었는지, 멀고 가까운 꽃들이 어룽거린다.
사진가 이한구 씨가 찍은 우리시대 마지막 예기(藝妓)이자 ‘민살풀이춤’의 명인인 장금도 선생의 생전 모습이다. 장식이 없다는 뜻의 ‘민’자가 붙은 민살풀이춤은 이름 그대로 수건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추는 살풀이춤이다. 예전에는 더러 있었다고 하나, 당시 민살풀이춤을 추는 이는 오직 장금도 선생 한 사람이었다.

이 사진이 찍힌 2010년 봄, 나는 장금도 선생을 취재하는 일행에 끼어 군산으로 향했다. 걸음을 부축하고 짐이나 들어 드리는 역할로 따라 나섰던 것인데, 책 『노름머리
노름머리 위 벚꽃가지에서 꽃잎들이 내려앉은 듯 정수리가 흰 여인이, 한 팔은 뻗고 한 손은 들어 올린 채 멈춰 있다. 평상복 차림의 입성에 흔한 손수건 한 장 들지 않은 빈손이니, 그대로 돌아서면 영락없는 촌로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사진을 본 사람은 누구나 ‘노구의 여인이 춤을 추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은 250분의 1초로 동작을 멈추어 놓았지만, 춤을 멈추지는 못했다. 들싸한 어깨와 살짝 구부러진 팔의 기울기, 허공을 들추려는 듯 가지런히 모아 편 손끝에서 춤은 여전히 추어지는 중이다. 그녀의 몸에서 풀려나온 흥의 파장이 꽃가지를 흔들었는지, 멀고 가까운 꽃들이 어룽거린다. 사진가 이한구 씨가 찍은 우리시대 마지막 예기(藝妓)이자 ‘민살풀이춤’의 명인인 장금도 선생의 생전 모습이다. 장식이 없다는 뜻의 ‘민’자가 붙은 민살풀이춤은 이름 그대로 수건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추는 살풀이춤이다. 예전에는 더러 있었다고 하나, 당시 민살풀이춤을 추는 이는 오직 장금도 선생 한 사람이었다. 이 사진이 찍힌 2010년 봄, 나는 장금도 선생을 취재하는 일행에 끼어 군산으로 향했다. 걸음을 부축하고 짐이나 들어 드리는 역할로 따라 나섰던 것인데, 책 『노름


여름날의유금선

바람에 제자의 옷고름은 이리저리 나부끼는데, 풀밭에 앉은 스승은 모아 잡은 손처럼 미동이 없다. 부채는 다시는 부채꼴로 펼쳐지지 않을 것처럼 다물려 있고 장구도 비스듬히 멈춰 있다. 옆에 선 소나무의 수피는 마른 땅처럼 거칠게 갈라진 채 오래전 구멍이 뚫렸다 아문 상흔 같은 커다란 옹이를 기둥 가운데 두고 있다. 흰 모시적삼 속에 가려진 가슴속 세월을, 소나무가 대신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연민 가득한 눈으로 스승을 바라다보는 제자 김신영의 시선을 비껴서 먼 곳을 향해 있는 유금선의 시선은 한 해 뒤에 이어질 세상과의 이별을 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병색이 짙은 중에도 다음 달 공연을 위해 제자와 함께 부산 기장의 죽성리 바닷가 언덕에서 이 사진을 찍은 것이 2013년 한여름의 일이다.
사진을 찍은 장소가 부산이듯이 유금선 선생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 사람, 더 정확히는 ‘동래의 인물’이다. 동래기생의 마지막 명맥을 이은 예기가 바로 ‘춤을 부르는 소리꾼’ 유금선 선생이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동래학춤이 추어질 때면 유금선의 구음(口音)이 ‘춤을 불렀다’. 이 학춤이 추어질 때면 “나니나 나리룻~” 하고 가사도 없이 이어지는 입소리가 반주음악처럼 쓰였다. 한도 많고 꿈도 많은 여인의 소리, 목석같은 몸에서도 춤을 꺼내는 소리, 춤 잘 추는 학과 두루미를 데리고 노는 소리…. 학들을 솟구치게 하는 그 빼어난 소리를 두고 한 표현들이다.
‘목으로는 안 되는 게 없던’ 유금선 선생은 무대 위에서 ‘여자의 일생’ ‘목포의 눈물’ ‘인도의 향불’ 같은 유행가도 거침없이 불렀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굽 높은 통굽 하이힐에, 걸을 때마다 치맛자락의 주름들이 버들치처럼 걸음을 따라가는 주름치마를 맵시 있게 입고 노래 부르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유월, 장금도 유금선을 추모하다’

봄날이 가고, 여름날이 가고… 장금도와 유금선 두 선생도 세상을 떠나셨다. 스승 곁의 소나무와 나란히 선 또 한 그루의 소나무 앞에 있던 김신영은 유금선 선생의 뒤를 이어 동래학춤 구음을 지속하고 있다. 오는 6월에 있을 장금도 유금선 추모공연 <몌별袂別 해어화解語花>에서 스승을 추모하며 유금선류 소리를 들려 줄 이가 바로 그녀다. 진옥섭 이사장(한국문화재재단)은 장금도 선생의 춤을 일러 ‘순간순간 몌별(袂別)을 준비하는 춤’이라 했는데, 풍경에도 몌별이 있다면 이 두 사진 속 장면이 꼭 그러하다. 소매를 잡고 작별하듯 아주 섭섭히 헤어지는,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봄날의 장금도, 여름날의 유금선인 것이다.



- 글. 박미경 류가헌 관장 사진. 이한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