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월간문화재

[2019.06] 돌에 새긴 장인의 숨결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04 조회수 : 2384
하단내용참조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석조공예관의 넓은 마당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석조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무려 50년의 세월을 켜켜이 쌓아 올린 이재순 석장의 혼과 숨결, 발자취가 석조공예관 곳곳에 깃들어 있다. ‘석장(石匠)’이란 ‘석조물을 제작하는 장인’을 말한다. 한마디로 돌을 조각하는 장인이다. 흔히 사찰이나 궁궐 등에서 볼 수 있는 석탑, 석교, 부도탑, 탑비, 장승 등이 대표적인 석장의 작품이다. 왕릉에는 돌래석 문인상, 무인상, 동물상, 망주석 등 정교한 석조 작품이 있으며, 민가에서는 맷돌이나 절구 등 살림에 필요한 도구를 만들기도 한다. 이재순 석장은 전통공구기법을 전수받아 끊임없이 기량과 기술을 연마하면서 창작활동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의 작품은 전통에 기반을 두고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가미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호평 받고 있다.


돌에 혼을 불어넣으며 살아온 반세기

“집안에 외삼촌께서 돌을 다루었고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조금씩 돌을 만졌어요. 치석이라고, 돌 깨는 작업부터 시작했고, 이후 석조물 만드는 회사에 문하생으로 뽑혀서 이 길에 접어들었죠. 석조각의 대가이자 스승인 김진영 선생님을 만나면서 어엿한 석장으로 설 수 있었습니다.”
이재순 석장은 약 40년 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석조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었다. 30년 전에는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선정,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마침내 200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20호 석장(석조각)으로 인정받았다.
이재순 석장이 돌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언 50년,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오랜 세월의 역사와 연륜만큼 그의 작품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전국 사찰의 불상과 석탑, 석등, 석조상 등을 비롯해 광개토대왕비, 탑비, 부도탑, 석조물 등 돌 조각품과 관련된 것을 총망라한다.
석공예의 재료는, 말 그대로 돌이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암이 널리 분포하며 그런 연유로 화강암은 석공예의 재료로 많이 쓰이고 있다. 예로부터 화강암을 이용해 건축이나 조각 등 석공예품을 만들면서 차가운 돌에 생명을 불어넣어 부드럽고 따스한 석조 문화를 만들었다.

하단내용참조

대만의 석굴암본존불, 전남 영광 백제불교문화 최초도래지 작업

이재순 석장은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과 숭례문 복원현장에서 5년여 상주하며 참여했고, 최근 익산미륵사지 석탑 공개행사에 다녀왔다. 그는 그동안 수많은 석조 작업에 참여하면서, 보람이 컸던 작업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우리나라 경주 석굴암의 1.7배 규모의 불상을 대만에서 제작하였는데, 1996년에 완성한 대만의 자항기념당 석굴암본존불은 2년 반 동안 이곳에 상주하면서 작업하였다.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석불상을 보고 대만 사람들이 감동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두 번째 작품은 전남 영광 법성포 백제불교문화 최초도래지이다. 23면 부처님일대기와 사면대불조성 등 10여 년에 걸친 석조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재순 석장의 석조공예관이 자리한 경기도 구리에는 거대 왕릉인 동구릉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2010년부터 3년간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재능기부에도 앞장섰다. 우리 문화재는 오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식되고 변색이 된다. 그의 생각은, 문화재관련 기관에서 보수를 위한 예산을 세우기 전에, 자신이 문화재가 무너지지 않게 보수로 재능기부를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회원들과 함께 동구릉부터 돌이 부러지고 쓰러지기 전에 보수작업을 진행하였다.



석조 분야 알리고 발전, 계승시키는데 일조하고 싶어

요즘 사람들에게 ‘석조’는 그저 옛 문화재나 오래된 조형물로만 알려져 있다. 이재순 석장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재가 석조이며, 우리나라 문화재도 약 70%가 석조인데, 교육의 부재와 관심 부족 등으로 국민이 석조의 중요성을 모른다.”면서 “고대 로마도 석조를 빼놓고 말할 수 없듯이 우리나라도 우수한 석조 문화를 널리 알리고 교육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그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보수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석조 분야가 주로 문화재와 관련돼 있어, 국가적인 복원 사업에 사명감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이재순 석장은 “우리나라에 석조 전수교육이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라면서“석조 분야의 전수교육장을 확대하고 체계적으로 이수자들을 키우며, 우리 전통 분야인 석조를 더욱 알리고 발전, 계승시키는데 이바지하고 싶다.”고 의지에 찬 모습으로 말한다.
‘석조’라는 한 분야에 일생을 바치며 지금도 자신의 혼과 열정을 다하고 있는 이재순 석장. 그의 장인 정신은 돌처럼 단단하고 묵직하며 흔들림이 없는 뜨거움이리라.




- 글. 허주희 사진. 최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