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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 독창적인 유물이 많은 함흥력사박물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7-31 조회수 : 3312
하단 내용 참조


발해의 유적과 유물
 
함흥력사박물관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발해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눈에 띈다. 특히 근 처에 위치한 오매리 절터와 흥원군 부상리, 북청군 평리 등에서 발해의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발해의 유물 중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오매리 절터의 발해 건물지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기와들이다. 용마루 끝이나 처마마루에 달아 잡귀를 쫓기 위해 막새기와를 만들어 붙이는데, 그중에서도 발해의 도깨비막새는 특이한 형태와 독특한 발상으로 볼 때마다 새롭다.


1.도깨비막새
 
전체적으로 입체적인 조형감이 두드러지고 과장되게 왜곡되고 과감하게 생략돼 있다. 눈알은 마치 볼 록한 단추처럼 기이하게 푹 불거져서 금세라도 앞으로 톡 튕겨져 나올 것만 같다. 그 위로 양 귀는 쫑 긋 세우되 누군가의 말소리를 들으려 앞쪽을 향해 모아져 있으며, 그 사이 정수리에서는 뾰족한 뿔 하 나가 툭 튀어 나와 있다. 삼국시대의 도깨비막새는 각 나라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며, 통일신라의 것 은 정교하고 세련된 시대양식을 반영하기도 한다. 발해 막새기와는 이러한 삼국시대의 것은 물론이 고, 같은 시기에 해당되는 통일신라나 당나라의 것과도 확연하게 구분돼 발해 미술의 조형적 독창성 을 엿볼 수 있다. 막새기와가 그 대표적 사례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다.


2.곱새기와
 
곱새기와는 궁전이나 관청, 사찰의 지붕 내리마루의 처마 끝이나 용마루 양끝 장식에 쓰였다. 발해의 곱새기와 유물은 오매리 절골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 형태는 말안장형이고 제비초리처럼 끝으로 가면 서 점차 좁아진다. 이 유물의 앞면에는 8엽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발해 기와가 고구려 기 와 문양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하는 자료다.


3.세발솥
 
세발솥은 1987년 오매리 금산 발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이 솥은 바깥 면 중간 부위에 둥근 전이 있고 그 밑에 삼각으로 세 발이 붙어 있다. 솥은 아랫배가 약간 나오고 위로 아가리가 곧게 올라 있다. 바깥으로는 10줄의 평행선 무늬가 가로로 나 있는데, 작지만 야무지고 당당하게 생겼다.


4.쇠보시기
 
오매리 금산의 발해 건축지와 절골의 발해 1호 건축지에서 기와와 함께 출토됐다. 쇠보시기는 모두 3점 이 나왔는데, 형태는 두 가지다. 그중 하나는 이 유물처럼 아가리가 밋밋하고 줄무늬가 있으며, 또 하나 는 그릇 벽이 약간 벌어지고 아가리가 헤벌어진 것이다.


고려의 기와
 
함흥지역의 고려 유적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와가 출토됐다. 고려 기와의 특징 중 하나는 도깨비 눈(鬼目)이라 하여, 가운데에 볼록하게 공(半球)처럼 툭 튀어나온 원 문양을 중심으로 가장자리 에 둥근 동심원이 여러 겹 반복되는 막새기와의 존재다. 이와 흡사한 유물은 개성시 만월대 유 적을 비롯해 우리나라 곳곳의 고려 건물지에서 출토되는데, 고려시대에 유행한 기와의 양식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달한 기와의 문양은 연꽃일 것이다. 삼국시대의 연꽃무늬 는 각 나라만의 독특한 조형성을 지녀 지역 양식을 강하게 반영한다. 고려의 연꽃기와는 지역적 으로 친연성이 있는 고구려와 발해의 양식적 계보를 잇고 있다. 이 연꽃막새의 중앙에 불룩 튀 어나온 원형의 도깨비눈은 발해 도깨비막새와 연관이 있으며, 외곽에 날카롭고 뾰족한 8엽의 겹연꽃무늬는 고구려에서 비롯해 발해를 거쳐 고려에 영향을 준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5.도깨비눈 수키와 막새
 
이 막새기와는 부드러운 흙에 모래가 약간 섞여 차지게 이겨 만들어 회흑색을 띠고 있다. 막새면의 중 앙에는 툭 튀어나온 양각의 원형 무늬가 배치되고, 그 외곽으로 두세 줄의 원형 줄무늬를 도톰하게 빙 둘렀다. 안쪽의 원형 무늬는 고려의 와당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대표적인 무늬로, 도깨비눈(鬼目)이나 달무리(日暈)라 불린다.


6.연꽃무늬 수키와 막새
 
고려 특유의 연꽃무늬 수키와 막새는 연꽃무늬가 작아지면서 중간에 불룩 튀어나온 원형 무늬가 강조 되고, 그 외곽으로 8엽 겹연꽃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 특징이다. 원형 무늬는 고려의 특징적인 도깨비눈 을 배치한 것이고, 이것과 함께 복판 연꽃은 안쪽의 꽃술을 뾰족하게 처리했는데, 날카롭고 직선적인 고 구려 연꽃무늬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성계의 고향과 ‘함흥차사(咸興差使)’로 더 유명한 ‘함흥’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지만 아직 나라의 토대는 불안한 상태였다. 특히 ‘신하의 나라’를 꿈꾼 정도전은 이성계와 둘 째 부인인 강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나이 어린 방석 또는 방번을 다음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첫째 부인 한씨 소생의 장성한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이성계는 한양을 떠나 고향인 함흥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이방원은 사신들을 보내 아버지가 한양으로 돌아올 것을 권했다. 이렇듯 임금이 중요한 임무를 위해 파견하던 임시 벼슬이 차사(差使)다. 하지만 함흥으로 간 차사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 돌아오지 못했고, 이후 함흥 차사는 “심부름을 가서 오지 아니하거나 늦게 온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됐다. 이런 얘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함흥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 유독 많다. 이성계의 추억이 서린 함흥본궁과 그의 조상들이 묻 힌 시조왕릉, 그 밖에 함흥성·선화당·제월루 등 문화유적이 많아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다.



- 글. 사진. 장경희. 한서대학교 교수. 문화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