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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 풍류방의 언어 풍경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02 조회수 : 2157
하단 내용 참조

‘영산회상’에서 나온 전통음악 용어들
먼저 풍류의 가장 중요한 음악인 영산회상(靈山會上)을 보면 그 명칭 자 체에 음악의 성격이 잘 드러나며, 그것은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말이라 볼 수 있다. 영산회상이 발전하여 영산회상 갑탄(甲彈)이라는 악곡이 나왔는 데, 병와 이형상이 지적한 것처럼 갑탄은 우리말로 풀어보면 ‘곱놀이’가 된다. 거문고의 4괘에서 타던 음악을 7괘로 타는 것이니 음악의 “곱절만큼 높게 타며 논다”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또 영산회상은 일층제지(一層除 指)와 이층제지(二層除指) 등으로 분화하였다. 일층과 이층은 한 차례와 두 차례의 의미이고, 제지란 “가락을 던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즉 영산 회상의 <가락더리>가 가락을 덜어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영산회상에는 영산회상 환입(還入)이라는 곡이 있다. 환입이란 말 은 “되돌아든다”라는 뜻이며, 앞의 영산회상을 조금씩 가락을 달리하여 다시 연주한다는 의미로 파악된다. 이 환입은 중국 송대에 건너온 보허자 (步虛子) 계열의 음악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본환입> 혹은 <미환입(尾還 入)>은 밑도드리, 세환입(細還入) 혹은 삭환입(數還入)은 웃도드리가 된 다. 이는 가락을 아래 위로 올리면서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진 예인데, 모두 환입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그 음악이 보허자 환입에서 유래한 것들이 기 때문이다.

환입 계통의 음악 중 가락을 더는 것이 아니라 가락을 첨가하여 새로운 음 악을 만드는 예도 보인다. <쥐눈이콩도드리>와 같이 악곡에서는 ‘동동 징 징’ 하는 식으로, 한 음을 두 번씩 겹쳐 연주하거나 가락을 더 추가하여 색 다른 느낌을 주는 악곡으로 변모하도록 한 연주법이 보인다.

음을 ‘잇고’, 장단을 ‘엮고’, 가락을 ‘풀고 쇠고’
해외의 많은 음악가들이 천상의 음악으로 절찬한 <수제천(壽齊天)>이라 는 곡은 <빗가락 정읍>이라는 다른 명칭으로도 불리는데, 음악을 연주할 때 연음 기법을 사용한다. 관악곡으로 피리나 대금 같은 관악기가 주요한 선율을 담당하는데, 피리가 연주하는 선율을 받아 대금이 연주하고, 또 그 뒤를 피리가 연주하면서 음악을 이어 나가는 기법이다. 우리뿐만 아니 라 중국 같은 인근 국가에서 연환구(連環口)라고 하여 앞 선율의 악구(樂 句)를 이어 다음의 음악이 이어지는 기법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앞의 “음 을 잇는” 것이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방식임을 알게 해준다.

우리 음악에서는 모음곡의 경우 장단의 한배(빠르기)를 조절하여 새로 운 음악을 만드는 경우가 주요하게 사용된다. 가곡의 16박 기본 장단이 10박 장단으로 변하면 편장단(編長短)이 되는데, ‘편’은 촘촘하게 엮는 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장단이 축소되어 빠르기가 변하였다는 것을 의 미해 준다. 앞서 영산회상에서 가락을 덜어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경우 를 언급한 바 있는데, 이 경우 20박 한 장단의 <상령산>과 <중령산>이 10박 한 장단인 <세령산>과 <가락더리>로 축소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경우는 긴소리와 자진소리를 가지는 모든 민간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대표적으로 <정선아라리>와 <엮음아라리>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즉 어떤 음악이든지 “엮으면” 새로운 분위기의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을 엮을 수도 있지만 풀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음악이다. 물론 음악 적으로 정확히 반대의 개념은 아닌데, 전통 관악기 대금이나 피리 그리 고 거문고 음악에는 음악을 풀어 연주하는 악곡이 존재한다. 요즘 많이 연주되는 대금 상령산풀이는 영산회상 모음곡의 하나인 평조회상의 첫악곡 <상령산>을 한 옥타브(8도) 아래로 낮추고 한배 안에서 가락을 첨 가하여 본 <상령산>과 완전히 다른 듯한 음악으로 연주되고 있다. 거문 고의 경우 중광지곡 중 <상령산> <하현도드리> <타령> 등 일부분에서 원 가락을 변주하여 연주하는 해탄(解彈) 가락이 존재하는데, 바로 해탄 이 ‘풀가락’이며 원 가락을 풀어서 연주한 것을 말한다.

행진 음악의 경우 음악의 장중함을 배가하기 위해 가락을 ‘쇠기도’ 한다. 일명 쇠는 가락은 여민락(與民樂) 7장에서와 같이 피리의 뒷구멍 하나 만을 사용하여 높은 가락을 뽑아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음악적인 내 용으로 “쇤다는 것”은 높이 질러 연주한다는 뜻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산조(散調)와 같은 민간 음악에서는 기본 음조직의 핵심 음인 ‘청’을 다 르게 사용하여 ‘엇청’으로 갔다가 다시 본 ‘청’으로 돌아오게 하는 등 음 악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변화를 주기 위하여 가락의 전체 음고를 자유 롭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판소리에 등장하는 붙임새와 음조직 용어
판소리 명창들은 소리를 구사함에 있어 창조성을 매우 강조하였다. 사 설을 장단에 붙이는 붙임새 말들을 살펴보면 사설 한 마디를 한 장단의 주 박(拍)에 붙이는 ‘대마디대장단’①에 벗어나는 붙임새들로 엇붙임·잉 어걸이·교대죽·완자걸이 등을 들고 있다.

엇붙임은 사설 한 행이나 선율선이 앞장단의 꼬리와 뒷장단의 머리에 붙어 있는 형태이며, 잉어걸이는 사설이 주 박을 매우 작은 시가로 밟고 나와 부 박에 소리의 강세가 나타나는 형태로 베 짜는 잉어질에서 그 말 이 나왔다 하며, 교대죽은 일명 ‘뛰는 교대죽(긴소리로 뛰는 것)’과 ‘주수 는 교대죽(주서 붙이며 뛰는 것)’ 두 가지로 나뉘는데, 고양이가 뛰는 모 양새를 빗대어 말한 것이라 한다. 완자걸이는 완자창의 모습과 같이 사 설을 제 박에 놓지 않고, 엇박으로 놓아 서로 걸려 있는 모습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한 가락을 만드는 방식도 시조목, 애원성, 호령조 등 다양한 음조직을 사용하여 왔다.
그러므로 다양한 붙임새와 음조직 등을 활용 하여 스승에게 배운 소리를 스스로 갈고 닦아 자신의 새로운 소리로 재 창조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① 여기서 대를 ‘한’으로 해석하면 이해하기 쉽다.


- 글. 이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