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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문화재

[2019.10] 나무에 혼을 담아 문자를 새기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02 조회수 : 2161
하단 내용 참조
 
고궁이나 사찰에서 흔히 보이는 것이 건축물에 걸려 있는 현판과 주련이 다. 옛 건축물에 명필로 새겨진 ‘각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며 예술품 이다. 일상에서도 각자의 세계를 접한다. 고풍스러운 상점이나 카페, 가정 집의 거실과 서재 등에 걸려 있는 각자는 기품 있는 모양새로 공간을 더욱 빛낸다. 각자는 인쇄를 목적으로 글자를 좌우 바꾸어 새기는 ‘반사각’과 글 자를 목판에 그대로 붙여 새기는 ‘정서각’으로 나뉜다. 공공건물이나 사찰, 재실에 거는 현판용이 정서각이다. 김각한 각자장은 이 분야의 최초 보유 자인 철재 오옥진 선생에 이어 2013년 2대 보유자로 지정받았으며 현재 후배 양성에 힘쓰면서 전통 공예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어느새 각 자의 길로 들어선 지 30여년 세월이 흘렀다.


오롯이 한 곳에만 집중하는 작업, 잡생각 없어져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소목과 목공예를 배우며 차츰 소질을 키워 나갔던 김각한 선생은 우연히 오옥진 선생의 개인전을 본 후 각자의 세계에 마음을 빼앗겼다. 서예도 배우며 글자의 아름다움을 느끼던 그는 ‘각자’야말로 자신이 해야 할 업 이라고 생각했다.
“오옥진 선생님께 무조건 각자를 배우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이 길이 매우 어렵고 험난하다는 것을 잘 아시기에 선생님은 선뜻 허 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각자를 알아야겠다는 일념으 로 무조건 선생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세 계에 발을 들여 놓은 후 지금까지 왔습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각자를 시작한 그는 “늦게 배운 만큼 기술을 익히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으며, 날 새는 줄 모르고 작업에만 열 중했다”고 말한다.
“오롯이 한 곳에 집중해 글씨를 새기다 보니, 다른 잡생각이 안 나고 성격도 차분해졌지요. 오로지 한 분야만 파고들면서 실력도 나날이 늘어났습니다.”

3일간 공방 공개행사 열려, 장인과 소통하고 교류

‘나무에 숨을 불어 넣고 혼을 담아 문자를 새기다.’

어느 인쇄물에 ‘각자’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서울 방배동 공방 에 전시된 수많은 각자 작품만 봐도 장인의 섬세한 손길과 깊은 예술혼이 느껴진다. 지난 7월에는 방배동 공방에서 ‘무형문화재 공 방 프로젝트’ 세 번째 행사로 ‘각자장 김각한 보유자 공개행사’가 열렸다. ‘무형문화재 공방 프로젝트’란 장인의 작업공간으로만 알 고 있는 공방을 누구나 찾으면서 우리 전통공예문화를 이해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프로젝트다. 이번 공방 공개행 사에서는 각자장 작품 전시 및 제작 과정 시연과 체험 등 다양한 활 동이 펼쳐졌다. 김각한 선생은 “3일간 이어진 공개행사에 동네 주 민, 학생 등 많은 이들이 찾아와 배우고 소통하는 시간이었다”면서 “장인과 참가자가 한데 만나 각자를 매개로 교류해 매우 의미 있 고 보람도 크다”고 밝혔다.

각자장으로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각자’라는 전통 공예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어 “공개행사를 해 보니 사람들이 각자에 관심이 많고 전반적 으로 반응이 좋았다. 앞으로도 공개행사를 열어 사람들과 소통하 며 각자를 널리 알리고 싶다”며 “또 이수자들과 함께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재능기부를 하고자 한다. 앞으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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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양성하는 선생으로, 무거운 책임감 느껴
김각한 선생은 2003년부터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 출강해 현 재까지 수많은 이수자와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한국문화재재 단에서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관리해 강사는 전수교 육에만 전념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크다”는 그는 “각자 작업을 하면서 제자를 양성하는 선생까지 하고 있어 무거운 책임감도 느 낀다”고 말했다.
각자장으로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각자’라는 전통 공예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 공예로 생 계를 유지하는 일, 즉 직업으로 삼기 어렵다 보니 각자를 배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 후 취미로 하려는 이들이다. 그는 “각자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 공예 분야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라 고 말한다.


오랜 작업으로 피로감, 단전호흡으로 건강 좋아져
각자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으로 몰두해야 하기에 어떠한 ‘잡생 각’도 끼어들 수 없다. 몇 시간이고 붙들고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반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건강에 무리는 없 는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김각한 선생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항상 피곤한 기운이 있는데 3년간 단전호흡을 하 면서 건강이 좋아졌다”고 전한다.
“스트레칭과 깊은 호흡법으로 뭉친 근육을 풀고 나면, 막혔던 것이 풀 리는 기분입니다.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기 마련 입니다. 그때는 계속 쌓아두지 말고 풀어 줘야 합니다. 작업이나 강의가 없는 날에는 방에서 혼자 세상 편하게 누워 있습니다. 그러면 긴장이 풀 리고 피로도 사라집니다.”
기계도 이따금 기름칠을 해 줘야 잘 돌아간다. 아울러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심신을 재충전하면 인생이 더욱 풍성해질 게 분명하다. 지난 35년 간 걸어 온 ‘각자의 길’. 김각한 각자장은 자신만의 건강비법과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앞으로도 뚜벅뚜벅 나아갈 것이다.

- 글. 허주희 사진. 안호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