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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귀족에서 민중 속으로 조선불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4-18 조회 1269







 






불전장엄의 핵심은 불국토를 현실세계에 구현하는 일이다. 불전장엄의 대표적 방식은 화려한 색이나 그림으로 불전의 안팎을 장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화는 불전장엄의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유입 전파된 고대부터 사원 건립이 시작됐을 것이고, 그 사원 안팎으로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그림이 그려졌다. 500년간 지속된 조선왕조 역시 마찬가지다. 그
러나 조선왕조는 건국과 동시에 유교가 정치・사회를 이끄는 강력한 이념으로 대두된 반면 불교는 정책적으로 탄압을 받으며 급격히 쇠퇴하는 국면에 처하게 됐다.

이러한 숭유억불 정책하에서도 국가 차원의 불교식 장송의례는 빈번했으며, 왕실의 비빈이나 양반 부녀자들 사이에서 망자들의 추복 내지는 기복적 성격의 불사가 이루어졌다. 더욱이 불교가 억압받는 사회변화 속에서 조선불교는 민중불교로 전환됐다.
15세기 불화 : 전통의 계승 *도1, 2월출산 남쪽 기슭에 둥지를 튼 무위사無爲寺 극락보전에는 조선 초기의 귀중한 벽화가 존재한다. 극락보전은 1430년에 건립됐으며, 그 후불벽에는 1476년에 제작된 아미타삼존벽화가 지금껏 남아 있다. 여기에 그려진 불
교 인물들의 표현은 고려 후기 불화의 화법을 잘 계승하고 있다. 아미타삼존벽화는 아미타가 주관하는 서방극락정토 세계의 그림이다. 무위사 극락보전 아미타삼 존벽화의 중앙에는 서방정토 세계의 본존인 아미타불이 정면을 향해 연화좌 위에 결가좌해 있다. 또 그 왼쪽에 투명한 베일을 걸친 관세음보살이, 맞은편 오른쪽에는 두건을 쓴 지장보살이 각각 시립해 있다. 화면 위쪽
에는 제자 격의 아라한 6위가 서운에 에워싸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아미타삼존의 구성과 각각의 신체 표현은 고려 후기 불화를 잘 계승하고 있으나, 화면을 꽉 채운 장식이나 복식의 문양 등은 조선 불화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16세기 왕실발원 불화 : 불교설화도의 정수* 도3
일본 세이잔분고靑山文庫가 소장한 〈안락국태자전변상도〉1576년는 색채가 화려하고 문양이 섬세해 조선 16세기 왕실불화의 수작으로 꼽힌다. 게다가 기존의 전형적 예배화와는 달리 텍스트의 내용을 도해적으로 풀어낸 설화그림으로서 조선 16세기 불교설화도의 정점에 위치하는 대표 사례다. 화면에 21개 이상의 다양한 장면들이 서사적 구조로 펼쳐지고 있다. 전각과 나무・구름 등은 장면과 장면 사이를 구분 짓고 있으며, 장면마다 옛 한글(언문)의 설명 문구가 빼곡히 적혀 있어 더욱 놀라운 작품이다. 이 불화는 조선적으로 번안된 사라수국왕과 원앙부인,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안락국태자의 이야기를 통해 극락왕생을 목표로 하는 정토신앙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화면 향좌측 위 범마라국의 팔작지붕 건물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광유성인에서 시작해 사선구도로 가장 아래쪽 향우측 서천국 사라수왕궁의 사라수국왕과 원앙부인으로 이어진다. 다시 화면 중간으로 스토리가 전개된 뒤 향우측 중간 부분에 원앙부인과 안락국태자 모자가 아미타가 인도하는 용선을 타고 극락왕생하는 극적인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 불교설화도는 화면 가장 위쪽에 금자로 그림에 관한 중요 정보를 담고 있다. 즉 선조 9년1576년에 비구니 혜원慧圓과 혜월慧月이 선조1568~1608와 선조비, 인종비, 명종의 세자빈, 그리고 혜빈 정씨 등 왕실 일가의 성수를 기원하기 위해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어, 왕실발원불화의 귀중한 사례로 꼽힌다.








16세기 민중발원 불화 : 삼베불화의 등장* 도4, 5
고려불화에 이어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걸개그림 불화들은 대부분 비단 소재를 사용한 견본불화였으나, 16세기에 이르러 비단 외에 삼베에 그린 마본불화가 등장한다. 왕실발원의 불화는 비단 바탕에 그려진 견본불화가 주류를 이루는 반면 삼베 바탕에 그려진 마본불화는 민중발원의 불화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조선 16세기 삼베불화는 지장시왕도, 감로도, 삼장보살도 등의 도상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일반 민중 속으로 불교가 확산돼 나갔다. 그중 감로도는 허공에 떠도는 죽은 고혼이나 아귀들에게 천상의 묘미인 감로甘露를 베풀어 극락정토 세계로 인도하는 그림이다. 감로도는 대개 화면 중앙에 각종제기에 가득 담긴 음식물을 비롯해 공양물 등이 장식된 재단이 놓여 있다. 재단 앞에는 기괴한 모습의 거대한 아귀가 앉아 있고, 재단 옆으로는 범패와 작법을 행하는작법승들이 그려져 있다. 이어 재단 위쪽에는 강림하는 불보살들을, 재단 아래쪽에는 인간세계의 재난상과 육도세계의 영혼을 묘사하고 있다.

일본 사이교지西敎寺가 소장한 〈감로도〉1590년는 화면 하단에 인간들의 여러 위난상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가옥이 불에 타는 모습, 말발굽에 밟혀 죽은 자, 바위에 깔려 죽은 자, 자신의 잘린 머리채를 쥐고 있는 자 등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위난상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시각적 코드라 할 수 있다. 


17~18세기 대형 불화 : 괘불탱의 등장과 확산*도 6
조선 17세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으로 말미암아 황폐화된 국토와 민심 수습에 주력하던 시기였다. 전란으로 피폐된 사찰 재건에 주력하는 한편 사찰 의식을 통해 비명횡사한 민중들의 원혼을 달래주는 불교문화축제도 이루어졌다. 영산재, 수륙재, 기우재, 소재도량, 진언법석 등의 불교의례가 그것이다.
이러한 불교의례는 불교가 민중 속으로 더욱 뿌리내리는 계기가 됐다. 불교의식의 성행과 더불어 출현한 대표적 불화는 괘불탱이다. 대개 높이가 8~14m에 이르는 대형 불화로, 평상시 커다란 함에 넣어 주불전의 불단 뒤쪽에 안치하다가 사찰 중정에서 베풀어지는 야외의식때 괘불대에 걸어 의식을 행하는 대표적 의식용 불화다.

현존하는 괘불탱의 수량은 이른 시기의 죽림사 괘불탱1622년을 비롯해 120점 이상이다. 괘불탱은 17세기에 망자의 영혼을 달래는 천도의식이 활발히 열리면서 많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에는 영남과 호남지역권의 전통 사찰을 중심으로 성행했으며, 19세기에는 경기권역에서 활발하게 제작됐다. 괘불탱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불화는 화기에 불화 제작에 관여한 화승들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규모가 큰 괘불탱 제작에 우두머리 화승을 필두로 수십 명의 화승이 관여한 화기도 있는데, 이는 화승들의 계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받는다.

공주 계룡산 기슭에 자리 잡은 신원사에는 화승 응열應悅 그룹이 1664년에 제작한 <노사나괘불>국보 제299호이 있다. 삼베 바탕에 채색을 베푼 것으로, 그림을 그린 부분만 세로 971㎝와 가로 620㎝의 크기이며, 총 길이는 10m를 훌쩍 넘는다. 화면 중앙에는 화려한 보관을 쓴 보살형 부처가 두 팔을 벌려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본존의 불신 주위로 오색찬연한 방광의 물결이 뿜어져 나오고, 이 물결을 배경으로 본존을 향해 모여드는 권속들을 묘사했다.

본존불의 두광에는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는 존상명이 적혀 있어 노사나불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존 주변의 오색찬란한 광염 표현은 불타 또는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중생의 근기나 소질에 따라 어떤 초인적 힘인 신통변화神通變化, 즉 신변神變을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노사나불 진신眞身의 신변 연출을 이미지화한 것으로, 수화승 응열의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 글. 박은경. 동아대학교 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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