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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박용순’ 편 (2) - 엄마들 하는 소리가 그렇게 좋게 들리드마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1077
(강강술래 연주곡)
강강술래 강강술래 육근육근 유자나무 강강술래
백년새가 앉어우네 강강술래
나도역시 어릴때는 강강술래
저새소리 했건마는 강강술래
각시님이 되고봉께 강강술래
어른님만 따라간다 강강술래

박용순 육성 // “우리가 놀다가, 맨날 놀았어요. 놀다가 집에 와가지고 자려고 있는데 엄마들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강강술래 하는 소리가. 그렇게 좋게 들려. 그것이. 어떻게 뭔 소리를 어떻게 하는가 그것도 모르고. 그리고 어떤 대목인지는 모르는데 지금 생각하면. 밤에 넘어가는 대목이 그렇게 좋게 들립디다. 슬프게.”


나레이션 // 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강강술래, ‘박용순’.
제2화, 엄마들 하는 소리가 그렇게 좋게 들리드마.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향동으로는 시집 안 갈란다>
#1. 1960년, 진도군 고군면 향동 마당 앞

(진도씻김굿 / 박병천 등)
남사친 // 용순아! 저그서 진도씻김굿 하는디 보러 안 갈텨?
용순// 난 안 갈텨!
남사친 // 엄매들 마당서 돌아댕기면서 장구 치고 북 치고 춤추고 허는디. 너도 좋아하자네.
용순 // 안 간댕께.
남사친 // 니가 천주교 믿어두, 굿 귀경하는 건 괜찮차네.
용순 // 그래두 장구치는 덴 가기 싫어야.
남사친 // 뭐 아부지 땜시?
용순 // 그려.
남사친 // 용순아, 근디 너 벌써 스물셋인디 이 동네선 시집 안 가냐?
용순 // (단호하게) 그려! 난 다 혀도, 여그 향동으론 시집 안 갈란다!
남사친 // 여그서 누가 널 좋아혀면 어쩔겨? 나가 그럴 수 있자네.
용순 // 몰러, 다 안되아!

박용순 육성 // “장판을 해서, 들기름으로 해논 장판이 다 구멍이 뚜루버졌어요. 하도 장구 치던 사람들이 와갖고 때리고 멋쟁이들은 여자건 남자건 다 왔어요. 그래서 내가 제일 싫은 것이 그거였어요.
장구라는 것을 나는 보기도 싫었고 향동에서 결혼할 나이가 되니까, 동네 결혼을 많이 했어요. 향동. 시어머니도 동네 사람 며느리도 동네 사람 그럴 정도로 동네에서 결혼을 많이 해서 동네서 결혼하자는 사람이 많이 있었어요. 내가 왜 동네에 결혼을 안 하는 원인이 진짜 아버지가 그렇게 하는 걸 보기 싫어요. 어렸을 때부터 향동으로 안 가기로 아주 내 속으로 마음먹었어요. 결혼을 한다면 나는 절대 향동으로 안 간다.”


#2. 1960년, 진도군 군내면 천주교 신동성당

(천주교 성가)
남편 // 회장님, 안녕하셨지라?
성당 회장 // 여적 장가 안 들었제? 여그 신동성당서 젤로 괜찮은 총각이 수봉이 자넨디 말여.
남편 // (멋쩍은 듯) 야. 아직이어라.
성당 회장 // 올해 몇이나 됐능가?
남편 // 스물넷이어라. 근디 뭐땜시...?
성당 회장 // 아따, 좋은 각시 있응께 물어보제. 저그 향동에 야무진 각시가
있는디, 같은 신자여. 나가 중신 설 테니 같이 한번 가보꺼나?
남편 // 야, 그라지요.

나레이션 // 향동 처녀 용순과 둔전리 총각 수봉의 인연은
그렇게 성당에서 시작됐습니다.
1960년대 당시까지도 얼굴 한번 못 본 채
부부의 연을 맺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어쯔케 시집을 왔는가도 잘 모르겠어>

박용순 육성 // “이제 3일 되던 날 친정에 가요. 지향길에 간다 했어요. 그때까지도 신랑하고 별로 말도 잘 안 해봤어요, 신랑하고. 그렇는디 이쟈 향동을 간다고. 큰 재가 있거든요, 그걸 넘어서 가는데 술만 한 병 들고 가고 나는 따라가고 그랬는데 나는 우리 집이니까 길을 잘 알잖아요. 긍께, 재 꼭대기까지는 싹싹 같이 갔어요.
가서 거기서 이제 내리막길에 내려가야 되는데 거기를 막 죽는다고 달렸어, 내가. 그 오솔길을 독 있는, 향로가 독만한 그 좁은 길을 막 내려 달려가갖고 달려가다 봉께는 내가 앞에 썩 가질 못 하겠드만, 또. 그래서 가다가 거의 제일 내리막 있는 데 가서는 앉아 있었어. 앉아 있으니께 한참 있응까 오더만. 오더니 또 이제 앞에 가드만 그냥.”

나레이션 // 결혼한 지 보름 만이었습니다.
남편은 3년 기한인 군대를 갔고
용순은 시집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강강술래 느린 장단)
용순 // (속말) 에휴, 나가 결혼을 했냐? 안 했냐? 군대 가니 첨엔 시원하드만 인자 갑갑해서 못 살겄네. 시아부지도 건강하고 시어무이도 건강하니 사람 아픈 줄도 모르고 중한 줄도 모르고,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그냥 못 살겄다 하고 나와불까?

박용순 육성 // “시아버지가 완고하시고 아들은 군대 가버리고 없으니까, 누가 놀러를 못 오게 해. 우리 집을. 새 각시들도 많고 친구도 많응께 놀러올 거인데, 우리 집에는 못 오게 해요. 아들이 없어서 그랬는가 모르는데 아무튼 시아버지가 못 오게 해. 그러니께 놀러를 와도 농 가려진데 숨어갖고도 있었고 머리를 창짝에 딱 대고 주무시드만. 누가 하나만, 개만 짖어도 내다보고 그러니까 놀러를 못 와요, 사람들이.”


나레이션 // 용순은 고향서 뛰며 부르던 강강술래가 그리웠고,
왠지 모르게 슬펐던 어머니들의 그 가락이 떠올랐습니다.
논과 밭을 매고, 밥을 하고, 물을 길어오고,
빨래를 하고 일은 끝이 없었지요.
게다가 아이를 낳기도 전에 시동생 여섯을 돌봐야 했습니다.

(백일 시동생 우는 소리)
(10살 시동생과 9살 시누이 싸우는 소리)
(아이들 소리)
시동생 // 야 그것 좀 줘봐~~
시누이 // 안디야~~
시동생 // 왜 안 돼. 줘보라고~~
시아버지 // 아이고, 시끄러워 못 살겄다. 인자 자야항께 조용히 혀들!
아이들 // 네..
(조용해지고)
시어머니 // 애기야, 신랑도 없응께 오늘부텀 큰방 와서 같이 자자. 시동상들 좀 봐라.
용순 // 그람 시아부지는요?
시어머니 // 사랑채로 가면 되제.
용순 // 야, 그러지라.

박용순 육성 // “가매 타고 올 때, 그것이 들었다고 3개월도 못 된 시아재가 맨날 울더만 아주. 그 애기가 밤이고 낮이고 울어요. 그랑께 가매 바람 맞았다고. 가매가 들어올 때 바람 맞았다고 시아재가 웁디다. 옛날에는 또 그런 것도 있더랑께. 아무튼 줄줄줄 했어요. 전부 애기들.”

(백일 시동생 우는 소리)
시어머니 // 애기야, 막둥이 시아재 운다.
용순 // 야~ 지가 볼텡께 퍼뜩 다녀오셔라~
시어머니 // 그려, 그려.
용순 // 밥 차려서 다들 믹이고 치고 다 할텡께 걱정마셔라.
시어머니 // 그려. 인자 곧 추석인디, 친정은 다녀와야 쓰겄제?
용순 // 야, 상황 봐서 가지라.
시어머니 // 이잉, 그려.

박용순 육성 // “봄에 가고 친정에 가고 가는 계절이 있어. 친정에를. 추석 쇠면 가고, 백중 쇠면 가고, 봄 돌아오면 또 설 쇠면 가고, 그렇게 댕겼는데 나는 친정에 자주 안 갔어. 그 애기 때문에. 애기를 내가 진짜 내가 키느라시피 해서 키웠어요. 그래서 이제 친정에서 옷을 만들어봐놔서 내가 그 베로 내가 그 아기 옷을 다 해서 만들어서 입히고.
그래도 그 시아재들이 밉거나 싫거나 그런 뭣이 없고, 그러니까 그 시아재들하고 다 같이 시누랑, 불편한지 그것도 몰랐어요. 그냥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살았으니까.”


<노래도 못하는 내가 강강술래를 했다니까>
#5. 1961년, 진도군 군내면, 강강술래 대회

나레이션 // 아무리 시아재들이 예쁘고, 잘 따랐다고 해도
말 그대로 시집살이는 고달픈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잠시라도 자유가 고팠던 용순은 추석 보름달이 뜨자 용기를 냈습니다.

용순 // 아부지, 오늘 추석인디 쪼까 나가봐야 쓰겄어요. 그라도 되지라?
시아버지 // 음......
시어머니 // 느그 시아부지가 암말 않는 건 가란 야그여.

(한많은 대동강 – 손인호)

박용순 육성 // “그래서 그날 저녁 나가서 콩쿨 대회 하는 데 나가서 노래도 했었고. 지금 생각하면 웃어. 그렇게 철이 없을까. <짝사랑> 하고 또 뭣했냐. <한 많은 대동강> 그런 것도 하고. 시어머니가 오고 시아버지는 안 오셨지만.
결혼을 해갖고 그래서 나도 웃음 나 죽겄어. 그때 이 생각하면. 속이 없었어요.”

용순 // 아부지, 올 추석엔 강강술래를 할라는디 그라도 되지라? 앞서 메김소리허는 두 명에 지가 뽑혔어라.
시아버지 // 음......
시어머니 // 느그 시아부지가 또 암말 않구먼. 강강술래 허는 건 된단 야그여.

(강강술래 소리)

나레이션 // 1961년 8월, 진도 촉진회 주관으로 열린 강강술래 대회.
군내초등학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용순의 어릴 적처럼 흥겨운 한마당이 시작됐습니다.

박용순 육성 // “이 부락에 아가씨들이 한 45명 정도 되았어요. 그렇게 많앴는데, 결혼한 나하고, 박윤자라고 둘이가 들어가게 되았는데 그것도 저녁이로, 밤이로 연습을 했어요. 그때는 별거 다 했어요. 아주. 뭐 둔전리도 쓰고, 태극기도 그리고 하여튼 안 한 것 없이 다했어. 그렇게 만들어서 강강술래를 했는디 둘이 들어갔는데 지망이 박윤자는 호루라기를 불고 리드를 하고 지금같이 우리가 소리는 맞음 소리를 하는 것이 아이라 내가 소리만 하고 전부 다 맞았어요. 그 대회를 나가려고 연습을 많이 했죠. 며칠 했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이로 우리 아가씨들이 막대기처럼 꼿꼿하냐고. 그러더니 많이 좀 가르쳐놓으니까 아가씨들이 아주 잘해.”

(자진강강술래)

나레이션 // 드디어 결과 발표 시간!
용순은 내심 1등을 기대했나 봅니다.

박용순 육성 // “그랑께 나도 지금 내가 어쯔케 그랬는가 몰라. 동네 사람들이 다 와갖고 그것도 있을 때. 둔전리가 제일 잘했는데 내가 보기도. 2등을 했어요, 2등을. 1등 안 주고. 그래서 상을 타러 나오라 해. 그래서 내가 나갔는데 상을 탄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앞에 책상을 밀어부렀어. 그때 뭔 용기로 그랬는고. 그래서 둔전리 사람들이 전부 면사무소에 가서 앉아서 우연히 강강술래 한번 했는데 향동 사람들이 굿을 많이 보러 왔었어요. 그래서 ”향동서는 한 번도 안 한 사람이 우쩌케 저기 가서 저렇게 하냐. 그 소리여.”


<식구가 많애도 그렇게 좋아요>
#6. 1966년, 진도군 고군면 향동, 친정집


(한 달된 아기 우는 소리)
어머니 // 아따, 용순아, 어쩌쓰까. 니맹기로 이뻐야. 욕봤다!

용순(슬픔) // 엄매가 처음 외할매 된 건 재작년이지라.
어머니 // 고걸 여적 못 잊냐?
용순 // (첫아들 잃었던 기억에 우는) 그람요, 아들이었는디, 병원에만 갔으면 살았을 거인디... 흑흑
어머니 // 인자 그만 잊어뿔고, 야는 잘 지켜야제.
용순 // (애써 밝게) 그라지라, 엄매가 우들한티 한 거맹이 잘 키워야지요.
어머니 // 그려, 그란디 사우는 잘해주냐? 엄매 말이 맞제?
용순 // (울음 그치고) 엄매가 허라는 대로 결혼 잘 했지라. 착하고 자상허고 누구한테도 댈 수 없이 생활력이 강하지라. 겨울에도 가마닐 치고, 새끼를 꼬고, 낮에는 장에로 고것들을 팔고 오는디, 참말로 든든허요.
어머니 // 다행이여. 여섯 시동상 키우는 것도 고마워하제?
용순 // 야. 인자 시아부지도 잘해주셔라.


#7. 1976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나레이션 // 박용순 보유자는 1966년 스물 아홉에 낳은
큰딸 이향아를 시작으로 8남매의 어머니가 됐습니다.
조카 둘도 자식처럼 거뒀지요.
키우고 가르치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박용순 육성 // “새벽에 모 하러 간다고 나가면 시계가 없으니까 몇 신지도 몰라. 닭이 울모 그냥 나가. 그러면 가서 모 하루 심을 거 떠놓고도 날이 안 새면 거기서 논두렁에서 자고. 그러고 누워 있다가 날 새면 뭐하고. 욕심을 어째 냈던가 지금은 그것도 모르겄고.
“이제 좀 부끄러운 일 같은데 내가 굉장히 학교가 댕그고 싶어도 못 댕겼고, 가난하니까. 그래갖고 나는 어떻게 하든지 돈을 벌어야 쓰겄다. 일을 이라도 해서 벌고, 애기 아빠도 못 배웠지만은 굉장히 머리가 좋았어요. 그래서 그 둘이 마음이 맞았어요. 나도 못 배우고 아빠도 못 배웠으니까 애기들은 열심히 갈쳐야 쓰겄다, 그러고는 어떻게 하든지 가르쳐야 쓰겄다 그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논을 더 많이 벌었어요, 또 논을.”


(재봉틀질 하는 소리)
남편 // 향아 엄마, 시방 재봉틀질하는 고거, 강강술래 때 입었던 한복 아녀?
용순 // 야, 인자 여덟 번째로 둘째 아들을 낳았응께 지대로 배웠으면 하는디, 당신 맴은 어떻소?
남편 // 뭘 허락을 받어? 맘껏 하소!
용순 // 여그 둔전리 최소심 그분이 강강술래 보유자가 됐다는디 진도문화원 조담환 씨가 나서서 전수생을 모집하드만. 하도 해싸서 결국 한다고 했어라.
남편 // 허.... 근디 걱정이 되아. 뭐이든 대강 하는 법이 없응께 말여.

나레이션 // 나이 마흔셋의 용순은
강강술래 전수생이 되기로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었어도 팔남매와 조카들 키우랴,
농사일하랴, 하루하루가 고됐던 용순에게는 큰 결심이었습니다.


< 마무리 코너-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자진강강술래 소리)

나레이션 // 여러분은 지금, 오늘의 주인공인 박용순 보유자가 함께한 강강술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강강술래는 1966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공연 예술로서의 형식을 갖게 됐습니다.
경인교대 음악교육과 김혜정 교수로부터 강강술래의 구성상 특징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김혜정 // 좁은 의미로는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있으면 그것을 강강술래라고 할 수 있는 거고요. 그 뒤에 붙는 여러 가지 놀이를 저희가 부수놀이 또는 여흥놀이 이렇게도 이야기를 해요. 당시에 유행하는 모든 놀이가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예요. 완전 열려 있는 구조라고 생각하시면 되죠.
그래서 강강술래를 보름달이 뜰 무렵 만나서 뛰기 시작했는데 막 빨라져서 힘들면 쉬어요. 그러면 쉬는 그 타이밍이 되면 뛰느라고 힘들었으니까 앉아서 제일 많이 하는 게 종지기 돌리기를 제일 많이 했다고 하거든요. 한복 치마 아래쪽으로 간장 종지기를 이렇게 돌리는 거예요, 수건돌리기처럼. 그러면 걸리는 사람이 일어나서 노래하고, 이렇게 하는 그런 벌칙을 받기도 하고.
그렇게 하다가 좀 기운이 차려지면 ‘우리 뭐 하자.’ 이러는 거예요. ‘우리 고사리 꺾자.’ 또는 ‘우리 청어 한번 엮어보자.’ 이렇게 하는 누군가가 있어요. 그러면 일어나서 청어를 또 한번 엮어보고 고사리 한번 꺾어보고 하는 식으로 자기들이 원하는 놀이를 거기에 끼워 넣을 수 있는데 제한이 없어요.
본인들이 하는 모든 놀이가 강강술래 판에 같이 끼어들 수 있었고 같이 놀 수 있는 놀이였어요. 그 놀이도 유행이 있잖아요. 어떤 게 더 유행한다. 그러면 그 유행하는 놀이가 그 자리를 대신 차고 들어올 수 있는 거고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서 강강술래는 굉장히 열린 구조다. 개방된 구조고 놀이는 계속 변하고 변화된 놀이를 계속 수용하고 이러한 모습으로 진행이 되어왔다고 볼 수 있고.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강강술래, 박 용 순. 두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정미숙, 정영웅, 전해리, 오민혁, 한만중, 이한솔, 류지아, 김단,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조성도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한 가정의 어머니와 농부로서 헌신적인 삶을 살면서도 만학의 꿈을 이루며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온 강강술래 보유자 박용순의 생애를 담은 오디오 다큐드라마이다.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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