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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유기장 김근수
발행일 : 2021-01-22 조회수 : 3670
유기장 김근수

1916. 7. 12 ~ 2009. 3. 6 | 보유자 인정: 1983년 6월 1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유기장 김근수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Master Artisan of Brassware Making

몸을 비추는 것이 모두 거을은 아니지만 몸을 비추면서도 제 속까지를 다 비추는 물은 더 없이 아름다운 겨울이다. 유년시절, 물가에 앉아 놋그릇을 닦으시던 어머니의 손은 온통 황토 범벅이 돼 있었다. 나는 종종 어머니의 곁에서 내 몫으로 남겨진 조그만 놋그릇을 닦곤 했다. 벗겨진 녹이 차츰 풀려 물은 청동거울 같았다. 짚수세미에 황토를 묻혀 천천히 놋그릇을 닦는 일, 세상살이도 그렇게 녹을 벗겨 내듯 하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는 돌멩이를 주워 물위에 던졌다.

- 시현실 2000년 겨울호, 김충규 [놋그릇] 중에서

조선시대 때부터 많은 이들이 갖고 싶어 했던 ‘안성맞춤’

유기란 좁은 의미로는 놋쇠로 만든 그릇이라는 뜻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銅을 기본으로 하는 비철금속의 합금으로 만든 여러 가지 기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식기의 경우 여름에는 백자, 겨울에는 유기를 즐겨 썼으며 그밖의 갖가지 세간에도 유기제품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유기를 언제부터 사용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넓은 의미에서 동합금의 일종인 청동기 시대의 동검이나 동경 같은 물건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사용이 확대된 시기는 삼국시대부터이다. 삼국시대에는 주로 불교와 관련되어 불상, 범종, 반자 등을 청동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불교에서 뿐만 아니라 제기, 수저, 밥그릇, 향로 등 생활의 전반에 걸쳐서 동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상류층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유기가 일반대중들에게까지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같은 유기라도 제작방법에 의해 구분짓고 있다. 주조해서 만드는 곳은 ‘퉁점’이며 여기서 만든 주물 유기는 ‘붓배기’라 하며 안성이 유명하고, 단조해서 만드는 곳은 ‘놋점’이라 하며, 여기서 만드는 단조품은 ‘방짜’라 부르며 납청 일대가 유명하다. 특히 안성은 행세깨나 한다는 집에서는 갖고 싶어한다는 ‘안성맞춤’으로 이름 높았다. 안성의 유기가 다른 지방보다 유명한 것은 서울 반상가의 그릇을 주문받아 제작하였기 때문이다. 안성맞춤 유기는 일반인이 사용하는 보통 그릇인 ‘장내기’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였다.

유기회사에 입사, 장인 김기준에게 유기를 배우다

근대기에 안성에는 크고 작은 유기제작 공장이 많이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큰 것이 안성유기제조주식회사였다. 김근수 선생은 20세때 유기회사에 외무사원으로 입사하여 처음으로 유기와 인연을 맺었다. 이때 공장에서 숙련된 유기 장인인 김기준 선생으로부터 배웠다. 해방 후 스승인 김기준 선생과 함께 유기공장을 차렸다. 안성유기의 명성덕분에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6.25전쟁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스승이 작고한 뒤 독립하여 안성유기공업사를 차리고 이후 풍화유기공업사로, 그리고 신시산업주식회사로 회사 이름을 바꾸며 유기작업을 계속하였다. 1983년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된 후 활발하게 유기 작품을 제작하였고 2005년 명예보유자로 인정되었다가 2009년 타계하였다. 선생의 사후 주물 유기 제작기술은 그의 아들 김수영 선생이 대를 이어 2008년 유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전수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김근수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종묘제기, 능제기 같은 제기류와 칠첩반상기, 주전자세트 같은 식기류, 대야나 화로 같은 일상기물, 불구 등 각종 기명들이 있다.

작품

보

종묘제기는 변이나 두(豆)와 같이 중국 고대 국가에서 사용하던 제가들과 형태는 닮았고, 재료는 대나무, 나무, 자기, 놋쇠 등으로 29종 5,000여 개의 제기가 사용되었다. 이중 놋쇠로 만든 제기는 한 신실에 66종인데, 그중 종묘에서만 사용하는 대표적인 제기가 보(?)이다. 보의 형태는 네모져 땅을 상징하며, 둥근 형태의 궤(?)와 한 짝을 이룬다. 보에는 쌀과 기장을 담는데, 뚜껑이 있으며 표면에는 직선형 뇌문을 빽빽하게 새기며, 내 귀에는 용머리를 부각하여 붙인다. 김근수 보유자가 종묘제기를 복제하여 주물로 새겨서 말든 작품이다.

궤

종묘제례가 거행될 때 보궤는 제사상의 가장 중앙에 진설되는 제기이다. 궤는 네모진 보와 달리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이며, 제례 때에는 메기장과 피를 담는다. 뚜껑을 만들어 덮는데, 뚜껑에는 구름모양이 높게 솟아 있다. 궤의 몸통에는 여의두형 물결무늬를 촘촘하게 새기며 양쪽 손잡이에는 용머리를 길게 늘인 형태로 만든다. 굽에 해당되는 네 다리는 도깨비의 얼굴을 얕게 부조하는데, 전체적으로 유기장 김근수의 치밀한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옥바리7첩반상기옥바리7첩반상기

반상기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상차림이다. 그릇의 형태는 옥바리[오목반상기], 연엽식기, 합식기로 나뉜다. 옥바리는 위가 좁고 속이 오목한 형태로 주물기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반상기 위에는 밥그릇인 주발, 국그릇인 탕기, 그리고 장류를 담는 종지, 숭늉을 담는 대접을 놓는다. 대접은 항상 밑을 받치는 쟁반과 한 벌을 이룬다. 7첩 반상의 음식은 반찬 가짓수가 5첩반상보다 늘어난 것이다. 종지는 초고추장을 더해 3개이고, 찜이 추가되며, 전이 더 놓이며, 회를 올려 놓은 것이다. 유기로 만든 반상기 중 안성의 것은 안성마춤이라 조선시대부터 많은 이들이 갖고 싶어 찾던 그릇이다.

용문향로용문향로

제사에서 향을 사르는 것은 돌아가신 이의 혼을 부르기도 하고, 제사 공간을 정화하는 기능도 하고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향을 사르는 향로는 향을 담는 향합과 한쌍을 이루어 종묘제례 때 각 신실마다 향탁 위에 한쌍으로 놓이게 된다. 특히 용문향로는 향로의 뚜껑에 구름 사이로 용의 몸통을 투각한 위로 용머리가 위로 불쑥 튀어나온 조형적인 모습으로 왕실 제기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등유등

유등은 전기가 없던 시절에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조명기구 중 하나이다. 유등은 세 가지 구조로 되어 있는데 가장 아래쪽에는 판 형태의 원형 접시를 놓고, 그 위로 기름종지를 매달 수 있도록 수직의 기둥을 세우며, 기둥에 기름을 넣는 작은 종지를 넣을 수 있는 구조이다. 건물의 규모에 따라 유등의 크기도 달라져 궁궐의 전각에는 크기가 큰 유등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간결하면서도 구조적인 형태가 잘 살아나 있다.

제기 일습제기 일습

제사는 조상신을 추모하는 효의 표상이다. 제기는 이러한 제사를 드리는데 사용하는 의식용 그릇이다. 사대부 집안의 제사에서는 신위를 올려놓는 영좌교의와 제기를 진설하는 제사상, 향로와 향합이 놓이는 향상과 술상이 놓인다. 제기는 촛대 1쌍과 함께 굽이 높은 제기를 사용한다. 조선시대에 행세하는 집안의 제기는 유기를 사용하였는데, 구삼벌이라 하여(촛대 1쌍, 향로 1, 향합 1)을 비롯하여, 제주발, 갱기, 수저, 젓가락, 제잔 및 잔탁, 탕그릇, 편틀, 적틀, 포틀, 약기, 제종지, 제접시, 모사기[모래그릇], 퇴주그릇, 주전자, 시접 등을 유기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러한 유기로 만든 제기는 일반 그릇과 달리 굽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기장 김근수의 제기는 전통적인 제기의 구성을 잘 알고 정성을 다해 제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작업도구 및 제작과정

주조방법으로 유기를 제작하는 과정은 1) 번기 만들기와 쇳물 붓기를 하는 부질간 작업, 2) 표면을 깎고 본색을 내는 가질간 작업, 3) 표면에 장식을 더하는 장식간 작업으로 분업화되어 있다. 각 공정마다 필요한 여러 가지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

향남틀

향남틀

부질간 작업에서 사용하는 도구들

부질간 작업에서 사용하는 도구들

가질과 장식간 작업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들(1)

가질과 장식간 작업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들(1)

가질과 장식간 작업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들(2)

가질과 장식간 작업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도구들(2)

부질간 공정

부질이란 녹인 쇳물을 주형(틀)에 부어 원하는 기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부질하는 곳은 부질간, 부질하는 장인은 부질대장이라고 부른다.

  • 화덕만들기 : 화덕은 쇠를 녹이는 독으로 일명 풀무독이라고도 한다.
  • 갯토만들기 : 화덕이 완성되면 갯토를 만든다. 갯토는 기물의 번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 하는 특별한 흙이다.
  • 쇳물 끓이기(용해) : 주물할 금속을 합금 비율로 도가니에 담고 이 도가니를 화덕 속에 넣는다.
  • 번기만들기 : 쇳물이 준비되는 동안 부질대장은 쇳물이 들어갈 번기의 형태를 만든다.
  • 그음질 : 옛날에는 관솔가지를 이용하여 그을음질을 하였으나 요즘엔 솜방망이에 기름 을 칠하여 나오는 그을음을 이용한다.
  • 쇳물 붓기 : 암틀을 등가래(쇳물을 부을 때 가스가 생기면 튈 염려가 있으므로 벽에 밀착시켜 놓는 판)에 밀착시키고 수틀에 밀어 넣는다.
가질간 공정

가질이란 부질하여 만들어진 기물의 형태를 깎고 다듬는 것을 말하며 가질하는 곳을 가질간, 가질하는 장인을 가질대장이라고 부른다. 가질틀과 가질칼은 가질간에서 가장 중요한 공구이다.

장식간 공정

장식간이란 기물을 장식하거나, 또는 분리된 기물일 경우 조립하는 곳을 이야기하며 때에 따라서는 도금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뜨거운 쇳물에 혼을 녹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보유자 김수영 1부


(김근수 선생님 아드님 김수영 선생님 영상)


대본보기
프로그램 동영상 소스코드 정보
대본보기 # 프롤로그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멋과 깊이를 더해가는 그릇이 있다.
# 쇳물 붓는사람의 손길에서 태어나 사람을 살리는 그릇, 안성맞춤 유기다.
3대를 이어가는 기술로 유기를 고집하는 중요무형문화제 77호!
#김수영 유기장 옆모습김수영 유기장, 그의 삶에 녹아든 철학과 고집을 들어본다.
# 안성 부감샷경기도 안성 이곳에 ‘안성맞춤’을 탄생시킨, 전통이 숨 쉬고 있다.
# 외경, 작업장10장인들이 만들어낸 맞춤 그릇이 어찌나 앙증맞은지, 안성에서 맞추면 마음에 딱 맞는다고 해서 # 머리목 틀들‘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겼다는데, 그것이 바로, 안성 유기다...
(인터뷰)
이런 그릇을 가공하려면 그릇을 꽉 물어주는 도구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름을 머리목이라고 해서, 이곳에다가 그릇을 박아서 가제틀에 넣어서 칼로 깎는 작업을 하는거예요
그런 도구예요. 머리목이라고 그래서 그릇하나에 이런 모양이 같이 있어요
안 깎는 것이 따로 있고, 껍데기 깎는 것이 따로 있고
# 그릇 깎는 대를 이어, 안성맞춤의 전통과 명성을 이어가는 이사람... 유기장, 김수영 장인이다.
(인터뷰)
처음에는 거친 목칼로 깎고, 중간 칼로 한 번 더 깎고 이렇게 가늘고 좋은 평칼로 마무리 작업을 하는 거예요
# 점점 빛나는 그릇명품 중에 명품을 빚어내는 진지한 손길... 결코 간단한 직업이 아닐터인데,
(인터뷰)
안과 겉을 깎으려면 2,30분 걸려요
# 불5유기는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반방짜 등이 있는데,
# 틀 빼내기15김수영 선생은 쇳물을 형틀에 부어 그릇을 만드는 주물분야의 장인이다.
놋쇠덩어리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쳐서 그릇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 방짜라면, 주물은 쇳물을 녹여 일정한 형태의 틀안에 따라 붓는 공정을 통해 탄생한다. # (쌓여있는 틀)살펴보는 유기장
10주물의 방식으로 제조하다보니 수많은 형틀이 그의 지나온 자취들을 이야기 해준다.
(인터뷰)
이만한 그릇의 밥을 드실 수 있겠어요?
(인터뷰)
밥을 눌러 푸지 않고, 어머니들이 이만큼 올라오게 (밥을) 담으셨잖아요
(인터뷰)
밥 그릇 크기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예요 작고, 아담하고 예쁘게
(인터뷰)
직접 만든 것도 있고, 아버지 살아계셨을 때 만들어서 쓰던 것이 지금도 있죠
과거 아버지가 만드시는 것을 참고를 해서 (제작을 해요) 선 같은 것이 참 예쁘거든요. 많이 적용을 하죠
# 아버지와 아들 과거 사진
아버지, 김근수 옹의 뒤를 이어 지난 2008년 8월 5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임명된 장인...
유기장이 된 것은 그에겐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현장음)
어렸을 때부터 금형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자연스럽게 도와드리면서 유기를 만들게 되었어요
# 쌓여있는 그릇들아버지 때부터 장인에 이르기까지, 70여년의 세월을 이야기 해주는 유기 형틀들...
# 제기 무늬그런데, 이곳에 색다른 무늬의 유기가 보인다.
(인터뷰)
조선왕릉 제기예요 저희가 지금 제작하는 거예요
가공은 아직 전이지만 주물이 다 나왔어요
# 왕릉제기 복원 관련 최근, 600년의 숨결을 이어 제향 봉행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 내려온 유물, 조선왕릉 제례 제기들을 최초로 복원하는 역사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제사 잠깐 보고)
# 작업 중인 김수영 선생 그 중심에 유기장 김수영 장인이 있는 것이다.
그의 솜씨가 역사의 한 순간을 장식하게 된 것.
(인터뷰)
산뢰라고 술 담는 통 이에요. 술통
(인터뷰)
이건 용작이라고 해서, 산뢰에서 술을 푸는 국자예요
# 전촉자 5한 번의 제례에 쓰이는 제기만도 약 80여개, 그 종류도 각양각색. (인터뷰)
이건 전촉자라고 해서 제사를 오래 지내면 초 심지의 재가 있잖아요. 재를 이걸로 자르는 거예요
#작업 7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 500년의 역사를 써내려온 제기들, 사실, 그 복원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인터뷰)
이건 ‘다시 우리’라고 하는 건데요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는 주물이 안 나오거든요
이렇게 펴진 상태에서 주물을 만들어서 동그랗게 마는 거예요
(인터뷰)
시간이 무척 걸리죠 합금이 잘 맞지를 않으면 동그랗게 말아지지가 않아요
만들기가 상당히 조심스럽고 어렵습니다
# 부질간 8제기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거친 후, 실제 제작에 들어가는데, 세월이 무색하게 전통방식 그대로의 제작방법을 고수한다.
(인터뷰)
흙이 거칠해서 올라오는데 그걸 재워 주는거예요
(인터뷰/ 색깔다르게)
일반 물인가요?
(인터뷰)
소금간이 약간 되어 있어요
# 가루 과거, 바닷물을 사용한 것처럼 물에 소금을 희석해서 사용하는 것이나, 송탄 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그러하다.
(인터뷰)
송탄가루예요. 틀이 안을 찍는 틀과 바깥을 찍는 틀, 두 개가 있어요
송탄을 안 뿌려지면 두 틀의 흙이 합쳐져요
송탄을 뿌려줌으로써 암틀과 수틀이 매끈하게 떨어져요
# 흙 치는 송탄을 뿌린 후, 채친 보드라운 흙을 금형에 채워 넣는 것.
(인터뷰)
덩어리가 섞여서 들어가면 그 자리가 자국이 생겨요. 매끈하지가 않고
# 흙 채워넣기10안성이 유기가 유명한 것도.. 인근 아산만에 유기 주물을 할 때 사용 되는 흙이 풍부했는데 그 입자가 특히 고와 다른 지역보다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인터뷰)
여기서는 갯토라고 하죠. 민물하고 썰물하고 간만의 차로 흙 입자가 아주 고은 것..
입자가 고우니까 문양도 깨끗하게 찍히고 ..을 주입했을 때 가스도 잘 빨아들이고요 # 코스모스그날 오후...
# 사람들 뛰어가고10김수영 장인이 작업을 멈추고,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게 무슨 일!
공장에 사고가 일어났다.


약력

  • 1916년 7월출생
  • 1967년안성군 수평문 단지회 회장, 안성상공회의소 6대 회장
  • 1975년안성마춤 유기공방 경영
  • 1979년제4회 인간문화재 공예전 국무총리상 수상
  • 1981년관광 공예품 경진대회 무역진흥공사 사장상 수상
  • 1983년 6월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0년전국공예품 경진대회 특선
  • 1991년안성군 제1회 문화상 수상
  • 1992년국가무형문화재기능보존회 회장
  • 1981년관광 공예품 경진대회 출품
  • 1988년안성마춤 유기 특별전
  • 1990년전국공예품 경진대회 출품
  • 1983년~2009년국가무형문화재보유자 작품전 출품
  • 1998년보성다향제 전통공예전
  • 2005년4월 명예보유자 인정
  • 2009년 3월별세
  • 글 이치헌 (한국문화재재단 홍보팀장 /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 저자)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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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31x16x2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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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의 장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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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리7첩 반상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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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바리7첩 반상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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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향로의 용 머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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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과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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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과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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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과정(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