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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입사장 홍정실
발행일 : 2021-01-22 조회수 : 4244
입사장 홍정실

1947. 1. 3 ~ | 보유자 인정: 1996년 3월 11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입사장 홍정실

국가무형유산 입사장
Master Artisan of Silver Inlaying Holder

세월도 무덤이다 / 일곱 개의 칼끝에서 / 별들이 떨어진다

찌르고 찌르다가 / 베어 문 일곱 개의 하늘이 무너져 / 무덤 속으로 든다

문득, 무덤 위 잔디에 섞여 솟아난 / 할미꽃의 슬픈 자주색이 내 눈을 후빈다

백제도 가고 왜倭도 가고 / 칼도 어딘가로 자꾸만 가서

또 한 송이의 자주색이 된다

- 문효치 시집『七支刀』 중 ‘백제시 - 七支刀’

우리 얼의 아름다움을 새겨 넣는 ‘은실박이[入絲匠]’

입사(入絲)란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금선(金線)이나 은선(銀線)을 끼워 넣어 장식하는 상감기법을 말한다. 입사는 우리나라 금속공예 중에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통공예기법이다. 금속 표면에 금실이나 은실을 박아 무늬를 장식하는 기예로서 금속공예의 정화(精華)로 일컬어 오고 있다. 이러한 입사는 금속표면에 홈을 파거나 쪼아서 금속선이나 금속판을 그 위에 박음으로 두 금속을 땜없이 붙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금속물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 기법은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술로, 각 나라마다 고유한 이름으로 불려졌는데 우리 조상들은 이 기법을 입사라고 불렀으며 주로 은실을 박아 장신한 데서 연유하여 은실박이, 은입사라고 부르고 있다.

입사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금속 표면에 가는 홈을 파고 그 안에 은선을 박아 넣는 오래된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금속 바탕 위에 얇은 금판, 은판이나 선을 올려 놓고 망치로 세게 쳐서 붙이는 방법으로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제작기법이다. 이런 방식으로 금속 표면에 빗살무늬, 아(亞)자 무늬 등 기하학 무늬는 물론 사군자와 같은 회화적 문양을 새기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 금속유물에서 보이는 이 기법을 흔히 입사 대신 상감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해 왔다. 상감(象嵌)은 어떤 용기의 표면에 홈을 파고 색감이나 질감이 다른 재료를 그 안에 끼워 넣어 장식하는 기법을 말한다. 금속에만 적용되어 말할 수 있는 입사와는 달리 상감은 재료에 상관없이 쓰일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장식 기술 용어이다. 유물 중에는 신라 유물 중 6세기 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금에 마노를 박아 장식한 장식보검(보물,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에서 상감기법의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입사의 기원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입사유물은 백제, 가야, 신라를 중심으로 20 여점 정도인데 대부분이 고리자루칼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지 가장 오래된 입사유물로는 현재 일본 이소노카미(石上)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백제시대의 칠지도이며, 국내에서 출토된 가장 빠른 시기의 유물은 충남 천안 화성리에서 출토된 4세기 후반 백제의 철제은입사고리자루칼이다. 이러한 칼들은 백제에서는 4~5세기에, 가야에서는 5~6새기, 신라에서는 6세기에 주로 나타나며,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입사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불교 공예품을 통하여 찬란히 꽃피우게 되었다. 향완, 정병, 합과 같은 불교용품을 중심으로 하였던 고려의 입사공예품은 유교가 성행하였던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일상생활의 기물들로 바뀌었으며 그 사용의 범위가 보다 넓어지고 품목도 다양해진다. 조선중기 이후 한반도에는 종전의 입사방법과는 다른 입사방법이 나타나며 전대의 입사전통을 잇게 되는데 이전의 청동에 장식하던 입사물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대신 철제에 은입사 되는 기물들로 대체되었다. 바탕금속의 재질이 청동에서 철로 바뀌어짐에 따라 무늬를 새겨 넣는 기술은 물론, 무늬의 표현방법, 내용 등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고려시대가 입사기술의 절정기였다면 조선시대는 입사공예가 생활 속에 자리잡은 가장 보편화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기관에서 경공장으로서 입사장을 두어 전통적으로 그 기교를 계승함과 동시에 국가나 궁중에서 필요한 작품을 충당하게 하였다.

금속 위에 마음의 수를 놓는 홍정실 선생

홍정실 선생은 194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었다고 한다. 1965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여자대학교 공예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69년부터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였다. 이후 서울여자대학교 공예학과 교수이자 금속공예가인 권길중 선생에게 현대적 공예기술을 배우며 모교인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현대 금속공예를 전공했지만 우리 전통 금속공예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예용해 선생이 쓴 <인간문화재>라는 책을 읽고 우리의 전통입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사동의 고미술가를 드나들던 때인 1978년 우연히 인사동에 위치한 한국전통기능보존협회로 찾아가 당시 협회 사무국장의 소개로 국가무형유산 조각장 기능보유자인 김정섭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김정섭 선생의 문하에서 조각기술을 연마하던 중 78세의 고령인 이학응 선생(이학응 선생은 60세 이후로는 입사작업을 그만 둔 상태였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수소문 끝에 찾아뵙고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1978년 가을, 이학응 선생의 문하에서 입사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이하응 선생은 당시 80대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홍정실 선생이 우리 전통의 입사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것을 기특하게 여겨 성심을 다해 가르쳤다고 한다.

홍정실 선생은 입사의 예술성과 전통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에 전통 입사의 보전과 전승을 위해서는 입사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입사에 관련된 자료와 스승인 이학응 선생에 관한 자료를 당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제출하고 국가무형유산 지정을 신청했다. 문화재위원회의 심사에 의해 1983년 입사기능이 국가무형유산 입사장으로 지정되었고 이학응 선생이 초대 입사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당시 홍정실 선생은 국가무형유산 조각장 김정섭 선생의 문하에서 조각기법을 연마하던 중이었고 조각장의 전수장학생 신분이었는데 이학응 선생의 바람으로 입사장 전수장학생으로 변경, 선정되었다. 이후 입사기술의 연마와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여 1987년 전수교육조교(현 전승교육사로 개칭)로 인정되었고, 스승인 이학응 선생이 1988년 노환으로 별세한 이후 1996년 국가무형유산 입사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홍정실 선생은 입사기술을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일에도 힘써 왔다. 1995년에는 전수생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칠만한 공간의 필요성에 따라 ‘길금공예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길금공예연구소는 서울시 송파구에 설립되었다가 1998년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강남구 삼성동 위치) 설립 후 이곳으로 이전되었다. 현재까지 길금공예연구소에서 입사기술을 배운 이들은 대학교수, 강사, 디자이너 등이며 작품제작과 전시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품

죽향_16x11x13cm

전통의 기법을 현대 생활기물과 접목시켜 작품화하였다. 은제 주전자 몸통에 금, 은 입사 기법으로 장식하고 젙통 옻칠로 마무리하였다.

죽향_16x11x13cm_01
죽향_16x11x13cm_02
죽향_16x11x13cm_03
은입사 불로초문 향로_22x26x25cm
은입사 불로초문 향로_22x26x25cm_01
은입사 불로초문 향로_22x26x25cm_02
은입사 불로초문 향로_22x26x25cm_03
은입사길상문향로_29x23x24cm
은입사길상문향로_29x23x24cm_01
은입사길상문향로_29x23x24cm_02
은입사길상문향로_29x23x24cm_03

제작과정

입사의 재료는 크게 바탕금속과 입사재료로 나눌 수 있는데 바탕금속은 철과 청동이, 입사재료로는 금, 은, 동이 사용된다. 입사의 실제 제작과정은 크게 바탕 작업과정, 은실박이 작업과정, 마무리 작업(착색) 과정으로 나누게 되는데 이에 앞서 기물을 만들고, 작업 시 진동을 막고 탄력을 주어 쪼음질과 박음질을 효율적으로 하게 하기 위해 입사될 기물 내부에 채워 넣게 되는 감탕을 만드는 작업과 입사할 금실이나 은실을 만드는 작업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선행작업이 끝나면 첫 번째 공정인 바탕작업이 시작되는데 입사를 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공정으로 입사될 금속의 바탕을 정으로 고르게 쪼아가는 쪼음질, 쪼음질로 거칠어진 표면을 정돈하여 부드럽게 만들고, 은선을 고르게 박을 수 있도록 하는 갈기질로 이루어진다. 은실박이 작업은 쪼음질 바탕에 은실을 박는 과정으로 입사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 실현되는 공정이다. 이 과정은 무늬 옮기기, 은실박기, 뿔질, 광쇠질, 무늬 놓기 등의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은실박이 작업이 완전히 끝나면, 기물에 채워져 있는 감탕을 제거하고, 기물의 표면을 산(弱酸) 처리하여 녹내기 작업을 하고, 기물에 슨 녹을 털어낸 후 검댕옷(검댕이와 들기름의 혼합물)을 만들어 녹이 난 부분에 바르고, 2차에 걸친 굽기 과정을 거친 후 검댕옷을 긁어내고 광쇠로 문질러 은실박이 된 무늬를 따라 광내기를 하는 것으로 모든 작업공정이 끝이 난다.

1_송곳정과 마치를 잉요하여 무늬를 찍는 모습

1_송곳정과 마치를 잉요하여 무늬를 찍는 모습

2_미리 만들어 놓은 은사나 금사 중에서 입사할 무느이에 알맞은 선의 굵기를 선택한다.

2_미리 만들어 놓은 은사나 금사 중에서 입사할 무느이에 알맞은 선의 굵기를 선택한다.

3_송곳정으로 찍은 무늬에 따라 은실을 박는다.

3_송곳정으로 찍은 무늬에 따라 은실을 박는다.

4_광쇠로 은선을 문지르면 광이 나게 되는데, 부수적으로 표면과 은선이 더 단단하게 밀착되는 효과가 있다.

4_광쇠로 은선을 문지르면 광이 나게 되는데, 부수적으로 표면과 은선이 더 단단하게 밀착되는 효과가 있다.

약력

  • 1947년출생
  • 1965년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 1969년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공예미술전공 졸업
  • 1971년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졸업
  • 1978년국가무형유산 조각장 기능보유자 김정섭 선생에게 조각기술 전수
  • 1978년국가무형유산 입사장 기능보유자 이학응 선생에게 입사기술 전수
  • 1981년G.I.A. Jewelry Design 과정, Engraving 과정 수료
  • 1984년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전문장신구 디자인’ 연수
  • 1985년원광대 미술대학 금속공예과 교수
  • 1995년노동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기능전승 전문위원
  • 1996년국가무형유산 입사장 기능보유자 인정
  • 1998년대한민국 명장 심사위원
  • 2000년한국교육개발원 학점인정 심의위원회 위원
  • 2002년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
  • 글 이치헌 / (국가유산진흥원 전승지원실장 /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 저자)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금은입사촛대, 홍정실, 53cm.jpg

금은입사촛대, 홍정실, 53cm

금은입사효제문 향로, 홍정실, 19x20cm.jpg

금은입사효제문 향로, 홍정실, 19x20cm

금입사매화문주전자, 홍정실, 21x21cm.jpg

금입사매화문주전자, 홍정실, 21x21cm

은입사 불로초문 향로.jpg

은입사 불로초문 향로

은입사 촛대, 홍정실, 25x87cm.jpg

은입사 촛대, 홍정실, 25x87cm

제작도구_입사마치.jpg

제작도구_입사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