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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봄, 여름호-동물의왕국] 즐기다-세화와 민화 속 동물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1-10-01 조회수 : 4337



세화와 민화 속 동물



민화가 발전·전래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의 우리 선조들은 오랫동안 복 많이 받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그리고 민화 중 에서는 토속적인 종교와 결합한 풍습에 의해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된 것들이 있다. 이를 세화(歲畵)라 하며 일상생활 속의 풍속이 되었다. 만백 성들이 우러러보는 궁중은 물론이고 사대부들의 저택, 일반 서민들의 집에서 입춘방처럼 축귀(逐鬼)나 구복(求福)의 상징으로 그린 세화를 정 월 초하룻날 대문 또는 집 안에 걸거나 붙였다. 세화 속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세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누어지는 데, ‘영적인 힘을 지닌 동물 그림을 집에 둠으로써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 벽사적 동물과, 수백 년 이상 오래 살 수 있는 동물들이 등장 하는 십장생의 동물로 나눌 수 있다. 닭, 개, 사자,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계견사호(鷄犬獅虎)>는 집을 지켰던 그림의 대표이다. 조선 후기 저 명한 학자인 사옹( .翁) 홍성모(洪錫謨, 1781-1857)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정초 세화로 계견사호(鷄犬獅虎)를 그려 붙였다.”고 하였다. 


글_ 윤열수(가회민화박물관장)


닭, 나쁜 것은 쫓고 좋은 일은 불러오는 길상의 상징


옛사람들은 닭이 울면 어둠이 걷히고 여러 잡귀가 물러간다 고 믿었기 때문에 민속 신앙에서 닭은 상서롭고 신비로운 길조 로 보았다. 닭은 주역(周易)의 팔괘 가운데 남동쪽을 의미하는 ‘손(巽)’괘에 해당하는 동물인데,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므 로, 어둠을 몰아내고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것을 신비한 닭이 담당한다고 믿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설 전날) 귀신이 민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 면 신고 가버리지만 닭이 울어 날이 밝으면 도망가 버린다.”라고 적혀있어 귀신을 물리치는 능력을 지닌 닭의 습성을 확인할수 있다. 민화에서 볼 수 있는 닭 그림에는 현실의 재앙을 막고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음인 벽사(僻邪)·길상(吉祥)의 의미를 비롯해 다양한 뜻을 담고 있는 작품이 많다. 



(즐기다-2_사진01)화조도(닭 부분), 지본채색, 98×33cm _ 가회민화박물관


화조도(닭 부분), 지본채색, 98×33cm _ 가회민화박물관



그중에서도 닭이 한 마리만 등장하는 그림은 벽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닭 그림은 전통적으로 호랑이 그림과 함께 정초에 벽사, 초복의 뜻을 담아 대문이나 집안에 붙였던 세화의 일 종으로 직접 그리거나 목판으로찍어서 사용하였다. 수탉이 울면 동이 트고, 동이 트면 광명을 두려워하는 잡귀가 모두 도망친다 는 생각에 어느 가축보다 소중히 여겼다. 또한, 수탉의 붉은 볏은 그 이름이나 생김새가 ‘벼슬’과 통하므 로 벼슬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상징하기에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귀천을 막론하고 닭 그림을 붙였다. 수탉이 한 마리만 목을 쳐들고 우는 모습이 등장 하는 그림은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친다’는 의미에서 ‘공명도(功 名圖)’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는 ‘공계명(公鷄鳴)’을 줄 인 ‘공명(公鳴)’이 부귀공명의 ‘공명(功名)’과 발음이 같은 점에서 유래했다.


여기에 덧붙여 암탉은 매일 알을 낳으므로 자손의 번창을 상징 하기도 하였다. 조선 숙종대의 화가 변상벽(卞相璧)이 그린 닭 그 림인 <모계영자도(母鷄領子圖)> 보면 어미닭과 함께 여러 마리 의 병아리가 노니는 모습을 그렸는데, 오복의 하나인 자손 번창 을 염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의 영특함


현실 속의 개는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생사고락(生死苦樂) 을 함께하면서 때로는 위대한 존재로 자리를 잡았고, 거기에 신 령스러운 능력까지 더해져 점점 상상의 동물로 발전했다. 옛사람 들은 개가 액(厄)을 막고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해 주 는 길잡이라고 생각했다. 세시풍속에서도 개를 벽사의 능력이 있는 영수(靈獸)로 여겨 매년 정초에 대문에 개 그림을 그려 붙 여 귀신이나 도둑을 막고자 하였다. 일반적인 벽사용 개 그림은 전형적인 한국 토종개의 모습에 목에는 검은 방울을 달고 있는 세눈박이 또는 네눈박이 얼굴을 가지고 있다. 



(즐기다-2_사진02)귀신 잡는 개, 지본채색, 30x45cm _ 가회민화박물관

귀신 잡는 개, 지본채색, 30x45cm _ 가회민화박물관

(즐기다-2_사진03)화조도(개 부분), 견본채색, 88.6x29cm _ 가회민화박물관

화조도(개 부분), 견본채색, 88.6x29cm _ 가회민화박물관



삼목구(三目狗)와 유사하게 쓰이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삼족구 (三足狗)가 있다. 삼족구는 둔갑한 여우를 알아보고 죽일 수 있 다는 신성한 상상 속 동물이다. 삼족오, 삼목구, 삼족구와 같이 우리문화에서 이처럼 삼(三)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 성을 상징하는 ‘1’과 여성을 상징하는 ‘2’가 합해지면 ‘3’이 되는 데, 이를 두고 ‘3’이라는 숫자를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완전한 수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삼목구와 삼족구 등을 탄 생시켜 우리에게 신성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전 세계 300여 종의 개 가운데는 방범 ·사냥·운반·애완 등 특수 한 역할을 하는 유명한 개들이 있다. 이 중 귀신 쫓는 개로 알려 진 삽살개는 ‘신선 개’, ‘귀신 잡는 개’, ‘삽사리’, ‘하늘 개’로도 불 렸는데, 이 개 근처에는 귀신이 얼씬도 못 한다고 믿어 왔다. 우 리말의 ‘삽’은 없앤다 또는쫓는다는 의미이고 ‘살(煞)’은 귀신 또 는 액운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인 개에 비해 작고 야무진 체구와 온몸의 털 때문에 눈, 코, 귀도 구별이 되지 않는 삽살개는 얼핏 보면 어수룩해 보인다. 그러나 삽살개는 어떤 개보다 영리하고 영특하며, 멀리서 얼씬거리는 귀신의 소리와 움직임을 볼 수 있 을 만큼 예민한 청각과 후각을 가지고 있다. 



삼목구 외에도 민화 속에는 흰 개가 많이 등장하는데 종교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개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기능을 수행하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속신 화인 본풀이에서 이승과 저승, 저승과 이승의 안내는 흰 강아지 가 한다고 믿었다. 그 때문인지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개 그림이 나타나고 신라 무덤 속에서도 흙으로 만든 개 형상이 많이 발굴 된다. 개는 후각이나 시각이 인간보다 훨씬 발달하여 한번 갔던 길은 절대 잃지 않고 찾아가기 때문에, 영혼들이 멀고 먼 저승길 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해태, 화재(火災)를 막는 물의 신


해태는 중국 요순(堯舜)시대에 등장했다고 전해지는 상상의 짐승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해치’라고도 불리는데, 해치는 순우 리말로 ‘해님이 파견한 벼슬아치’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다시 말 해, 해는 해님의 ‘해’, 치는 벼슬아치의 ‘치’에서 왔다고 보는데, 태양숭배 사상에 따르면 해는 사람에게 복덕을 주고 만물을 생 성시키는 근원이다. 또한, 해가 뜨면 귀신이 사라지고 흉악한 짐승은 사라지며 병자는 깨어나므로 ‘해’는 재앙을 물리치는 것으 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이름 속에 담긴 상서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밖에도 해태는 ‘신양(神羊)’, ‘식죄(識罪)’ 등 여러 이 름으로 불린다. 



(즐기다-2_사진04)화조도(해태 부분), 지본채색목판, 120×34cm _ 가회민화박물관


화조도(해태 부분), 지본채색목판, 120×34cm _ 가회민화박물관



예로부터 해태는 화재(火災)를 막는 물의 신수(神獸), 재앙을 막 는 벽사의 상징으로 궁중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해태가 물에 사는 짐 승이기에 오행설에 맞추어서 불을 막아주는 영수로 믿었던 것이 다. 그래서 해태 그림을 그려서 불을 다루는 곳이나, 새해 초에 판화로 찍는 세화로 만들어 문 주변에 붙여 사용하였다. 『동국 세기(東國世紀)』에 보면 ‘호랑이 그림은 대문에, 개는 광문, 닭은 중문, 해태는 부엌에 붙였다.’고 나온다. 이것은 해태가 단지 화재 뿐 아니라 온갖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의미 까지도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광화문 앞에는 잘생긴 해태 한 쌍이 궁궐을 지키고 있다. 여기에 대해 이규태 선생은 “경복궁 중건 역사 도중 불이 자주 일어나 는데 자극을 받아 한양 도성 풍수에 화기가 등한 관악산의 불기 로부터 경복궁을 보호하기 위한 풍수 작업이다.”라고 하였다. 해 태상은 화재를 막고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처럼 해 태는 조선 시대 말엽 대원군 집권기에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을 재건하면서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장식되었다. 해태와 비슷한 형태의 동물로 사자(獅子)가 있다. 사자는 실존하 는 동물이지만, 우리 자연환경에서는 사자를 볼 수 없었기 때문 에 상상의 동물처럼 느껴졌을 것으로 보이며, ‘산예(狻猊)’, ‘백택 (白澤)’ 등의 이름도 가지고 있다. 절대적 강자인 백수의 왕으로 상상의 동물인 해태와 생김새 및 위력이 비슷하여, 종종 해태와 그 모습이 혼돈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호랑이, 두려움만큼 영험하다 믿은 동물


예부터 호랑이는 두려운 존재였다. 사람들은 이런 두려운 존 재가 자신들을 액운으로부터 지켜준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민화 에서 호랑이는 사납고 험상궂은 모습이 아니라 빙그레 웃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호랑이는 삼국시대부터 수호신 과 같은 역할을 했으며 벽사용으로 그려졌다. 호랑이 그림이 가 진 의미를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하는데, 호랑이는 영험스러운 짐승이라서 사람에게 해를 가져오는 화재, 수재, 풍재를 막아주 고 병난, 질병, 기근의 세 가지 고통에서 지켜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믿었다. 


정초 부잣집 대문에는 대부분 용호도를 그려 붙이는데 용은 오 복을 집안으로 불러들이고 호랑이는 잡귀를 막아준다고 믿었다. 그림이 어려운 경우는 글씨 용(龍) 자, 호(虎) 자를 써 붙였다. 호랑이가 그려진 부적은 호랑이가 단독으로 그려지는 예도 있었 지만, 삼두일족응(三頭一足鷹, 머리가 세 개 달린 매)와 함께 삼 재부에 나타난 경우가 많다. 호랑이와 매가 함께 나타나는 부적 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형태로, 매가 원래 가 지고 있는 삼재축귀의 의미에 호랑이가 가진 벽사의 의미를 더 해 부적의 기능을 강화하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부적은 손 으로 직접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호랑이와 매가 함께 그려진 삼 재부의 경우에는 판화로 찍어내는 형태가 많다. 목판 호랑이부 적은 이런 종류의 삼재부가목판으로 대량생산함으로써 수요를 충족시켜야 할 만큼 인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시풍속에서 호랑이는 그 영험함으로 집안에 나쁜 잡귀나 질 병을 막아주는 벽사용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였으며, 그림 외에 도 호랑이의 발톱, 이빨 등을 장신구처럼 만들어 부적으로 사용 하기도하였다. 또한, 호랑이의 뼈를 집 안에 걸어두면 잡귀나 나 쁜 동물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가장(家長)의 바람기를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고 여겼다. 



(즐기다-2_사진05)작호도, 지본채색, 98.3x37cm _ 가회민화박물관

작호도, 지본채색, 98.3x37cm _ 가회민화박물관

(즐기다-2_사진06)까치호랑이, 지본채색, 88X52cm _ 가회민화박물관

까치호랑이, 지본채색, 88X52cm _ 가회민화박물관



가장 대중적인 민속문화, 세화


세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특성은 장수나 벽사의 기능을하는 동시에, 비교적 인간과 친숙하다는 양면성을 띠기도 한다. 또한, 세화에 등장하여 전해지고 있는 작품들은 비교적 수준급의 작가들에 의해 제작된 유물들이 남아있어 세화의 높은 가치성을 가늠할 수 있다. 세화는 전 계층에서행해지던 풍습으로 근래까지 전해진 가장 대중적인 민속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근대 산업사회의 발달로 우리 전래의 전통문화가 점차 잊혀가고 있다. 첨단 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는 전통문화의 정신적 뿌리를 찾는 일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