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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박용순’ 편 (1) - 달이 떴다 지도록 놀아요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945
(박용순이 선소리하는 강강술래 中)
강강술래~~강강술래~~~

박용순 육성 // “그랑께 제일 부잣집 마당에서 엄마들, 또 우게 언니들, 그런 사람들이 다 하고 우리들은 할 데가 없으니까 학교로 가죠. 학교 가서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놀다 간다 하더니 밤새지 놀아요, 밤새지.
하다가 힘들면, “그냥 받아주게, 받아주게, 누가 받아주게, 목이 아파 못 하겄네. 숨이 가뻐 못 하겄네.” 그라면 딱 받어갖고 하고. 그냥 돌면서 해요. 중강강술래 하다 또 긴강강 하다 자진강강 하다 뛰다가 막 그렇게 합니다. 하여튼 재밌게 놀았어.”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강강술래, ‘박용순’.
제1화, 달이 떴다 지도록 놀아요.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신비의 바닷길 거기가 향동이에요>
#1. 1942년, 진도군 고군면 향동

(사방이 바다인 진도, 파도 소리 등 선명하게 들리는)
어머니 // 용순아, 궁금하제? 신비의 바닷길 말여.
아이용순 // 난 한 번도 안 갔제?
어머니 // 가차워도 여적 못 갔어야. 여근 산골이구, 니는 인자 다섯 살잉게.
아이용순 // 엄맨 가봤어라?
어머니 // 여그 진도가 고향인디 말해 모혀.

(진도 대표 민요 – 진도 아리랑)
박용순 육성 // “엄마는 짐섬이라고, 저 향동 밑 저기 가면 있어요. 물 갈라지는 회동 거기. 짐섬 지섬, 앞에서 짐섬, 지섬 그랬어요. 외할머니가 거기 분이에요. 섬에서 왔다고 섬심. 우리 외할머니가 섬에서 오셨다. 그 말이에요.
여기 진도 사람들은 동네로 시집가면 거의 딸 이름을 동네라고도 짓고 그랑께. 쌍정리인데 외할아버지댁이 잘 살았어요. 큰할아버지도 지금 말하자면 옛날 골목이 지금도 있어요. 네거리에서 이쪽으로 내려오는 골 있잖아요. 길, 큰길 말고. 그 길로 내려오면 커다란 한약방이 있거든요, 할아버지가. 삼촌이 네 분이고 어머니가 젤 우게요. 그란데 결혼을 어쩌케 했는지 나는 그것까지는 모르고. 결혼을 해갖고 내가 향동서 태어났죠. 신비의 바닷길 가는데, 바로 거기가 향동이에요.”


어머니 // 그란디 봄과 가을, 그믐이나 보름 때면 저짝, 모도에서 바닷물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거여.
용순 // 오미 참말이여?
어머니 // 무지개 모냥으로 구부러지더랑께. 고것이 육지 쪽으로 내달리는데 바닷물이 쫙 갈라져갖고 맨 살 바닥을 드러내더라고. 꺼먼 땅 우로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면 순 바위여. 거서 바지락도 파고, 굴도 캐고, 낙지도 잡고. 밤까지 재미나게 놀고 가제.
용순 // 또 뭣이 재미난디?
어머니 // 축제도 열그등. 봄이면 영등제 귀경 허러 많이들 가제. 용순이 너두 좀 크면 허벌나게 갈 거여.

박용순 육성 // “거 물 갈라지는데 가고 바지락 파고 그렇게 댕겼어요. 3월만 되면 거길 갔어요. 이틀 삼이서. 다 농지기 옷 내서 입고 간다고 그랬어요. 농에다가 결혼할라고 좋은 옷 해놓은 옷도 입고 간다 그 말이에요. 잘 차려서 입고 간다. 그리고 머리도 자르고 뭐도. 그렇게 거기가 가는데예요. 그래서 향동이지만 오선, 지막리 이런 아가씨들 또래들 많이 알게 됐지. 뭣을 할라고 그렇게 거기를 댕겼던가 몰라,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려웁게 산 걸 내가 기억해요>
#2. 1944년, 진도읍 쌍정리 외갓집

나레이션 // 박용순 보유자는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향동.
1938년에 3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진도를 떠나서 산 건 다섯 살 때 딱 1년뿐.
충남 장항에 솥 공장을 차린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자 다시 고향 진도, 쌍정리 외갓집으로 왔습니다.

(외갓집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아버지 // (조심스럽게) 장인어른, 염치 불구하구 왔....
외할아버지 // (말 끝나기가 무섭게 화나서) 여그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앞으로 일절 처가에 비쳐보지 마소!
아버지 // 장인 어른, 부탁헙니다. 앞으론 지가 잘 허겄습니다.
어머니 // 아부지! 논도, 밭도, 집도 다 잃었어라. 갈 데가 없어라.
외할아버지 // (울분) 오미, 모지란 것! 나가 널 어쩧게 키웠는디, 그 고생을 허고 사냐.
외할머니 // (남편 설득) 그라니 어쩌겄소. 딸잉께 받아주소.
외할아버지 // (다시 단호) 그라도 아닌 건 아니여! 출가외인이란 소리도 못 들어봤으?
어머니 // (애원) 아부지! 부탁이어라.
외할아버지 // (힘주어) 너거들이 살 덴 없응께 여서 인자 나가봐!

박용순 육성 // “쌍정리인데, 집을 하나 얻어가지고 거기서 사는데 먹고 사는 것은 엄마가 뭣을 했냐고 하면 바느질하고 옛날 명주베도 짜고, 밤이면 할아버지 모르게 쌀, 보리 같은 거 외할머니가 외숙모 통해서 가져오고.”


#3. 1950년대 초, 진도읍 쌍정리

(총성 소리)

박용순 육성 // “16살 돼가지고 진도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어요. 그래갖고 진도초등학교를 4학년까지 댕겼어요, 읍에서. 4학년까지 댕길 때 6.25 사변이 났어요. 맨날 그러더만, 날마다 하는 말이 소문에 인민군이 들어온다, 오랑캐가 온다, 그러니까 미숫가리 해갖고 산으로 도망가자 하고 맨날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하루아침에 막 인민군이 들어온다고 총을 쏘고 난리여, 아주.”

인민군 // (이북 사투리) 다들 손 들라! 도망가면 쏜다!
아버지 // (두려워 떨며) 야, 암껏도 없어라.
인민군 // 손이 고운 걸 보니 넌 농사꾼이 아니구나야. 혹시 일정 때 경찰 아니네? 남의 피 빨아먹고 살던?
아버지 // 아니랑께요. 진 고무신 팔고 솥 팔던 평범한 사람이지라.


박용순 육성 // “아버지가 손이 너무 고우니까 너는 틀림없이 경찰이다. 그런 걸 해먹지 않았냐. 그런 걸 해먹고 살 때 남의 피 빼먹고 살았지 네 손을 보니까 절대 뭣이 아니다. 그러고 끌고 가니까 갔는데 이쟈 매일 같이 죽인다 해요. “오늘 저녁에 죽인다, 내일 저녁에 죽인다.” 하고 그러더니 그래도 한 달이, 인민군들이 들어오는 날 아침에 잡어갔는데, 나가는 날 내놨어요. 안 죽이고 그래도. 그래서 살았어요.”


나레이션 // 용순의 어머닌 어떤 상황에서든 큰딸을 먼저 챙겼습니다.
아버지가 인민군에 잡혀가던 날 밤, 어머니는 조용히 용순을 불렀습니다.

어머니 // 용순아, 어쩌게 되았든지 넌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여긴 니가 있기엔 위험혀. 난중에 아부지랑 다 갈텐게 너 먼저 향동 할매집에 가있어.
13살 용순 // 나만 가라고라?
어머니 // 거근 산골이라 고요항께 괜찮을 거여. 가서 학교도 마쳐야제. 무용 잘 헌다고 칭찬도 받았자네.
용순 // 그람 엄매는 언제 오는디?
어머니 // 여긴 읍이니께 바느질 일도, 물레방 품앗이도 많아야. 뭘 허든 먹고 살아야제.
용순 // 흠... 나도 엄매 닮아 바느질도 잘 하는디.
어머니 // 용순이 넌 닮으면 안되아.
용순 // 멋땜시 안되아?
어머니 // 넌 나무를 한 지게 해다가 쿵 풀어 내려놓는 일 잘 하는 사람허고 결혼해야제.
용순 // 아부지 같은 사람 말고라?
어머니 // 그려. 너라도 엄매 말 잘 들어야제. 향동 가서 밥 잘 챙겨묵고! 할매 말씀 잘 듣고! 알았제?


박용순 육성 // “그랬는데 옛날에는 졸업할 때 사은회 했잖아요. 할 때 돈 얼마씩 하고 쌀 한 되씩 하고 가지고 오라드만. 그런데 내가 엄마한테 주란 말 안 할라고 사은회를 하러 안 갔어요. 안 가고 그날 하루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몰라요. 그렇게 뼈저리게 가난했는데 아버지는 맨날 하는 게 노래하고 장구 치고 집에 모이는 사람은 다 그런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내가 그걸 보고 잡겠어요? 진짜 보기 싫고, 그런데 그런 남편을 엄마는 불만이 없었던, 말 안 해라. 싸우지도 않았어요. 엄마가 그래서요. 그러다가 어쩌다가 그렇게 남편을 잘못 만나갖고 고생을 그렇게 너무 많이 했어요. 진짜 고생 엄청 했어요.”


<노래와 무용을 즐겼던 10대 시절>
#4. 1952년, 진도군 고군면 향동초등학교

(학교 종소리)
(초등 고학년 아이들 떠드는 소리)
소녀용순 // 야야, 박단마가 부른 ‘나는 열입곱 살이에요.’ 느그들 들어봤냐?
친구1 // 알제. 그거 모르면 간첩 아녀?
친구2 // (쭈삣) 난 모르는디. 용순이 너가 불러봐야.
소녀용순 // 잘 들어라이~ 우리두 두 살만 먹으면 열입곱이자네.
친구2 // 아이고, 어여 부르기나혀. 춤도 추고 말여.
소녀용순 // (목소리 가다듬는) 음음...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가르쳐 드릴까요. 열일곱 살이에요♫
친구1,2 // (박수치며) 와... 용순이 잘한다.

(교실 미닫이 문 드르르 확 여는)
선생님 // (혼내는) 누구여? 학교서 유행가 부르는게? 박용순이! 너 이리 나와 벌서야겄다!

나레이션 // 노래와 무용을 즐겼던 용순의 학창시절은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에서 그쳤습니다.
재봉일을 배우고, 나무를 베고, 밭일을 하면서
살림 밑천 맏딸로 지냈지요.
힘들게 일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건
동네 친구들 덕분이었습니다.

(밭에서 호미로 풀 캐는 소리 등 밭일하는 소리)
친구1,2 용순 // (깔깔 웃으며 수다떨다)
친구1 // 야야, 저그 누가 온다! 길 좀 막아봐봐.
친구2 // 이번엔 뭐 하고 가라 허지?
용순 // 노래나 춤 아니겄어?

박용순 육성 // “아가씨들이 쭉 길에가 앉았으면 사람이 못 걸어가잖아요. 지금은 바구니가 있지만 그전에는 짚으로 엮은 메꼬리가 있어요. 그놈 딱 깔고 앉아서 그렇게. 풀 캐러 가서 사람들 오면 풀 메꼬리로 못 지나가게 가운데다 놓고 막고 지나가는 사람 보고 막 노래하고 가라고 하고 징했지라. 노래하는 사람은 하고 어떤 사람은 막 뭐이라 하고, 쫓아오고, 벨 일이 다 있어요. 여자들이 그라지. 그러니까 우리 동네도 그랬지만 고군면 오산, 지막리는 아주 소문이 났어요. 못 지나갔어, 남자들이. 옛날에 쫌 아무것도 모르고 드셌제. 밭 맴시러 사람인지 총각인지, 뭐 결혼한 사람인지도 모르고 건들었지. 지금은 학교 당니고 연애도 하고 허는데 옛날에는 이러면서 연애해보고 그런 거이지.”


<강강술래가 귀에 딱 들려>
#5. 1954년, 진도군 고군면 향동 집

(깊은 산골, 설날 아침 까치 우는 소리)
용순 // 엄매, 아부지, 새해 복 많이 받으셔라.
동생들 같이 // 새해 복 많이 받으셔라.
아버지 // 공부 열심히 허고 용순이 누이 말 잘 듣고 알았제?
다같이 // 야!
어머니 // 옛다, 새뱃돈 쪼께라도 줘야 기분들 좋제.

(진도아리랑)
박용순 육성 // “추석, 백중에는 강강술래를 주로 했고, 설에는 아리랑을 많이 했어, 아리랑. 방에서 놀면서 창살에다가 활을 대고 활을 만들어갖고, 대로 활을 만들어요. 그래갖고는 거기다 대고 활을 침시로 아리랑을 했어요.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박자 맞춰감서 했어요. 어디 누가 장구를 쳐주거나, 북을 쳐주거나 안 하고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노래 부르면서 했어. 명절 때 그렇게 나가서 놀제. 딴 때는 못 나가게 항께 많이 못 놀았제. 우리가 큰 애기땡께.”


친구 1 // (밖에서 외치는) 용순아! 퍼뜩 나와라잉~ 오늘은 추석잉 께, 검은치마에 하얀 저고리 입고가야 헌다.

(방문 열고 나오는 소리)
용순 // (나오며) 아이고, 참말로, 뭐러 그렇게 성화다냐.
친구 1 // 서둘러 가야 많이 놀제.
용순 // 그래도 밤새 놀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제.
친구 2 // 오매, 이날을 얼매나 기다렸냐. 추석에 강강술래 할 땐 무조건 자유여!
친구 1 // 그려, 집에 들든 말든 다 암말도 안 하시자네!
용순 // 엄매들도 놀아야 하니까 그라제.
친구 2 // 긍께 추석을 다~들 기다리는 거여. 추석이 일년 내내면 얼매나 좋겄냐?
친구 1, 2, 용순 // (같이 깔깔 웃는)

(강강술래)
박용순 육성 // “같이 그랑께 강강술래하려고 오면 앉아서 보면 그때 오동 있어요, 오동 8월달에. 오동을 따갖고 막 아가씨한테 던지고 그랬지. 총각은 그러고 막 들어와서 같이 하기고 하고 그랬어요. 속도 없고 철도 없었는가 나는 친구들이 연애하고 그런 것을 눈치도 못 채고 그랬는데 나중에 들으니까 연애도 하고 그랬다 하드만.”

박용순 육성 // 우리들도 밤새 강강술래 했거든요. 너무 더우면 오다가 냇골 안 있어요. 거기서 씻고 그러고 집에 와서 이제 누워 있으면 꼭 강강술래 귀에가 딱 들려. 귀에가 딱 배긴 것 같아. 아무튼 어디서 그 소리가 꼭 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귀에 들리는 것 같으면 잠이 안 들어. 그런데 길게도 하고 짧게도 하고 막 뛰어다닐 때는 잘 뛴다고 하고 막 돌아다닐 때는 조금 나장나장하니 중강강 하고.”

나레이션 // 밤새 놀다가 집에 와 누워서도 강강술래, 다시 학교로 뛰어가서도 강강술래. 1954년, 열일곱 용순의 추석은 강강술래를 부르며 만드는 동그란 보름달처럼 환하게 빛났습니다.


< 마무리 코너-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중강강술래 소리)
여러분은 지금, 국가무형문화재 강강술래 박용순 보유자가 어릴 적에 가장 좋아했던 장단인 자진강강술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먼저 강강술래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는지 경인교대 음악교육과 김혜정 교수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김혜정 // 굉장히 많은 민요에서 의미 없는 여음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고 음이 없는 여음 중에 상당 퍼센티지는 악기 소리 흉내 내는 경우가 가장 많아요. 경기도의 ‘닐리야 니나노’가 실은 관악기 소리이고 경상도에 가서 ‘쾌지나칭칭, 치기나칭칭, 쾌자가칭칭’ 전부 다 꽹과리 소리이고 여기 전라도에는 ‘둥당이당 둥당이당’ 이런 거는 다 현악기 소리인데 강강술래는 전라도 꽹과리 소리라고 생각을 하시면 좋아요.
전라도의 꽹과리 구음은 ‘갱지, 갱지, 갱지, 갠지, 갠지’에다 전라남도 진도의 어떤 구음은 ‘꽝머꽝꽝머꽝꽝머꽝머꽝’ 이렇게 하거든요. 그런데 다른 지역으로 넓혀서 가보면 꽹과리가 전라도만큼 두꺼운 꽹과리를 안 쓰기 때문에 얇고 높은 소리가 나니까 ‘챈지라챙, 챈지라챙’ 이런 식으로 꽹과리 구음이 나오기도 하고 ‘깽지, 깽지, 깽지’ 이런 식으로 약간 더 가벼운 소리가 나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하고 다르게 약간 무거운 소리의 꽹과리 소리가 나는 걸 강강으로 표현을 했을 거라고 보는 게 가장 가깝다고 보고요. 그다음에 술래 같은 경우는 술래잡기 할 때 그 술래를 그대로 갖고 온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나레이션 // 예로부터 강강술래는 대보름이나 추석과 같이 보름달이 환하게 뜬 명절 저녁에 즐겼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혜정 교수의 설명 들어보겠습니다.

김혜정 // 강강술래에 녹아 있는 그 가사들과 어떤 의미를 파악을 해보면 굉장히 초반에는 상당히 풍요 기원의 의미가 강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월 초에 대보름에 하는 그런 강강술래는 ‘올해 풍년 들게 해주세요.’라는 기원이고 또 추석 즈음에 하는 강강술래는 ‘감사합니다.’라는 어떤 추수 감사의 의미, 이런 의미를 담았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걸 달 아래에서 한다는 게 굉장히 의미가 있죠. 그래서 둥근 달 아래에서 그만큼 꽉 찬 알곡을 기원하고 바라고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그런 의식으로써 강강술래가 시작됐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가사 안에 청어를 엮고 또 고사리를 꺾고 또 나중에 쥔쥐새끼를 잡을 때는 ‘콩 하나 퐅 하나 던졌더니 콩차두 퐅차두 되었네, 오곡 백곡이 절씨구’ 이런 가사가 나오면서 대개 다 수확을 하는 걸 상징하는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해요.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강강술래, 박 용 순. 첫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정미숙, 정영웅, 전해리, 오민혁, 한만중, 이한솔, 류지아, 김단,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조성도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한 가정의 어머니와 농부로서 헌신적인 삶을 살면서도 만학의 꿈을 이루며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해온 강강술래 보유자 박용순의 생애를 담은 오디오 다큐드라마이다.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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