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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장 ‘이봉주’ 편 (1) - 목숨을 건 역정의 시작
작성일 : 2022-12-06 조회수 : 1167
이봉주 육성 // “전 세계적으로 방짜 기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몇 나라 안 된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알고 있어요. 이렇게 소중한 기법이 우리나라 조상들이 갖고 있었다는 거 그게 자랑스럽기만 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기법이요, 이봉주가 대단한 게 아니라 옛날 장인들이 하던 거나 현재 장인들도 우리나라 방짜유기 장인의 기능을 따라올 수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유기장, ‘이 봉 주’.
제1화, 목숨을 건 역정의 시작.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구술 채록한 자료를 바탕으로
EBS가 오디오 자서전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유기행상을 했던 어머니 // >
#1. 1947년, 평안북도 정주, 기차역

(기차역-경적 소리)
어머니 // (서두르는) 봉빈아, 기차 놓치겠다. 뛰어가자!
봉주(봉빈) // (뛰기 시작) 예, 어머니.

(둘이 뛰어가는 소리와 놋그릇들 부딪히는 소리)
(기차 올라타는 소리)
어머니 // 이제 내려노라.
봉주(봉빈) // (무거운 놋그릇 등짐을 내려놓으며) 네, 어머니.
어머니 // 무거운 놋그릇들을 봉빈이 니가 지고 와주니 한결 낫다야.


청년 봉주 // 제가 유기를 처음 접했던 건 1947년쯤입네다.
평안북도 정주가 고향인데 근처에 유기로 유명한 납청 마을이 있었지요.
9남매를 둔 어려운 형편에 어머닌 유기 행상도 하셨더랬습네다.
심부름도 하면서 방짜유기에 대해 대강은 알았습네다.

어머니 // 이북 이남 통틀어 납청서 만든 방짜유기가 최고니
날래 팔고 오마.
봉주(봉빈) // 예, 조심해서 다녀오시라요.
어머니 // 봉빈아! 동생들 잘 돌봐라이!

청년 봉주 // 아, 그리고 제 원래 이름은 이봉빈입네다.
6.25 전쟁 피난 중에 여러 번 증명서를 발급받았다가
딱 한 번, 3살 많은 형 이름으로 신청하게 됐는데
바로 군 입대를 하면서 그만, 저는 ‘이봉주’가 되었지요.
스물다섯부터 전 이봉주로 살았습네다.
그때까지 여러 일이 많았지만
가장 위태로웠던 스무살 때 이야기부터 들려드리지요.


<홀로 38선 넘어 이남으로>
#2. 1948년 12월, 밤, 예성강 상류 포구

(깊은 밤, 비 오는 소리, 강 물결 소리)

청년 봉주 // 1948년 12월의 깊은 밤, 전 예성강 하류 포구에 있었습네다.

(사람들 수군대는 소리)

안내자 // (조용히) 조용히들 하시라요. 월남하는 거 들키면 끝장입네다.
(다들 이야기 멈추는) 전 여기까지만 안내합네다.
여기 뱃사공 // 이 여러분을 예성강 하류까지 태워가면
기차 타고 서울로 무사히 가시라요.
뱃사공 // 아, 예. 그런데 안내원 동지, 오늘은 배가 못 가겠습네다.
안내자 // 아 아니, 왜요?
뱃사공 // 물이 얕아서 배가 못 떠요. 다음 사리 때까지 기다려야 합네다.
대학생 // 봉빈이 형님이 평안도 바닷가에 살았으니 잘 알지 않나?
안내자 // 이봉빈이 생각은 어드렇네?
봉주(봉빈) // 밀물이 가장 높아질 보름까지는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돼서
불안합네다. 어데 숨어 있을 거며 잡히면 어떡합네까?
뱃사공 // (성 나서) 그럼 지금 물도 없이 어찌 배를 띄운단 말이오?
봉주(봉빈) // (다급히, 힘주어) 우리는 오늘 떠나야 합네다.
여기서 38경비대에 잡힐 순 없습네다.
다같이 // 옳소! 동의하오!
봉주(봉빈) // (카리스마) 그러면 내가 하라는 대로 하시오!

청년 봉주 // 뻘을 고향 평안도에선 ‘감탕’이라 합네다.
거기다가 물만 부으면 매끈매끈해집네다. 비가 오는데다
여럿이 신발에 물을 떠다 자꾸 부으니 물이 생겼어요.
이때다 싶어 다 같이 배를 미니까 쫙 미끄러져 가는 겁니다.

(깊은 밤, 비 오는 소리, 강 물결 소리)
대학생 // (좋아서) 봉빈이 형님 말대로 배가 물에 뜨려고 합네다!
봉주(봉빈) // 쉿! 조용! 저기 경비대 불빛이 보여. 자자, 다들 배에 탑시다!

(아기 우는 소리)
뱃사공 // (놀라며) 아주마이, 아 데리고 내리시오!
아기엄마 // (울먹이며) 우리 아긴 원래 잘 안 울어요. 제발 가게 해주시라요.
뱃사공 // (단호하게) 안 됩네다. 배 타고 가다 아가 울면은 다 잽힙니다.
아기엄마 // (울면서) 그래도 제발...
뱃사공 // (화내며) 그럼 가다 아가 울면 입을 다물어서
물 속에 집어 넣어도 되갔습네까?
다들 잘 들으시오. 예성강 양쪽에 경비대가 있는데
만약 총을 쏴도 배는 그대로 갑네다!
(깊은 밤, 비 오는 소리, 강 물결 소리) (Out)


이봉주 육성 // “같이 못 왔어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그 아줌마. 그런 처참한 광경도 보고 왔어요. 다행히 날이 그믐날 밤, 깜깜 어두운 밤이고 예성강도 꽤 넓거든요. 양쪽에 경비대 불은 빨갛게 펴놓았어도 우리가 소리 안 내고 내려오니까 발각이 안 됐어요, 다행히.”


(노 젓는 소리)
뱃사공 // 이제 38선 넘습네다! 내리면 예성강역으로들 가시오!
사람들 // 참말입니까? / 와! / 살았다! / 고맙습네다!

청년 봉주 // 기칸데 기쁨도 잠시!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긴장감이 흐르는 배경음)

#3. 1948년, 취조실

(취조실에서 주먹으로 때리는 소리-문 밖에서 들리는)
수사관 // // (문밖에서 들리는) 너 뭐야? 바른대로 얘기 안 해?
대학생 // (맞아서 비명 지르는) 악! 살려주십시오.

봉주(봉빈) 속말 // 아니, 이거 김 동지가 맞는 소리 아냐?
바른대로 얘기하라는데 나는 뭐라고 하지?

이봉주 육성 // “거기가 도착하게 되면 환영해줄 줄 알았드랬어요. ”아이고, 오실려고 얼마나 고생했느냐.”고 그럴줄로만 알았지, 거기 가서 취조를 받으리라곤 요만큼도 생각 안 했단 말예요. 실망한 거죠. 남한 땅 밟자마자 실망한 거야.
그런데 날이 훤하게 동이 터 가는데 거기 우선 오는 게 서북청년단, 대동청년단, 경찰서, 특무대 조사팀들이 배에까지 나와가지고 연행해 어느 장소에 다 끌고 가더라고요. 끌고 가더니 맨 처음에 젊은 놈들 중에서 김일성대학 다니는 김 동지 그놈을 끌어내 가지고 취조를 해요.”

(취조실 철문 열고 닫는 소리)

수사관 // (처음엔 거칠게) 이봉빈, 너 평안도서 민청에 가입했지?
봉주(봉빈) // 네, 거기 사는 사람은 원치 않아도 민청에 들어야 합네다.
수사관 // 그럼 ‘김일성 정강 20개’ 알지?
봉주(봉빈) // 다 몰라도 4조는 내래 압네다. 북한에서 신앙의 자유는
정강에 있지만은 현실에는 없습네다.
수사관 // 그럼, 신앙의 자유를 선택해서 남한에 왔나?
봉주(봉빈) // 그렇습네다. 전 하나님을 믿습네다.
아버지는 신앙의 자유를 외치다가 그만...(울음 터져 잇지 못함)


청년 봉주 // 순간 수사관 의 눈빛이 흔들렸고,
제 눈에선 참았던 눈물이 흘렀습네다.
진심이 통했던지 그날로 전 풀려났지요.

이봉주 육성 // “저녁마다 가서 나는 크리스찬인데 하나님을 찬양하려면 신바람 나겠는데 내가 원치 않는 공산주의 찬양을 매일 저녁 가르치는데 살맛이 나겠어요? 그런 사회에서 그게 싫고, 또 우리 아버지는 그걸 반항하려고 했다고 고문 당해가지고 돌아가셨는데, 내가 죽도록 일해서 거기 갖다 바치겠다고 일한다면 모순이 아니에요? 젊었을 때니까 그런 것이 막 피가 막 끓어. 당장 때려 엎었으면 좋겠는데 힘이 없었을 뿐이지. 방법이 다른 건 도저히 없어. 이 세상에서 도저히 그 사회에서는 내가 살 수 없다, 그걸 판단해가지고 본래부턴 46년 아버지 돌아가시자마자부터 그러니까 47년에 월남하려고 결심을 해가지고..”


청년 봉주 // 이후, 서울서 산다는 외삼촌 댁을 찾아갔지만
며칠 있지 못했습네다.
달동네 방 한 칸에서 3대가 지내고 있었슴다.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데,
고향에 두고 온 아내의 한마디가 떠올랐습네다.

아내 // 탁씨 성을 가진 이모부가 서울서 유기 장사를 해요.

<은인이자 스승, 탁방여와의 첫만남>
#4. 1948년, 서울 유기 가게 거리

청년 봉주 // 그 길로 전 유기 가게가 많은 종로에 갔다가 허탕을 치곤,
묻고 물어, 서울역 근처에도 갔지요.

(가게 미닫이문 미는 소리)
봉주(봉빈) // 저 혹시... 이 근처에 유기 장사하거나 공장하는
탁 씨가 있습네까?
가게주인 // 아, 탁 씨는 모르겠고 근처 후암동에 ‘서울양대공장’이 있네.
거긴 이북서 유기 만들던 납청 사람들이 하는 데야.
납청선 ‘대야’를 ‘양대’라고 한다는데~
봉주(봉빈) // 네, 맞습니다. 거기선 크고 좋은 놋그릇을 ‘양대’라고 합네다.
가게주인 // 고향 사람 찾아왔구만. 저기 저 학교 보여?
돌아가면 요란한 소릴 내는 공장이 보일 걸세.

#5. 1948년, 탁창여 방주의 양대(방짜)공장


(유기 만드는 공장, 놋쇠 때리는 요란한 소리)

직원 // (흠칫 놀라지만 반갑게) 아이고, 꾀죄죄한 차림을 보니
혹시 이북서 오는 길이네? 어디서 왔나?
봉주(봉빈) // 저 평북 정주서 왔습네다.
직원 // 반갑소, 나두 납청 사람이요. 어서 사람들한테 알려야 갔어.
(소리치며) 탁 방주님! 사모님 // !
지금 이북서 갓 넘어온 사람 있는데 만나볼래요?

청년 봉주 // 머리도 며칠 못 감고 초라한 차림이었지만
공장 사람들은 절 따듯하게 맞았습네다.
같은 고향이라 반갑고, 두고 온 가족 소식도 궁금했겠지요.
저 역시 아내의 이모부가 맞는지 어서 확인하고 싶었구요.

탁창여 // (반갑게) 난 여기 양대공장을 운영하는 ‘탁창여’요.
다들 ‘탁 방주’라고 부르네.
봉주(봉빈) // 저는 이봉빈입네다.
탁창여 // 이봉빈. 거, 내 고향인 마르메 사람들 좀 아나?
봉주(봉빈) // 대강 압니다만, 거기 누구 말씀인가요?
탁창여 // (조심스럽게) 혹시, 김태옥 장로 아나?
봉주(봉빈) // (놀라서) 아! 제가 그분의 사윕네다.
탁창여 // (까무러치게 놀라는) 아니, 이런 일이 있나?
자네가 진짜로 김태옥 장로 사윈가?
봉주(봉빈) // (울먹이며) 네, 맞습네다. 장로님 큰아들이 김기원이고
우리 둘째 처남이 원헌이고, 내 거기 사위야요.
탁창여 // (기뻐하며) 여보, 이 사람이 당신 조카의 남편이라는구만~
사모님 // 어디 보자. 낯이 익어.
익찬이 결혼하고 바로, 오빠 집에서 이 사람을 본 것 같아요.
아이고! 화로에다 찰떡 구워준 거 기억나나?
봉주(봉빈) // 네, 참 맛있었는데 이모님이 해주신 건지는 몰랐습네다.
사모님 // (기쁨의 울먹임) 아이고, 조카사위를 서울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말야. 우리 조카 익찬이는 같이 왜 안 왔나?
봉주(봉빈) // (머뭇거리는) 저... 그게...
탁창여 // 우선 허기 좀 달래고 이야기보따리는 차차 풀어보라고 헙시다.

이봉주 육성 // 나보다는 조금 먼저 했죠. 박정선이만 내 또래고 나머지는 다 나이 많은 사람들인데요. 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48년도만 올라오면 힘들었지. 46년, 47년은 38선 넘기가 쉬웠거든요. 가족 몽땅 다 동반해온 사람들이에요. 탁창여 선생님께서 탈북시킨 거지. 전부 다 안내자 보내서 오게 해주고 거처를 마련해주고 살게 해준 거죠.”


#6. 1948년, 탁창여 // 방주의 집

(놋그릇, 놋수저로 밥 먹고 내려놓는 소리)

사모님 // 어드렇나? 입맛엔 맞았나?
봉주(봉빈) // 네, 평생 먹어볼까 한 음식들이라... 고맙습네다.
탁창여 // 그런데 자네 다른 데 갈 데 없으면 우리랑 살지.
그리고 여기서 방짜 일도 하면 어떻겠나?
봉주(봉빈) // (좋아서) 저야,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지요.
탁창여 // 이제 고향 소식 좀 들려주겠나?
자네는 평안에서 어드렇게 살았나, 지나온 얘기 좀 해주게.


< 1940년대 이봉주의 고향, 10대 시절 회상 >
<회상 – 고집쟁이 어린 시절>
#7. 1940년대 초반, 평안북도 정주, 이봉주의 집

(달구지 끌고 가는 소리)

동네어른 // (좀 떨어져서) 어이구, 이 선달 손자가 달구지를 끌고 간다이!
그래, 이 선달은 건강하시네?
소년 봉주(봉빈) // 네, 오늘도 책 읽고 계십네다!


청년 봉주 // 어릴 때 전 ‘이 선달 손자’로 불리곤 했습네다.
할아버지는 공부도 많이 하고 땅도 제법 갖고 있는
동네 큰 어른이었지요.
농사짓는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전 9남매 중 셋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습네다.
기칸데 어머니는 자꾸 이런 말씀을 하셨드래요.

어머니 // 아이구 저 고집쟁이! 난 나중에 니 형하고 살 거다!


청년 봉주 // 1942년, 열네살 되던 해에도
전 어머니 속을 태우는 고집불통에 제멋대로였지요.

(밥 먹는 소리-놋그릇, 숟가락, 젓가락 소리)
해봉 // (밖에서 부르는) 봉빈아, 빨리 가자!
북중 가려면 지금 나가야 해!

(숟가락 놓는 소리)
어머니 // (놀라며) 아니, 북중이라니, 봉빈이 니가 거길 왜 가네?
10대 봉주(봉빈) // (뜸 들이며) 저 사실은... 해봉이 매형이 군수품 공장에 있어서
거기 취직하려고 합네다.
아버지 // (놀라서 혼내는) 쪼끄만 놈이 날도 추운데 그 먼 데를 간다구?
어머니 // 그럼 먼저 부모한테 허락을 받아야 되는 거 아니네?
10대봉주(봉빈) // 죄송헙니다. 근데 저 해봉이랑 가야 해요.
저.... 가는 차비만 좀 주시라요.
아버지 // 고집반수 이 놈을 어드렇게 막겠나.
어머니 // 가면 와야 허니 왕복 차비는 있어야 될 거 아니네.
자, 이거 가지고 가라!


청년 봉주 // 그땐 잘 몰랐습네다.
세상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고,
실패의 쓴맛도 봐야 어른이 된다는 걸 말입네다.
제 10대, 20대 시절도 도전의 연속이었지요.


< 마무리 코너 – 덧붙이는 이야기 >

(징소리)

나레이션 // ‘덧붙이는 이야기’

(놋그릇 메질하는 소리)
나레이션 // 여러분은 지금 국가무형문화재의 유기장 보유자인 이봉주 선생이
놋그릇을 만들기 위해 메질하는 현장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메질’은 화덕에 넣어 달군 놋쇠 덩어리를
망치로 수없이 내리쳐 모양을 만드는 걸 가리킵니다.
이봉주 유기장의 장남이자 대를 이어 보유자로 인정받은
이형근 유기장으로부터 놋그릇의 역사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이형근 // 놋그릇이 굉장히 오래된 문화인데 일본 정창원이라는 데 가면 통일신라시대 때도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 선물로 준 게 그대로 보관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이렇게 두들겨서 만들었어, 어느 건 주물러도 만들고.
그런데 지금 전 세계 놋그릇 쓰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안 남았어요, 다 없어지고. 그런데 악기는, 우리 놋쇠로 만드는 악기를 쓰는 나라는 몇 군데 있어요. 타악기로 쓰는 나라는 몇 군데 있는데 놋쇠로 그릇을 만든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고, 이걸 쓰는 나라도 대한민국 사람들밖에 없어요. 옛날에는 사기나 옹기보다 놋그릇을 더 많이 썼단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레이션 // 놋쇠로 만든 그릇을 한자어로는 ‘유기’라고 합니다. 구리를 주성분으로 해서 주석이나 아연을 합금해 만드는데 이봉주 유기장이 계승한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만을 합금해 만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일정한 틀에 부어 만드는 주물유기와도 차이가 있죠.

이형근 // 안성 유기는 옛날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교과에도 나왔어요. 안성맞춤 하면 안성 유기가 유명하다 하는데 주로 주물유기라고 해서 흙 속에 빈공간을 만들어서 거기에 쇳물 부어서 모양을 만드는 거고요.
저희는 그냥 바둑알마냥 덩어리를 세워서 망치로 쳐서 모양을 만드는 건데 우리는 망치로 치니까 조직이 치밀해져서 기포가 별로 없고, 그런데 주물유기의 단점은 흙 속에서 대기 중에 중력 상태로 쇳물 부어서 만들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기포가 있어서 변색이 두드려서 만든 것보다 빨라요.

나레이션 // 방짜로는 징이나 꽹과리, 식기, 방짜로는 징이나 꽹과리, 식기, 놋대야를 만들 수 있는데 갈수록 수요가 줄어 1960년대 이후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형근 // 무속인들은 신을 부르려면 놋쇠 그릇에 기물을 담아야 신이 온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있어서라도 60년대, 70년대 그 무속인들이 놋쇠 제품을 안 썼으면 2000년대 들어와서 놋그릇은 아마 없어졌을지도 몰라. 수요가 있어야 생산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 그분들이, 무속인들이 많이 써주시는 바람에 그 많던 기술자들은 다 없어졌는데 고집스럽게 우리 아버님은 ‘아휴, 내가 배운 게 이거밖에 없는데’ 하면서 아버님하고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이게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들어와서 한국 것을 찾자, 놋그릇 색깔이 예쁘고 그러니까 다시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나레이션 // 다큐드라마 문화가 된 사람들,
유기장, 이 봉 주. 첫 번째 시간.
지금까지 극본 김정인, 연출 권윤혜,
출연 하성용, 전해리, 이민규, 이상준, 한만중, 김단, 류지아, 김혜령,
음악 윤아성, 음향효과 이용문, 기술 추신호였습니다.

나레이션 // 이 프로그램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의 제작비 지원,
국립무형유산원의 자료 지원으로 EBS가 기획, 제작하였습니다.
요약정보

월남하여 갖은 고생 끝에 유기공장을 운영하고, 유기 마을을 만들어 방짜유기의 명맥을 잇는 데 힘써온 유기장명예 보유자 이봉주의 생애를 담은 오디오 다큐드라마.

* 국립무형유산원의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채록사업’에서 확보한 자료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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