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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야기

매듭장 김혜순
발행일 : 2022-08-18 조회수 : 5200
매듭장 김혜순

1944. 2. 1. ~ | 보유자 인정: 2017년 12월 29일

위대한 문화유산
한국문화재재단의 무형문화재이야기
매듭장 김혜순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Master Artisan of Decorative Knot craft skill Holder

풀기 어려운 문제 ‘고르디아스의 매듭’

고르디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리기아의 왕이다.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온의 건설자로 손에 닿는 것은 모두 황금으로 변했다는 전설적인 왕 미다스의 아버지이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은 고르디아스가 고르디온을 건설한 뒤 그의 수레를 묶어 둔 매듭을 말한다.

프리기아의 왕이 된 고르디아스는 새 도시 고르디온을 건설하여 프리기아의 수도로 삼았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만들어준 소달구지를 고르디온의 신전에 바쳤는데, 이때 그는 소달구지를 아주 복잡한 매듭으로 신전 앞에 묶어 두었다. 신탁은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소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매듭을 풀어보려 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이라고 불린 이 매듭을 마침내 푼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매듭에 대한 신탁을 전해 듣자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렸고, 신탁의 예언대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알렉산더 대왕이 매듭을 풀지 않고 끊어버린 탓에 그의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하고 잘려진 매듭처럼 갈기갈기 분열되었다고 한다. 고르디아스의 매듭은 콜럼부스의 달걀과 함께 언뜻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뜻밖의 방식으로 간단히 해결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성현숙 외

끈을 엮고 맺고 조여 만드는 조형예술, 매듭

매듭장이란 끈목(여러 가닥의 실을 짜서 만든 끈)을 이용하여 여러 종류의 매듭을 짓고, 술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러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원래 매듭이란 일반적으로 엮고, 맺고, 짜는 일을 총칭하는데, 매 가닥을 엮어 모은다는 뜻으로 하나의 끈을 가지고 하나의 교차점을 이루며 중복의 형태로 맺는 것을 뜻한다.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매듭에는 염색, 끈목짜기, 매듭엮기 등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한 과정들이 담겨 있다. 예로부터 우리 생활 곳곳에 쓰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그 쓰임새가 다양한 매듭은 노리개, 주머니 끈, 허리끈 등 복식에 사용되어 한복의 멋을 한층 더해 주는 요소였으며, 발걸이, 횃대, 고비, 붓걸이, 혼례나 상례 등에 사용되었던 가마나 상여, 악기와 깃발 등에도 실용성과 장식성 그리고 장엄함을 나타내는 기능을 해왔다. 따라서 단순히 맺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매듭 속에 숨어있는 정신적인 미와 외형적인 미가 표현되어야 한다.

여러 가닥의 실을 짜서 만드는 끈목

끈목을 형성하는 기본 재료는 털, 마, 명주, 면, 모시 닥나무 등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짠 끈을 다회(多繪)라 하였고 끈 짜는 것을 ‘다회친다’라고 하였다. 매듭과 끈목의 유래는 신석기시대의 질그릇, 어망 등 유물에서 그 자취를 살펴 볼 수 있고 가락바퀴와 골각으로 된 바늘의 발굴 등으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후 낙랑시대의 왕우묘(王旴墓)에서 광다회가 출토되었으며, 고구려 무용총 벽화의 주실에서도 끈목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전통매듭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김홍도, 신윤복 등의 그림에서도 그 흔적은 발견된다. 특히 조선시대 법전 『대전회통(大典會通)』 「공전」에는 끈목을 짜는 장인을 다회장(多繪匠)이라하며, 매듭을 맺는 장인을 매듭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통공예의 한 분야인 매듭은 조선 시대에 매듭의 용도가 점차 다양해지며 생활 곳곳에 장식용으로 쓰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궁중과 상류 사회 뿐만 아니라 평민에까지 대중화되었다.

원다회와 광다회

끈목은 그 모양에 따라 원다회(圓多繪)와 광다회(廣多繪)로 구별된다. 원다회는 단면을 둥글게 짠 끈목으로, 노리개, 주머니 끈, 각종 유소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광다회는 넓고 크게 짠 끈목으로 주로 의복에 두르는 허리띠로 사용하였다. 다회는 짜여지는 가닥수에 따라 4사, 8사, 12사, 16사, 24사, 36사 등의 종류가 있다. 4사는 4가닥의 실로 짠 끈을 말하며, 마찬가지로 8사는 8가닥의 실로 짠 끈을 일컫는다. 4사까지는 틀 없이 짤 수 있는데 반해 8사부터는 다회를 치기 위한 틀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손, 매듭장 김혜순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보유자 김혜순 선생은 1944년 2월 1일 공무원이었던 부친(김선익)과 모친(김병남) 사이에서 1남 2녀의 차녀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시던 분이었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기를 보냈다. 

“아버지가 무척 저를 아끼셨어요. 그렇게 사랑을 주셨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자존감이 큰 것 같아요.”

초등학교 1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1.4후퇴. 그러니까 그 때가 추울 때였나 봐요. 아버지랑 엄마는 동생을 데리고 먼저 부산에 가시고 트럭을 보내셨어요. 저하고 언니는 트럭을 타고 따로 갔죠. 그리고 6.25때 집 지하에 숨어 있던 기억도 나요.”

전쟁이 끝나고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효창동의 금양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전교생 조회 시에 애국가 제창을 할 때면 앞에 나와 지휘를 할 정도로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 당찬 성격이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일찍 등교를 해야 원하는 자리를 앉을 수 있어 통행금지 사이렌이 해제되는 동시에 집을 나설 정도로 학교생활에 열심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과 미술을 좋아했다.

“수학이 그렇게 너무 좋았어요. 안 풀리는 것이 없더라고. 지금도 매듭을 가르칠 때 수학적으로 풀이를 해서 가르쳐요. 매듭에도 수학이 도움이 돼요. 수학에도 매듭론이라는 게 있잖아요. 끈을 짤 때도 예를 들어 5m를 날라서 끈을 짜려면 3m가 나오고 내가 6m가 필요하다 그러면 10m를 날라야 한다. 뭐 이런 걸 다 예측을 하고 해야 하니까.”

명문 경기여중을 거쳐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1962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섬유예술과에 입학을 했다. 

“어려서부터 장래희망이 뭐냐 물으면 자수 연구가가 되고 싶다고 얘기했던 거 같아요. 처음에 자수 전공이 미술대학에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가정학과에 들어가면 수예 같은 것을 할 수 있겠다 막연히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알고 바꿨죠. 제 적성에 딱 맞는 것을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전공이 많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대학생활 중에도 교수님들로부터 학교에 남아 공부를 계속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대학교수직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1966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회사의 자수 도안을 하는 일을 하게 됐다. 신입임에도 과장 직책을 제안 받아 일을 할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이후 1968년 소개로 만난 지금의 남편(김현진)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을 하면서 일을 그만두었다. 결혼하자마자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생활을 하게 됐다. 3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반년 가량 남편의 누나인 故 김희진 선생(국가무형무형문화재 매듭장 보유자)과 한 집에서 살게 됐다. 당시에도 김희진 선생은 동아공예전 출품을 준비하는 등 전통 매듭공예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기가 자면 이제 옆방에 이제 끈 들고 오시는 거예요. 공예전 출품을 준비하시면서도 내가 미술전공을 한 걸 아시기 때문에 ‘이 색깔이 어때? 이렇게 디자인하면 어때?’ 라고 의견을 묻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 의논하고 그랬죠. 그때 동아공예대전에서 대상을 타셨죠. 그러면서 저보고 (매듭공예를) ‘한 번 해보지 않겠어?’ 라고 물어보시고.”

그러나 당시에는 애 키우고 살림하기에도 벅차 매듭공예를 할 생각이 없었다. 남편도 당시에는 반대를 했다. ‘한 사람(누나)만 고생하면 됐지 왜 당신까지 고생하려 하느냐“고. 남편은 일본의 주재원으로 근무할 당시에 누나에게 일본의 인간문화재를 소개하거나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매듭 재료 등을 구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거들다 보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너무 신비롭기까지 하더라고요. 김희진 선생님이 제안하기를 ’본인은 전통적인 것만 고수하고 있지만 당신은 현대자수도 전공했으니 전통적인 것을 모티브로 현대적인 것을 좀 해봐라.‘ 라고 하시며 자꾸 제게 가까이 오신 거죠.”

’내가 전공한 자수에 접목시키면 나 나름대로의 아주 새로운 장르가 생기겠구나.

” 라는 생각이 들며 확신이 섰다. 당시에는 현대화된 매듭과 접목된 자수 공예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옆에서 거들다 보니 어느덧 매듭연구회의 창립멤버가 되어 있었다. 1979년 한국매듭연구회가 창설이 되고 1986면 매듭장 이수자에 이어 1989년 전수교육조교(현 전승교육사)로 인정됐으며,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시누이인 김희진 선생을 따라 천주교 신자가 되면서 세례(세례명 아녜스)를 받고 성 베네딕도 수도원 봉헌회의 회원으로도 활동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전통매듭과 자수공예 기법으로 가톨릭 성화 작업에도 참여를 하게 됐다.

하단 내용 참조

이 작품은 성화가(聖畫家)인 심순화(카타리나)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채색한 작품에 김혜순 선생이 직접 자수와 매듭장식으로 표현한 걸작이다. 1년 반의 작업 기간을 거쳐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 소장되어 있다.

“꼬박 이것만 가지고 1년 반이 걸렸죠. 작품이 완성되고 봉헌할 때 제가 직접 들고 갔어요.”

한편 성 베네딕도 수도원 봉헌회 활동을 통해 유럽의 성당과 박물관을 다니며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박물관의 유물 등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다.

김혜순 선생은 2021년에는 방송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mbc 예능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를 통해 유야호의 머리장식을 만든 인간문화재로 갑작스런 인기를 얻었다. 

“방송의 힘이 대단하더라고. 처음엔 뭐 이상한 단발머리의 남자 머리에다가 꽂고 나온다고 해서. 그래서 안한다고 처음엔 거절을 했다가 전화 끊고 나서 다시 생각했어요. ‘이 기회가 예쁘고 바른 매듭을 대중들에게 좀 더 알릴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작품 제작비는 받지 않았다. 김혜순 선생은 평소에도 작품을 잘 팔지 않는다.

”이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그거를 시중에 나와 있는 저렴한 거하고 비교를 하거나 하면... 그렇게 비유되는 게 너무 싫어요."

한편, 2000년부터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매듭반에서 매년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해 오고 있다. 기초반, 연구반, 전문반 각 1년 과정의 강좌에서 매년 가르치는 학생이 40명이 넘는다. 이외에도 현 회장으로 있는 한국매듭연구회에서는 정기적인 회원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지방 국립박물관 순회전을 비롯 미국, 독일, 중국, 프랑스,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등 해외 순회전시 및 교육 등을 통해 대내외에 전통매듭을 알리는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 왔다.

하단 내용 참조

슬하에 2남을 둔 김혜순 선생의 며느리 모두 매듭장 이수자다. 며느리들에게 매듭 공예를 배우게 한 건 시누이인 김희진 선생이었다. 큰 며느리는 미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작품활동이 뜸한 편이지만 작은 며느리는 서울대 미대를 나와 대학원에서 전통복식을 전공하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열심이다. 김혜순 선생 또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건강을 유지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듭을 잘 하려면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김혜순 선생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자랑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뭐 자랑할 게 없어요. 그냥 한 가지만 꾸준히 했다는 거. 바보같이 살았으니까 이런 거 해내지. 그렇지 않으면 못할 거 같아. 한편으론 평탄하게 내가 하고 싶은 작품만 하면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게 그게 감사해요.”

작품

1_ 노리개, 유소, 향낭
대삼작노리개

대삼작노리개

밀화투호삼작노리개

밀화투호삼작노리개

수향갑외줄노리개

수향갑외줄노리개

외줄향갑노리개(밀화, 수, 청옥)

외줄향갑노리개(밀화, 수, 청옥)

은삼작노리개

은삼작노리개

자라줌치노리개

자라줌치노리개

2_ 자수와 매듭 현대작품

조선후기부터 토속신앙 형태로 나타난 산신을 사찰에서 수용하여 정각을 조성하고 예배의 대상으로 모셔 온 산신탱화를 밑그림으로 전통기법으로 수놓은 작품이다.

환희Ⅱ

환희Ⅱ

그리움Ⅱ

그리움Ⅱ

꽃밭에서

꽃밭에서

연(蓮)Ⅱ

연(蓮)Ⅱ

제작과정

다회치기
다회치기1
다회치기2
다회치기3
다회치기4
매듭맺기
매듭맺기1
매듭맺기2
매듭맺기3
매듭맺기4
술만들기
술만들기1
술만들기2
술만들기3
술만들기4

약력

  • 1944년 서울 출생
  • 1962년 경기여자중고등학교 졸업
  •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섬유예술과 졸업
  • 1971년 김희진 선생(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명예보유자)께 매듭 사사
  • 1979년 한국매듭연구회 창립회원
  • 1981년~2021년 한국매듭연구회 국내외 회원전 (총 30회) 및 매듭 실기 특별 강좌 다수
  • 1986년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이수자
  • 1987년~2021년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작품전 (총 34회)
  • 1989년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전수교육조교
  • 1993년~2018년 현대자수회(현수회) 국내외 회원전 (총 20회)
  • 199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한미박물관 특별기획 매듭전
  • 1997년 「매듭장」 (국립문화재연구소 발행) 저
  • 2000년 독일 하노바 엑스포 한국관 매듭 전시회 (문화재청 주관)
  • 2000년~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출강
  • 2000년 「매듭」 (한국문화재재단 발행) 저
  • 2003년 ‘한국의 성모님’ 자수성화를 매듭유소와 함께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 있는 무염시태성모성당 (Upper Basilca, Immaculate Conception, Lourdes, France)에 봉헌 (현재 루르드 박물관 소장)
  • 2005년 제1회 개인전 ‘또 하나의 연-매듭자수전’ (국가무형문화재전수회관, 서울)
  • 2006년 제2회 개인전 (경운박물관, 서울)
  •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기념 전통공예전
  • 2008년~ 한국매듭연구회 회장
  • 2009년 한국-베트남 문화교류 무형문화재 공예전 ‘복을 비는 마음’
  • 2010년 제3회 개인전 ‘전통문화에 깃든 우리매듭’ (국가무형문화재전수회관, 서울)
  • 2010년 한국-몽골 문화교류 무형문화재 공예전
  • 2011년 해외무형문화재 강습 (우즈베키스탄)
  • 2012년 제4회 개인전 ‘선비, 옷을 입고 허리띠를 매다’ (국가무형문화재전수회관, 서울)
  • 2014년~2021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기능보유자 인정
  •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이사
  • 글 이치헌 (한국문화재재단 한국무형문화재진흥센터센터장 /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 저자)

  • 사진 서헌강(문화재전문 사진작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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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장 김혜순(사진 김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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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장 김혜순(사진 서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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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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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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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유소와향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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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