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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가을, 겨울호-사랑과전쟁] 혼인-의복에 담긴 사랑, 전통 혼례복 활옷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2-01-07 조회수 : 4905



의복에 담긴 사랑, 전통 혼례복 활옷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2)활옷(국립민속박물관)_앞

활옷 앞_ 국립민속박물관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1)활옷(국립민속박물관)_뒤

활옷 뒤_ 국립민속박물관


“오늘은 좋은 달, 좋은 날, 좋은 시간입니다.

부부가 된 두 아이의 결혼식을 축복해 주옵소서.

두 집안이 더욱 돈독해지길 바라며 부부로 영원하길 기원합니다.


- 베트남 비엣족 결혼식 기도문(2012. 5, 베트남 빈롱성 짜온현 마을 비엣족 혼례에서) 



짧은 기도문 속에 결혼하는 자녀를 위한 부모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예로부터 혼례 날을 잡으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은 예복(禮服)이다. 예의를 숭상하는 우리나라의 도덕·윤리 관념은 일상생활에서 의복을 중요하게 여겼고, 혼례 준비에서 신랑신부와 혼주, 그리고 가족들의 의복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글_ 신탁근(무형문화재위원장, 온양민속박물관 고문)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3)신부 신량 초레하고, 기산 김준근 _ 국립민속박물관

신부 신량 초레하고, 기산 김준근_국립민속박물관



혼례를 위한 준비


신랑의 예단과 초례 당일에 입을 의례복, 그리고 집안 어른의 예복과 가족들의 예복 등을 순서대로 준비하고 시댁 선물용 이불과 버선 등도 주문한다. 동네에서 바느질 잘하기로 소문난 집에 가서 옷감을 고르고 치수를 재서 신랑신부의 새 옷을 준비하는데, 새 옷을 준비할 형편이 안되면 빌리기도 한다. 


혼례 날의 주인공은 신부이다. 전통적으로 혼례에서는 본인의 신분보다 높은 자의 옷을 허용하는데 이러한 관행을 ‘섭성(攝盛)’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신랑과 신부는 생애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차림을 할 수 있다. 혼례에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특별한 옷과 물건들이 많이 사용되었기에 빌리는 풍속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혼례복도 대여하여 입었다.


전통적인 여성의 혼례복으로는 활옷과 원삼이 전해지고 있다. 1925년 간행된 『조선재봉전서』에서 수의(壽衣)인 원삼은 옷감의 소요량과 제작 방법을 상세히 소개한 반면, 활옷은 도식화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 제작 방법이 실려 있지 않다. 수를 놓아 복식 전체를 장식하는 활옷은 원삼에 비해 개인이 집 안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복식이 아니었다. 따라서 큰머리 수식과 함께 세물전 같은 곳에서 대여하여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재 전해지 는 활옷 유물의 수가 원삼에 비해 적은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조선 시대 여자 혼례복, 활옷


활옷의 복식명칭은 궁중 혼례 관련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 고, 국문소설이나 신문 기사 등 한글로 출판된 근대 기록 중에서 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활옷은 ‘큰 옷’이라는 의미의 순우리 말 복식 명칭으로 추측하고 있다. 활옷이라는 복식 명칭이 사용 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시대 왕실과 반 가에서는 홍장삼이라는 한자어 복식 명칭을 사용하였고, 민간 에서는 할옷 혹은 활옷이라는 순 우리말 복식 명칭을 사용하였 던 것으로 추측한다. 


‘큰 옷’을 의미하는 ‘할옷’이라는 순우리말 명칭을 이루고 ‘할옷’ 이 이후에 ‘활옷’으로 변화된 것으로도 본다. 혼례 절차 속에 나 오는 예복을 살펴보면, 신랑이 신랑 예복을 입고 신부의 집에 가 는 것을 초행(醮行)이라고 하며, 도착 후 전안례(奠雁禮)를 치루 고 신랑과 신부는 초례청에서 교배례(交拜禮)와 합근례(合巹禮)라고 하는 대례(大禮)를 치룬 후 신방(新房)을 차린다. 이때 신랑은 혼례복을 벗고 신부 집에서 준비해 둔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관대벗김’을 한다. 초야를 치룬 후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는 신행(新行)을 하며 시댁에 공식적인 인사를 드리는 ‘현구고례(見舅姑禮)’를 치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신부는 다시 성장(盛裝)을 하게 된다. 


조선 후기 예서(禮書)에 의하면 신랑은 문무백관의 흑단령보다 는 대군(大君)이나 의빈(儀賓)의 자색 단령을 주로 사용하였으 며 신부는 혼례 절차별로 복식을 달리 착용하였다. 초례청에서 는 주로 홍장삼을, 현구고례에서는 원삼을 착용하였다. 한편 활 옷은 홍장삼이 18세기 이후에 자수 등의 화려한 문양이 추가되 면서 활옷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구고례에서 입는 의복을 살펴보면 활옷과 원삼이 혼용되는 경 우가 많은데, 조선시대 예서(禮書)에 의하면 초례청의 신부는 붉 은 선장식을 두른 염의를 입고 부인이 되어서는 붉은색 선장식을 제거한 소의를 입는 고례를 적용한 것이었다. 관행적으로 신부 집 에서 치르는 초례와 교배례, 합근례 과정에서는 홍장삼 계열의 예 복을 입었으며, 혼례를 치르고 신랑 집에서 치르는 현구고례에서 는 부인으로 변화된 녹원삼이라는 예복을 입어야 한다.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2)의례용구 세물점 _ 국립중앙박물관

의례용구 세물점_국립중앙박물관 일제강점기 때 대흥사 세물점 사진이다.



혼례용품 대여점, 세물전


활옷 유물 중 흥미 있는 자료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실제로 세물전에서 대여하여 사용했던 활옷(56쪽 사진)으 로 유물기증자에 의하면 1960년대 세검정 지역 세물전(貰物廛) 에서 구입하였다고 한다. 세물전은 혼상수품(婚喪需品)을 빌려 주던 곳으로 1930년대 『매일신보』에는 당시 종로의 세물전 “덕선상점(德善商店)”에서 혼구(婚具)와 병풍(屛風) 등의 혼상수품 이외에 전통악기 등 일용가구까지도 취급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활옷은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모란과 연꽃 등의 무늬를 홍색 과 청색으로 표현하고, 홍색 겉감 과 청색 안감이 음양의 조화를 상 징하는 것처럼 꽃무늬를 홍색과 청색계열의 실로 수놓아 표현하였다.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3)활옷에 그려진 동자무늬 부분

활옷에 그려진 동자무늬 부분_국립민속박물관


원래 활옷에는 동자무늬가 없었는데, 득남(得男)과 자손번영(子孫繁榮)의 의미를 담고 있는 동자 무늬가 하해(河海)라는 문자무늬와 함께 부착되어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이는 원래는 수여하해 (壽如河海), 부여하해(富如河海)라는 길상문이었는데 자수를 옮 겨 다는 과정에서 일부 소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앞길 좌우와 양 쪽 소매 뒷부분의 봉황무늬는 꼬리 깃털의 형태를 다르게 표현 해 암수를 구분하여 음양화합을 통한 자손번영을 상징한다. 장 수의 뜻을 담고 있는 물결무늬는 색동으로 표현하였고, 파도무 늬와 세마리 나비무늬에는 금사를 둘러서 장식하였다. 근래 서 양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대여하여 입듯이 조선시대 세물전 에서 빌려 입은 활옷은 신부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활옷 유물


활옷 유물 중에서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것은 국립고궁박물 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30년 길례 때 착용한 것으로 여겨지는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활옷이다. 겉감은 홍색 도류불수 단(桃榴佛手緞)이고 안감은 남색이다. 원앙금원문금박을 전면의 소매와 앞길 하단에 장식하였고, 모란 ·연꽃·매화·복숭아·석류·불수감 등의 식물무늬와 다양한 종류의 보배무늬를 전체적으로 자수한 것이 특징이다. 


또 하나는 창덕궁 연화창고에서 보관되어 오던 활옷으로 안감 과 겉감 사이에 종이심(1880년, 고종17의 과거 답안지)이 있어서 1880년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앞길 하단에 봉황을 중심으로 수파와 괴석·화문을, 어깨와 뒷길 상단에는 모란을, 뒷길 하단에 는 수파와 괴석, 연꽃을 배치하고 연꽂 좌우에는 백로 1쌍을 표현 하였다. 앞 쪽 좌우에는 수여산, 부여해 등의 문자무늬를 각각 배치하였다. 앞면보다는 뒷면에 더 많은 자수장식을 하는 것이 일 반적이다. 한삼의 뒷길 쪽 하단에도 수파와 봉황, 꽃 등을 배치하였다. 활옷 전체를 가득 채우는 무늬들은 남녀간의 인연 및 사랑 과 함께 서민들이 갈구하는 오복, 즉 장수, 부귀강녕(富貴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와 출세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궁중 활옷은 자수와 전체적인 구성방법, 장식 형태에 큰 차이가 있다.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4)복온공주 활옷 _ 국립고궁박물관

복온공주 활옷_국립고궁박물관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5)창덕궁 활옷 _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활옷_국립고궁박물관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6)창덕궁 활옷 속 종이심_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활옷 속 종이심_국립고궁박물관



지역에 따른 다른 특징


20세기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혼례복은 지역적으로 차이 를 보이는데, 대체로 북쪽지역은 화려한 머리장식이 특징적이다. 개성 지역에서는 연두색 홑원삼에 홍색 선장식을 두른 색동소 매에 한삼이 달려 있는 원삼을 입었다. 홍색 원삼띠와 홍색 치마, 가체로 높게 틀어 올린 머리에 색색의 꽃과 모올사로 장식한 큰머리 장식을 하였다. 귀고리를 달고 옥판 장식의 발댕기를 비녀 양옆에 걸어 주었으며 뒤에도 화려하게 꾸미고 진주댕기를 늘이고, 얼굴에는 연지곤지를 찍었다. 개성 지역은 집안에 따라 서 혼례를 2~3일에 걸쳐서 하기도 했다고 한다.  


평양 지역에서는 남색 끝동이 달린 녹색 반회장저고리에 남색 털배자를 입었다. 머리에는 커다란 대죽잠을 꽂고 반대편에 용잠을 꽂았으며 색색의 꽃과 보석을 장식한 화려한 족두리, 진주가 장식되어 있는 진주첩 1쌍을 쪽머리 위로 달고 오색 견사로 수놓은 고이댕기는 비녀 머리쪽에 길게 내렸다. 등 뒤로는 금박 과 보석 장식의 도투락댕기를 달고 귀에는 귀고리를 하였다. 허리에는 5작 노리개를 탐스럽게 걸고 한삼으로 손을 가렸다. 신부 와 같은 차림새를 한 들러리가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것도 이 지역의 독특한 풍속이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원삼을 혼례복으로 사용하였지만 미처 준비 하지 못하는 경우 시가에서 ‘우티’감으로 보내온 치마·저고리감을 어깨에 걸치고 허리띠를 묶는 간이 혼례복도 있었다. 홍색 옷감에는 노란 띠를, 노랑 감에는 홍색 띠를 하였다고 하는데 1941년 안동 지역의 결혼 사진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청색 홑원삼에 홍색 깃과 고름을 달았고, 색동소매 끝에는 한삼을 단 청색 원삼을 혼례복으로 사용하였 다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장옷을 혼례복으로 입기도 하였다.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7)[그림12] 개성원삼_김은영 소장

개성 원삼_김은영 소장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8)원삼(남색)(국립민속박물관)

원삼(남색)_국립민속박물관 전라북도 지역의 혼례복이다.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9)개성 지역 혼례 _ 김은영 소장

개성 지역 혼례_김은영 소장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0)혼인식 사진엽서_국립민속박물관

혼인식 사진엽서_국립민속박물관 결혼식 단체촬영의 채색된 흑백사진이 인쇄된 엽서로 평양 지역 혼례의 모습이다.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1)평양 지역 혼례재현품 _ 단국대학교석주선박물관

평양 지역 혼례재현품_단국대학교석주선박물관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2)안동 지역 혼례복(1941년), 『사진으로 보는 근대안동』, 100쪽

안동 지역 혼례복(1941년), 『사진으로 보는 근대안동』, 100쪽



혼례복에 담긴 장인의 손길 


혼례복으로 입는 활옷과 원삼을 만들기 위해서는 솜씨 좋은 많은 사람들의 협업이 필요했다. 옷감을 다양한 색으로 염색하 는 염색장, 활옷에 수를 놓는 자수장, 원삼에 금박을 찍는 금박 장, 매듭술장식을 맺는 매듭장, 이를 모아서 바느질하는 침선장 등 다양한 장인들의 협업에 의해서 하나의 의복이 완성되었다. 


“우리 人生에 衣食住가 다 必要하지만 그 中에도 衣服이 저 重要한 地位를 차지하얏슴니다. 밥이 업서 朝夕을 뛰며 집이 업서 路傍에 드샐지라도 옷업시는 暫時를 못지냄니다. 이것은 사람이 禽獸와 달나 禮를 重히 녁이는 까닭이올시다.… ” 

『조선재봉전서』 서문 중에서


이는 『조선재봉전서(朝鮮裁縫全書)』서문에 나오는 내용으로 의복의 중요성과 바느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 상생활에서 의복이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인들에게 바느질은 부덕·용모 ·말·길쌈과 더불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고 하였다. 옷을 지을 때는 바늘 한 땀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때를 가려서 옷 마르기 좋은 날·피해야 하는 날을 정해 두었고, 또 동짓날의 양기를 받으면 유익하다고 하여 동짓날 시어른의 버선을 지어 그 양기를 밟게 하기도 했다. 바느질 할 때도 옷에 때가 묻거나 일하던 중간에 도구나 재료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미리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바느질 한땀 한땀에는 여인의 정성과 사랑, 소망이 깃들어 있었다. 대부분 가정에서 옷을 만드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왕실과 사대부를 비롯한 특수층의 경우에는 그들 스스로 의복 제작 활동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솜씨가 뛰어난 장인을 관장(官匠) 또는 사장(私匠)의 형태로 고용하여 조달하였다. 또한 서민층의 옷이라 하더라도 평상복이 아닌 관혼상제 등에 필요한 특수복은 솜씨 있는 사람에게 의존하였다.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3)조영석 사제첩 _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영석 사제첩_한국학중앙연구원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4)녀인 침공하는 모양, 기산 김준근 _ 국립민속박물관

녀인 침공하는 모양, 기산 김준근_국립민속박물관 조선 시대 여인들이 침공하는 모습으로 마름질, 다듬이질, 다림이질 하는 모습이다.



조선 시대 경공장(京工匠)에는 10명의 침선장이 공조에 소속되 어 있었고, 외공장(外工匠)에도 2개소에 64명이 소속되어 있었 다. 옷을 만드는 일은 바느질 기술은 물론 여러 공정을 거쳐 완 성되는 복잡한 작업이다. 실을 만드는 제사장(制絲匠), 실이나 천 에 물을 들이는 청염장(靑染匠)·홍염장(紅染匠), 옷감을 짜는 직조장(織造匠)·능라장(綾羅匠), 천을 다듬고 손질하는 도련장(擣練匠), 옷감을 재단하는 재작장(裁作匠), 금박(金箔)이나 자수 (刺繡) 등 무늬를 놓는 금박장(金箔匠) ·자수장(刺繡匠) 등 여러 장인의 협업(協業)에 의해서 옷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옷의 맵시나 품위, 효용성 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장 인은 바느질을 직접 담당하는 침선장(針線匠)이다. 궁중에서는 왕 실 복식의 조달을 전담하던 상의원(尙衣院)의 경공장 가운데 8명 을 분속시켜 각종 궁중 복식을 제작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부족한 일손은 기녀의 신분인 침선비(針線婢)로 하여금 거들도록 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 


바느질을 담당하였던 침선장들은 옷감을 장만할 때 춘하추 동 어느 때 입을 옷인지, 옷 임자의 나이와 신분은 어떠한지, 일 상 옷인지 나들이 옷인지, 현재의 유행은 어떠하며 옷 임자의 성품은 어떠한지, 어디에서 난 물건이 좋은지, 옷감은 얼마나 들 며 물건에는 흠이 없는지, 빛깔이 변하는지, 줄지는 않는지, 안감 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등을 심사숙고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침선장은 혼자 힘으로 디자이너 ·재단사·패턴사겸 재봉사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기에 남다른 취미에 야무진 솜씨, 게다가 기술의 연마와 창조적인 슬기, 그리고 천성적인 미의식·색감 등이 갖 추어져야만 침선장이 될 수 있었다. 


1900년대 초기 재봉틀이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후 손바느질은 구식으로 취급받기도 하였지만,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면서 손바느질 및 우리전통문화가 다시 주목받으며 침선장 제도를 통해 그 맥을 잇고 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생활방식이 제도적으로 국가에서 지정하여 보호하는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무형문화재라는 틀 안에서 장인들의 손길을 통해 보호·전승 되고 있고, 이후 수차례 법령의 정비를 거쳐 2015년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법령은 유네스코 기준에 맞추어 대폭 확대하고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의 원칙을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도모하는 방 향으로 변경하여 진행하고 있다. 


바느질은 필요에 의하여 생겨났지만 복식의 역사와 함께 계속 발전하여 왔으며, 유물을 통하여 여인들의 뛰어난 장인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무엇이나 쉽게 기계적으로 해결하려는 간편한 방법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우리 선조들의 과학적이고 경제 적인 바느질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5)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 구혜자 _ 한국문화재재단

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 구혜자 _ 한국문화재재단

(2021가을겨울_혼인-4_사진15)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 구혜자 _ 한국문화재재단

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 구혜자 _ 한국문화재재단



의복에 담긴 마음


의복에 담긴 사랑에는 혼수를 준비하며 시집보내는 딸아이 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기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 실제 혼 례복에 십장생과 모란, 연꽃 등 다양한 자수 무늬를 담아 부부 의 화합과 해로를 기원하는 사랑의 마음 두 가지가 모두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혼례의복을 통하여 백화점이나 상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요즘 예복과 차별된 깊고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다 시 한번 새겨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