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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가을, 겨울호-사랑과전쟁] 혼인-욕망이 만들어 낸 막장 드라마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2-01-07 조회수 : 1248



인간 사회라면 어디나 있는 막장 드라마, 조선 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하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인간 군상들이 패륜과 살인, 사기와 배신을 거듭하며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탐욕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드라마를 지칭한다. 우리 안방극장에서 이런 막장 드라마는 너무도 흔해진 나머지 공중파의 일일드라마는 막장 일색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그만큼 이제 막장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일상사가 되었다. 


글_ 박영규(에로틱 조선, 크리미널 조선 저자)



욕망이 만들어 낸 막장 드라마



현실을 담은 막장 드라마 


드라마 속에서 막장이 판을 치고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시청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막장에 관대해졌다는 뜻이다. 더구나 최근에 와서는 막장에 온갖 화려함을 덧칠한 덕에 시청률을 한껏 끌어올려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 드라마들이 여럿 배출되었다. 그 대표적인 드라마가 ‘SKY 캐슬’과 ‘펜트 하우스’가 아닐까 싶다. 이 두 드라마는 공히 부유함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그 탐욕 뒤 에 숨어 있는 인간의 생존 본능, 그리고 그 생존본능의 바닥을 깔고 있는 천박성을 숨김없이 까발렸고, 시청자는 시청률로써 드라마에 호응했다. 물론 결말은 공히 권선징악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시청자들이 이런 화려한 막장에 호응하는 것은 막장 드라마들의 내용이 단순히 재미와 환상을 넘어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 치기 때문이다. 돈 앞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동지도 없는 사건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는 현실이 우리 앞에 있고, 우리 사회 에서 부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재벌들의 ‘머니 게임’은 지극히 당 연한 사회적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거기다 권력과 돈의 유착 관계는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거리로 제공되고 있고, 돈 때문에 부모나 형제, 친구, 배우자, 애인을 죽인 자들이 법원의 단골손님이 된 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말하자면 막장드라마는 이제 단순히 영상 속에서만 벌어지는 상상 속 스토리가 아니라 이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실이 된 것이다. 거기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막장인 것은 권선징악의 결말조차 없다는 점이다. 이런 막장 현실은 비단 한국 사회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막장 현실을 목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자본주의 시대에만 벌어지는 일일까? 효를 강조하고 선비의 도를 강조하며 동방예 의지국이라 부르던 유학의 나라 조선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조선 시대에도 여전히 막장은 존재했다. 그것도 생각보다 많았으며, 놀랍게도 노비에서 왕족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막장 스토리를 끊임없이 생산해 냈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막장 스토리 중 에 대표적인 두 가지 이야기다.



(2021가을겨울_파탄-1_사진1-1)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8월 8일 계해 2번째기사-1~3 _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3
(2021가을겨울_파탄-1_사진1-2)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8월 8일 계해 2번째기사-1~3 _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2
(2021가을겨울_파탄-1_사진1-3)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8월 8일 계해 2번째기사-1~3 _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1

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8월 8일 계해 2번째기사-1~3_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조화의 아내였던 김씨는 남편이 죽자 외도하던 상대와 재혼을 했는데, 실록에는 두 번째 남편 이지의 황당한 죽음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 치정과 살인 


조선 시대 막장 중에 가장 흔한 스토리는 치정과 살인이었다. 치정살인의 일반적인 스토리는 아내가 내연남과 공모하여 남편 을 죽이는 내용이다. 이런 류의 치정살인은 실록에 수도 없이 등 장한다. 특징이 있다면 조선 시대 치정살인 중에는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경우보다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사실, 당시 시대상을 안다면 이는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엔 아내가 남편 몰래 간통을 했을 경우 아내는 매를 맞고 유배되거나 아니면 남편의 손에 죽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설사 남편이 아내의 간통 현장을 적발하고 아내를 죽인 다고 하더라도 벌을 받지 않았다. 때문에 아내는 외도 사실을 들킬 경우 최소 유배되거나 맞아 죽어야 한다. 하지만 남편은 외도를 해도 내연녀가 유부녀가 아니라면 처벌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외도한 여인의 경우 남편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남편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아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남편을 죽인 것은 아니었다. 좀 더 대담한 여인들도 있었다. 세종 대에 돈녕부 영사를 지낸 이지의 아내 김씨가 바로 그런 여인이었다. 그녀에 관해 세 종실록 9년(1427년) 8월8일의 기사에 이렇게 전한다.



조화의 아내 김씨의 대담한 외도 


처음에 김씨는 조화의 아내였다. 조화가 일찍이 김씨의 어머니와 간통하니 김씨가 이를 알고 김씨도 또한 허해와 몰래 간통 하였다. 하루는 조화가 첩을 데리고 외박을 하였는데 김씨도 또 한 허해를 끌어들여 유숙시켰으나, 허해가 옷을 벗어 조화의 옷 걸이에 걸어놓았다가 돌아갈 때에 잘못하여 조화의 옷을 입고 가버렸다. 조화가 새벽에 안방에 들어와서 옷을 꺼내 입으니 옷 이 몸에 맞지 아니하므로, 드디어 알고 이를 따져 물었더니, 김씨 가 이렇게 대답했다.  


“오늘 밤에 허해가 와서 유숙했는데 잘못 입고 갔습니다.” 


조화가 노하여 꾸짖으니, 김씨가 대꾸했다. 


“당신의 하는 짓이 이와 같은데 어찌 나를 허물하는가. 당신이 만약 말을 퍼뜨리면, 당신이 먼저 수레에 오른 뒤라야 나도 다음 수레에 오른다.” 


김씨가 남편 조화에게 이렇듯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 조화의 죄가 김씨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조화가 간통한 여인은 놀랍게도 김씨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장모와 불륜을 저 질렀으니, 당시 법으론 강상의 죄를 범한 죄이기에 최소 참형이 었다. 그런 까닭에 조화는 아내 김씨를 어쩌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그 뒤로 김씨는 여러 남자와 외도를 했다. 그리고 남편 조화가 죽자, 외도하던 상대와 재혼을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두 번째 남편 이지였다. 


그녀가 남편 조화와 사별했을 때의 나이가 무려 57세였다. 당시 57세면 증손자를 볼 나이였다. 그럼에도 결혼을 하자, 사헌부에서 이지를 탄핵했다. 장안에서 내로라 하는 사대부 집안에서 늙은 나이에 재혼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하지만 당시 왕이었던 태종은 이런 말로 탄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내 없는 남자와 남편 없는 여자가 스스로 서로 혼인하는 것을 어찌 반드시 묻겠는가? 하물며 이지가 계실을 취한 것을 나도 아는 일이니, 다시는 핵론하지 말라.” 


이지는 태조 이성계의 사촌 동생이자 태종의 당숙이었다. 그런 까닭에 태종이 너그러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렇듯 이지는 주변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김씨와 결혼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의 손에 죽는다. 이지가 죽은 것은 김씨와 결혼 한 지 십여 년이 지난 1427년이었다. 그때 이지의 나이는 79세였 고, 둘째부인 김씨의 나이도 70세를 넘긴 때였다. 이때 이지는 황당한 일로 죽게 되는데, 그 사연을 실록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지가 얼마 뒤에 영의정에 임명되어 치사하고, 다시 영돈녕이되어 그대로 치사하게 하였다. 이지의 어머니 기일은 섣달 그믐 날이고, 아버지 기일은 정월 초하루이므로, 매양 세말(歲末)에 죽은 부모를 위하여 절에 가서 부처를 공양하고 중에게 재(齋) 올리는 것으로 떳떳한 일로 삼았는데, 이때에도 향림사에 나아가서 부처에게 공양하였다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졸(卒)하니, 나이 79세였다. 부음(訃音)이 위에 들리니,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부의(賻儀)를 내리고, 관(官)에서 장사지내는 일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였다.  


“이지가 후처 김씨와 더불어 절에 가서 수일 동안 머물렀는데, 밤에 김씨가 중과 간통하므로, 이지가 간통하는 장소에서 붙잡 아 꾸짖고 구타하니, 김씨가 이지의 불알을 끌어당겨 죽였다.” 


그때 따라간 사람이 모두 김씨의 노비였기 때문에 이를 숨겼으니, 외인(外人)들은 알 수가 없었다. 이지의 전처 아들 절제사 이 상흥이 충청도에서 부고를 듣고 왔는데, 한 남자 종이 김씨에게 이렇게 고했다. 


“상흥이 장차 이 사실을 형조에 알릴 것입니다.” 


그러자 김씨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광하여 천치처럼 되니, 드디어 일이 잠잠해지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말하였다. 


“관청에 알려서 시체를 검사하면 원통함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지의 시신에 대한 검시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지의 아들 상흥이 아버지가 죽은 내막을 알면서도 관청에 고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흥이 이 사건을 관아에 알리지 않은 이유는 뻔하다. 관아에 알려봤자, 피해를 보는 것은 자기 집안일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계모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김씨는 자신의 어머니였다. 그런데 그녀가 승려와의 간통 사실을 숨기기 위해 남편을 죽였다는 소문이 나면 집안이 엉망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김씨를 도와 사건을 은폐한 종들은 모두 물고장이 날 것이고, 이상흥 자신도 벼슬을 내놓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형제 들까지 모두 피해를 입게 될 것은 자명한 현실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상흥은 이 사건을 덮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이지의 아내 김씨는 수많은 남자들과 외도를 하고, 남편 까지 죽였지만 처벌조차 받지 않은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딱 막장 드라마에 맞는 전형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악녀이자 색녀, 박원길의 아내 변씨


그런데 실록에는 이지의 아내 김씨보다 더 대담하고 무서운 여인에 대한 기록도 있다. 그녀는 조선 초 최고의 학자로 불리던 변계량의 누나였다. 그녀는 원래 박충언이라는 남자에게 시집갔는데, 박충언이 죽자 박원길에게 재가했다. 재가할 무렵에 그녀는 전 남편의 종들인 포대, 사안 형제와 사통을 즐기고 있었는데, 박원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급한 나머지 그녀는 동생 변계량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내 남편이 성질이 더러워서 함께 해로하기 어렵다. 제발 헤어지 게 해다오.” 


하지만 평소부터 누나의 행동거지를 잘 알고 있던 계량은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변계량이 가타부타 대답이 없자, 그녀는 악감정을 품고 계량은 물론이고 자기 남편 박원길까지 죽이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우선 사통하던 포대, 사안 등과 의논한 후, 정안공(태종 이방원)의 수하로 있던 김귀천을 포섭했다. 그녀는 김귀천을 양자로 삼고 노비 네 명을 준 후, 정안공을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했다. 귀천의 주선을 받아 정안공을 만나자, 그녀는 역모를 고변했다. 


“의안공 이화가 박원길과 변계량, 이양몽, 이양중 등과 더불어 몰래 난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그냥두면 큰 변란이 일어날 것이니 미리 그들을 죽이소서.” 


그녀가 이방원을 찾아간 것은 1399년 8월이었다. 바로 한 해 전에 군대를 일으켜 정도전을 살해하고 방석을 참살한 뒤 정종을 왕위에 앉힌 터였다. 원래 의심이 많은 데다 정변을 일으킨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이방원은 그녀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모에 거론된 인물이 의안군 이화였다. 이화는 이성계의 이복동생으로 방원에게는 숙부였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이방원이 묻자 변씨는 꾸며댄 말을 쏟아놓았다. 


“제가 박원길에게 시집가기 전인 금년 정월에 이양몽이 그의 형 이양중을 내게 중매했습니다. 그때 양몽이 말하길 ‘내가 일찍이 재주 있는 사람 수백 명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고, 우리 주장(主將) 의안군 또한 휘하에 수천 명의 군사를 두고 있으니, 하루에 난을 일으키면 나는 하루아침에 대장군이 될 것이오.’라 고 했습니다.” 


이방원의 얼굴이 굳어지자 변씨는 한층 더 그럴싸한 말들을 꾸며 붙였다. 


“그 뒤에 소첩이 박원길에게 시집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은 의안공을 높게 평가하며 자기도 그리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또 박원길이 말하길 의안군이 자기의 기상을 뽐내며 왕위를 얻더라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했답니다. 지금 박원길과 변계량이 이양몽, 이양중 등과 어우러져 몰래 난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일이 터질 것이니 먼저 그들을 도모하소서.” 


이방원은 곧 그 말을 정종에게 전하고 조정 대신을 비롯한 장수 들과 의논한 뒤, 먼저 대장군 심귀령을 시켜 박원길을 잡아와 국문했다. 하지만 박원길은 끝내 부인했다. 그리 되자, 거짓말이 탄로날 것을 염려한 변씨는 포대와 함께 몸을 숨겼으나 이내 붙잡 혀서 하옥됐다. 변씨는 박원길, 이양몽 등과 대질 심문을 당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변씨는 거짓말을 둘러댔다. 


“이양몽은 의안공 휘하의 패두입니다. 내 남편과 함께 의안공을 받들어 거사하려고 했습니다. 제 귀로 똑똑히 들은 말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의안공 이화와 그의 아들은 두려움에 떨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방원은 사실을 캐내기 위해 박원길과 사안을 심하게 매질했는데, 장독이 심해 둘 다 죽고 말았다. 이양몽도 고문을 했지만 혐의 사실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포대가 매를 견디지 못하고 실토했다. 


“우리 형제가 주인 마님과 사통했는데, 박원길이 그 일을 알게 되었으므로 거짓말을 꾸며 그를 사지에 빠뜨리고자 한 것입니다. 의안군이 역모를 획책한 일은 없습니다.” 


사실이 밝혀지자 이양몽 등은 석방되고 변씨와 포대는 참형을 당했다. 변씨의 무고 내용 중에 변계량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방원은 그를 아끼고 있던 터라 잡아다 국문하지 않았다. 다만 역모에 이름이 오른 만큼 하옥되는 처지에 놓였는데, 태종은 그를 총애했던 까닭에 가급적 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계량의 처지가 난처했을 것이란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친누나가 자신을 역적으로 몬 것도 충격적이지만, 누명을 벗고 보니 누나가 천하의 악녀이자 색녀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망신살이 뻗쳐도 보통 뻗친 것이 아니었다.



(2021가을겨울_파탄-1_사진2)정종실록 2권, 정종 1년 8월 19일 병진 5번째기사 _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정종실록 2권, 정종 1년 8월 19일 병진 5번째기사_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과거에서 현대까지, 인간의 탐욕과 본능 


소개한 두 이야기는 비록 조선 시대의 실화지만 현대로 옮겨 놔도 막장드라마 소재로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이렇듯 조선 시대에도 막장 드라마의 소재는 얼마든지 있었다. 비단 조선뿐 아니라 서구 중세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인간이 사는 곳엔 어디든 막장드라마는 존재했다는 뜻이다. 막장의 뿌리가 인간의 탐욕과 본능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막장이 사라질 날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