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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가을, 겨울호-사랑과전쟁] 혼인-가면극 속에 담긴 치정
작성자 : 재단관리자 작성일 : 2022-01-07 조회수 : 1754



가면극 속에 담긴 치정



가면을 쓰고 극을 선보이는 가면극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어 놀음, 춤 등과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가면극을 구분짓는 명확한 특징은 춤과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진 극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의 욕망과 특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춤 그리고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한 재담은 가면극의 화자를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연희자들이 쓰고 있는 가면은 더욱 과감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글·사진_ 허용호(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2021가을겨울_파탄-4_사진1)강령탈춤, 민속극장 풍류 공연 _ 한국문화재재단

강령탈춤, 민속극장 풍류 공연 _ 한국문화재재단

(2021가을겨울_파탄-4_사진2)봉산탈춤, 제 4과장 노장춤 _ 한국문화재재단

봉산탈춤, 제 4과장 노장춤 _ 한국문화재재단



얼굴은 가리고 욕망은 드러내고


가면 혹은 탈을 쓴 연희자들이 춤과 재담 등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전통연희를 가면극이라 한다. 탈놀이, 탈놀음, 탈춤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특히 탈춤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 춤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면극에서는 춤 못지않게 재담이 연행의 핵심 역할을 한다. 또한 탈춤은 황해도 지역의 가면극을 부르는 명칭이기도 해서 혼선을 불러올 소지가 있다. 가면극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담과 춤을 모두 아우르고, 지역 명칭과 전체 명칭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면극이라 부르는 것이다.


가면극은 지역마다 고유한 명칭이 있다. 황해도에서는 탈춤이라 부른다.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등이 그 예이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산대놀이라 부른다. 양주별산대놀이, 송파산대놀이가 이에 해당한다. 경상남도 낙동강 유역에서는 야류와 오광대라 부른다. 낙동강 동쪽 지역에서는 야류, 서쪽 지역에서는 오광대라 부르는 것이다. 동래야류, 수영야류, 고성오광대, 통영오광대, 가산오광대 등이 그 구체적 사례들이다. 그밖에 경상북도의 하회별신굿탈놀이, 강원도의 강릉관노놀이, 함경남도의 북청사자놀음 또한 가면극 범주에 포함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가면극은 지역마다 그리고 각각의 가면극마다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공통점도 적지 않다. 보통 신분이나 계층, 부류 등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불리는 등장인물들의 공통적이다. 양반, 샌님, 영감, 할미, 상좌, 노장, 먹중 등이 그러하다. 양반의 하인은 모두 말뚝이라 불리며, 소무를 사이에 두고 노장과 맞서는 인물이 술 취한 취발이라는 점도 같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들의 가면 형상이 유사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가면극 내용 또한 공통된다. 중이 파계하는 대목, 양반과 하인이 등장하는 대목, 할미와 영감이 티격태격하는 대목 등이 가면극의 중심 내용을 구성한다.


가면극에서 중이 파계하는 내용으로 전개되는 대목을 중마당이라 부른다. 중마당은 황해도의 탈춤과 경기도·서울의 산대놀이에서 그 비중이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등장하는 인물도 많다. 중마당의 중심인물은 오랫동안 불도를 닦은 노장이다. 그는 소무를 앞세운 먹중들에 의해 파계한다. 파계한 노장은 완력을 앞세우는 세속적 인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취발이에게 소무를 뺏기고 쫓겨난다. 노장이 파계하고 쫓겨나게 되는 중마당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진행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노장, 먹중, 소무, 신장수, 원숭이, 취발이 등이다. 이 인물들이 황해도 탈춤과 경기도·서울의 산대놀이에서 동일하게 등장한다.


양반과 하인이 등장하는 대목은 흔히 양반마당이라 부른다. 양반마당에서는 복수의 양반이 등장한다. 하인은 보통 말뚝이라 불리는 인물이 나온다. 말뚝이는 겉으로는 양반의 시중을 들고 복종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양반의 약점을 폭로하고 무지를 조롱한다. 말이 많을 뿐 아니라 잘하기까지 하는 말뚝이에게 양반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말뚝이에게 조롱당하는 양반들의 가면이 대부분 장애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도 황해도 탈춤이나 경기도·서울의 산대놀이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할미와 영감이 등장하여 티격태격 싸움을 벌이는 대목은 보통 할미마당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면극에서 나타나는 것이 할미마당이다. 그 내용은 대체로 영감과 할미가 젊은 첩 때문에 다투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영감과 할미의 싸움은 보통 할미의 죽음으로 맺어진다. 할미의 죽음 이후에는 무당굿을 하거나 상엿소리를 하며 장례를 치른다. 서울·경기도의 산대놀이나 황해도 탈춤에서는 무당굿을 하며, 경상도의 야류와 오광대에서는 상엿소리를 하며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이렇게 중마당, 양반마당, 할미마당으로 구성된 우리의 가면극에서는 음담패설과 폭력이 난무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본능적인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오랫동안 불도를 닦은 노장은 소무 유혹에 넘어가 파계하고, 먹중들은 오입쟁이를 자처한다. 양반들은 장애의 형상으로 등장하며, 하인 말뚝이는 그 양반들을 조롱하며 욕보인다. 취발이는 힘으로 소무를 빼앗고, 영감과 할미는 공공연하게 성적 유희를 벌이기도 한다. 영감과 할미는 대판 싸움을 벌여 할미가 맞아 죽는 경우도 나타난다. 여기서 예의는 물론이고, 어떤 절제도 찾아볼 수 없다. 성적 표현이나 행동, 욕설 과 폭력이 과도하게 넘쳐난다. 가면을 써서 얼굴이 감추어지는 대신, 본능과 욕망이 드러나고 있다. 



(2021가을겨울_파탄-4_사진3)은율탈춤, 새맥시에게로 다가가 안으려고 하는 노승 _ 국립무형유산원

은율탈춤, 새맥시에게로 다가가 안으려고 하는 노승 _ 국립무형유산원



본능 해방과 욕망 분출의 축제판


가면극을 본능 해방과 욕망 분출의 축제로 볼 때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본능 해방이나 욕망 분출이 긍정적 가치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드러나는 본능과 욕망에 대하여 애써 긍정적 가치만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또한 가면극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시대적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본능 해방과 욕망 분출의 축제로서 가면극을 바라보고 가면극의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는 시각을 가질 때, 가면극은 조금 달리 보인다. 달리 보이는 가면극 세계는 그동안의 해석과 평가와 많은 차이가 있다. 가면극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과 평가와 는 다른 견해가 피력될 수 있는 것이다.


본능 해방과 욕망 분출의 축제로서 가면극을 보면, 먼저 파계승에 대한 태도가 일관적이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분명 중마당에서는 파계하는 노장에 대하여 비판적이다. 그는 제자라 할 수 있는 먹중들에게 조롱당하고 취발이에게 얻어맞고 쫓겨간난다. 이를 보면 분명 파계하는 노장은 가면극에서 비판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파계는 노장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먹중들이 먼저 파계한다. 그리고 먹중들의 파계에 대하여 가면극은 우호적으로 대한다. 먹중들은 가면극에서 긍정적 인물들로 자리한다. 욕망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먹중들과 취발이가 대접받는 것이 가면극 이다. 가면극에서 이루어지는 노장 비판의 이유는 그가 파계해서가 아니다. 고승인 체하는 그의 관념과 파계승으로서의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 그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이다.


양반마당에서 나타나는 양반의 풍자 방식의 문제점 역시 포착할 수 있다. 양반마당에서 양반의 특권 의식에 대한 비판은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이 특권을 누릴 만한 자격이 없음을 말뚝이의 현란한 말재주를 통하여 폭로한다. 스스로 드러내는 무지 또한 양반 풍자에 한몫한다. 하지만 양반 풍자를 위해 동원된 장애 형상은 문제가 많다. 양반들이 특권을 누릴 만한 자격이 없는 비정상이고 무능력하며 도덕적 결함과 지적 저열함까지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장애 형상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장애를 웃음거리로 만들려 했던 의도가 아니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장애 혹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무심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본능 해방과 욕망 분출의 축제로서 가면극을 본다면, 할미마당에서 영감이 눈에 뜨인다. 할미당에서 비판받는 것은 영감이 아니다. 오히려 축제로서의 가면극에 가장 최적화된 인물이 영감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가면극에 등장하는 영감은 집안은 돌보지 않고 첩까지 얻어 지내면서 큰소리친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가면극에 등장하는 영감은 어쩌면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가면극 연행공동체의 페르소나(persona)일 수도 있다.



(2021가을겨울_파탄-4_사진4)강령탈춤의 미얄할미와 영감

강령탈춤의 미얄할미와 영감

(2021가을겨울_파탄-4_사진5)봉산탈춤의 미얄할미

봉산탈춤의 미얄할미



가면극 속의 여성들


가면극에서 배려되지 않은 대상은 장애인뿐만이 아니다. 여성 역시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가면극에서는 영감 혹은 남성들의 횡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행태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것은 여성 등장인물들의 형상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황해도 지역의 탈춤을 중심으로 이를 살펴보기로 한다. 황해도 지역의 탈춤 곧, 해서탈춤에서는 두 유형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한 유형은 말을 하고 적극적이지만 박색(薄色)이라 평가받는 여성이다. 미얄할미가 이에 해당한다. 다른 유형은 침묵하며 소극적인 미색의 여성이다. 소무, 새맥시, 용산삼개들머리집, 뚱딴지집 등이 이 유형에 해당하는 여성들이다. 


이 두 유형의 여성들에 대하여 해서탈춤의 다른 등장인물들, 특히 남성 등장인물들은 차별적으로 대한다. 후자 유형의 여성들만을 선호하고 관심을 표명한다. 남성 등장인물들은 침묵하며 소극적인 미색의 여성들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적어도 해서탈춤에서 소무, 새맥시, 용산삼개들머집 등은 안락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남성 등장인물들의 선호와 관심은 성애적인 선호이고 관심이다. 이 유형의 여성들은 그저 눈요깃감으로 혹은 성희의 대상이자 교환 대상물 혹은 전리품(戰利品)으로 인식될 뿐이다.


반면 자신의 의견을 말로 표현하는 박색의 여성은 관심과 선호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미얄할미의 자기표현과 적극적인 행동에 대해, 해서탈춤에서는 그녀를 바가지 긁는 수다스럽고 뻔뻔한 여자로 낙인찍는다. 미얄할미가 환대받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다. 미얄할미는 영감과 의 다툼 끝에 집을 나갔다가 죽거나(강령탈춤), 첩에게 맞아 죽거나(은율탈춤), 영감에 맞아 죽는다(봉산탈춤). 침 묵하는 여성의 이미지에 반대되는, 바가지 긁는 여편네, 잔소리꾼, 더 나아가 남성을 거세하는 이미지를 가진 여성은 쫓겨나야 하고 조용해져야 하며, 제거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여성에 대한 인식은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사고이다. 말이 없는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으로 생각하는 남성 중심적 환상을 드러내고 있다. 남성이 자신의 우월성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기 말 또는 폭력에 대응하는 그 어떤 것도 일어나서는 안 되기에, 말이 없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만들어 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서탈춤, 나아가 가면극은 남성들의 축제이다. 남성들은 그 축제판을 성애의 대상물로 채웠으며, 자신들의 이상향에서 여성의 제대로 된 역할을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다. 가면극의 세계는 그 연행과 향유의 주체였던 남성들의 축제판이다. 어떤 절제도 없고 배려도 없는 남성 중심의 욕망이 분출되는 무심한 축제이다. 



(2021가을겨울_파탄-4_사진6)봉산탈춤의 소무

봉산탈춤의 소무

(2021가을겨울_파탄-4_사진7)은율탈춤 뚱딴지집에게 맞아 죽은 미얄할미

은율탈춤 뚱딴지집에게 맞아 죽은 미얄할미



가면극 속 치정의 민낯


가면극 할미마당은 늙은 부부의 비극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감과 미얄할미는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다. 그 사이 미얄할미는 자식을 모두 잃고 심한 고생을 한다. 반면 영감은 자신의 본능에 따라 욕망을 충족하며 살아왔다. 그 둘이 다시 만난다. 하지만 영감에게는 첩이 있었다. 미얄할미는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는다.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벌어진다. 그 싸움 끝에 미얄할미가 죽는다. 영감은 그 죽음에 슬퍼하지도 않는다. 첩과 희롱하며 퇴장할 뿐이다. 이러한 할미마당의 내용 전개는 건강하지도 건전하지도 않다. 그것은 부도덕하며 비윤리적이다. 그래서 할미마당을 치정에 얽힌 이야기 혹은 치정극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치정 혹은 치정극에는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이 비록 온갖 어지럽고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것이라 해도 남녀 간의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가면극 할미마당에는 그러한 사랑이 없다. ‘과연 영감이 미얄할미를 사랑했을까?’ 혹은 ‘첩을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미얄할미의 죽음에도 끝내 슬퍼하지도 않고, 첩과 함께 퇴장하는 영감의 행태에서 사랑 혹은 애정을 찾을 수는 없다. 함께 퇴장하는 첩 역시 그저 비주체적인 도구일 뿐이다. 여기에 사랑이 혹은 애정이 자리할 공간은 없다. 할미마당에 나아가 가면극 전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남성의 본능과 욕망뿐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남성의 횡포이다. 


사실 가면극에서는 영감 혹은 남성들의 횡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행태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집안은 돌보지 않고 첩까지 얻어 지내면서 큰소리치는 영감은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가면극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들은 그저 유혹의 대상일 뿐이고, 늙은 여성들은 남성들의 가부장적 행태의 희생자로서만 자리한다. 가면극에서 여성들이 주체로 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일하게 자기의 생각을 수다스럽게 표현하고 행동하는 할미가 죽음으로 종말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가면극이 가진 남성 중심성의 절정이다.


가면극에서 만들어 내는 세계는 남성들의 이상한 이상향이다. 축제로서 가면극은 전 인류적이고 보편적인 평등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존의 허위와 모든 종류의 불평등에 대한 유쾌하고도 비판적인 민중 공동체적 이상을 구현해 보는 것이 축제의 특성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축제의 한 측면만을 본 것이다. 축제가 때때로 강자가 아닌 약자를, 특히 여성과 인종적·종교적 소수자들을 악마시하거나 공격한다는 사실 또한 주목해야 한다. 동시에 축제가 문제가 될 만한 것은 기꺼이 변화시키지만, 합법화할 만한 것은 더욱 강화한다는 점 역시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속성은 비판 거리가 될 만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축제의 민낯이다.


(2021가을겨울_파탄-4_사진8)죽은 미얄을 두고 퇴장하는 봉산탈춤의 영감과 용산삼개들머리집

죽은 미얄을 두고 퇴장하는 봉산탈춤의 영감과 용산삼개들머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