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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봄, 여름호-전설의고향] 굿것, 귀신과 괴물의 시대를 만나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7-14 조회수 : 1350
굿것, 귀신과 괴물의 시대를 만나다
글 조현설(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5세기 조선의 귀신론

무엇이 귀신(鬼神)인가? 민간의 통념적 인식과 철학적 인식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조선 초 유가(儒家)들에게 귀신은 철학적 논변의 키워드였다. 조선은 신유학을 바탕으로 설립된 국가였고, 새로운 이념에 따라 제사 제도를 다시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제사의 핵심은 조상귀신이다. 조상귀신이 무엇이며 왜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설명해야 했다. 그래서 15세기 내내 철학적 입장에 따른 귀신론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서경덕은 삶과 죽음, 사람과 귀신은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일일 따름이라고 했다. 기가 흩어지면 죽어 귀신이 되고, 신체와 더불어 혼백도 흩어져 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제사를 받는 귀신은 없다는 것이다. 이율곡은 달랐다. 그는 죽은 지 오래되지 않으면 기가 감응하고, 오래되면 이치가 감응한다고 했다. 자손의 정신이 조상의 정신이기 때문에 감응이 없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서경덕은 제사를 받는 귀신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이는 조상귀신을 인정했다. 이런 식으로 철학적 논변은 반복되고 확장되었다.

그러나 철학적 논변과 상관없이, 귀신은 일상에 실재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의 한시를 번역한 『두시언해』를 보면 ‘魑魅嘯有風(이매소유풍)’을 ‘굿것이 바람에서 되파람부나니’로, ‘戰哭多新鬼(전곡다신귀)’를 ‘싸움에 우니 새 굿것이 많도다’로 번역해 놓았다. 한자로 ‘이매(螭魅)’나 ‘귀(鬼)’를 ‘굿것’이라고 했다. 때로는 ‘귓것’이라는 용례도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 현상인데 사람한테 궂은일을 일으키는 존재를 ‘굿(귓)것’으로 통칭한 것으로 보인다. ‘굿것’을 한자어로 바꾸면 ‘귀물(鬼物)’이 된다.

귀물이 있으면 신물(神物)도 있다. 『삼국유사』에는 향가 <헌화가>의 주인공 수로부인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강릉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의 부인인데 ‘절대적 미모’를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뿐만 아니라 신물이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납치했다고 한다. 해룡(海龍)도 그중 하나인데 수로부인을 납치했다가 도로 내놓는다. 깊은 산에는 산신이 있고, 큰 못에는 용이 거하는데 이들을 모두 신물로 부르고 있다. 귀물이 궂은일을 일으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라면 신물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다.

이규보의 장편서사시 『동명왕편』의 서문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동명왕본기」를 읽은 뒤 처음에는 ‘귀환(鬼幻)’으로 여겼는데 세 번이나 거듭 읽으며 근원을 따져보니 ‘신성(神聖)’이었다는 것이다. 이규보가 인식하기에 귀와 신은 대립적이다. 귀는 헛것이고, 신은 성스러운 것이다. 동명왕 주몽의 신화를 처음에는 헛것으로 여겼는데 생각해 보니 신령한 일이었다는 깨달음이다. 귀물(鬼物), 곧 굿것은 헛것이고, 신물(神物), 곧 신령한 것은 성스러운 존재라는 분별이 분명하다. 귀물과 신물을 함께 이르는 귀신은 사람과의 호오(好惡)관계에 따라 분별되는 비현실적 존재를 이르는 말이다.

귀신, 괴물이 되다

그렇다면 괴물은 무엇인가? 『태종실록』에 흥미로운 기사가 있다. “어리(於里)는 마음을 미혹하는 화근이요, 사람을 상하게 하는 괴물이니, 아울러 법대로 처치하여서 자손만세에 경계를 보이소서.” 사헌부(司憲府)에서 올린 상소의 한 구절이다. 어리는 기생 출신으로 양녕대군의 첩이었다. 괴물(怪物)은 어리를 비하하여 쓴 말이다. 괴물은 굿것 혹은 귀신과 달리 못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을 경멸할 때 이르는 비칭(卑稱)이다. 실록에 괴물의 용례가 여럿 보이지만 사람이 아닌 데 쓴 경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

『태종실록』 35권, 태종 18년(1418년)

6월 4일 계미 2번째 기사

且於里(차어리), 迷心之禍根(미심지화근), 傷人之怪物(상인지괴물),

竝置於法(병치어법), 以示子孫萬世之戒(이시자손만세지계)

어리(於里)는 마음을 미혹(迷惑)하는 화근(禍根)이요,

사람을 상하게 하는 괴물(怪物)이니,

아울러 법대로 처치하여서 자손 만세에 경계를 보이소서.

『태종실록』,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 197권, 성종 17년(1486년)

11월 10일 신해 2번째 기사

“鵂鶹(휴류), 世俗所惡(세속소악), 而常鳴於宮樹(이상명어궁수),

何足怪乎(하족괴호)? 物怪久(물괴구), 則自無也(칙자무야).”

“부엉이는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이나 항상

궁중의 나무에서 우니, 무엇이 족히 괴이하겠는가?

물괴(物怪)는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진다.”

『성종실록』,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괴물을 거꾸로 쓰면 물괴(物怪)다. 물괴의 쓰임을 찾아보면 괴물과 구분된다. 『성종실록』을 보면 경연에서 쥐가 절을 하고, 부엉이가 궁중의 나무에서 울어대는 현상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임금은 그런 “물괴는 오래되면 저절로 없어진다.”라고 말한다. 실록에서 물괴는 ‘인요(人妖)물괴·천변(天變)물괴·천재(天災)물괴·지진해일물괴’와 같은 용례로 사용되고 있다. 사람이나 자연이 이상해질 때 더불어 사물도 괴이해진다는 뜻이다. 물괴는 사물들이 정상성을 잃고 다른 상태로 변형된 경우를 지칭하는 말이다.

『동국여지승람』 경주부(慶州府) 항목에는 경주 사람들의 두두리(豆豆里) 의례가 기록되어 있다. 비형랑 이후 내려온 민속이라고 했는데 비형랑은 신라 진지왕의 혼령과 도화녀 사이에 태어난 존재다. 귀신과 인간 사이에서 났으니 비인비신(非人非神)이자 반인반신(半人半神)이다. 비형랑은 여우의 형상을 지녔던 길달과 같은 귀물들을 부려 하룻밤 새 귀교(鬼橋)를 놓았고, 경주 사람들은 비형랑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다. 비형랑은 경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발산하는 신물이었다.

두두리 비형랑을 도깨비(도채비)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설화와 경험담 형식으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도깨비는 두두리와 똑같지는 않다. 도깨비는 도깨비불로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사람한테 잘 속는 어리석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밤새 씨름을 했는데 알고 보니 빗자루나 나무 몽둥이 등 오래된 물건으로 정체가 밝혀진다. 기원으로 보면 도깨비는 굿것에서 비롯되었지만 오늘날의 도깨비는 사람과 비슷한 꼴로 나타나 사람을 홀리는 물괴이다. 도깨비는 신라·고려 때는 귀신(굿것)이었는데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물괴로 인식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물괴의 자리를 차지한 괴물

조선총독부 촉탁(囑託)으로 현지조사를 했던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1929년)을 간행한 바 있다. 일종의 짜깁기 보고서지만 3장 4절에 ‘현재 민간에서 믿고 있는 귀신’이라는 항목이 있다. 그 안에 1913년에 출간된 나라키 스에자네(楢木末實)의 『조선의 미신과 풍속』에서 인용한 귀신들이 있는데 옥황상제·선녀·남극성·북두칠성·야귀(夜鬼)·악귀·축귀(蓄鬼)·두신(痘神)·명태어(明太魚)·사업(蛇業)·목정(木精)·악마·용신·산령(山靈)·산신·화신·터주신·가구마(家具魔)·기귀신(器鬼神)·토주택신(土主宅神)·대감·촌신(村神)·병신(病神)·관우·성황·제석·사귀(私鬼)·산신(産神)·풍신(영등신)·수귀(水鬼)·삼신(三神)·전염병신·원귀·독각(獨脚)·염라대왕·유령불 등이다. 더불어 사람의 신체 각 부위에 거한다는 다양한 인신(人神)도 기록되어 있다. 이마무라 도모(今村鞆)의 『조선풍속집』(1914년)에서 인용한 귀신도 열거되어 있는데 겹치는 것을 빼면 손각씨·호귀(虎鬼)·미명귀(未命鬼)·최장군·성주·수문장·주주(廚主)·측귀·장장(張將, 천하대장군)·하신(河神)·수령(樹靈)·오령(烏靈)·농신·오방신·태주귀신(胎主鬼神) 등이 추가된다.

식민지 조선의 귀신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할 수는 없다. 현지조사에서 수집한 사례들을 나열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귀신 관념이 전승되어 왔지만 귀신으로 불리는 초현실 또는 비현실적 존재는 대개 사람에서 비롯된 것, 자연과 사물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에서 비롯된 인신과 인귀가 있다면, 자연과 사물에서 비롯된 신물과 귀물이 있다. 옥황상제나 선녀, 대감이나 장군신·두신·풍신·관우·성황·제석·산신·터주신·염라대왕 등은 인신, 야귀·악귀·원귀·손각씨·태주귀신·측신·미명귀 등은 인귀에 속한다. 용신·산령·목정·수령 등은 신물로, 가구마·기귀신·독각·유령불(도깨비불)·호귀·장장 등은 귀물로 대략 분류할 수 있겠다. 분류의 논리로는 인신·인귀·신물·귀물로 나뉘지만 민간의 일상에서는 귀신(굿것)으로 통칭된다.

그런데 백여 년 전의 조사에 나타나지 않던 요괴(妖怪)나 괴물이라는 말이 근래에는 널리 쓰이고 있다. 『태평광기』에도 요괴 항목이 있으니 요괴가 안 쓰이던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괴는 사람이나 사물이 요사하고 괴이해진 상태를 형용하는 표현이지 특정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니다. 우리말 용례 속에 요(妖)와 괴(怪)의 합성어를 찾기는 힘들다. 한데 일본에서는 요괴라는 명사가 흔히 쓰인다. 요괴학이라는 학문의 분야를 설정할 정도로 요괴 개념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쓰임을 잘 살펴보면 요괴는 우리의 귀신 개념과 거의 동일하다. 무라야마 지준도 『조선의 귀신』에서 귀신은 일본에는 없는 개념이라고 했다. 요괴가 귀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유교의 영향력이 약하고 신또(神道)와 불교의 힘이 강했던 탓이다. 오늘날 한국문화에 요괴가 자주 보이는 것은 일본 요괴문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괴물도 비슷하다. 과거에는 괴물과 물괴가 구분되어 쓰였지만 물괴는 잊히고 지금은 괴물이 물괴의 자리를 차지했다. 고유어 굿것이 귀신으로 대체된 현상과 유사하다. 다중(多衆)이 사용하는 새로운 말이 힘을 얻으면 옛말은 잊히는 것이 말의 역사다. 우리 문화의 상상력 안에 기괴한 형상을 지녔거나 거대한 물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우리 땅에 거주하던 사람들과 자연의 관계가 모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괴물은 그리스 신화의 ‘티폰(Typhon)’이나 ‘키메라(Chimaera)’와 같은 존재들, 영어의 몬스터(monster)와 같은 단어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채택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요괴와 마찬가지로 외래문화의 자취라고 할 만하다.

귀신과 괴물의 시대

바야흐로 귀신과 괴물의 시대다. 굿것이라는 옛말은 지워지고, 의미가 변형된 한자어만 살아남았다. 무라야마 지준은 전등 수에 반비례하여 귀신이 감소하고 있다는 경성(京城)의 풍문을 소개한 바 있다. 오늘날 밝아진 도시환경뿐만 아니라 의료기관의 보급, 과학 교육의 확산 등으로 귀신의 유형이나 귀신에 대한 인식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여전히 귀신문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이제 귀신은 오락물이 되었다. 우리 전통 속에서 미약했던 괴물도 안전한 공포의 형식으로 즐길 거리가 되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진전 덕이다. 과거에는 상상만 했던 모든 것들이 눈앞에 이미지로 재현되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웹툰 <돌아온 자청비>·<바리공주>·<신과 함께> 등에 형상화된 무교의 신들, 한동안 여름이면 돌아오던 <전설의 고향>과 <여고괴담> 시리즈의 원귀들, <도깨비>·<오 나의 귀신님>·<싸우자 귀신아>·<고스트 닥터>·<주군의 태양>·<쌍갑포차>·<대박부동산>·<지금부터쇼타임> 등 각종 귀신을 소재로 불러내어 볼거리를 제공하는 드라마는 손꼽기 힘들 정도다. 미군이 방류한 독극물에 의해 초래된 자연의 비정상성을 표현한 <괴물>을 필두로 하여 <차우>·<물괴> 등 영화가 이미지화한 괴물도 있다. 외래물이지만 한국적 이미지로 재탄생한 <부산행>·<창궐>·<킹덤>의 좀비들도 새로운 괴물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귀신·괴물에 대해서는 거론하기 버거울 지경이다.

귀신과 괴물이 아니면 신규 콘텐츠라는 이름을 얻지 못할 정도로 귀신과 괴물이 우리의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와 있다. 호모 데우스(Homo Deus, 신이 된 인간)가 회자되는 21세기, 생물학의 진전과 디지털 기술의 진화를 바탕으로 인류는 귀신과 괴물 오락에 빠져들고 있다. 아니 스스로 귀신 혹은 괴물이 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