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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봄, 여름호-전설의고향] 원귀는 원하고 원한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7-14 조회수 : 3183
원귀는 원(願)하고 원(怨)한다
원귀(冤鬼)들은 원한을 갖고 구천을 떠도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결핍의 대상이자 욕망의 화신이었다. 원통하게 죽어 한(恨)을 품은 이들은 나이와 성별, 한(恨)의 경위에 따라 불리는 명칭이 달랐다. 그렇다면 원귀는 어떤 이유로 인간 곁에 존재하게 되었을까? 원귀가 가진 공포는 대체 무엇을 은유하고 있는 걸까?
글 오정미(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원귀(冤鬼)란 무엇인가?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귀신』에 따르면, 민간의 귀신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귀(鬼)와 혼(魂)과 백(魄)으로 이루어졌으며,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에 돌아가며 귀(鬼)는 공중에 떠돈다. 다만 귀(鬼)와 백(魄)은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행보가 달라진다. 후사가 제사를 잘 모시게 되면 사라지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백(魄)과 귀(鬼)가 응집하여 귀신으로 남아 그 혼이 떠돌게 된다. 이 혼을 바로 원혼이라 부른다.

민간에서 이야기하는 원혼은 평범하지 않은 죽음으로 시작된다.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 정절로 인해 자살한 사람들, 비명에 요절한 사람들, 익사한 사람들 등 비정상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그 원한이 깊어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 즉 ‘원한(怨恨)’은 ‘원인’을 내재하고 있는 ‘한(恨)’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역시 귀신의 출생이 충족되지 못한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원혼의 추동에는 대개 그 원인과 내력이 있다.

원귀는 질병을, 초목을, 기물을 대유한다.

원귀는 질병, 장소, 산천초목, 동물, 기물 등과 관련된다. 과거 의료기술이 보급되지 않아 민간에서 신앙이 ‘병’을 담당하던 때가 있었다. 질병의 경우, 장티푸스, 두창, 천연두, 콜레라, 말라리아 등 꽤 유명한 병명에서 사소한 감기나 정신병까지 모두 귀신의 관할에 속한다고 여겼다. 『가정백방길흉비결서(家庭百方吉凶秘訣序)』에 따르면, 대부분의 질병은 수많은 귀책(鬼嘖), 즉 귀신의 소행이며 모든 사람의 병은 어떤 원죄나 과실로 말미암아 귀신이 침입하기 때문에 생겨난 경우라고 설명했다.

오래된 동물이나 기물, 그리고 자연 등이 귀신이나 도깨비가 되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축귀>의 경우, 개는 5년 이상 닭은 3년 이상 기르면 악귀가 되어 주인을 해치므로 그전에 잡아먹어야 하며,1 오래된 물건이나 그 물건에 피가 묻으면 도깨비나 귀신이 된다고 했다. 대개 초목이나 동물 등이 원귀로 변한 경우는 시간의 경과에 기인한다. 즉, 이 경우는 시간에 대한 ‘몰입’을 통해 변화가 이루어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원한의 또 다른 이름, 결핍

원귀는 나이와 성별, 그리고 ‘한(恨)’이 생성된 경위에 따라 불리는 명칭이 달라진다. <새타니>는 순우리말로 ‘새를 탄 이’, 또는 ‘새를 받은 이’라는 뜻이다.2 어미에게 버림받아 굶어죽은 남자아이의 원귀나 그 혼령이 들린 무당을 말한다. 이때 여자아이가 굶어죽으면 <태자귀>, <기귀>라고도 불린다. <새타니>와 같이 나이를 채우지 못하고 요절한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직간접적으로 살해된 ‘한’을 가진다. 기실 친족살해와 다름없다. 만약 <새타니>가 원한이 강하거나 경험이 많아지면 바로 <새우니>가 된다.

<새우니>는 원래 무당이 사역하는 귀신이 영적 능력을 쌓아 진화된 악귀이나 그 외 원한이 너무 강한 경우도 포함된다. 조선 후기의 한문 야담집 『청구야담(靑邱野談)』에 따르면 정조 8년에 평산 지방의 어느 마을에 원귀에 의해 질병이 퍼져 가축들과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할 정도로 강력한 악귀로 평가받는다.

미혼의 남녀가 원혼이 되는 예도 있다. 처녀가 죽어서 된 귀신은 <처녀귀신>, <손각시>라 부른다. 일설에는 처녀에게만 붙는 <뻐드렁니의 악귀>라고도 한다. 남자는 <부살귀>, <몽달귀신>, 무속에서는 <삼태귀신>으로 칭한다. 특히 ‘몽달’은 총각을 뜻하는 말로 『어우야담(於于野譚)』의 이충원의 딸 일화에도 보인다. <처녀귀신>과 <몽달귀신> 같은 <무자(無子)귀>, <무사(無嗣)원귀>는 후사가 없어 혼령이 제사상을 받지 못한 것이 한이 된 원귀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이다.

특히 <처녀귀신>은 <호구>라고 하여, 무속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로 여긴다. <처녀귀신>의 괴롭힘은 그 정도가 심해 매장 방법에서 특이점을 보인다. 만약 시집을 못 간 처녀가 죽으면 시신을 매장할 때 남장을 하고 거꾸로 시신을 묻거나, 남성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사거리에 몰래 평토장(平土葬)을 했다고 할 정도이다. 혹설에는 귀신을 방비하는 목적에서 평토장 전에 죽은 처녀의 얼굴 위로 체를 씌웠다고 한다. 체의 숫자를 세는 동안에 인적으로 인해 체에 흙이 떨어지고 혼돈이 생겨서 다시 세는 사이에 날이 새어 결국 귀신이 물러난다는 것이다.

처녀귀신의 생성 요인이 단순히 결혼하지 못한 이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처녀귀신>과 정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계서 이희준이 지은 기담집 『계서야담(溪西野談)』에 따르면 처녀가 원귀가 되는 것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거나 자결한 경우이다. 신립설화, 아랑설화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여귀가 발견된다. 『조선의 귀신』에서는 <손각시>가 조혼의 풍습에 많은 영향을 미쳐 이로 인해 열녀문을 건립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손각시>와 관련된 열녀문은 반수 이상을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증거로 야담이나 고전소설에서 등장하는 여귀와 원혼의 경우 역시, 정절과 관련된 귀신의 내력담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해원(解冤)을 위한 행위의 반복과 몰입
동곳, 국립민속박물관
호식총(虎食塚),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예부터 호식 당할 팔자를 ‘백호살’이라고 했다. 이 살을 지닌 사람은 반드시 호랑이에게 물려갔다고 전해지며, 그전에 호랑이가 혀로 미리 희생자의 가르마를 슥슥 갈라놓거나 창귀가 희생자에게 미리 깃을 꽂아 표식해놓는다는 설이 있다. <창귀>는 <호귀>, <영선(靈仙)>이라고도 불린다. 박지원의 『호질(虎叱)』에서도 언급되는데, 범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창귀가 되고 잡아먹은 사람의 명수에 따라 <창귀(倀鬼)>의 종류가 달라진다. 특히 세 사람을 먹으면 <육혼(鬻渾)>이 되어 범의 턱에 붙어 살되 그가 평소에 알던 친구의 이름을 자꾸만 불러댄다고 했다. 민간에서 이야기하는 <창귀>는 <육혼>과 흡사하다.

<창귀>는 호랑이의 사령으로서 다른 사람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해야만 호랑이의 부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창귀>는 가족, 일가친척, 친구까지 자신의 지인을 불러내 범에게 잡아먹히게 만든다. 마치 가장 내밀한 내부로부터 무섭게 번지는 전염병 같은 공포성이었다. <호식총>은 창귀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증거이다. 호식당한 희생자의 머리나 신체 일부를 남겨두고, 발견된 자리에서 시체를 화장하여 시루를 엎어 덮고, 시루 가운데 칼을 꽂아 호식총을 만든다. 그만큼 창귀라는 원귀가 강력했기 때문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범에 물려 죽은 자’와 ‘물귀신’을 등가의 존재로 정의하고 그 명칭을 합하여 ‘창귀’라 부른다. <물귀신>은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된 귀신으로, 무가에서는 대체로 <수살귀>, 설화에서는 <터럭손귀신>이라고도 한다. 처녀귀신과 더불어 무당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귀신이다. 민요 「옥단춘 노래」에도 <수살귀>와 관련된 내용이 엿보인다. 노래의 내용 중, “물가운데 앉져마라 수살귀신 달래든다”에서는 물과 물귀신에 대한 금기와 경고가 동시에 드러나 있다.

<터럭손귀신>은 민간에서 전해지는 물귀신이다. 한 사공이 ‘칠천도’라는 섬 부근에서 닻을 내리고 쉬고 있는데 잠결에 한기를 느껴 눈을 뜨니 물속에서 터럭손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때 동곳을 꼭 쥐고 있으니 해코지를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어느 때는 이 (은)동곳을 빼앗겨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동곳은 정수리에 꽂아 남자 상투를 고정하는 장신구이다. 민간에서는 동곳이 아닌 은동곳과 같은 금은으로 귀신을 막는다고 전한다. 흔히 물에 빠져 죽은 사람과 호식당한 사람의 집과는 혼례를 하지 않았다. 특히 섬에서는 더욱 지키려는 금기였다고 한다. <물귀신>과 <창귀>에서 보이는 연쇄적 죽음은 개인과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에서 퍼져나가는 일종의 전염병이었다. 이 때문에 혼인의 금기는 생각보다 공포적이었고 절대적이었다.

<창귀>는 이전에 친숙했던 나의 가족이자 지인이며, 또 다른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호랑이의 입으로, 때로는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행위의 반복과 몰입으로 볼 수 있다. <아귀> 역시 과한 행위로 결핍을 해소하려는 원귀이다. <아귀>는 불교에서 나타난 일종의 배고픈 귀신이다. 『불설염구아귀경』 등에서 나타나는 아귀의 모습은 입에 먹을 것을 가져가면 먹을 것이 불로 변하여서 입과 목구멍 등을 데게 해서 먹을 수 없게 되어 괴로움을 받는 존재이다.5 하룻밤에 한 섬의 밥을 해 먹이면 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하나가 아닌 아귀 여럿이서 몰려오는 지경에 가능하지 않았다고 한다. 굶어 죽은 아귀는 원귀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먹어야만 하는 반복된 행위에 갇혀 있다. 절대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과한 행위에 몰입된 상태로 볼 수 있다.

원귀, 원(願)하고 원(怨)망해서 다시 돌아온 자들

원한을 갖고 구천을 떠도는 귀신은 비정상적이면서 불완전한 존재로, 부족하거나 과잉된 상태이다. 결국 부족한 결핍에 대한 몰입, 결핍을 메우기 위한 반복적 행위와 과잉의 상태가 원귀를 생성한다고 볼 수 있다. 원귀는 ‘원’을 가지고 돌아온 자들이다. 귀신의 원통함은 일종의 ‘결핍’이며, 끝내 충족하고자 하는 미련의 ‘욕망’이다. 그들은 생전에 해결하지 못한 결핍과 욕망을 마저 연소하기 위해 돌아왔다. ‘원’이 남아 혼이 떠나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온 자, 그래서 귀신(歸神)이다.

그렇다면 원귀가 가진 공포의 은유는 무엇일까? 프로이트는 억압된 것의 귀환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답했다. 원귀는 기실 인간 내부의 불편한 영역에 간섭하는 존재이다. 눈앞에 현현한 누군가의 ‘결핍’이자 해소되지 못한 ‘욕망’이다. 즉, 혐오, 거부, 요절, 질병과 재난, 인간의 삶과 관련된 두려움에 대한 그 모든 ‘불편한 것’들의 ‘은유’가 바로 눈앞의 ‘원귀’로 재현된 것은 아닐까.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요절한 사람들과 어린아이가, 혼례도 치르지 못한 청춘남녀 또는 나의 가족이 비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원귀의 존재는 사회 도처에 포진한 문제와 결핍을 치유하려는 의도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이며 원귀의 해원은 결국 우리 내부에 있던 결핍의 또 다른 해소로 볼 수 있다.

원귀의 존재는 공포스러우면서 어쩐지 서글프다. 원귀의 인과를 알게 된다면 공포보다는 그들의 결핍에 내재된 슬픔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창귀>는 호랑이의 입속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깊은 수심으로 우리를 부른다. 죽음을 부르는, 낯설면서 친숙한 그 목소리는 한때 ‘우리’라고 불리던 사람들이었다. 비통 속에 사라진 그리운 이의 목소리에 그 누가 대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참고문헌
  • 무라야마 지준 저/노성환 역, 『조선의 귀신』, 민속원, 2019.
  • 이찬수 외 7인,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10, [1994]. 최인학, 『한국 신이·요괴 사전』, 민속원, 2021,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