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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봄, 여름호-전설의고향] 머무는 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7-14 조회수 : 1585
머무는 귀
귀신은 좁은 의미로는 ‘사람이 죽어서 된 존재’를 일컫는 말이고, 넓은 의미로는 ‘모든 신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귀신을 풍요와 다산을 장려하며 기후를 조정하는 자연신(自然神)의 성격이 강한 존재,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인식한다. 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사람이 살았을 때는 인물이라고 하고, 죽은 뒤에는 귀신이 되는데, 산, 물, 계곡, 나무, 돌 등 곳곳에 존재하고, 만물을 해코지하는 정도도 모두 달라서 부르는 명칭 또한 다양하다.”라고 하였다.
글 박종오(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하는 지박령(地縛靈)

오래전부터 한국인은 무덤을 만들어 사체를 안치하였고, 사체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는 육체의 보존이 영혼의 보존이라는 육체혼(肉體魂, body-soul)의 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덤 안에 안치된 시체와 상관없이 사자(死者)의 자유로운 영혼을 인정하는 자유혼(自由魂, free-soul)의 관념도 가지고 있었다.

지박령(地縛靈)도 육체혼과 자유혼 관념이 반영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이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는 사자(死者)의 경우 저승에 가지 않고 이승에 남아 인간계에 간섭하면서 해(害)를 끼친다는 관념이 더해져 전한다.

중2 사회 교과서(155쪽)의 유태인 사진에 대해서는 『여자가 들고 있는 가방에 희미하게 사람 얼굴이 보인다. 모자를 눌러쓴 것으로 보아 지박령(원한이 있어 사람에게 붙는 혼)임에 틀림없다』는 얘기가 퍼졌다. 그러자 『중3 도덕책(169쪽) 사진에 건물이 피를 흘리고 있다』 『중1 도덕책(187쪽)의 「상부상조의 전통」 사진 중에 얼굴이 시커먼 귀신이 있다』는 등 새로운 귀신 사진 얘기가 잇따라 나왔다.

〈중고생 ‘교과서귀신’ 소동〉, 《경향신문》, 1997.09.19. 23면 기사 중에서.

1997년 신문 기사의 일부 내용으로 지박령을 “원한이 있어 사람에게 붙는 혼”으로 표현하고 있다. 죽은 사람의 넋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원귀(寃鬼)가 되어 떠돌아다니면서, 아무에게나 붙어 여러 가지 재앙을 가져온다고 믿는 ‘객귀(客鬼)’를 지박령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는 지박령을 ‘땅(地)에 얽매여 있는(縛) 영(靈)’으로 본다. 불교에서 땅은 하나의 질료(質料)인 물질을 의미하기 때문에 지박령은 물질에 얽매여 있거나 구속된 영혼인 셈이다. 하지만, 지박령은 특정 물질에 얽매여 있다기보다는 특정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머물러 있는 존재를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지박령이 특정한 장소에 머무는 이유는 불완전한 죽음, 그중에서도 객사(客死)를 맞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객사(客死)는 물가나 길거리 등의 외부 장소에 있다가 사고나 병 등으로 갑작스럽게 죽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자살하거나 타살당한 사람도 객귀가 된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운명하게 될 때는 집으로 데려와 숨을 거두게 하기도 하였다. 급작스레 객사하면 영혼은 자기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사체를 떠나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승에 가지 못하고 원귀(寃鬼)가 되어 특정 장소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원통함을 풀어주는 특별한 의례(儀禮)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넋건지기굿을 통해 물속에 자리한 넋을 물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건져낸 넋은 원한을 풀어주는 굿을 통해 저승으로 가도록 인도한다. 이처럼 객귀도 일정한 의례를 통해서 받들면 저승으로 가게 되어 조상신으로 좌정(坐定)할 수 있게 된다.

지박령 또한 원혼을 달래기 위한 의례를 통해 저승으로 천도할 수 있다. 이렇게 하지 못한 경우에는 자신이 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특정 장소에 남아 지속해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죽은 곳에 눌러앉은 뒷간귀신

뒷간귀신은 ‘집에 있다고 여기는 신, 가신(家神)’ 중 하나이다. 가신은 집의 일정 장소에 거주하면서 가정의 안녕과 화목을 지켜준다. 가신에게는 각자가 관장하는 고유의 영역이 있으며, 맡은 역할 또한 다르다. 집안 전체를 관장하는 ‘성주’, 안방과 아이들의 수명을 관장하는 ‘삼신’,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 집터를 지키는 ‘터주’, 집안 출입구를 관장하는 ‘대문신’, 화장실을 담당하고 있는 ‘측신(廁神)’ 등이 있다. 가신 중에서 사람들이 유난히 무서워하는 신이 있으니 바로 측신 즉, 뒷간귀신이다.

뒷간귀신은 우리나라에서 신경질적인 젊은 여신으로서 관념화되어 있다. 헛기침하지 않고 변소에 들어가면 화를 내 탈을 일으킨다고 여기며, 그 탈은 굿을 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성질 더럽고 무서운 신(神)인 셈이다. 그러면 왜 유독 뒷간귀신은 이렇게 악한 신이 되었을까?

남선고을의 남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일곱 아들을 두고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남선비는 배를 타고 장삿길에 나섰다가 노일제대귀일 딸의 꾐에 빠져 재물을 탕진하고 눈마저 멀게 된다. 여산부인이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남선비를 만나지만, 노일제대귀일의 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여산부인인 척하면서 남선비와 함께 남선고을로 돌아온다. 자신이 친어머니가 아님을 눈치챈 일곱 형제를 죽이려고 하지만, 간계가 들통나 화장실에 들어가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일곱 형제는 환생꽃으로 주천강 연못에 빠져 죽은 어머니를 살려 조왕신으로 모시고, 화장실에서 죽은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화장실의 신인 측도부인(厠道婦人)이 되었다.

제주도 무당굿에서 심방(무당)이 문신(門神)의 내력을 노래하는 <문전본풀이>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 노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왕은 본처이고, 측간귀신은 첩으로 나온다. 따라서 조왕과 측간귀신은 원수지간이라 부엌과 화장실은 멀리 떨어뜨려 놓으며, 측간의 물건은 부엌으로, 부엌의 물건은 측간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또한, 측간에서 다치면 부엌에 가서, 부엌에서 다치면 측간에 가서 비손하면 낫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어찌 되었든 측간귀신은 살아생전의 악행뿐만 아니라 자살로 삶을 마감하였기에 죽은 후에도 그 악행이 사람에게 미칠까 염려되는 모양이다. 강원도에서는 측간귀신에 대해 언제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다가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면 놀란 나머지 머리카락으로 목을 조른다고 여긴다. 따라서 뒷간에 가까이 갈 때는 미리 헛기침해야 탈이 안 난다. 아울러 변소에 빠지면 떡을 찌고 간략하게 고사를 지내야 탈을 막을 수 있다고도 한다. 어찌 됐든 측신은 분명히 악신(惡神) 쪽에 해당한다. 평생 ‘못된 짓’만 하다가 죽어 귀신이 된 존재로서 사나운 신이 될 소지는 충분하다.

예전 우리네 측간은 집과는 떨어진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어두운 밤, 멀리 떨어져 있는 측간은 홀로 가기에는 공포의 공간으로 인식되었을 것이고, 이러한 관념에서 측간귀신에 대한 공포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측간귀신이 놀라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한국의 재래식 변소를 갈 때 지켜야 하는 인기척을 유도하려는 방편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재래식 화장실이 사라진 요즘에도 화장실 귀신이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라는 질문을 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여전히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마을에 자리 잡은 장승귀신, 나무귀신

특정 장소의 입구나 인근에 머물면서 그 지역에 들어오는 나쁜 액(厄)이나 화(禍)를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 신을 보통 수호신(守護神)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마을이나 집안 등 특정 지역을 보호하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장승이나 당신(堂神)을 예로 들 수 있다.

잡귀가 무서워한다고 하여 소뼈를 목에 걸고 있는 진도군 덕병리 장승. ⓒ 나경수.

장승은 통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이나 석상을 가리킨다. 마을의 수문신(守門神) 역할을 하기도 하고, 사찰(寺刹)이나 지역 간의 경계표, 혹은 이정표(里程標) 등의 구실을 한다.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섬겨지기도 하는데, 마을에 들어오는 액을 막고 질병을 물리치고자 모시는 경우가 많다. 학질에 걸렸을 때 이를 떼어내기 위한 민간요법으로 식전에 동구 밖에 있는 장승에 입을 맞춘 후에 간 길과 다른 길로 돌아오면 낫는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장승귀신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나쁘고 약한 잡귀나 병 귀신을 물리친다고 여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큰 고목을 마을의 신, 즉 당신으로 모시고, 그곳에 당산제나 기우제 등을 지냈다. 특히 제사를 지낼 때는 금줄을 치고 주변에 황토를 뿌리는 등 정결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나뭇가지를 꺾지 못하게 하고, 부러진 나뭇가지도 가져다가 떼지 못하게 할 정도로 엄격하게 그 신성성을 지켜주었다. 이런 까닭에 ‘난리가 있을 때면 나무가 울거나 피를 흘린다.’, ‘소도둑이 훔친 소를 몰고 저녁 내내 당산나무 아래에만 돌았다.’, ‘당산제를 정결하게 지내지 못해 마을이 화를 입었다.’ 등의 다양한 신성한 이야기들이 전한다.

이렇게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 외에 자기가 뿌리 내리고 서 있는 집안사람을 도와준 회화(槐花)나무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본래 회화나무(홰나무, 괴나무 등)는 악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는데, 회화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槐(괴)’자는 나무 (木)와 귀신(鬼)이 합쳐져서 만든 글자이다. 한자로는 괴화(槐花)라고 표기하는데 발음은 회화라고 한 다. 본래 이 나무는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는다.

파성군(坡城君)의 집이 흥인문(興仁門 동대문) 안에 있었는데, 집 앞에 큰 홰나무가 있었다. 남편 모씨가 밤에 사청(射廳) 앞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보니 수를 알 수 없는 많은 무사(武士)들이 사청 위에서 궁술을 겨루다간, 다시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혹은 격구(擊毬)도 하고 혹은 말을 타고 활을 쏘기도 하니, 사청(射廳) 앞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는 모씨를 무례하다 하여 묶어놓고 구타를 했다. 애걸하였지만 듣지 않으니,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장부(丈夫)가 흔연히 여러 사람들 속에서 나와 여러 사람들에게 노하여, “이분은 나의 주인이신데, 어찌 이토록 괴롭히느냐?.”고 말하면서, 결박을 풀어주고 잘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문 안으로 들어와서 뒤를 돌아보니, 그 장부는 홰나무 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사청 앞에 나타난 무사들은 모두 귀신이었으며, 붙들고 집으로 보내 준 장부도 역시 홰나무에 의탁하여 화신(化身)한 귀신이었는가 한다.

청파 이륙(李陸, 1438~1498)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엮은 『청파극담(靑坡劇談)』에 있는 내용이다. 홰나무 귀신이 집주인을 괴롭히던 다른 귀신을 물리치고 안전하게 집에까지 모시고 왔다는 내용이다. 홰나무에 귀신이 깃들었다는 이야기는 현대에도 전한다. 이른바 ‘안동 임청각 귀신나무’ 이야기가 그것이다. 독립운동가 이상룡(李相龍, 1858~1932)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 대문을 지키던 홰나무를 자르려고 할 때 인부 여러 명이 사망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큰 나무는 영이 깃든 나무라 하여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거목신앙(巨木信仰)에 따라 목신(木神)으로 섬기기도 하고, 제를 올리는 숭배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연모하는 사람에게 둘러붙은 상사귀신

남녀 간에 사랑이나 그리움 때문에 생기는 심리적·육체적인 증상을 상사병(相思病)이라고 하며, 상사병을 앓다가 죽은 사람이 원귀(冤鬼)가 되어 연모하던 사람에게 둘러붙은 것을 상사귀신이라 한다. 남녀가 상호 간에 연모하는 마음 없이 남성 혹은 여성 한쪽의 일방적인 짝사랑은 문제를 만들어낸다. 짝사랑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열렬히 구애하지만 거절당하게 되고,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 결국은 한이 남아 원귀가 되어 나타나 상대방에게 둘러붙게 된다.

옛날 어느 천민의 딸이 한 양반의 아들을 짝사랑했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낼 수가 없어 딸은 끝내 상사병에 걸렸다. 딸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딸을 이대로 잃을 수가 없어 큰마음을 먹고 양반집 주인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양반은 들은 체도 않고 거절했다.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딸을 만나게 해주십시오.”하고 양반의 아들에게 가서 통사정했으나 그도 거절했다. 끝내 딸은 죽었다. 원령이 되어 양반집 아들을 따라 다녔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해도 실패했다. 학문을 해도 과거에 떨어지곤 했다. 그녀는 총각의 곁을 바싹 붙어 다녔다. 아무리 용서해 달라고 호소해도 막무가내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붙어 다니는 원령>, 『옛날이야기꾸러미 3』, 140~141쪽.

도덕의 규범이 되는 원리보다 인간의 본능인 연모(戀慕)의 정(情), 즉 정욕(情慾)에 이끌려 행동하다 죽은 후에도 그 욕망을 지속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구애를 거절당한 사람이 뱀이 되어 나타나는 예도 있는데, 이를 ‘상사뱀’이라 부른다. 인간과 달리 발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는 뱀은 혐오의 대상이다.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붙어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사랑을 거절당한 사람(특히 여성),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원귀가 되어 강력한 위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복수는 좌절과 상처의 크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욕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부각해준다. 일찍이 사학자 이능화(李能和, 1869~1943)는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원귀로 ‘손각씨’를 지적한 바 있다. 손각씨는 다름 아닌 정욕을 해소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을 가리킨다.

참고문헌
  •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가정신앙 - 강원도 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 박종오, 「한국의 귀신설화 연구」, 전남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 최인학, 『한국 신이ㆍ요괴 사전』, 민속원, 2020.
  • 최인학ㆍ엄용희, 『옛날이야기꾸러미 3』, 집문당, 2003.
  • 허남춘, 「〈문전본풀이〉에서 집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 『한국무속학』 42집, 한국무속학회,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