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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봄, 여름호-전설의고향] 이름을 얻은 신이한 물괴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7-14 조회수 : 1575
이름을 얻은 신이한 물괴들
인간은 어떤 대상을 이해하지 못할 때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식과 월식 같은 자연현상이나 임진왜란 같은 전란을 설명하기 위해 불개, 천구, 갑산괴라는 물괴를 만들어 이름을 붙였다. 오늘날 도시괴담에 등장한 물괴 장산범까지 우리는 왜 공포감을 주는 물괴들에게 이름까지 부여하게 되었을까?
글 이소윤(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BK21 FOUR(4단계) 교육연구단 박사후연구원)
일식과 월식 현상을 해명하는 신이한 물괴, 불개

불개가 사는 암흑나라는 해도 달도 없이 사나운 개, 불개만 기르는 나라이다. 불개는 사납기도 사납지만 불덩이를 잘 물어서 불개라 불렸다. 그래서 암흑나라의 왕은 가장 용렬한 불개에게 암흑나라에는 없는 해와 달을 훔쳐 오라고 시켰다. 불개는 몰래 해를 입에 물고 오다가 입이 너무 타들어 가듯이 뜨거워 도중에 항상 해를 뱉어버리곤 했다. 왕의 엄포에 불개는 어쩔 수 없이 해 물어오기를 계속 시도했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불개는 달도 입에 물었다. 그런데 해와 달리 달은 입에 물면 입이 너무 시리도록 차가웠기 때문에 불개는 또다시 달을 입에서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불개가 해와 달을 입으로 물었다 뱉었다 하여 지구에는 일식과 월식이 생겼다고 한다.

손진태의 『조선민담집』에 실린 이 이야기는 몇 가지 흥미로운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 먼저 불개만 기르는 ‘암흑나라’의 존재다. 하늘나라에는 지상과 같은 나라가 무수히 많은데 암흑나라는 그중 하나라는 것이다. 2022년 5월 4일 개봉한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우리 우주 A 이외에도 다른 우주 B, C, D… 등등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다중우주(multiverse), 평행우주(parallel-universe) 이론을 세계관으로 삼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불개 이야기에 나타난 ‘하늘나라에 지상과 같은 나라가 무수히 많다’는 설정은 지금 ‘여기’뿐 아니라 무수한 ‘저기’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다중우주와 평행우주에 관한 상상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론상으로 각각의 우주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고 고립된 채로 무한히 존재한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영화에서 주인공 닥터 스트레인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우주를 넘나들면서 문제가 발생했듯이 불개 이야기에서도 불개가 암흑나라에 없는 해와 달을 구하기 위해 지상나라로 오면서 사단이 일어난다. 영화에서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우주 간 이동이 초래한 문제를 ‘인커전(incursion)’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불개 이야기에서는 그것이 ‘일식’과 ‘월식’으로 설명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일식’과 ‘월식’은 불개가 암흑나라에서 지상나라로 와서 해와 달을 훔쳐 가려고 하면서 발생하는 자연현상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일식과 월식을 일으키는 ‘불개’의 존재이다.

사납고 불덩이를 잘 물었기 때문에 불개라 불린 이 신이한 물괴는 암흑나라에 없는 ‘빛’이라는 결핍 요소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긍정적 존재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지상나라 입장에서는 해와 달을 가져가려고 함으로써 ‘일식’과 ‘월식’을 일으키는 부정적 존재이기도 하다. 후자의 의미는 다시 새길 필요가 있는데 불개가 부정적 존재이기는 하나, ‘일식’과 ‘월식’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의 천문학 기술로 해명이 불가능했던 ‘일식’과 ‘월식’ 현상은 분명 당대인들에게 공포를 야기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폴란드 출신 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유동하는 현 사회를 진단하면서 내놓은 견해이기는 하지만 공포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성찰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대로 적용되는 듯싶다. 해와 달을 삼켰다 뱉는 불개는 전통시대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이한 현상, 즉 불가해한 현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일식’과 ‘월식’이라는 자연현상을 해명하기 위해 창조된 신이한 물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흉조를 암시하는 물괴, 천구

같은 맥락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사강목』 등에 여러 차례 기록된 천구(天狗) 역시 불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을 보면 신라 혜공왕 3년(767년)에 동루 남쪽에 천구성이 떨어졌는데 머리가 항아리처럼 생겼고 꼬리가 3척가량 되었으며 빛은 활활 타는 불같았고 천지가 진동했다고 한다. 『동사강목』에서는 고려 인종 2년(1124년)에 천구성이 동북방에서 출발해 도성 안팎을 빙빙 돌며 날아다니다가 마침내 서남방을 향해 땅에 떨어졌는데 이때 소리가 천둥과 같았다고 한다. 천구가 천구성(天狗星)으로 칭해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천구성은 혜성 혹은 유성을 뜻한다. 이는 천구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그 존재가 혜성 또는 유성을 의미함을 유추해볼 수 있는데 머리가 항아리 같고 꼬리가 길었다는 것이 영락없는 혜성, 유성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정체가 불분명한 대상에 대해 천구라 명명함으로써 식별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 공포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불개와는 달리 천구는 앞으로 닥쳐올 흉조(凶兆)를 암시하는 물괴로 인식된다. 위에서 언급한 『삼국유사』 기이편에 언급된 천구성은 신라 혜공왕 대에 나타난 것인데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은 이 시기에 일어난 여러 병난의 흉조를 언급하면서 천구성을 거론하고 있다. 강주(지금의 진주) 지방 동쪽 땅이 점점 꺼져서 못이 만들어졌고 금포현의 5경 정도 되는 논에서 쌀낱이 이삭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북궁 뜰 안에 별 세 개가 떨어지고 대궐과 절에서 잇달아 화재가 나는 등 화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왕은 이러한 변괴(變怪)가 있을 때마다 천하에 큰 병란(兵亂)이 일어난다는 『안국병법』의 내용에 따라 죄수를 사면하고 몸을 닦아 반성했다고 한다.

『연려실기술』에서는 조선시대 현종 사후에 천구가 목격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현종 15년(1674년) 5월, 해에 겹무리가 지고 6월에 궁궐 안 연못에 연꽃의 꼭지가 한데 붙은 것이 있어 늙은 환관이 상서롭지 못한 징조라며 근심했는데, 얼마 안 있어 8월에 현종이 승하한 것이다. 현종은 아버지 효종이 봉림대군이던 시절 심양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태어나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예송논쟁(禮訟論爭)을 겪은 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역사상 유례없는 기근과 전염병의 창궐로 마음고생을 했던 왕이기도 하다. 특히 현종 11년(1670년)부터 12년(1671년)까지의 대기근은 경술년(1670년)과 신해년(1671년)을 합쳐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이라 칭했을 정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명 염병(染病)이 기승을 부렸는데 『숙종실록』에 따르면 이 당시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 탓인지 현종은 33살의 나이에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천구가 출현한 것은 현종 승하 이후 두 달 뒤인 10월이었는데 모양이 병과 같고 길이가 3~4척 되는 유성이 떨어졌다고 한다. 이때 빛이 붉고 우레 같은 소리가 나서 나라 사람들이 천구성으로 의심하면서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종 사후에 또 경신대기근이나 염병과 같은 엄청난 재앙이 닥칠까 봐 우려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길한 징조를 예기하는 갑산괴

이렇듯 불개와 천구는 각각 일식과 월식, 혜성과 유성이라는 당대에 이해하기 힘든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복안이다. 천구는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데 즉,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불행한 일에 대해 미리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갑산 지역에서 출몰해서 임진왜란을 예기(豫期)했다고 믿어지는 갑산괴는 천구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기언』에 따르면 선조 16년(1583년)에 허봉이 갑산으로 유배되었는데, 그해 여름 갑산에 기괴한 물괴가 등장한다. 눈은 희번덕거리고 이빨은 컸으며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왼손에는 활을 쥐고 오른손에는 불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 북을 치고 활을 쏘아 물리쳤는데, 이 당시 허봉은 이 물괴를 쫓아내기 위해 축려문(逐厲文)을 지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수암 박지화는 “10년 안에 동방에 큰 난리가 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진짜 10년 뒤인 임진년(1592년)에 왜란이 일어나고 7년 만에야 평정되었다.

앞서 갑산괴가 불길한 징조라는 점에서 천구와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했으나 『기언』만 놓고 보자면 갑산괴는 자연현상이 물화된 천구, 불개와 달리 그 자체로 자연현상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물괴이다. 희번덕거리는 눈과 큰 이빨, 흐트러진 머리채에서 사람과 짐승 사이의 지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왼손과 오른손에 든 활과 불이다. 이제 더 이상 공포의 실체는 자연현상이 아니다. 활과 불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전란(戰亂)’인 것이다. 천구도 병란의 징조로 해석된 바 있지만 갑산괴는 활과 불로써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전란’을 나타낸다. 더욱이 갑산괴라는 존재 자체는 여러 측면에서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 당시 ‘갑산’이라는 실제 지명에서 출몰하였다는 점과 북을 치고 활을 쏘아 물리쳤다는 이야기에 허봉이 갑 산괴를 쫓기 위해 작성했다는 글이 그 사실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갑산괴가 지닌 예기적 능력은 10년 안에 큰 난리가 날 것이라는 박지화의 예언적 진술과 후에 실제로 일어난 임진왜란에 의해 뒷받침된다.

현재 도시괴담에 등장한 물괴, 장산범

이렇듯 불개와 천구, 갑산괴라는 물괴들을 일별해보면 당대의 공포 대상이 무엇인지 이를 당대인들이 어떤 형상으로 투사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떠한 물괴가 현재의 공포를 보여주고 있을까? 이쯤에서 장산범을 소환해볼 필요가 있다. 장산범은 인터넷 사이트, 스마트폰 앱과 같은 뉴미디어에서 등장한 도시괴담의 일종이다.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라는 이름의 괴담 사이트에 장산범의 시초로 추정되는 이야기들을 담은 게시물이 처음 업로드된 이후 한 익명 커뮤니티에서 ‘장산범’ 목격 사례를 모집하며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후 장산범 목격담을 수집하는 안드로이드용 앱과 네이버 웹툰 <전설의 고향> 시리즈의 ‘장산범’ 에피소드가 인기를 끌었고 2017년 8월 17일에는 허정 감독과 염정아, 박혁권 주연의 영화 <장산범>이 개봉했다.

장산범은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이 안 가는 외양을 지니고 있는데 그의 목격자가 아는 사람의 목소리를 마치 그 사람처럼 똑같이 모방하기도 한다. 이러한 장산범이 가장 많이 목격되는 장소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산’이다. 장산(萇山)은 부산에 실재하는 지명인데, 구체적인 지명을 기반으로 사실성을 확보한 것이 갑산괴와 유사한 지점이다. 중요한 것은 ‘산’이라는 장소가 도시인에게 낯선 감각을 유발하며 바로 이 점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장산범을 목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인들로 산을 낯선 공간으로 인식한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이 안 되는 존재의 출현이 극심한 공포를 야기하는 것이다. 분류와 체계를 중요시하는 도시인의 입장에서 규정이 불가능한 대상은 늘 난감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대규모의 사고 경험은 도시의 안전 시스템이 그리 완벽하지 않으며 도시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극히 취약한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만일 도시를 위협하는 외적 존재의 출현으로 도시의 인프라 기능이 마비된다면? 도시는 그 즉시 패닉과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을 다시 상기해보면 공포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할 때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대상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해할 수 없다면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후에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나 막상 자연현상이나 전쟁, 테러가 닥쳤을 때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전후 사정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게다가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이 공포를 더 가중시킨다. 이때 불개와 천구, 갑산괴, 장산범이라는 명명(命名)은 이해가 불가능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공포감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명명(命名)을 통해 공포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름을 얻은 이 물괴들은 당대의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참고문헌
  • 고성배, 『한국요괴도감』, 위즈덤하우스, 2019.
  • 이소윤, 「뉴미디어 시대에 등장한 도시괴담 장산범 연구」, 『구비문학연구』48, 한국구비문학회, 2018.
  • 최인학 편저, 『한국 신이·요괴 사전』, 민속원, 2021.
  •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공포』, 함규진 역, 산책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