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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봄, 여름호-전설의고향] 벽사 수호의 첨병, 귀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7-14 조회수 : 1803
벽사 수호의 첨병, 귀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한 생각과 견해를 관념이라 하고, 그 관념을 어떤 방법과 매체로써 구체화, 시각화하는 것을 형상화라 한다. 예컨대 산신도의 선풍도골(仙風道骨) 노인은 옛사람들의 관념 속에 잠재해 있던 산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건축, 공예 등 유형문화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면(鬼面) 역시 당대 사람들의 관념 속의 귀신 얼굴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귀면의 상(像) 그 자체는 옛사람들의 귀신에 대한 인간 중심적 해석과 장인의 상상력이 함께 이뤄낸 결과라 할 것이다. 귀신, 또는 귀(鬼)라는 것은 추상적, 관념적 존재이므로 작례에 따라 그 형상이 일정치 않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벽사(僻邪) 장식물에는 귀면과 견줄 수 있는 도깨비, 괴수, 용수(龍首), 용면(龍面), 도철(饕餮)과 같은 물상들도 있다. 그런데 유물에 따라서는 외형만으로 그 정체를 명확히 판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보통 ‘귀면’으로 통칭하고 있다. 이것이 용인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모두 추상적, 초현실적 존재들이면서 귀면과 같이 벽사 수호라는 동일한 상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귀신과 귀(鬼), 그리고 도깨비

‘귀신’은 그 개념 속에 유교·무속신앙·민속 등에 연원을 둔 개념들이 종횡으로 엮여 있어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먼저 유학자들이 말하는 귀신은 귀(鬼)와 신(神)의 복합 개념이다. 그의 본질에 관한 설명은 이기론을 바탕으로 전개되는데, 천신, 지신 등 모든 신의 그 나타남은 기(氣)이고 그 은미(隱微)한 것은 이(理)로서, 이를 통틀어 귀신이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교의 귀신은 범신론적 신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한편, 귀(鬼)에 관한 이런 설도 있다. 즉, ‘鬼(귀신 귀)’는 ‘由(말미암을 유)’와 ‘几(안석 궤)’, ‘厶(사사로울 사)’ 세 글자를 합친 회의 문자인데, 여기서 ‘由’는 기괴한 얼굴을 상형화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几’는 ‘人’자를 변형시킨 것이고, ‘厶’는 ‘私(사)’자의 원형이라 한다. 총각 귀, 처녀 귀라는 것도 비명횡사한 귀이고, 망령이나 유령 또한 귀와 같은 부류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生)을 좋아하고 사(死)를 싫어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모습을 추악한 모습으로 상상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에 기초한 풀이다. 이 경우 귀는 사령신(死靈神)의 개념이다. 귀와 비견되는 도깨비는 한자로 매(魅), 또는 귀매(鬼魅)라 한다. 오래된 사물의 기(氣)가 어긋나서 생긴 것이라고 하는데, 산의 정괴(精怪)인 기망량(夔魍魎), 물의 정괴인 용망상(龍魍象), 흙의 정괴인 분양(羵羊) 등이 모두 이 부류에 속한다. 도깨비는 초자연적 힘을 가졌지만, 신성성보다는 괴이함이 더 부각되는 존재다. 대개 물리침의 대상이지만, 반대로 벽사의 주체가 되어 인간에게 이득을 주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에게 귀신, 귀, 도깨비는 천지간에 있지만 없는 듯하고, 실하지만 허(虛)한 듯한 존재였다. 이들은 스스로 신비한 힘을 묘하게 작동하면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그 힘을 잘만 이용하면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옛사람들은 믿었다. 생활 공간 도처에 장식되었던 귀신, 귀, 도깨비 형상들은 평소 그들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던 이들에 대한 환상을 시각적 방법으로 표출한 것이다.

벽사의 주체, 귀면
경희궁 금천교(禁川橋) 귀면.
창덕궁 금천교(錦川橋) 귀면.
창경궁 옥천교 귀면.
광릉(세조) 혼유석의 귀면.
선릉(성종) 혼유석의 귀면.
영릉(효종) 혼유석의 귀면.

사기(邪氣), 사귀(邪鬼) 등 길상(吉祥) 안정을 해치는 요소들을 물리치는 것을 벽사라 한다. 벽사를 목적으로 건축물, 공예품 등에 귀면을 장식하는 것은 일종의 주술 행위다. 따라서 귀면 그 자체는 주술 도구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긴 세월 동안 귀면은 궁궐, 왕릉, 사찰 등 권위 건축물에서부터 양반 가옥, 생활용품, 부장품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방면에서 인간의 기대와 부림에 따라 주술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궁궐과 왕릉의 귀면⦁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등 조선 궁궐 내에는 금천(禁川)이 조성돼 있다. 궁궐을 명당 길지로 조성하기 위한 풍수적 장치인데, 그 위에 귀면이 장식된 석교가 놓여 있다. 두 홍예 사이의 역삼각 형태의 돌에 귀면이 새겨져 있는데, 도상(圖像)은 세 궁궐의 것이 대동소이하다. 귀면을 다리에 새긴 뜻은 명당수를 타고 침입할지도 모르는 사귀, 사기, 역귀(疫鬼) 등 해악적 요소들을 물리쳐 궁궐을 상서와 길상이 충만한 공간으로 유지하려는 데 있다.

궁궐이 양택(陽宅)이라면 왕족이 죽어 묻히는 능은 음택(陰宅)이다. 광(壙)은 망자의 영원한 안식처이며 능역은 영혼이 노니는 곳이다. 시신을 안치할 때 창으로 광의 네 모퉁이를 치는 시늉을 하는데, 이것은 기망량(夔魍魎, 나무와 돌에 사는 귀신)과 같은 사귀를 쫓기 위함이다. 망자의 혼령도 기(氣)가 어긋나면 인간을 성가시게 하는 망령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산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산릉제를 올리면서 귀신이 바른 도리로서 보답하여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기를 비는 것이다. 사귀들이 능역을 배회하거나 망자의 혼령을 해치게 놓아둘 수는 없다. 그래서 혼유석(魂遊石)을 받치는 고석(鼓石)마다 귀면을 새겨 이들의 발호를 막았다. 귀면 장식이 오랫동안 능침제도로서 유지되었던 것은 그만큼 능역을 신성하고 상서로운 공간으로 조성, 유지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범어사 관음전 전면의 귀면. 물고기와 초엽을 물고 있다.
키르티무카, 인도 아잔타 석굴사원 제1굴.
전등사 대웅전 수미단의 귀면. 당초를 물고 있다.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귀면. 연꽃을 물고 있다.

사찰의 귀면⦁사찰 귀면은 법당 정면의 처마, 추녀 밑 또는 사래, 그리고 수미단과 출입문의 궁창 등에 주로 장식된다. 도상은 크게 당초(唐草), 초엽(草葉), 길상초, 연꽃, 연봉, 물고기 중 어느 한 가지 또는 두 가지를 입에 문 것과 아무것도 물고 있지 않은 것의 두 종류가 있다.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는 동래 범어사 대웅전과 관음전, 강화 전등사 대웅전, 금릉 법주사 팔상전, 구례 화엄사 원통전, 김제 금산사 대장전, 연기 비암사 극락보전의 귀면 등이 볼만하다. 이들 가운데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범어사 관음전 전면의 귀면이다. 붉고 푸른 초엽과 함께 두 마리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인데, 이와 같은 형식의 귀면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강화 전등사 대웅전 수미단의 귀면은 날카로운 송곳니와 뿔을 가졌는데, 길상초를 문 것과 연꽃 또는 연봉을 물고 있는 것이 있다. 경산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에서도 거의 같은 모습의 귀면을 찾아볼 수 있다.

입에 연꽃 또는 연꽃 봉오리를 문 귀면은 벽사 기능에 불교적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실제로 종교적 색채가 짙은 귀면을 인도의 힌두 사원에서 볼 수 있다. 키르티무카(Kirtimukha), 즉 ‘영광의 얼굴’로 불리는 이것은 신상의 하나로, 얼굴만 나타난 것이 우리나라 사찰의 귀면과 닮았다. 키르티무카는 힌두교 시바 신의 무서운 한 측면을 표현한 것으로, 그 기능은 사악한 자를 물리치고 참배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불교가 성립되면서 이를 호법신으로 수용하여 아잔타 석굴사원 등 불교사원 장식에 활용했다. 아잔타 석굴 사원의 제1굴 정면 기둥머리의 키르티무카상을 보면, 정면관(正面觀)의 분노 상으로 우리나라 사찰 귀면과 기본 틀과 배치 위치에서 유사점이 많다. 양자 간의 영향 관계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얼굴만 있는 분노상이라는 점, 법전 정면에 배치된 점, 벽사 수호의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관련성을 의심해 볼 만하다.

사찰 귀면은 목재를 재료로 환조 또는 부조로 제작한 것이 많다. 환조의 드문 예로는 강화 정수사 대웅보전 처마 밑 귀면이 있고, 앞서 살펴본 전등사, 환성사, 범어사 대웅전 수미단의 귀면은 부조의 우수작으로 꼽힌다. 사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귀면은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수덕사 선방 출입문 경우처럼 주로 궁창(창호 문짝 아래에 판자 널을 댄 부분)에 많이 그려진다.

불교에는 귀면, 혹은 도깨비와 견줄 수 있는 존재로 야차가 있다. 이것은 정령과 자연 현상을 의인화한 신적 존재로, 평소에 악행을 저지르다가 부처님께 귀의한 후부터는 불도를 깨우친 자, 공양을 잘하는 자의 편에 서서 악을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야차는 인도 민간신앙에서는 하늘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초자연적인 힘과 선악의 양면성을 가진 점, 의인화된 점 등에서 도깨비, 귀면과 유사한 점이 많다. 법주사 팔상전 추녀 밑에서 용을 입에 문 채 쭈그리고 앉아 추녀를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머리 큰 난쟁이가 야차로 추정되는 물상이다.

정수사 대웅보전 귀면. 환조로 제작되었다.
수덕사 선방의 귀면. 초엽을 물고 있다.
법주사 팔상전 추녀 밑의 야차상.
귀면문 수막새, 고구려, 국립중앙박물관.
사래기와, 인면+용면, 통일신라, 국립중앙박물관.
사래기와, 용면(용수), 통일신라, 국립중앙박물관.
사래기와, 인면, 국립중앙박물관.

귀면와와 금동 신발의 괴수⦁궁궐과 같은 권위 건축물 지붕에서 볼 수 있는 치미, 취두, 용두 등은 장식 기와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기와를 올리는 목적은 용마루 양단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거나 경사진 내림마루 기와들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는 데 있다. 말하자면 기능성이 먼저고 장식성은 부차적인 기와인 셈이다. 지붕에 입혀 내려온 기와를 끝 막음하는 막새기와도 마찬가지다. 수직면이 반월형인 암막새와 원형인 수막새의 두 종류가 있는데, 이 수직면에 귀면을 비롯 박쥐, 길상초 등 다양한 문양들이 새겨진다.

그런데 기능성과 장식성을 함께 가진 이들 기와와 달리 사래기와는 전적으로 장식에 목적을 두고 제작된 기와다. 추녀 끝에 잇댄 짧고 네모난 서까래를 사래라고 하는데, 이곳에 부착하는 사래기와는 대부분 귀면와이다. 도상은 용면, 또는 용수를 닮은 것, 인면을 연상시키는 것, 인면과 수면이 절충된 것 등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모두 벽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점에서는 같다. 사래기와에 나 있는 구멍은 기와를 사래에 부착할 때 못을 박기 위해 뚫어놓은 것이다.

귀면보다 유물 수가 적지만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이 만든 또 하나의 초현실적 존재가 있으니 괴수가 그것이다. 일제강점기에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출토된 백제 연화귀형문전과 산경귀형문전에서 그 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얼굴만 있는 보통의 귀면과 달리 전신상이며, 가슴 근육을 드러낸 채 허리띠를 차고 있는 역사(力士)의 모습이다. 잔뜩 힘을 준 근육질의 팔과 어깨, 송곳니를 드러낸 큰 입이 분노의 상을 나타내고 있어 벽사(辟邪)용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좌가 서로 다름에도 두 괴수가 완벽히 닮은 것은 같은 틀을 대좌 부분만 고쳐 재사용한 결과가 아닌가 의심이 간다.

괴수상은 신라 식리총 금동 식리(飾履)에서도 나타난다. 1924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주 식리총에서 발굴된 이 금동 신발은 판금 기술과 문양 내용 면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연속 육각문 안에 괴수를 비롯해 쌍조, 신조, 인두조신, 신수 등이 시문돼 있다. 이런 진금괴수(珍禽怪獸)는 모두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하고 특수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어울려 사는 곳은 현실을 초월한 세계요, 그것은 곧 천상 세계인 것이다. 금동 식리에는 두 신발을 합하여 모두 8개의 괴수 문양이 있다. 단독이 아니라 다른 진금들과 함께 일정 간격을 두고 배열된 것을 볼 때, 이 괴수들은 벽사의 주체라기보다는 초현실 세계를 상징하는 소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금동 식리가 부장품(副葬品)인 만큼 망자로 하여금 천상 세계에 가서 편히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다.

귀형문전(암석좌), 국립부여박물관.
귀형문전(연화좌), 국립부여박물관.
금동 식리 바닥의 괴수와 신조, 신라, 국립중앙박물관.
맺는말

귀면은 인간의 편에 서서 특정 영역이나 공간을 청정하고 상서롭게 유지하는 초자연, 초인간적 존재이자 벽사용 주술 도구다. 주술의 영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사귀들이 귀면을 보고 놀라 도망칠 정도로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분노의 상이여야 한다고 우리 조상들은 생각했고 또 그렇게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일본, 중국 등 다른 나라 벽사상과 달리 우리나라 장인들이 만든 귀면의 실제 모습은 사귀가 공포와 전율을 느껴 달아날 만큼 표정이 사납고 독살스럽지 않다. 오히려 경계의 눈초리 속에 관대함이 스며있고, 공포감을 조성하려 했던 표정에서조차 해학과 온화함이 묻어난다. 이것은 한국인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모나지 않은 심성이 귀면 미술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