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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봄, 여름호-전설의고향]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 한국적 공포물의 탄생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7-14 조회수 : 1663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 한국적 공포물의 탄생
여름이 다가오면 뭔가 오싹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듣거나 봐야 할 것 같다. 오싹하고 섬뜩한 이야기로 무더위를 날려보자는 심사다. 대중들의 이런 심사를 아는지 TV 방송국들은 매년 여름이면 ‘납량특집’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TV 앞에 모인 시청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KBS TV <전설의 고향>, MBC TV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등이 대표적 예다. 그 중 <전설의 고향>은 ‘오싹하고 섬뜩한 이야기’로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괴담문화를 선도하였다.
글 최원오(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향토물에서 공포물로, <전설의 고향> 서사 형성의 배경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방송했던, 안방극장 프로그램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일뿐, 그 시작은 사뭇 달랐다. <전설의 고향>은 우리나라 산천, 마을 등 방방곡곡에 스며들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어 대중들에게 알리자는 의도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설의 고향>에 대한 간략한 검토가 필요하다.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은 크게 3개의 시즌으로 분류된다. 시즌1은 1977년 10월 18일부터 1989년 10월 3일까지, 시즌2는 1996년 6월 26일부터 1999년 8월 3일까지, 시즌3은 2008년 8월 6일부터 2008년 9월 3일 및 2009년 8월 10일부터 2009년 9월 8일까지이다. 시즌1에서 시즌3으로 갈수록 기이하고 괴기스러운 소재가 다수 채택되었고, 공포물 드라마로서의 특성이 강조되었다. 즉 귀신, 저승사자, 구미호와 같은 무섭고 괴이한 느낌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변신과 환생, 원한과 복수 등 공포감을 유발하기에 적합한 소재들이 다수 채택되었다.

KBS TV에서 <전설의 고향>이 시작되던 1977년에는 <마니산 효녀>(10.18), <꽃뫼마을>(10.25), <무상>(11.1), <탈의 소리>(11.8), <불씨>(11.15), <범처녀의 사랑>(11.22), <공녀>(11.29), <눈물의 강>(12.6), <치악산>(12.20) 등이 방영되었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젊어지는 샘>(1.17), <형제의 황금>(1.24), <여우의 사랑>(1.31), <느티고개>(2.7), <여왕과 불귀신>(2.14), <회생>(2.21), <형제바위>(2.28), <천동화>(3.7), <살곶이벌>(3.14), <만날고개>(3.21), <신선도>(3.28), <학의 울음>(4.4), <바리공주 상, 하>(4.11, 4.18), <운림지>(5.2), <비원 상, 하>(5.9, 5.23), <망자의 구슬>(5.30), <회생바위>(6.13), <도척이>(7.5), <백일홍>(7.19), <이불출전>(7.25), <도미의 처>(8.1), <나무꾼과 선녀>(8.22), <할미꽃 이야기>(8.29), <사모곡>(9.5), <불목하니>(9.12), <잉어의 보은>(9.19), <치마 무덤>(9.26), <길흉화복이 열리는 나무>(10.10), <보은의 비단>(10.17), <길장가>(10.24), <나비의 한>(11.7), <황노랭이전>(10.14), <꽃무덤>(11.21), <무릉도원>(11.28), <조강지처>(12.5), <마음의 꽃>(12.26) 등이 방영되었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무섭고 괴이한 전설보다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전승되어 온, 그중에서 애한의 정조가 강한 전설들을 보여주자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서 ‘애한의 정조’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속성에 해당한다. 전설의 미학적 특성은 비극에 있는 것이다. 또한 전설은 특정 지역에 고착되어 전승되며, 증거물을 수반한다는 특성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 가건 그곳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비극적 전설들, 그 이야기의 사실성을 뒷받침해 줄 증거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전설은 특정 지역이라는 장소성, 삶의 애환이라는 비극성, 증거물이라는 사실성 등이 조합된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 세 가지는 곧잘 역사와 결합되곤 하는데, 전설에 등장하는 장소는 우리가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자 우리네 삶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는 곳이며, 그러한 삶의 여러 흔적들이 증거물로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설은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입에서 입으로 구전하며 기억해 온 ‘구술적 기억의 역사’에 상응하는 서사인 것이다. 때문에 전설은 집단 구성원들에게 ‘향토애’를 불러일으키고, ‘향토 역사’를 상기시키는 서사로써 호명되고 사용되기에 매우 합당하였다.

『傳說따라 三千里(전 3권)』(東西文化院, 1966) 표지, 필자 소장본.
『韓國口碑文學全集 傳說 따라 三千里(전 20권)』 (東林出版社, 1975) 표지, 필자 소장본.
영화 <전설따라 삼천리>의 한 장면, (개봉 : 1968.3.1. 감독 : 장일호), (출처 : 네이버 영화).
1970년대 <전설의 고향> 시나리오, 필자 소장본.
영화 <전설의 고향>, (개봉 : 2007.5.23. 감독 : 김지환), (출처 : 네이버 영화).

그 점에서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은 시청자들에게(또는 국민들에게) 향토애, 또는 향토성을 심어주고자 하는, 소위 애향담론(愛鄕談論)의 대중 문화적 수단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애향담론은 MBC 라디오의 장수 드라마였던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전설따라 삼천리>는 MBC 라디오에서 1965년 5월부터 1978년 7일까지 방송하고, 이어서 1982년 9월부터 1983년 10월까지 총 4,408회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으로 방송이 시작되자 전설은 단번에 대중의 흥미와 관심을 끌게 된다. 그리고 전설은 1960~70년대 대중문학 및 문화의 아이콘으로 성장해 갔다. 전통 야담이 근대 들어 각종 미디를 매개로 대중문학 및 문화로 변모해 갔던 길을, 전설 역시 유사하게 밟아갔던 것이다. 당시에 전설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인기가 얼마였는가는, 1967년 <월하의 공동묘지>(권철휘 감독), 1967년 <恨(한)>(유현목 감독), 1968년 <전설따라 삼천리>(장일호 감독) 등의 영화 제작에서도 간취된다. MBC 라디오 드라마 <전설따라 삼천리>는 1960년대와 70년대를 ‘전설의 전성시대’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또한 동명의 이름으로 발간된 책 『傳說(전설) 따라 三千里(삼천리)』는 대중들이 즐겨 찾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전설따라 삼천리>의 대중적 성공은 <전설의 고향>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전설의 고향>이 더 성공한 대중문화로서 자리매김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라디오를 통해 ‘듣는 전설’에서 TV를 통해 ‘보는 전설’로 바뀌며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설따라 삼천리>의 흥행으로 동명(同名) 제목의 영화를 만들 때 시각적 효과를 크게 고려하였다는 것은 그 적실한 근거가 된다. 예컨대 영화 <전설따라 삼천리> 제2화 ‘귀화괴담(鬼話怪談)’에서 용의 승천, 큰 지네 등을 특수촬영기법으로 처리하였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전설의 고향>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귀신이나 저승사자의 등장, 구미호 같은 요물의 변신, 저승과 같은 비현실계의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공포나 신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음향 효과로써 ‘듣는 재미’를 의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종 세트와 인물 분장, 특수촬영 등을 동원하여 ‘보는 재미’에도 크게 정성을 들였던 것이다. 제작자들의 이런 의도는 <전설의 고향> 시즌2(1996-1999)에서 시작하여 시즌3에서 특히 강조되었다. 향토애를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전설의 고향>은 ‘한국적 공포물 드라마’로 자리 잡게 되었다.

<전설따라 삼천리>, <전설의 고향> 등에서 파생된 영화는 전설에 대한 이러한 인식 변화를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MBC 라디오 드라마 <전설따라 삼천리>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영화 <傳說(전설) 따라 三千里(삼천리)>는 여러 지역의 향토색 짙은 전설들 중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토대로 옴니버스 식으로 제작되었고, <전설의 고향>에 영향을 받은 1970년대 장편문화영화 <전설의 고향>은 전설의 문화적 성격을 강조하는 소재 두 가지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전설이 대중문화의 하나라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그러다가 시즌2에 해당하는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공포 서사로서의 전설이 점차 강조되고, 시즌3(2008-2009)에 이르러서는 그 특성이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2007년에 개봉한 김지환 감독의 <전설의 고향>은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공포물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탄생시킨 캐릭터들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한국적 공포물 드라마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이고, 공포물로 확실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은 2000년대에 와서이다. 이것은 라디오를 통해 전설을 감상하던 데서 TV를 통해 눈으로 감상하게 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TV의 장점은 이야기를 시각화시킬 수 있다는, 특히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저승차사나 귀신, 귀물의 시각화로 단번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전설의 고향> 시즌2, 시즌3은 이런 점을 잘 활용했으며, 그에 따라 전설도 시청자들의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는 내용의 것들이 주로 채택되었다. <전설의 고향> 시즌2에서는 총 74화가 방영되었는데, 그 중 38화가 공포물에 해당한다(약 51%). 그리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캐릭터로는 귀신, 여우 등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 외에 시체, 저승사자, 동식물의 정령 등이 확인된다. 시즌3에서는 총 18화가 방영되었는데, 모든 작품들이 공포감을 조성하는 내용의 전설들로 선택되었으며, 공포감 조성 캐릭터들도 시즌2에서와 거의 유사하게 등장하였다. 전반적으로 <전설의 고향> 시즌2, 시즌3에서 귀신(29화), 여우(6화), 저승사자(4화) 등의 빈출도가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이들은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흥행시킨 캐릭터이자, <전설의 고향>을 공포물 드라마로 각인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전설의 고향> 귀신 캐릭터는 신인 여성 연예인의 등용문으로서 기능하기도 하였다. <전설의 고향>에서 귀신 캐릭터가 주인공이거나 극중 역할이 크기에 시청자들은 아무래도 그것을 맡은 연예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여성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 연예인은 될 수 있으면 예쁘고 고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캐릭터 역할을 맡고 싶었을 터인데, 워낙 귀신 캐릭터가 인기를 얻다 보니 기현상이 생긴 것이다. 귀신 캐릭터를 빼놓고 <전설의 고향>을 논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전설의 고향> 시즌1에 등장하였던 귀신들은 원한에 사무친 존재, 즉 원귀(冤鬼)가 주였다. 소복(素服)을 입고, 긴 생머리로 얼굴을 반쯤 가렸으며, 때로는 입가에 흐르는 핏자국을 보이며 ‘갑자기 등장하는 방식’으로 공포감을 조성하였다. 또한 이들 원귀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원한을 풀려고 했기에, 그 원한을 풀어줄 만한 존재들, 예컨대 한 마을의 수령에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시즌2, 시즌3에 이르면 원귀가 가해자나 자신의 피해를 묵인하였던 사람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 직접 복수하는 방식, 그것도 아주 기괴하게 복수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원한을 풀어주는 서사, 즉 해원(解冤)의 서사에서 복수의 서사로 바뀐 것이다.

귀신 캐릭터와 함께 <전설의 고향>을 인구에 회자시킨 캐릭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여우다. 여우는 우리나라 설화에서 대개는 지관(地官)과 관련되어 등장한다. 여우에게는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을 얻는 사람은 천지 원리를 깨닫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여우구슬을 얻은 후 하늘-땅 순서로 쳐다봐야 천지 원리를 깨닫게 되는데, 그만 땅을 먼저 쳐다보아 지관만 되었다는 식이다. 그렇지만 여우의 입장에서는 그 구슬이 있어야, 그것을 매개로 사람들의 정기를 흡입하여 완전한 사람으로 변신할 수가 있다. 즉 여우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물(異物), 또는 사람들의 정기를 섭취하여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은 이물로서 인식되었다. <전설의 고향>에서는 주로 후자에 초점을 맞추어 여우의 폭력성과 잔인성을 부각시켰다. 그래도 <전설의 고향> 시즌1에서는 여우의 형상을 사람에 가깝게 묘사했다면, 시즌2와 시즌3에서는 폭력성과 잔인성을 드러내는 물괴에 가깝게 묘사했다. 사람의 간을 빼 먹는 괴기스러운 행위, 흉측한 얼굴, 날카로운 손톱, 아홉 개의 꼬리 등 물괴의 속성을 특히 강조하여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인간이 되어, 인간과 어울려 살고 싶었던 여우가 왜 인간사회에서 완전히 축출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여우와 인간의 공존서사에서 여우가 인간사회에서 축출되는 퇴치서사로 변모되어 온 것이다.

우리나라 설화문학사에서 물괴는 빈번하게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혹여 등장하더라도 그 잔인성과 폭력성이 핍진하지 않다. 귀신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원한을 해결해 줄 만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게 일반적이다.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은 처음에는 귀신, 여우 등의 서사를 향토색 짙게 묘사하였지만, 1990년대 이후 그와는 거리가 먼, 어떻게 보면 <전설의 고향>이 창조해 내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들 캐릭터를 폭력적 형상으로 변모시켰다. 귀신의 폭력적 복수와 여우의 폭력적 살해에 특히 초점을 맞춤으로써 새로운 물괴 캐릭터를 창조해 낸 것이다. <전설의 고향>이 새롭게 창조한 또 하나의 캐릭터인 저승사자와 함께, 귀신과 여우도 <전설의 고향>이 새로 창조한 물괴 캐릭터의 부류가 된 것이다. 그런데 모든 물괴가 공포감을 조성하진 않는다. 오히려 식상하고 역겨운 존재로 전락해 버릴 수 있다. 지나치게 공포감만을 조성하려는 연출 방식의 캐릭터 창조가 능사는 아니다. 현대의 문화콘텐츠 산업계는 이런 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전설의 고향 – 야호(野狐)>(1996).
<전설의 고향 – 야호(野狐)>(1996).
<전설의 고향 - 구미호>(2008).
<전설의 고향 - 구미호>(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