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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봄, 여름호-전설의고향] 두려운 존재에서 문화콘텐츠로, 괴물들의 전성시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2-07-14 조회수 : 1427
두려운 존재에서 문화콘텐츠로, 괴물들의 전성시대
과학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우주 공간으로 인간의 영역이 확장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두려움의 대상인 상상적 존재들도 많은 부침과 변화를 함께 겪는다. 귀신, 요괴, 괴수 같은 전통적으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던 존재들은 애니메이션, 웹툰, 영화, 드라마 같은 문화 콘텐츠의 주인공으로 변신 중이다. 바야흐로 괴물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글 김윤아(영화평론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전 세계를 사로잡은 한국의 괴물들

자유분방하고 엽기적인 중국의 지괴소설(志怪小說)이나 일본의 기담 혹은 괴담을 향유하는 문화와 비교해볼 때, 유교 문화를 지향하던 역사를 지닌 한국은 초현실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나 엽기적인 자유분방함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적 괴물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존재들이 전 세계의 엔터테인먼트 세계를 올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깨비나 저승사자 같은 존재들부터 하이틴 좀비까지 다양한 한국의 괴물들이 글로벌 킬러 콘텐츠로서 새로운 괴물 서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이 글에서는 그간 많은 연구와 분석이 진행된 <여고괴담> 시리즈나 <장화, 홍련>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유령이나 귀신 등 영혼 관련 호러의 주인공들 대신, 부피감과 무게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육체성, 혹은 물질성이 강조되어 드러나는 괴물과 몬스터들을 중심에 놓아본다.

포켓몬 빵 품절 사태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피카츄 피규어.
품절 대란을 일으킨 포켓몬 빵(출처 : 뉴시스).

다시 포켓몬스터가 장안의 화제다. 포켓몬 빵 품절 사태 때문이다. 사실 빵이 아니라 그 안의 포켓몬 캐릭터들이 그려진 ‘띠뿌실 스티커’가 논란의 핵심이다. 도대체 누가 이 포켓몬 빵의 품절 사태를 일으키는가? 여러 매체의 분석 기사들은 어린 시절 포켓몬을 보고 자란 현재 서른 즈음의 청년들을 포켓몬 빵 품절 사태를 빚은 주요 구매 세력으로 지목한다. 어른이 되어 구매력이 생긴 포켓몬 세대가 포켓몬 빵을 박스로 산다는 것인데, 왜 수십 년이 지나도 포켓몬의 인기는 여전할까? 5~6년 전 구글 맵을 기반으로 한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가 열풍을 일으켰던 기억도 난다. 대대적인 ‘포켓몬고’ 게임 이벤트가 크게 열린다는 광고를 바로 며칠 전에도 보았으니 아직까지 게임 유저들은 증강현실 속 포켓몬을 잡으러 스마트폰을 들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가 보다. 포켓몬 애니메이션에 열광했고, 포켓몬 카드를 가지고 놀았고, 친구들과 함께 경쟁적으로 게임을 했던 아이들이 추억의 빵을 다시 사고 스티커를 모으며 귀여운 주머니 괴물들을 잡으러 다닌다. 여전히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일본산 포켓몬스터. 왜 사람들은 괴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고, 이상하고 엽기적인 이야기들에 매혹당하는 것일까?

헤이안 시대부터 전통 놀이문화의 하나로 발달한 심야괴담회 ‘햐쿠모노가타리(百物語)’는 일본의 요괴 문화를 선도했다. 요괴 친화적인 일본에서 <게게게노 기타로>, <요괴인간>, <드래곤 볼> 같은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다.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실존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 속 존재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 좋아하고 즐긴다. 생명이 없는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환영을 보여주는 것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면 기차나 자동차, 비행기와 상상의 대화를 하고 같이 노는 아이들에게 요괴나 괴물들이 친구가 되는 모험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진이나 쓰나미, 화산 폭발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폭력적 죽음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본의 자연환경은 그 두려움과 공포를 오래전부터 놀이문화로 승화시켜왔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폭력적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지배당하지 않고 남들의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로 잠시 눈을 돌리거나 함께 간접 경험을 하면서 그 공포를 가지고 노는 놀이 문화로 재현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두려움과 불안을 완화시켜보려는 노력이 ‘햐쿠모노가타리’의 기능이다.

포켓몬스터는 괴물이지만 아이들이 포켓볼 안에 잡아넣을 수 있고 소유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꺼내서 싸움을 시킬 수도 있는 물질성 혹은 육체성을 가진 주머니 괴물이다. 무섭고 두려운 통제 불가능의 괴물을 작고 귀엽게 만들어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포켓몬을 진화시켜 더 큰 능력을 가진 포켓몬으로 키워낼 수 있다는 점인 ‘지배와 소유, 양육’이 포켓몬 신드롬을 지속시키는 힘이라 생각된다. 허깨비처럼 지나가는 화면 속의 그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띠뿌실 스티커나 프라모델로 만들어져 실체를 가진 장난감이 된 포켓몬들은 손에 잡을 수 있는 괴물들이다. 게임 속에서라도 아이들의 수집 대상이 되는 주머니 괴물은 1세대만 하더라도 151개의 캐릭터가 있다. 현재 포켓몬은 세대를 거듭하며 8세대에 이르렀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귀엽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새로운 인기몰이를 한다. 대단한 주머니 괴물들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상상 놀이에서만 괴물들이 활보할까? 괴물 놀이문화는 비단 중세 일본이나 어린이들의 세계를 넘어 끝없이 확장되고 있다. 신종 괴물들이 압도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뿐 아니라 현재 삶의 고통과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승화된 놀이문화가 되고 있다.

연애의 대상이 된 도깨비 신사
tvN 드라마 <도깨비> 포스터(출처 : tvN).

2016년 가슴에 검이 꽂힌 채 수백 년을 살아온 도깨비의 러브 스토리를 그린 공유 주연의 tvN 드라마 <도깨비>가 수많은 여심을 사로잡았다. 대부분 뿔 달린 일본 ‘오니’를 우리 도깨비라 잘못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말하자면, 혈기 방장한 젊은 부자 남자여서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성들의 로망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마에 볼썽사나운 뿔 같은 것은 달리지 않은 멋진 미남 도깨비 신사 ‘김신’은 절절하고 애틋한 연애의 대상이 될 만했다. 으슥한 밤, 불콰하게 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 아재와 동네 어귀에서 씨름을 하던 더벅머리 총각 도깨비, 좋아하는 과부의 농간으로 그 밭에 똥지게를 져 나르는 힘이 세고 믿음직하지만 어리숙한 호구 도깨비, 풍어를 가져다주는 도깨비불로 나타나 재물신으로 추앙받던 신이적(神異的) 존재인 도깨비가 이젠 아니다. 도깨비가 변해도 너무 변해 현실에서는 존재할 가능성이 없는 여성로망의 정점에 서 있다.

초등학생 자녀들을 둔 부모에게는 유명한 ‘깨비’라는 이름의 꼬마 도깨비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영유아 교육콘텐츠도 널리 알려져 있다. 꼬마 도깨비들이 한글도 깨우치게 도와주고 숫자놀이를 하거나 영어 알파벳, 어렵지 않은 한자를 가르쳐준다. 우리나라 도깨비는 특별한 형상이 없었지만 이렇게 어린아이들의 머릿속에서부터 우락부락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친절하고 상냥한 친구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전 세계 수많은 게임 인플루언서들이 출시도 되기 전에 엄청난 퀄리티를 칭찬하는 게임도 있었다. 그 ‘도깨비’ 게임을 만드는 회사의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쳤다는 뉴스가 보도됐고, 조만간 우리나라 도깨비가 서양의 흡혈귀 드라큘라나 늑대인간처럼 매력적인 전 지구적 괴물로 등극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로 들린다.

괴수 영화 연대기
영화 <괴물> 스틸컷(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물괴> 스틸컷(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대괴수 용가리> 포스터(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부산행> 포스터(출처 :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쇠를 먹는다는 불가사리나 이무기 같은 전통적인 한국의 괴수를 등장시키는 영화는 어떤 궤적을 그렸을까? 한국 영화사에 제일 먼저 거론되는 작품은 1967년에 만들어진 김기덕 감독의 <대괴수 용가리>다. 같은 해에 <우주괴인 왕마귀>도 만들어졌다. 제목만으로도 괜히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끔찍하게 무서워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괴물들이 아니라 공룡 인형 같은 용가리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이 영화는 30여 년 뒤인 1999년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로 리메이크 되었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공룡 같은 용가리의 자태가 한층 무시무시하고 그럴듯해졌지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지는 않았다. 해학이 사라진 용가리는 익히 보아오던 할리우드의 크리처 영화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실 한국에서 괴수 영화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는 장르였다. <우뢰매> 시리즈나 일본의 <파워레인저> 같은 어린이 대상의 특촬물들에 등장하는 ‘복마’라고 불리는 괴물 빌런들이 잠시 눈길을 끌었을 뿐이다. 영화 기술적으로도 그럴듯한 크리처를 만드는 일이나 실감 나는 컴퓨터 그래픽의 구현은 대규모의 자본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가산을 탕진해가며 용가리를 다시 만들었던 심형래 감독의 무모함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대괴수 용가리> 이후 이렇다 할 괴수 영화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풍토에서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놀라운 이변을 낳았다. 서울의 중심 한강에 사는 미군 부대의 환경오염이 만들어낸 물고기 돌연변이 괴물이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풍자하고 환기했다. 기세를 몰아 3년 뒤 개봉된 <차우>에는 식인 멧돼지가 등장했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오래전 <킹콩>에서부터 시작되어 <죠스>, <에일리언>, <레릭>, <고질라>, <엘리게이터>, <프레데터>같은 굵직한 영화들로 이어지는 견고한 괴수/크리터 영화 장르가 자리잡고 있었다. 동화 <미녀와 야수> 모티프의 <셰이프 오브 워터> 같은 세련된 괴수 멜로드라마도 인기를 끌었다. 할리우드의 괴수 영화들만으로도 한국 관객의 수요를 충족한 듯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괴물>의 대성공은 상황의 변화를 알렸다. 2015년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와 포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대호>가 개봉했다. 조선 호랑이를 실감 나게 재현하며 한국의 컴퓨터 그래픽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고 영화 <물괴>(2018)로 이어졌다. <물괴>는 중종 25년에 ‘물괴가 나타났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한 줄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되었다. 이 두 영화들은 괴수 영화와 사극을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였다. <물괴> 개봉 한 달 뒤, 한국에서는 아주 이질적인 장르인 좀비 영화 <창궐>(2018)이 개봉한다. 좀비 사극의 시작이었지만 최초의 한국 좀비 영화는 아니었다. <창궐> 개봉 2년 전인 2016년 <부산행>은 이미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고 그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80년 등장한 신군부의 3S정책의 일환으로 에로영화들이 대거 등장한 적이 있다. 흥미롭게 영화는 생물처럼 진화한다. 에로영화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뽕>이나 <어우동> 같은 ‘에로 사극’이라는 하위 장르를 파생시킨다. 마찬가지로 ‘좀비 영화’가 성공하자 ‘좀비 사극’이 등장한 것이다. 괴물과 좀비, 사회의 부조리와 미래의 불안, 폭주하고 싶은 분노를 담아 현재 한국 사회의 두려움을 드러내 보여주는 공포의 양대 산맥이라 할 괴물/괴수와 좀비들은 엄청난 문화콘텐츠로 진화중이다.

OTT 드라마들 속에서 살아오는 괴물들

전 세계가 2년여의 고통스러운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영화관이 개점휴업의 상태를 면치 못한 대신 OTT 드라마들이 안방을 장악했다. 일주일에 한 번 드라마 본방 사수보다는 시즌별로 완결된 드라마를 몇 날 며칠 정주행했노라는 열혈 드라마 팬들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 아니, 어느새 그 대열에 합류한 자신을 발견한다.

현재 한국은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 서비스를 많이 소비하기도 하지만 인기 있는 콘텐츠들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생산 주체가 되었다. 전 세계를 압도하는 한국의 OTT 드라마들의 대세는 물괴, 괴물, 이물들이 주도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의 괴수 영화들은 한 마리의 괴수를 물리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최근 각광받는 괴물 드라마들은 한 마리의 괴물이나 물괴가 아니라 떼지어 다니는 여러 다양한 괴물들로 분화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커다랗고 시커먼 덩어리 괴물 셋이 죽음이 예고된 사람들에게 정한 시간에 들이닥쳐 망자를 지옥으로 잡아가는 장면은 놀라웠다. 관객들은 저승사자 같은 존재에게 예정된 사람이 순식간에 압도당하며 재가 되어버리는 끔찍함에 진저리를 쳤지만 드라마는 죽음의 공포를 시각화하며 인기를 구가했다. K-드라마로 각광받는 다른 괴물 드라마 <스위트홈>에는 다양한 괴물 크리처들이 등장했다.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괴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설정은 한국 괴물 드라마에서 좀체 보여주지 않던 것이었다. 한국의 괴물들은 <대괴수 용가리>로 시작해 <괴물>로 이어지는 괴물/괴수 영화로, 다시 <스위트홈> 같은 OTT 드라마로 그 서식지를 확장해 가고 있다.

K-좀비라고?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포스터 (출처 : 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출처 :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출처 : 넷플릭스).
<킹덤> 스틸컷(출처 : 넷플릭스).

또 하나 눈여겨볼 흐름은 좀비 드라마들이다. 사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좀비 영화 <부산행>(2016)의 대박은 한국 관객의 성향으로 보았을 때 놀랍고도 이상한 현상이었다.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는 한국영화사에서는 아주 이질적인 괴물이다. 우리가 아는 좀비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등장한 것은 1968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3부작에서부터이다. 20세기 중반에야 미국에서 등장한 좀비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국에서 ‘좀비 사극’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중국에는 전통 괴물 강시가 있긴 했지만 한국에서 영화화된 적은 없었다. 중국의 강시 영화도 <강시선생>같은 한두 편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서양 괴물 좀비가 한국적 토양에 정착해 토착화된 셈이다. 동서 합작 괴물이 바로 K-좀비다. 영화 <창궐>에서 시작된 좀비 사극은 세련된 OTT 드라마 <킹덤>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영화 <부산행>과 <창궐>, 드라마 <킹덤> 시리즈를 관통하는 한국 좀비들의 동력은 폭발하는 ‘분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좀비들은 느리고 관습적이다. 쇼핑 중독 아줌마 좀비는 쉬지 않고 느리게 쇼핑센터의 잠긴 문을 덜그럭대고 높이뛰기 선수 좀비는 머리가 깨지고 뇌수가 흘러도 계속해서 높이뛰기를 한다. 둘의 차이를 비교해보면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의 심층 심리를 더듬어 볼 수 있다.

K-좀비들은 화가 나서 부산으로 가는 KTX를 따라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반면, J-좀비들은 천천히 습관과 관성으로 움직인다. 또한 좀비 바이러스는 엄청난 전염력을 가지고 있어 순식간에 집단 광기에 사로잡히는 사회를 은유한다. 한국의 괴물이나 좀비를 다루는 콘텐츠들은 한 사람의 개인보다는 공동체 속의 인간 군상들과 그들의 연대에 관심이 많은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초현실적 개인 경험을 보여주기보다 끔찍한 집단적 악몽을 그려낸다. K-좀비 장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부산행>을 필두로 좀비 사극 영화 <창궐>과 좀비 드라마 <킹덤>을 지나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10대들의 좀비 아포칼립스 <지금 우리 학교는>이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왕따인 아들을 바꾸기 위해 위험한 생각을 지닌 천재 과학 교사가 좀비 바이러스를 개발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학교는 그야말로 각자도생과 약육강식이 원칙이 된 살벌하고 끔찍한 공간이다. 좀비 아포칼립스의 세상은 좀비가 되어 서로 물고 물리며 피투성이가 되어 몰려다니는 하이틴 좀비들을 통해 지금 우리 학교, 그러니까 한국의 교육 시스템의 심각한 문제를 풍자하고 있다. 이제 좀비물을 보지 않고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낄 수가 없다. 바야흐로 몬스터, 괴물의 시대가 도래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 콘텐츠가 각광받는 고무적 상황에서 재능 있고 역동적인 한국의 창작자들은 우리 역사 속 괴물이나 물괴, 혹은 이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 이것은 귀신이나 괴물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절실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